군형법 92조 6 폐지 법안을 낸 정의당 김종대 의원을 만났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항문 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군형법 92조 6이다. 군사법원은 5월 24일 이 형법을 어긴 A 대위에게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A 대위는 동성애자였다. 이 판결이 내려진 날 정의당 김종대 의원은 군형법 제92조 6을 삭제하는 군형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조항이 성적 자기 결정권과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하며, 동성애는 군 기강과 군 전투력 보존에 위해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었다.

대표 발의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원실 전화에 '불'이 났다. 실시간으로 항의 전화가 이어져 직원들이 업무를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전화를 건 이들 대부분이 '개신교인'이었다. 이들은 군형법 92조 6을 삭제하면, 군대 내 성폭력이 많아지고 동성애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항의 전화는 1주일 넘게 이어졌다.

다행스럽게도(?) 법안에 노회찬·심상정·윤소하·이정미·추혜선 정의당 의원과 권미혁·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 무소속 김종훈·윤종오 의원도 이름을 올렸다고 알려지면서 항의 전화는 분산됐다. 6월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난 김종대 의원은 "혼자 십자가를 지고 가는 줄 알았는데, 주변에 십자가를 짊어진 분들이 있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군형법 폐지 논란을 불러일으킨 김종대 의원은 자타 공인 군사 전문가다. 국방위원회 보좌관을 시작으로 대통령비서실 국방보좌관실 행정관, 국방부장관 정책보좌관, 군사 전문 잡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20대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국방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다.

국방 전문가가 어쩌다 보수 개신교인의 표적이 됐을까. 김 의원은 <뉴스앤조이>에 "기독교계 언론이 인터뷰하러 온다기에 공격하러 오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신앙인은 아니지만, 군대에 있을 때 월간 <기독교 사상>을 즐겨 읽기도 했다고 말했다.

군형법 폐지부터 차별금지법, 논란 중인 사드 배치 문제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반동성애' 행사가 열렸다. 인터뷰는 <뉴스앤조이> 강도현 대표가 진행했다.

"대표 발의, 물 빠진 자 구하러 뛰어든 것
'함정수사'로 A 대위 처벌받게 해
동성애자 전체에 전쟁 선포"

- 군형법 제92조 6을 삭제하는 군형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발의한 이유가 궁금하다.

내가 특별히 성소수자 문제에 앞장서거나 개척한 건 아니다. 여러 시민단체로 구성된 '무지개연합'이 입법을 청원해 왔다. 4만 명이 서명을 했더라. 마침 내가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이고, 이걸 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대표 발의한 뒤 의원실로 항의 전화가 실시간으로 걸려 오고, 페이스북이나 나와 관련된 기사에 '댓글 폭탄'이 쏟아졌다. 주변 사람들은 "그러니까 왜 사서 고생하느냐"고 말했다.

그럴 때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대표 발의하지 않을 이유가 뭐냐"고. 비유하자면, 다리 위에 사람들이 몰려 있기에 구경 갔는데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할 준비가 돼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래서 사람 구하러 뛰어든 것이다. 사람이 물에 빠져 있으니까 구하러 가는 거지, 거기에 무슨 이유가 필요한가. 나는 대표 발의했을 뿐이고, 꼭 통과시킬 거다. 물론 어렵겠지만, 내 이름과 내 인격을 걸고 한 이상 절대 양보할 생각 없다.

- 전역을 앞둔 A 대위가 동성애 문제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판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판결 자체에 문제는 없다. 판결을 내리는 데 근거가 된 '군형법'이 문제다. 지금 군형법에 따르면, 군대 내 동성애는 시간·공간 상관없이 행위가 있으면 무조건 처벌하게 돼 있다. 행위가 밝혀졌으니 처벌하지 않을 도리가 있겠는가.

문제는 '함정수사'에 있다. (군인) 동성 간 성행위 장면이 온라인상에서 유포됐고, 육군참모총장이 조사를 지시하면서 사건이 커졌다. 수사관들이 동성애자가 자주 모이는 어플에 들어가 마치 동성애자인 것처럼 행세하며 교제 상대를 물색했다. 그러면서 커뮤니티 전체가 털렸다. 30명에 이르는 군인이 조사를 받았다. 이 중 18명이 A 대위와 마찬가지로 기소되거나 처벌받을 상황에 놓여 있다. 군인권센터가 10여 명을 법률 지원하고 싸우고 있다. 이쯤 되면 여순사건 이래 최대 군 조직 사건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대상이 성소수자라는 게 매우 특이하다.

