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가 2차 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 용어 사용에 주의해야 한다는 논의를 펼쳤다. 뉴스앤조이 유영

[뉴스앤조이-유영 기자] 성범죄 사건에서 '2차 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 개념을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한다는 논의가 나왔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정하경주 소장)가 5월 15일 서울 마포구청에서 개최한 '공동체 내 성폭력을 직면하고 다시 사는 법' 토론회에서 2차 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성범죄 2차 가해는 여러 차원에서 일어난다. 피해 여성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상담사, 경찰, 판사, 심지어 가족도 2차 가해자가 될 수 있다. 특히 소셜미디어가 발달한 오늘날에는 온라인상에서 2차 가해가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이 게시물에 댓글을 달거나 공유하는 과정에서 '피해자도 즐겼다', '여자가 술을 많이 마신 게 문제다'는 등의 표현을 써 피해자를 공격한다.

2차 가해는 피해자가 속한 공동체에서 더 강력하게 일어날 수 있다. 힘들게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공동체에 알렸는데, "공동체를 파괴하려는 것이냐", "이 정도 일로 공동체에서 중요한 인물을 잃을 수는 없다" 등의 반응이 나오면 피해자는 큰 고통을 당한다.

그동안 2차 가해를 지적하는 일이 성폭력 사건 해결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았다. 피해자 보호라는 측면에서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토론회에서 발제자들은 2차 가해 논의에 치중하면, 성폭력 사건 해결을 위한 대화가 중단된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사건을 이야기하면서 2차 가해자를 지목하는 일이 일어나고, 그러는 사이 2차 가해 문제가 오히려 1차 가해보다 더 부각된다는 것이다.

발제자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활동가는 "2차 가해라는 표현은 지양해야 한다. 2차 가해로 논쟁이 일면, 성폭력 사건이 왜 일어났고 무엇이 문제인지 공론화하기 힘든 상황이 된다. 공론화가 불가능하면 사회문제로 제기할 수 없고, 강간을 향유하는 남성 중심 성 문화는 바뀌지 않는다. 공론화 과정에서 2차 가해 논의가 심해지면 1차 가해자 문제는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2차 가해와 함께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말도 재고해야 한다. 권김현영 활동가는 "한국에서 피해자 중심주의는, 2000년대 운동권 내 성차별과 성폭력을 문제 삼는 과정에서 만연했던 '가해자 중심주의'에 대응해 사용된 개념일 뿐"이라고 했다. 이런 피해자 중심주의는 용어와 다르게 정작 피해자를 사건에서 가리는 부작용을 낳았다.

그는 '피해자 중심주의'보다 '피해자 관점'에서 사건을 보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피해자의 고통이 존중되어야 한다. 피해자 관점에서 여성의 주관은 '중요한 증거'로 사용되어야 한다. 고통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반성폭력 운동의 시작이다. 새로운 사회질서와 상식이 만들어 가기 위해 피해자 관점에서 생각하는 사회 문화를 조성해 가야 한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이소희 활동가도 "2차 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는, 성폭력 사건을 피해자 관점에서 설명하고 공동체에서 공론화하는 소통의 언어로 작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먼저 피해자 이야기를 들을 수 있도록 잘 설명해 줘야 한다. 피해자가 놓인 고통의 목소리를 듣는 것에서 반(反)성폭력 운동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공동체는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성폭력 피해자에게 주도권을 주어야 한다. 피해자가 사건 해결에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고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성폭력이 사회문제가 되고, 새로운 사회질서와 상식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전희경 여성주의 연구활동가도 "성폭력을 향유하는 문화는 사회 공론화를 통해서만 바뀔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물론 성폭력을 무작정 공론화해서는 안 된다. 전희경 활동가는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더 많은 구성원이 좋은 판단력을 갖추도록 '페미니즘 총량'이 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성폭력을 향유하는 남성 중심 성 문화를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우리 사회가 피해자를 이해하는 시각이 달라져야 한다. 피해자도 스스로 '싸우는 사람', '다양하게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으로 생각해야 한다. 이를 위해 페미니즘 언어가 더 엄밀하고 다양해져야 한다. 논쟁하고, 문제를 제기할 페미니즘 언어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