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자동차 총판업체에서 근무하는 A(26·여)는 사무실에서 불미스러운 일을 경험했다. 직급이 높은 남성 직원이 자신의 신체 일부를 만진 것이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 업체 특성상 회사에는 남자 직원이 많다. A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이 들었다. 취직한 지 6개월밖에 안 돼, 회사를 관둘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상부에 성추행 사실을 알리기로 결심했다.

B(27·여)는 직장인 1년 차다. 컴퓨터를 전공한 그는 전자담배 회사에서 홈페이지를 관리한다. 최근 B는 걱정이 생겼다. 회사가 B에게 담당 분야가 아닌 디자인, 홍보 책자 제작 등을 맡기기 시작했다. 한창 코딩·프로그래밍 역량을 계발해야 할 때인데, 다른 일을 신경 쓰다 보니 제자리 수준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다.

사회 초년생인 A와 B. 어떤 이는 사회 초년병(兵)으로 부르기도 한다.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 처음 경험하는 바깥세상이 전쟁터와 같아서 그렇게 부르는 건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대다수 사회 초년병은 아픔 많고 고민 많은 하루하루를 버티며 산다.

둘은 올해 초 한 기독 직장인 모임에서 서로 알게 됐다. 이들은 한 달에 한 번 서초구에 있는 한 교회에 모여, 한 달 동안 있었던 일을 얘기하고 고민을 나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가 아닌데도, 속에 있는 얘기까지 스스럼없이 꺼낸다. 기독 직장인 모임을 만든 한병선 대표(한병선영상만들기)는 "기독 직장인들이 서로 아픔과 걱정을 나누면서, 상처를 치유하고 답을 찾아간다"고 말했다.

"기독교인의 직장 생활은 어떤 것일까." 고민하고 갈등하는 기독 직장인들이 자조 모임을 만들었다. 5월 16일 주님의새교회에서 열린 모임 모습. 뉴스앤조이 박요셉

기독 직장인 모임은 3년 전 한병선 대표가 만들었다. 그는 평소 기독교인으로서 일상생활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고민이 많았다. 작은 회사를 운영해 온 그는, 종일 월 매출을 걱정하고 거래처 마감 기한을 지키기 위해 부하 직원을 괴롭히는 자신을 보면서 이렇게 사는 게 맞는지 회의했다. 누가 옆에서 "기독교인은 이렇게 살아야 해"라고 말해 주는 것도 아니었다.

한국기독학생회(IVF) 84학번 출신인 그는 친한 IVF 동기, 후배들과 이 문제를 놓고 고민했다. 이들은 격주로 모여 기독교·인문학 서적을 읽고, 1박 2일 엠티를 가서 기독교인의 직장 생활을 주제로 밤새 토론했다. 수년을 그렇게 보내면서 조금씩 답을 찾아갔다.

한병선 대표는 IVF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자신이 사회 초년생일 때 그랬던 것처럼, 후배들도 가정·직장에서 갈등하고 있었다. 한 대표는 함께 모임을 했던 지인들과 5년 전부터 기독 직장인 모임을 준비했다. 그리고 2015년 제1회 기독 직장인 대회와 정기 모임을 시작했다. 지금은 종로, 강남, 신림, 인천 등 6개 지역에서 매달 모이고 있다.   

"주로 1년 차에서 3년 차 직장인들이 참석한다. 여러 직종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소개한다. 사회 초년생들은 다른 직업군에 있는 사람을 많이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자신이 속한 직장 내 문화, 업무 강도가 정상인지 비정상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이들에게 기준점을 찾는 데 도움을 준다."

한병선 대표는 참석자 중 소명을 놓고 고민하는 이들도 많다고 했다. 기독교인들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소명이라고 말한다. 문제는 직업에서 소명을 발견하지 못할 때다. 한 대표는 말한다.

"직업과 소명을 똑같이 볼 필요는 없다. 가사·육아·단순노동에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참가자들은 계속해서 대화하고 고민하며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는다."

기독 직장인 모임을 만든 한병선 대표. 뉴스앤조이 박요셉

처음에는 IVF 출신 위주로 시작한 모임이었지만 지금은 절반 이상이 비IVF 출신이다. 일반 기독교인이 입소문을 듣고 모임에 나오는 것이다. 이들은 교회에서 자신들의 고민이나 경험을 얘기할 곳이 없다고 말한다. B가 말했다.

"교회에서는 대화를 깊이 나누기가 어렵다. 교회 청년부에는 100여 명이 출석한다. 예배 후 셀 모임을 하는데, 1시간 정도 한다. 성경 공부하고 기도 제목 얘기하면 끝이다. 내 삶을 자세히 얘기할 수 없다. 게다가 셀 구성원 중 직장인이 나밖에 없어서, 공감을 구하기도 어렵다."

A는 청년부 출석 인원이 300여 명인 교회에 다닌다. 그는 교회에서 또래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다들 취업을 준비하거나 공부를 하고 있다. 이들은 예배에만 참석하고 모임에는 오지 않는다. 같이 저녁 먹고 시간 보내는 게 부담스러운 거다. 셀 모임에는 대학생 아니면 나이가 한참 많은 선배들밖에 없다. 적응이 잘 안 돼 나도 모임에 안 나가고 있다."

한병선 대표와 함께 기독 직장인 모임을 준비한 이상엽 씨는, 교회에서는 실제적인 조언보다 종교적인 얘기를 할 때가 많다고 했다. 그는 한 후배 얘기를 소개했다.

"후배가 아버지 사업이 망해 대학교에 진학할지 바로 취업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후배는 오랫동안 사회생활해 온 교회 장로·집사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런데 다들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큰일이 나서 어떡하냐, 함께 기도해 보자'는 것이었다. 후배는 낙담했다. 그는 실제적인 조언이 필요했던 것이다."

한병선 대표와 함께 기독 직장인 모임을 준비한 이상엽 씨. 뉴스앤조이 박요셉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가 아닌데도, 속에 있는 얘기까지 스스럼없이 꺼낸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이 씨는 교회에서는 힘들고 어려운 일을 자세하게 말하지 못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사람들이 저마다 상황이 달라 공감을 얻기 어렵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는 승리한 삶, 멋진 모습만을 보여야 할 것만 같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말할 때는 이미 은혜로 모두 극복하고 난 뒤여야 한다. 대다수 직장인은 동료와의 연봉 차이에서 많이 힘들어하는데, 이런 모습을 교회에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공감은커녕 세속적이라는 평가만 받는다."

한병선 대표가 직장인 모임을 시작한 것도 교회가 이들을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대표는 말했다.

"목사들은 직장인 삶을 잘 모른다. 먹고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얼마나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으면서 사는지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 교회의 일터 사역에 기독교인들이 만족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병선 대표는 5월 27일 카타콤교회(양희삼 목사)에서 기독 직장인 대회를 열 계획이다. 소명·이직·창업 등 여러 주제로 강연을 준비했다. 대회와 상관없이 정기 모임에 나오고 싶다면 누구나 참석할 수 있다. 

문의:  070-8275-6340 / whydowor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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