A 대위가 판결을 받던 날, 대만 대법원은 양성 결혼 합법화 판결을 내렸다. 전 세계 외신은 아시아의 두 국가가 상반된 판결을 내렸다고 타전했다. 대만은 인권의 이정표를 세운 위대한 나라로, 대한민국은 함정수사로 성소수자를 처벌하는 품격이 떨어지는 나라로 소개됐다.

- 함정수사는 어떤 식으로 전개됐는가.

수사 과정에서 A 대위에게 "부모에게 알리겠다", "게이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알려질 것이다"며 회유 협박했다. 심지어 자동차 내부도 수색하고, 휴대폰까지 검열했다. A 대위는 결국 자백할 수밖에 없었다. 영내 BOQ(독신자 숙소)에서 1번 관계를 맺은 게 문제였는데, 영외에서 3번 관계한 것까지 싸잡아 처벌했다. 군은 동성애자 색출을 지시한 것도 모자라, 개인 사적 공간까지 거침없이 들어가 인격과 사생활을 뒤졌다. 이 사건은 동성애자 전체에 대한 전쟁 선포나 다름없다.

- 신앙인이 아니더라도 동성 간 성행위를 전통적 가치관에서 벗어난 윤리 문제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분들은 이번 발의를 윤리 문제로 인식하는 듯하다.

신앙으로 판단하든, 윤리 문제로 판단하든 나는 그분들 주장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그렇게 주장할 수 있다. 자신의 믿음이나 신념을 누가 틀렸다고 할 수 있겠는가. 앞으로 동성애 문제는 우리 사회의 뜨거운 논쟁거리가 될 것이고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활발한 토론이 있어야 한다.

다만 그런 판단이 법적으로 처벌할 근거는 될 수 없다. 내가 말하는 것은 신앙적, 윤리적 판단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함께 논의하되 법으로 정상과 비정상을 낙인찍어서 처벌하는 제도를 유지하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동성애를 바라보는 관점 차이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동성애는 '찬반 문제'로 논할 주제는 아니다. 동성애든 이성애든, 성적 정체성 관한 문제는 앞으로도 꽤 오래 논쟁될 것이다. 그런데 그것보다 동성애자를 비정상인으로 매도하고, 색출하고, 처벌하고, 차별하는 제도가 유지되는 게 맞는지 묻고 싶다.

군대 내에는 동성애든 이성애든 (위법을 저지르면) 얼마든지 처벌할 수 있는 다른 법 조항이 즐비하다. 그러나 92조 6의 성격은 전혀 다르다. 국가권력이 개인의 인격과 사생활에 관여할 수 있게 한다. 개인의 신념과 종교관, 도덕관은 다를 수 있지만, 누군가를 성적 지향 문제로 처벌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동성애 반대 운동에 앞장서는 보수 기독교는 김종대 의원실에 항의 전화를 넣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군형법 92조 6 폐지 문제없어
항문 성교, 동성애 확산 안 돼
군대 성 문제 처벌 조항 즐비"

- 군형법 폐지를 반대하는 이들은 92조 6이 없어지면 많은 군인이 동성애에 노출되지 않을까 걱정한다.

이 형법 폐지가 마치 군에서 항문 성교를 허용하거나 동성애가 확산되도록 방치하는 걸 뜻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왜곡하며 말도 못하게 하는 선동이 확산되고 있다. (이 법이 없어도) 성적 기강이 문란해지거나, 성적 가학 행위가 일어나지 않는다. 이건 동성애·이성애 문제가 아니다. 군대 내 성범죄 처벌 조항은 92조 1~5에 다 나와 있다. 개인이 드러내 놓고 공개적으로 성행위를 조장하거나 강요할 경우, 92조 6까지 갈 것도 없이 그냥 처벌받는다.

단지 동성애 자체를 표적화하고, 비정상이라고 낙인을 찍고 차별하는 92조 6을 폐지하자는 거다.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범죄를 저지르면 똑같이 처벌받는다고 누누이 강조해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아담과 이브를 창조했다. 92조 6 폐지를 반대하는 기독교인은 성경에 두 종류의 성(性)만 나온다며 동성애를 반대한다. 그러나 성경이 동성애를 처벌할 법적 근거가 되는가. 거꾸로 묻지 않을 수 없다. 성경에 부랑자·창녀 등 사회에서 차별받는 사람들이 나온다. 예수님이 가서 손잡아 주고 눈물 닦아 줬다. 사람들이 (창녀를) 돌로 치려 할 때 예수님은 못 치게 하지 않았는가. 성경이 가르쳤을 리 없는데, 지금의 기독교인들은 동성애자를 악마화하고, 죄악시하고, 이단시하고, 손가락질하고, 마녀사냥한다.

