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립보행으로 손이 자유로워졌으며,)
자유로운 손은 자연을 지배하게 했다.
손은 노동을 낳고,
노동은 인간의 사회적 협력을 필요로 했다.
이러한 사회적인 노동 속에서 언어가 발생하고
(뇌와 그것에 봉사하는 감각기관이 진화하였다.)
(이리하여) 
의식과 추상력·추리력이 발달하고
이것들이 다시 노동과 언어에 되먹임되어
더욱 발달을 촉진시켰다.

"가려진 부분을 빼고 읽으면 아무런 문제없는 문장이죠. 다 읽었다면 이번에는 이 문장을 가려진 부분까지 함께 읽어 볼까요?"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이정모 관장(서울시립과학관)이 가려진 부분을 보여 주자 청중의 반응이 조금 달라졌다. 직립보행, 진화 같은 단어가 나왔다. 이 글 제목과 저자의 정체는 한발 더 나갔다. '유인원에서 인간으로 진화하는 과정에 있어 노동의 역할', 공산주의 이론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쓴 글이다.

과학적 사실이 맞긴 한데, 기독교인으로서 받아들이기는 조금 찜찜하다. 거기다 공산주의 이론가? 마음이 더 불편해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과학과 신학의 관계를 단편적으로 보여 주는 문장이다.

과학과신학의대화(과신대)와 새물결아카데미가 공동 주최하는 강의 세 번째 시간은 이정모 관장이 맡았다. 5월 24일 열린 특강에서, 이정모 관장은 '과학과 인문학의 대화'라는 주제로 강의했다. 그는 '문자주의'를 과학과 신학의 공통된 적으로 규정하고, 특히 이를 극복하려는 자세가 교회에 요구된다고 했다.

이정모 관장은 과학과 신학 모두 문자주의를 버려야 한다고 했다. 문자 그대로 믿고 '진리'로 박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훌륭한 과학' 천동설
'지동설 증거'에 폐기
"과학에 진리란 없다"

진화와 함께 천동설은 과학과 신학이 대립한 대표적 사례다. 16세기 갈릴레이 등장 전까지만 하더라도 인류의 보편 상식은 천동설이었다.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이는 종교재판을 받았고 가택 연금됐다. 350년이 지난 1992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갈릴레이와 그 유족에게 공식 사죄했다.

그렇다면 천동설은 비과학이었던 것일까. 많은 사람이 천동설을 문자주의 산물로 이해하지만, 이정모 관장은 "사실 천동설은 아주 훌륭한 과학"이라고 말했다.

"천동설에는 과학의 모든 요소가 다 있었습니다. 태양과 달, 행성의 운동을 관측했고, 지구 중심의 완벽한 원궤도 모형을 세웠어요. 밤하늘이 일정한 운동을 할 것이라고 예측했는데, 역행운동을 하더라는 새로운 관측을 했죠. 그래서 행성이 주전원을 따라 돈다는 수정 모형을 내세웠어요. 그러다 지동설이라는 반증이 나타나 이론이 폐기된 겁니다."

아무리 훌륭한 과학 이론이라도, 그를 뒤집을 만한 관찰 결과가 나오면 그 이론은 폐기된다. 과학 혁명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기에 학계가 아무리 동의하고 인정하는 이론이라 하더라도 절대 진리는 될 수 없다고 했다.

"과학이란 의심에 대한 잠정적인 답을 찾는 과정입니다. 의심이 없다면 과학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과학은 진리가 아닙니다. 진리처럼 생각하면 문제가 돼요. (어떤 이론에) 큰 가치를 부여하면 자가당착에 빠지게 됩니다. 과학은 반증 가능성이 제일 중요해요. 틀렸다고 증명할 수 있는 것만 과학이에요. 까마귀는 100% 까만색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흰 까마귀 1마리만 찾으면 그 이론은 깨져요.

'이것이 진리다'라고 말하는 순간, 그것은 과학에 대한 모독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자는 진리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성경 진리 믿는 기독교
"문자 말고 맥락을,
하나님 한 가지로 규정 못 해"

반면 교회는 진리를 이야기하는 곳이다. 성경 말씀은 '진리'로 받아들여진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 1:8) 같은 구절도 있다.

