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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발포·진압 명령 거부한 경찰국장
아들이 증언하는 '숨은 영웅' 안병하…고문당한 후 신앙생활 시작
  • 이용필 기자 (feel2@newsnjoy.or.kr)
  • 승인 2017.05.17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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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37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1979년 12·12 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과 신군부 세력은 이듬해 5월 17일 확대 비상계엄령을 선포합니다. 계엄령에도 빛고을 광주 대학생들의 민주화 요구 시위는 계속됐고, 신군부는 총칼로 시위를 진압했습니다. 5·18기념재단에 따르면, 168명이 죽고 4,782명이 부상당했습니다. 행방불명자, 암매장, 소각된 사람까지 더하면 5·18 희생자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전라남도 안병하 경찰국장(경무관)은 5·18 '숨은 영웅'으로 불립니다. 시민을 향해 발포하고 진압에 앞장서라는 신군부 명령을 거부했습니다. 그는 "상대는 우리가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시민인데, 경찰이 어떻게 총을 들 수 있느냐"고 말했습니다. 안 경무관은 보안사로 끌려가 8일간 고문을 받고, 직무 유기로 옷을 벗게 됩니다. 불행하게도 고문 후유증으로 8년 뒤 세상을 떠났습니다. 5·18은 알아도 안병하 경무관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5월 16일 경기도 고양시 한 카페에서 그의 삼남 호재 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 봤습니다. - 기자 주

5·18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의 폭력 진압 지시를 거부한 고 안병하 경무관(사진 가운데). 사진 제공 안호재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안병하 경무관은 1928년 7월 강원도 양양에서 태어났다. 평범한 집안에서 자란 그는 양양공립학교와 서울 광신상고를 나온 뒤 육군사관학교 8기로 입학했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등과 육사 동기다. 한국전쟁 당시 포병 관측장교로 전투에 임했고, 공을 세워 화랑무공훈장을 받기도 했다.

군 생활을 하던 안 경무관은 1962년 11월 경찰 총경으로 특채됐다. 부산·강원·경기를 거쳐 1979년 2월 전남 경찰국장으로 발령받았다. 10·26 이후 하나회가 중심이 된 신군부 세력이 들어서던 해였다. 이듬해 5월 광주 대학가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전남대는 병영 집체 훈련 거부 투쟁을, 조선대는 비리 사학 퇴출 시위를 벌였다. 대학가 시위가 확산될 무렵 안 경무관은 부하들에게 지시 사항을 전달했다.

아들 안호재 씨는 "아버지는 '시위 진압 안전 수칙을 잘 지켜라', '도망가는 학생들을 뒤쫓지 말라', '시민 안전에 유의하라'고 당부했다. 전남대 총학생회장과의 비밀 협상을 통해, 촛불과 횃불을 들도록 유도했다. 시위는 충돌 없이 마무리됐다"고 말했다. 안 씨가 언급한 내용은 안 경무관이 숨지기 직전 작성한 비망록에 담겨 있다.

그런데 공수부대가 투입되며 광주 상황은 심상치 않게 돌아갔다. 안 씨는 "신군부는 당시 경찰국장이던 아버지에게 시민을 향해 발포 명령을 내리고, '군인보다 경찰이 앞장서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시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 없다'며 명령을 거부했다"고 말했다.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공수부대는 대학생과 시민들을 상대로 무자비한 진압을 가했다. 5월 20일경 안 경무관은 보안사 요원들에게 끌려갔다. 한참 후배인 군인들이 안 경무관을 고문했다.

안 씨는 "보안사에서 나온 아버지 몸에는 외상이 없었는데, '힘들다'는 말만 반복했다. 나중에 말씀하기로, 일어설 수 없는 책상에 강제로 앉힌 다음 재우지 않고 계속 신문했다고 하더라. 당연히 음식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풀려나는 날 고기 없는 곰탕 국물을 먹고 나왔다"고 말했다.

안 경무관은 신군부 명령을 거부하면 자신이 어떻게 될지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것으로 보인다. 안 씨는 "아버지가 끌려가기 전 어머니에게 통화로 '식구들만이라도 잘 살아'라고 전했다. 마침 저녁 식사 중이었는데, 부하 직원에게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며 밥 한 그릇 더 달라고 했다. 자기 앞날을 내다본 것"이라고 말했다.