성적 정체성은 선택의 문제도 당사자 책임도 아니다. 그럼에도 '비정상'이라고 주장한다면, 조물주의 '실수'이거나, 거기에 무슨 뜻이 있는 게 아닐까. 평소에 잠재돼 있다가 어느 순간 성 정체성이 떠오를 수도 있다. 이런 현상을 기독교가 해결해 주지 못할 바에는 비난하지 말고, 차별하지 말고, 처지와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 그거야말로 성경의 가르침 아니겠는가.

김종대 의원은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군형법을 폐지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2013년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려 했지만, 그때도 보수 개신교와 시민단체 반대에 부딪쳐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와 비교했을 때 동성애 여론은 나아진 것 같지 않다. 비단 보수 개신교 반대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가 보수적이다 보니 군형법 92조 6 폐지가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점점 더 어려워질 거다. 법과 체계는 민주주의로 나아가지만, 사람들의 심정은 차별을 지배 이데올로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차별금지법뿐만 아니라 이주 아동과 관련한 이자스민법, 북한이탈주민의보호및정착지원법, 세월호특별법 등 입법에 실패했다.

우리 사회에는 독특한 이데올로기가 있다. 공리주의 사상의 한 변종이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기본으로 하면서, 다수의 이익을 침해하는 소수가 있으면 배제한다. 말 그대로 '편협한 공리주의'다. 정신 질환자, 동성애자, 세월호 유족, 국책 사업 희생자(강정마을·연평도 주민 등), 탈북자 자녀, 외국인 자녀 등 소수인데, 다수는 이들을 '떼쓰는 사람'으로 인식한다. 국가는 당연하다는 듯 소수에게 희생을 요구하고, 다수는 왜 거저먹으려 하느냐고 비난한다. 이런 방식으로 이데올로기화해 있다.

나는 차별 없는 세상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차별은 어떤 식으로든 있을 수밖에 없다. 무서운 점은 그 차별이 이데올로기화할 때이다. 어떤 경우를 불문하고 다수의 이익을 침해하는 소수는 보호·배려 대상이 아닌 제거·격리·차별 대상으로 인식된다. 그런 이데올로기는 이 사회가 유지되는 근간으로 활용된다. 차별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이상, 군형법뿐만 아니라 차별금지법 처리도 낙관할 수 없다.

사실 차별 이데올로기는 '허구'다. 다수가 만들어 낸 허위의 이미지다. 이데올로기 안에서 보호받는 '다수'도 언젠가 실패자가 되거나, 낙오하거나, 추방당할 수 있다. 이들은 인생 실패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떠는 다수에 지나지 않는다.

다수라는 개념도 허구다. 다수에서 소수로 전락할 수 있다. 사업 또는 입시에 실패해서, 재난을 당해 소수가 될지 모른다. 다수는 기득권이 불안하다고 인식하고, 그 불안한 기득권에 누군가가 숟가락을 얹으면 강하게 거부한다. 그래서 소수자를 외면하고, 배려하지 않는다. 점점 우리 사회는 관용과 포용의 톨레랑스에서 멀어지는 쪽으로 간다. 나는 이런 사회를 '구토하는 사회'라고 이야기한다.

과거 우리가 어렸을 때 어느 마을을 가든 부랑자와 정신이 안 좋은 분들을 볼 수 있었다. 그걸 당연시하고 살았다. 이는 '소화하는 사회', '흡수하는 사회'다. 문명이 발전하면서 시민사회는 그들을 격리 대상으로 삼았다. 수용소를 만들어 제거하기 시작했다. 그들만을 위한 다른 공간으로 보내 정상인과 분리했다. 이런 시스템이 오늘날 너무 발전했다.

군대의 '그린캠프'도 마찬가지다. 적응 못하는 군인을 수용하는 곳이다. 1년에 3,000명 넘게 들어간다. 저 아이들을 분리하지 않으면 정상인 다수를 보호할 수 없다는 논리로 만들었다. 여기에도 다수라는 허구의 개념이 깃들어 있다.