성경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한국교회에는 그런 경향이 강하지만 이정모 관장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는 "맥락이 없는 글은 헛소리다(A text without a context is a pretext)"라는 말을 소개했다. 성경 말씀에도 맥락이 있고 상황이 있는데, 문자만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10km 상공에 있는지, 100km 상공에 있는지, 아니면 100억 광년 위에 있는지 말할 수 있나요? 하늘을 'sky'로 생각하니까 그렇게 됩니다. 우리는 성경이 성서 기자의 사고력과 세계관 속에서 쓰인 점을 감안해야 하지 않을까요? 하나님이 나에게 성경을 통해 하고 싶으신 이야기가 분명 있을 텐데요."

이정모 관장은 우리가 경험하는 신은 '가청 주파수'와 '가시광선' 안에 제한될 뿐이라고 했다. 우리가 보고 듣는 시공간 안에만 하나님을 가둘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진리다'라고 말하는 것이 과학에 대한 모독인 것만큼이나, '이것이 하나님이다'라고 얘기하는 것 또한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 같은 하나님을 믿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다른 시대, 다른 언어, 다른 상황에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이정모 관장. 그는 살면서 과학과 신앙이 공존하기 어렵다는 사람들을 많이 봐 왔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질문도 의심도 없는 교회,
지성인 떠나는 건 '당연'
목회자, 인문학 공부해야"

과학적 발견, 진화 같은 이야기를 하면 기독교인은 금세 불편해한다. 과학과 신학은 양립 불가능한 것이 아닌데도, 신앙적이면 비과학적이고 과학적이면 비신앙적인 것으로 여기는 풍토가 있다.

이정모 관장도 그런 문화를 경험했다고 말했다. 한국과 독일에서 생화학을 공부한 이정모 관장은 4대가 기독교인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독일 유학 당시 지도교수는 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독실한 교인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했다. 어떻게 과학자가 신앙을 가지느냐는 것이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낯선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교회에서 인기 있는 안수집사였던 이정모 관장은 교인들로부터 "아이고, 신앙 좋은 분이 과학을 하려니 얼마나 힘드냐. 그래도 먹고살려니 어쩔 수 없겠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이정모 관장은 한국교회에 성경을 과학책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고 지적했다. 질문하면 기독교 신앙을 의심한다고 여겨 질문하지 못하는 문화가 있다고 했다. 질문은 곧 주의종을 의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목회자는 어떨까. 이정모 관장은 목회자에게 '콤플렉스'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과학을 잘 모르니 창조과학자들의 '성경 무오' 주장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목사님들이 대개 창조과학을 감명 깊게 들어요. 주장도 그냥 수용해요. 창조과학자들이 목사님보다 더 신학적이어서 그럴까요? 그냥 잘 몰라서 그러는 겁니다. 과학기술 시대에 살고 누리면서 왜 과학이 틀렸다고 말하는 걸 통쾌해해야 하나요?"

'종교적 문자주의'를 극복하려면 일선 목회자들이 먼저 정확하게 알고, 또 많이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 일환으로 목회자들도 인문학적 소양을 키워야 한다고 했다. 요즘 인문학 하면 문학·사회학·철학만 생각하지만, 사실 과학이야말로 인문학의 한 범주라고 했다.

"유럽은 중세 시대부터 모든 대학이 과학을 필수적으로 가르쳤어요. 리버럴 아츠(Liberal Arts)라는 2년 과정을 먼저 한 후에 법학·의학·신학 등을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리버럴 아츠, 즉 인문학에서는 문법·수사학·논리학·음악·산수·기하학·천문학을 가르쳤어요. 지금은 어떤가요?"

이정모 관장은 진화론에도 약점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이 창조론이 맞다는 반증은 아니라고 했다. 과학은 끊임없이 연결 고리를 찾고 기존의 이론을 되짚어 본다. 머물러 있지 않는다. 이 관장은 "만일 공룡 뱃속에서 토끼나 쥐나 사람이 나오면, 내가 알고 있는 진화 이론은 그날로 버릴 준비가 돼 있다. 삼엽충 지층에서 고래 화석이 나오면, 그 이론도 버릴 수 있다. 이것이 과학 하는 사람들의 자세여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신학은, 교회는, 목사는 어떨까.

"한국교회가 왜 수십 년 동안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할까요. 많은 지성인이 교회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교회를 떠나더라고요. 그리고 지적인 대화가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떨 때 보면 교회가 북한이 아닐까 싶을 때가 있습니다.

논어에 '호신불호학(好信不好學)이면 기폐야적(其蔽也賊)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믿기만 좋아하고 공부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사회의 적으로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저는 이 구절을 오늘 한국교회에 꼭 얘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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