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은 지정학적으로 강대국들 사이에 끼어 있다. 고대 근동 문서를 보면 이스라엘에 조공을 요청하는 문서가 많다. 이집트, 바벨론에게 조공 바치라는 기록이다. 이스라엘 내에는 친이집트파, 친메소포타미아파, 자주파 이렇에 세 계파가 있었다. 열왕기하를 보면 외교전을 펼치는 게 보인다. 외교전을 이해하지 못하면 예레미야 시대를 이해할 수 없다."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고대 이스라엘은 거대 제국 틈에 껴 있는 약소국이었다. 고대이집트, 수메르, 바벨론 등과 비교할 때 시기적으로 한참 뒤에 형성된 후발 국가이기도 하다. 구약성서를 읽을 때 이런 주변 국가 정황, 당시 역사를 알고 있으면, 성서에 묘사된 상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조금 낯선 시각으로 고대 근동을 비추는 강의가 열렸다. 주원준 상임연구원(한님성서연구소)은 가톨릭 평신도 신학자다. 독일에서 구약학과 고대 근동 언어를 공부했다. 그는 고대 근동사를 알아야 더 넓은 시각으로 성서를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고대근동학을 먼저 공부하면 당시 상황이 넓게 보인다. 고대근동학을 공부한 뒤 구약학(Old Testament Studies), 그 기반에 구약신학(Old Testament Theology)을 세우면 단단한 학문 체계가 잡힌다. 구약신학은 교파마다 금기가 있지만 구약학에는 없다. 구약신학만 공부하면 텍스트를 이해하는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한국 신학에서 구약학과 고대근동학이 더 강해지면 좋겠다."

주원준 연구원은 '구약성서를 보는 3가지 새로운 시각'이라는 주제로 한국YMCA에서 3주 동안 강의한다. 5월 16일 열린 첫 강의에서는 이스라엘이 고대 근동사에서 차지하는 위치, 지정학적 요충지에 자리 잡은 까닭, 후발국으로서 주변국 언어를 흡수하며 시작됐다는 것 등을 설명했다.

그는 이스라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대 근동에 어떤 국가가 있었고, 이 국가들이 지리적으로 어떤 위치에 형성돼 있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성서를 읽는 사람은 당시 국가들 형성 과정, 분포 등이 떠오를 수 있게끔 배경이 되는 중동 지도를 머릿속에 입력해 놓는 것이 좋다고 했다.

주원준 상임연구원(한님성서연구소)가 고대 근동 국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고대 근동은 서쪽 비옥한 이집트에서 시작해 북서쪽 해안선을 따라 도시 국가들이 건설·소멸하는 과정을 겪었다. 당시 국가들은 황량한 광야를 피해, 북쪽 내륙에서 시작하는 유프라테스·티그리스강 주변을 따라 동쪽 페르시아해까지 이어졌다고 했다. 학계에서는 이를 '비옥한 초승달'이라 부른다. 동쪽 끝에 있는 우르에서 서쪽 끝에 있는 이집트로 가려면 이 루트를 따라 돌아야 한다. 전쟁, 무역 다 마찬가지다.

이스라엘도 이 '비옥한 초승달' 한 부분에 자리 잡았다. 주원준 연구원은 기원전 13세기경 일어났다고 추정하는 카데시 전투 이후 이스라엘 국가가 생겨났을 것이라 추정했다. 각종 고대 문헌과 구약성서를 대조해 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이스라엘은 전통적으로 이집트가 군사기지로 삼고 싶어하는 위치에 자리 잡았다. 히타이트(기원전 18세기경 오늘날 터키 동부 지역에 자리 잡았던 제국)의 소원은 남하하는 것이었다. 카데시 전투가 일어났고 카데시를 뺏기니까 람세스가 대군을 일으켜 진격했다. 문헌에 보면 양쪽이 다 승리한 것으로 기록했는데, 이렇게 되면 현실에서는 비긴 거다. 카데시 전투로 전장이었던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지역이 폐허가 됐다. 전장을 제공한 나라가 쑥대밭이 된 것이다.

그 뒤에 (히브리 민족의) 이집트 탈출 사건이 일어난 듯하다. 사사기를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빈 들을 점령하는 듯한 분위기로 묘사한다. 기원전 3000년경부터 그 자리에 나라가 있었는데 왜 이스라엘이 갈 때는 아무도 반발을 안 했을까. 카데시 전투 이후라면 가능하다."

주원준 연구원은 이스라엘의 종교에 이웃 국가들 문화를 흡수한 흔적이 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다른 고대 근동 국가에 비해 나중에 출발한 이스라엘. 따라서 주변국 문화·언어를 차용한 흔적이 여럿 있다고 주원준 연구원은 말한다. 주 연구원은 신명기를 보면 고대 근동의 문헌 스타일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고 했다. 따라서 신명기는 실제 역사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창세기는 다르다고 했다. 그는 "창세기는 탈출한 노예들의 전승이고, 여기에서 어떤 역사적 사실을 끄집어내기는 힘들다"고 했다.

주원준 연구원은 고대 이스라엘이 종교를 형성하는 과정에서도 타국의 언어를 차용한 흔적이 많다고 했다. 히브리어로 '성전'을 뜻하는 '헤칼'은 수메르어로 큰 집을 뜻하는 '에갈'(É.GAL)에서 온 것이라 했다. 수메르 문명을 이은 아카드 문명에서 이 단어를 '에칼루'(ekallu)라는 단어로 음차했다. 에칼루를 그대로 음차한 것이 헤칼이라는 말이다.

모세오경을 지칭하는 '토라' 또한 아카드어를 그대로 번역한 것이라고 했다. 아카드어 '타르툼'(târtum)은 신이 임금이나 대사제를 불러 자기 뜻이 이렇다고 명령을 내린 것을 가리킨다.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하느님에게 받은 게 바로 '타르툼'이고 이를 그대로 음차한 것이 '토라'다.

주 연구원은 고대 근동 세계의 후발 국가 이스라엘이 수많은 것을 참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 했다. 예를 들면 예루살렘 성전을 어떤 형태로 지어야 하는지, 의례를 집행하는 사제는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지, 새로 지은 성전에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등이다. 주원준 연구원은 성전에서 행하는 자질구레한 일을 주변국의 관습에서 차용했을 것이라며, 이는 후발국으로서 당연하다고 봤다.

후발 주자였는데도 전략적 요충지에 세워진 작은 나라 이스라엘. 주원준 연구원은 이스라엘 민족 종교가 다른 제국 종교와 다른 점은 유일신을 향한 '믿음'이라고 했다. 구약학자들은 고대 이스라엘 내 7가지 신이 존재했다고 말한다. 이스라엘이 어떻게 이방 종교들과 대화하면서 자기 세계를 구축했는지는 5월 23일 강의 '이웃 종교와 대화하며 발전한 고대 이스라엘'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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