사회는 어떤가. 직장에서 남들보다 일을 못하면 '성과 퇴출자'로 빨리 제거해야 나머지 일 잘하는 이들을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탈북자촌이 많이 생기는데, 탈북자들을 따로 한군데로 몰아 버린다. 관용과 포용으로 더불어 살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전제하에서 공동체 밖으로 내밀고 있다. 이들은 경계선 바깥에 위치한 존재가 된다. 구토하는 사회에서 특히 성소수자는 매우 좋은 표적이다. 요즘 민주주의와 인권의 근본을 묻는 소수자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차별 이데올로기'가 팽배한 이상 언제든 추방당할 수 있다.

- 지적한 대로 실질적 다수는 왜곡된 공리주의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 그럼에도 차별 행위가 자신을 보호해 줄 거라고 믿는 것 같다.

그렇다. 그렇게 보호받고 있다고 믿는다. '묻지 마 범죄'를 저지른 28명을 인터뷰한 이동우 교수라는 분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런 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조현병 환자라고 지레 짐작한다. 관련 기사도 다 그렇게 나갔다. 근데 이 교수가 28명을 인터뷰해 본 결과 조현병의 개연성을 가진 사람은 딱 1명에 지나지 않았다. 나머지 27명은 지극히 정상이었다. 그러면 범죄를 저지른 동기는 무엇일까. 그들은 사회로부터 추방됐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실제 주변과의 관계망이 단절됐고, 스스로가 피해 의식을 느꼈다. 이는 범죄로 이어졌다.

사람들은 범죄를 저지른 이가 기질적으로 비정상이라고 생각한다. 우울증 또는 조현병 때문에 그랬다는 말을 듣고 싶어하고, 그렇게 믿어 버린다. 우리 사회가 가진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대표적 편견이다.

이번 조사는 결국 한나 아렌트가 '악의 평범성'을 말한 것처럼 사람의 정상과 비정상, 준법과 범죄를 구분하는 사고의 경계선이 어쩌면 허구일지도 모른다는 교훈을 일깨워 준다. 성소수자 문제도 마찬가지다. 우리 사고 습관에 중요한 의문과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군형법 폐지 법안을 냈다.

"혐오, 혐오로 맞대응 안 돼
소수자는 비정상 아닌
행복 추구하는 인격체"

반동성애 진영은 군형법 92조 6이 폐지되면 군대 내 성폭력이 증가하고, 동성애자도 늘어난다고 주장한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반대하는 개신교인들과의 소통도 필요해 보인다.

지금 많은 공격을 받고 있지만, 어느 순간 분명히 만나게 될 것이다. 그분들께 드리고 싶은 약속이 있다. 단순히 믿음이 다르다는 이유로 이 법에 반대하는 분들에게 절대 불쾌하거나 불친절한 태도를 취하지 않겠다. 그분들의 믿음이기에 친절하게 상세하게 적극적으로 이 부분에 대한 내 입장을 이야기하고 또한 경청할 것이다.

법안 개정에 왜곡된 주장을 펼치는 개신교 단체에 맞서 정의당은 '가짜 뉴스 신고 센터'를 설치했다. (거짓 주장에) 법적 대응하겠다는 발표도 있었다. 나는 당 회의에서 혐오를 혐오로 맞대응하면 이 문제를 사회적으로 확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그 반대로 가야 한다고 누누이 말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누가 봐도 존경받고 신뢰할 만한 업적을 이룬 분들 중에는 성소수자가 많다. 어제(6월 1일) 전 호주 대법관을 만났는데, 북한 인권 문제 때문에 한국을 방문했다. 이분은 48년간 게이로 지냈다. 나를 꼭 만나고 싶다고 해서 만났는데, 반대자들에게도 친절하게 대하라고 조언하더라.

요즘 <헌법의 약속>(후마니타스)이란 책을 읽고 있는데, 저자가 에드윈 캐머린이다. 이분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대법관을 지냈고, 게이에 HIV 감염자다. 지구상에서 차별이 가장 심하다는 남아공에서 흑인 인권 운동을 한 백인이기도 하다. 이분은 평생 소수자 운동을 해 왔다. <헌법의 약속> 첫머리를 읽고 감전된 느낌을 받았다.

"게이이면서 HIV 감염인이라는 사실은 내가 인간을 폭넓은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그리고 양심적이면서도 유능한 판사가 될 수 있도록 했다."

특수한 소수자가 아니었다면 인간을 폭넓게 이해할 수 있었겠느냐고 자문한다. 자신이 얻은 핸디캡(게이+HIV)은 인생의 짐이 아니라 자산이라고 말한다. 소수자는 비정상이 아니며, 행복을 추구하는 인격체라는 점을 이해할 때, 인간과 세상을 더욱 더 깊이 있고 폭넓게 이해하는 시야를 넓혀 준다고 생각한다.