고문받고 나온 안 경무관은 직무 유기 등의 이유로 해직됐다. 부인과 함께 광주를 떠나 서울로 이사했다. 고문 후유증으로 인한 고혈압, 신부전 등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을 다녔지만 차도는 없었다. 안 경무관은 1988년 10월 10일 생을 마감했다.

유족들은 숨진 안병하 경무관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애써 왔다. 결국 2003년 '광주 민주화 유공자', 2006년 '순직 판정'을 이끌어 냈다. 안 경무관은 서울 현충원 경찰 묘역에 안장됐다.

안 경무관 아들 안호재 씨는 5·18민주화운동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안 경무관, 숨지기 전 신앙생활
"북한군 소행? 터무니없는 주장
'역사의 희생물' 된 아버지
기억하는 게 제2의 5·18 막는 길"

숨지기 전 안 경무관은 방배동에 있는 교회에 출석하고, 틈틈이 성경을 보고 찬송을 불렀다. 안호재 씨는 "아버지는 찬송 '주 안에 있는 나에게'를 즐겨 불렀다. 갑자기 신앙생활을 하는 바람에 가족 모두가 놀랐다"고 말했다.

안 경무관이 교회를 다니자 부인과 세 아들, 며느리도 덩달아 교회에 출석했다. 가족들은 지금도 안 씨가 신앙생활을 하게 된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안 씨는 "할머니가 교회 집사님이다. 할머니를 극진히 모셨던 아버지가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지 않았나 생각한다. 아버지 덕분에 지금 가족들도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 씨는 고양시에 있는 한 교회에 20년 넘게 출석 중이다.

안호재 씨는 "아버지는 '역사의 희생물'"이라고 표현했다. 5·18과 총칼에 스러져 간 이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희생한 이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아쉬워했다. 3~4년 전까지만 해도 5월이 되면 어딘가 모르게 헛헛하고,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다행히 지금은 나아졌다고 한다. 안 씨는 "'SNS시민동맹'이라는 소셜미디어가 있는데 많은 분이 안병하와 5·18 경찰들의 희생을 기억해 줘서 힘이 난다. 다니는 교회에서도 아버지를 아는 분들이 순교자로 생각해 줘서 고마울 따름이다"고 말했다.

안병하 경무관을 기억하는 이들은 늘어나고 있다. 국립 현충원에 마련된 안 경무관의 동판. 사진 제공 안호재

극우 성향 지만원 씨를 포함해 일부 기독인은 5·18 당시 북한 특수군이 광주에 투입돼 시민을 선동하고, 무기고를 탈취했다고 주장한다. 5·18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안 씨는 전두환과 신군부의 거짓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남대 총학생회장과 경찰 대표 측 비밀 협상에 따라 5월 17일 저녁부터 시위는 차분해졌다. 이날 등장한 게 바로 촛불과 횃불이다. 북한군이 개입, 선동했다면 과연 그렇게 했을까. 도청 앞 분수대에서 촛불 들고 시위하는데 특전사가 투입될 명분도 없었다. 자제하고 있는 이들을 향해 폭력 진압을 하니, 시위도 덩달아 거세진 것이다. 거기에 시민들도 뛰어든 것이고. 그걸 공작원 소행이라고 하는 건, 터무니없는 주장에, 거짓에 지나지 않는다."

안호재 씨는 5·18민주화운동은 잊어서는 안 될 역사의 자산이라고 했다. 이를 기억해야 제2의 5·18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군인이 죄 없는 사람들을 두들겨 패고 죽였다. 명령에 따르지 않는 경찰을 고문하고 업신여겼다. 1980년 5월 대한민국에는 인권이 없었다. 수백 명이 죽고, 수천 명이 부상을 입었다. 왜 학생과 시민을 향해 총을 쐈는지 모른다. 제대로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본다. 5·18을 잊는 순간 제2의 5.18이 일어날 수 있다. 기억하고 진상을 찾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상흔을 안고 있는 구도청과 전일빌딩을 철거하지 말고 보존했으면 한다.

나는 아버지 따라 교회에 다니면서 많은 위안을 얻었다. 바라기는 신앙인들이 5·18과 희생자들을 기억해 줬으면 한다. 관심과 지지가 생각보다 큰 힘이 된다는 걸 최근 들어 알았다."

안호재 씨를 포함한 가족들은 아버지를 따라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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