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I wanna be known to 'people first'(나는 먼저 사람으로 알려지길 원한다)." 1974년 미국 오리건 주에서 열린 발달장애인 자기 권리 주장 대회에서 한 발달장애인이 한 말이다. 이 외침은 운동으로 진화했다. 미국 발달장애인들은 이 대회를 '피플퍼스트(People First)'로 명명하고, 이후 미국발달장애인연맹을 조직했다. 오늘날에는 영국, 스코틀랜드, 호주, 캐나다, 독일 등 47개국에서 피플퍼스트가 만들어지고 권익 옹호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지난해 10월 22일 한국피플퍼스트(김정훈 전국위원장)가 출범했다. 피플퍼스트는 장애인 당사자 운동이다. 김정훈 위원장을 비롯해 리더, 회원 모두가 발달장애인이다. 이들은 자립·일자리·참정권·이동권·생존권·행복추구권 등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주장한다.

한국피플퍼스트 김정훈 전국위원장이 환영사를 전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한국피플퍼스트는 5월 17일, 전국장애인부모연대·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와 함께 특별 강연회를 준비했다. 주제는 '발달장애인 자기 권리 옹호 운동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주최 측은 피플퍼스트뉴질랜드 조디 터너(Jodie Turner) 자문위원과 로버트 마틴(Robert Martin) 위원을 강사로 초청했다. 로버트 마틴은 현재 UN장애인권리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장애인 인권 실태 알리는 
피플퍼스트뉴질랜드

조디 터너는 피플퍼스트뉴질랜드의 역사와 특징, 사업을 소개했다. 피플퍼스트뉴질랜드는 한국피플퍼스트보다 역사가 32년 앞선다. 1984년 설립됐고, 회원 700여 명을 보유하고 있다.

피플퍼스트뉴질랜드는 지역 모임을 강조한다. 조디 터너는 "피플퍼스트 지역 모임은 우리 단체의 풀뿌리다"라고 말했다. 30여 개 지역에서 회원들이 정기적으로 모인다. 회원들은 지역 모임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고민과 문제를 나눈다. 연사를 초청해 인권, 권리 등을 주제로 강의를 듣거나 토론을 한다. 권익을 지키기 위해 문제 제기하는 법을 배우기도 한다.

조디 터너는 피플퍼스트뉴질랜드가 오랜 기간 노력한 결과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피플퍼스트뉴질랜드는 발달장애인의 권익 옹호를 위해 지난 13년간 정부와 치열하게 대화를 나눴다. 발달장애인이 겪는 불편을 알리고 개선을 요구했다. 한 예로, 발달장애를 지칭하는 단어를 바꿨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발달장애를 '지적장애(intellectual disability)'라고 불렀다. 하지만 장애 당사자들은 '학습장애(learning disability)'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당사자들이 더 존중받는다고 느끼고, 말하거나 쓰기에도 쉽기 때문이다.

"언어(단어)는 우리에게 매주 중요합니다. 지난 13년간 피플퍼스트가 이 용어를 사용해 온 결과, 지금은 정부 기관도 이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부 기관이 생산하는 공식 문서에 이 단어가 쓰이고 있습니다."

피플퍼스트뉴질랜드는 'Make it easy' 번역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발달장애인들이 어려워할 수 있는 복잡한 정부 공식 문서를 단어와 이미지로 알기 쉽게 바꿔 주는 서비스다.

조디 터너는 피플퍼스트뉴질랜드가 정부와 관계를 갖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고 했다. "장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국 장관과 매년 3~4차례 면담을 진행했습니다. 다른 장애인 단체와도 계속해서 협력했습니다. 함께 모이면 더 강한 목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피플퍼스트뉴질랜드는 국내 장애인 인권 개선을 돕는 정부 공식 파트너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이들은 다른 장애인 단체와 함께 '협약 연대'를 구성하고 있다. 협약 연대는 매년 뉴질랜드 장애인 인권 실태를 보고서로 작성해 정부에 제출한다. 2010년부터 직장 내 장애인 처우 문제, 미디어의 장애인 인식도, 장애 청소년의 학교생활 실태 등을 조사해 왔다.

정부 공식 자료는 발달장애인에게 쉽게 재가공될 필요가 있다. 사진은 19대 대선을 앞두고 발달장애인을 위해 제작된 투표 안내 자료다. 사진 제공 한국지적발달장애인복지협회

장애인 시설 수용인에서
UN장애인인권위원회 위원으로

로버트 마틴은 발달장애인으로서 최초로 UN 전문위원이 된 인물이다. UN장애인인권위원회는 18명으로 구성된다. 대부분 교수, 변호사로, 사회에서 어느 정도 지위가 있는 사람들이다. 장애인은 로버트 마틴이 유일하다. 로버트 마틴은 어릴 때 시설에서 당한 부당한 일에 맞서며 장애인 권익 옹호에 나서게 된 과정을 소개했다.

로버트 마틴은 별명이 '말썽꾼(troublemaker)'이다. 그의 동료 김형식 위원(UN장애인인권위원회)은 강연회에서 그를 이렇게 소개했다. "그는 말썽꾼이다. 어딜 가든 발달장애인의 삶을 간섭하고 규제하는 규칙이 보이면 모두 격파했다. 전 세계를 돌며 장애인을 이해하기 위해 꼭 알아야 할 상식들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다. "

시설에서 보낸 유년기는 로버트 마틴을 지금의 로버트 마틴으로 만들어 줬다. 그는 1956년 출생했다. 당시 의사들은 아이에게 장애가 있으면 산모에게 수용 시설을 권했다. 로버트 마틴 역시 생후 18개월 때 시설에 들어갔다. 아이부터 성인까지 약 1,500명을 수용하고 있는 대형 시설이었다.

시설 관리인은 수용인들에게 강제로 일을 시켰다. 로버트 마틴은 왜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동료들과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관리자에게 수용인의 권익을 놓고 협상하자고 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너는 협의할 자격이 없어. 규칙을 따라야 해"였다. 그은 이때부터 장애인 권익 옹호 운동에 눈을 떴다.

로버트 마틴 위원. 그는 시설에서 부당한 일을 경험하면서 장애인 권익 옹호 운동에 눈을 뜨게 됐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시설은 모두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곳에서는 온갖 인권침해가 일어납니다. 우린 모두 똑같은 사람입니다. 장애 정도에 따라 누구는 1등급, 누구는 2등급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장애인 단체와 함께 시설을 없애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뉴질랜드는 대형 장애인 수용 시설을 모두 폐쇄됐습니다. 저를 포함해 뉴질랜드 장애인 단체들은 수십 년 동안 장애인 수용 시설 폐쇄를 정부에 요구해 왔습니다. 의회에도 법안 마련을 청원하고 시민사회와 공감대를 형성했습니다. 뉴질랜드 수도 웰링턴에서 대규모 행진도 벌였습니다. 그 결과, 정부가 시설 폐쇄를 결정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로버트 마틴은 한국 장애인 단체들에게 장애인 권익 옹호를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운동을 계속하라고 당부했다. "중요한 것은 끈기와 지속성입니다. 어제처럼 오늘을, 오늘처럼 내일을 달려가야 합니다. 언젠가 한국에서도 시설이 모두 철폐될 것입니다. 좋은 결과가 나올 때까지 투쟁을 이끌어 가십시오. 각 단체가 뜻을 모아 함께하면 반드시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