보수 개신교인에게, 우리가 속한 세계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넓고 깊고 여러 의미가 숨겨져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이 속에는 다른 관점에서 다른 시야로 봐야 보이는 존재들이 있다. 스스로를 멀리서 낯설게 바라보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 행위 자체는 모든 인간 사회에서 창의와 혁신의 원천이 될 것이다. 신께서 주신 다양성이 넘치는 세상을, 다양한 노력 없이 사는 건 무미건조하고 낭비라고 본다. 유연성과 관용을 갖추면 더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정부, 사드 입장 빨리 내려야 
북핵, 두려움 아닌 극복 대상
햇볕정책 더 이상 대안 아냐"

군형법 폐지부터 차별금지법, 사드 배치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 군사 전문가에게 사드 이야기를 안 들을 수 없을 것 같다. 사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문재인 정부는 '모호성'을 전략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실질적으로 어떤 전략을 밟아야 한다고 보는가.

문재인 정부가 잘되길 바라지만, 지금의 사드 논란은 전문가 입장에서 매우 황당하다. 사드가 2기든 6기든, 들어오는 건 마찬가지다. 이 문제를 가지고 진실 공방을 벌이는 건 격에 맞지 않다. 차라리 '안보 농단'으로 끌고 가던가. (정부가) 사드 문제에 대한 입장을 빨리 결정하고 처리해야 한다. 이렇게 질질 끄는 건 반대한다.

대선 때 (문재인 대통령의) 논리적 흠결을 지적한 바 있다. 사드 배치와 관련해 처음에는 '전략적 모호성'이라고 그랬고, 나중에는 '전략적 신중함'이라고 표현했다. 이해는 한다. 입장이 곤란하니 '나는 일부러 모호한 태도를 취하겠다'는 거다. 그런데 이거는 굉장히 중요한 실수다. 왜?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건 남이 나에게 전략적으로 모호하게 나오는 거 아니냐고 해야 한다. 근데 내가 나를 전략적으로 모호하다고 말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대체 무엇을 위한 전략적 모호성인가. 그래서 한반도 정세를 주도할 수 있는 준비가 덜된 것 아니냐고 공격하기도 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이 사드를 중국·북한을 상대하는 협상 카드로 쓰겠다는 말도 했다. 이건 잘못된 전제 위에서 더 나간 엉뚱한 결론이었다. 북한이 왜 사드 배치를 싫어하는가. 이것 때문에 한중 관계에 균열이 생겼고, 그 덕분에 북한의 외교적 입지가 넓어졌다. 북한은 싫어할 리 없다. 중국 입장에서 사드는 누가 봐도 미국 무기인데, 한국이 협상하겠다고 나오니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다. 부지를 제공할지 말지 자기 입장만 가지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면 되는데 말이다.

민주당 우원식 대표가 사드 비준 동의를 국회에서 받겠다고 한다. 이것도 황당하다. 이 말은 자기들이 야당일 때 박근혜 정부를 향해 쓸 수 있는 말이다. 집권 여당이 할 말은 아니다.

이제는 정부가 국회에 물어보지 말고, 사드 문제에 어떻게 하겠다는 입장을 먼저 내놓아야 한다. 국회 동의는 한참 뒤 이야기다. 배치를 철회하거나 보류하겠다면 비준 동의는 받을 필요가 없다. 철회는 비준이 필요 없다. 거기서 종결되는 거다. 철회하려면 국회 비준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법은 없다.

- 만약 사드를 철회하면 미국과의 관계에 리스크가 생기지 않을까.

물론 불편해질 거다. 그런데 미국은 할 거 다 한다. FTA 재협상한다고 하지 않는가. 국가 간 약속을 마음대로 떠드는데, 우리는 왜 이런 이야기하면 안 되는가. 미국은 다 하면서. 옛날에 한미 간 전시 작전권 전환하기로 합의했는데, 그때 우리 정부가 깼다. 미국은 빨리 (전작권을) 주고 싶어 한다. 국가 간 합의라도 사정에 따라 재검토하자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동맹 사이인데 안 되겠는가. 불편하더라도 합리적 명분을 주고받으면서 해 나가야 한다. 그래야 유능한 외교다.

