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지 없이 걷기 위해서 도시를 걸어 보았다. 백범로에서 이태원로까지 -- 공덕동에서 삼각지를 지나 한남동에 이르는 길을 걸어 보니 벽이 많아서 시야도 답답하고 다니기도 번거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1) 공덕역 주변에서 만난 벽은 고층 빌딩이다. 건물은 유리로 뒤덮여 있고 간판(문패)이 줄줄이 걸려 있다. 간판을 보고 용무가 없으면 무심히 지나칠 뿐이다. 고층 건물은 거리를 차가운 복도로 만든다. 2) 서울은 항상 공사 중이다. 효창공원앞역 주변도 공사장을 둘러친 회색 철제 장벽이 몇 년째 서 있다. 출입은 말할 것도 없고 시야를 가리는 엄격함은 거리를 삭막하게 만든다. 하필이면 모양도 팔레스타인 장벽을 축소해 놓은 생김새다. 3) 삼각지역에서 녹사평역까지는 양쪽으로 미군 부대 담장이 길게 늘어서 있다. 고개를 들어도 땅을 걷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종류만 다른 보도블록이 지루하게 이어질 뿐이다. 그나마 담장 너머로 남산이 보이는 것이 다행이다. 4) 한남동에 접어들면 도로와 주택 사이에 방음벽이 나타난다. 방음벽 밑은 언제나 그늘지고 축축하다. 걷는 사람도 덩달아 음산하고 눅눅한 기분이다. 방음벽은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할 찻길과 주택을 가까스로 갈라놓는 방파제다. 5) 마지막으로, 인도 위에 올라와 있는 자동차는 제일 치명적이다. 마치 수륙양용 자동차처럼 차도에서도 달리고 인도에도 당당하게 올라온다. 인도 위에 주인은 사람인데 사람이 주차된 자동차를 피해 차도로 뛰어들어야 하는 형편이다.

1) 빌딩
2) 공사장
3) 미군 부대
4) 방음벽
5) 인도 위 자동차

이상 열거한 빌딩, 공사장, 미군 부대, 방음벽, 자동차 등은 서울에서 흔한 장애물이다. 그것들이 일부 불가피하거나, 당장 극복되기 어렵다는 점에서 서울은 벽에 갇힌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최근 "서울로7017"이 개통되어서 걷는 도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만큼, 걷기의 관점으로 도시가 꾸준히 관리되어 나가길 바란다.

*이 글은 웹진 <제3시대>에도 실렸습니다.
웹진 <제3시대> 바로 가기: http://minjungtheology.tistory.com/

백정기 作(미디어 작가) / 홍대 회화과를 중퇴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을 졸업했다. 2008년 개인전을 시작으로 5회의 개인전을 했고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2012년 홍은예술창작센터, 2013년 경기창작센터 입주작가로 레지던시 활동을 한 바 있다. 음악적 청각화를 주제로 "Walking alone on a clear night: Musical sonification based on cityscape"외 1편을 등재하였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