- 지난 정부는 북한 핵미사일을 막겠다며 사드를 도입했다. 사드를 철회하면 북한 핵미사일은 뭘로 막느냐는 주장도 나온다. 해법은 없는가.

북한 핵을 두려워하면 해법이 안 나온다. 북핵은 두려움이 아니라 극복의 대상이다. 우리가 공포의 노예가 되면 모든 무기를 사들이는 것 말고 다른 대안이 없다. 그건 대안이 아니다. 나는 핵 가진 북한이 두렵지 않다. 만일 핵을 쐈거나, 그 기미만 보여도 북한은 파멸이다. 자기들이 먼저 죽는다. 따라서 핵을 쓸 수 없게 해야 한다.

더 나아가 핵을 가질 이유가 없도록 제거해 주는 '안내자' 역할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 그 역할을 못 했다. 안보는 점점 불안해졌다. 역설적으로 안보 딜레마에 빠져 있다. 요거트 저비스라는 학자가 이야기한 건데, 이상하게 안전을 위해 투자하면 할수록 불안해지는 현상을 우리가 겪고 있다.

김 의원은, 문재인 정부가 사드 문제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 '햇볕정책'으로 안보 난국을 타개할 수는 없을까.

햇볕정책은 유효성이 많이 떨어졌다. 대선 때 누구도 주장하지 않았다. 우선 북한이 더 이상 햇볕정책을 원하지 않는다. 그거 아니어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남측과의 경제협력에 관심이 없다. 지금 북한을 관리할 수 있는 건 더 이상 경제가 아니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시절 햇볕정책은 경제와 평화의 교환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기조는 심지어 MB 때까지 유지됐다. 진보 정권의 정책은 미리 투자해서 의존하게 하고, 안보 문제는 천천히 해 나가는 '선불제'였다. MB는 핵 문제만 끝내면 경제문제를 해결해 주겠다는 '후불제'였다. 보수건 진보건 경제와 평화를 교환한다는 같은 프레임에서 움직였다.

앞으로는 평화와 평화의 교환이 돼야 한다. 경제는 오히려 그 뒤에 따라와야 한다. '안보 대 안보 교환 모델'이라고 부르는데, 북한의 안보 상황을 적극적으로 해결해 주고 우리의 안전을 보장받는 것이다. 안보 현안은 안보 논리로 풀어야 한다. 이게 더 합리적이다.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걸 찾아야 한다. 예컨대 한미 연합 훈련이라든가, 전략 자산 전진 배치라든가. 북한 입장을 고려해 줄 여지가 있는지, 체제 안전을 어떤 식으로 보장해 줄 것인지, 이런 고민이 주종이 돼야 한다. 김정은은 3년 전 한미 연합 훈련을 중단한다면 추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안 하겠다고 발표했다. 물론 이쪽에서 진정성 없다고 일축했지만 꼭 그렇게 했어야 했는지 싶다. 서로 안보에 대한 우려 상황이 큰 만큼 당사국들끼리 해 볼 만한 협상이 아닌가 싶다.

- 충분히 일리가 있는 설명인 것 같다. 오히려 진보 정치인이 햇볕정책을 비판해서 공격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은 어떻게 하느냐는 이야기도 있는데.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은 재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핵 문제를 풀기 위함이 아니라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통일에 대한 '투자'로 보자는 거다. 다가올 통일 비용을 줄이고, 북한을 개혁 개방으로 이끌 수 있는 게 바로 금강산이고, 개성공단이다. 어느 적정 시점을 정해서 재개하면 된다. 재개가 여의치 않다고 서두를 일은 아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누가 투자하겠는가. 재개한다 한들 보장이 없으면 기업이 뛰어들겠는가. 이 문제는 민족 경제 상황이라는 차원에서 풀어야 한다. 핵 문제가 있다고 모든 교류를 다 끊을 수는 없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본다. 영유아 분유 지원과 말라리아 백신 지원이 대체 핵과 무슨 상관 있어서 끊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나는 햇볕정책 전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햇볕정책의 기능주의적 접근법 폐기를 주장하는 거다. 경제와 안보를 막 뒤섞으면 안 된다. 그래서 결국 퍼 주기 논쟁으로 갔고, 실패한 정책으로 낙인찍혔다. 원칙 없이 섞는 게 문제다. 핵 문제 본질은 안보다. 생존과 안전을 위한 북한의 최종 선택이 핵인 거다.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난 다른 말은 하지 말자. 북한과의 협상은 우리에게도 분명한 이익이 돼야 한다. 북한에게 일방적으로 이익이 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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