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5월 11일 진행된 한국여신학자협의회(여신협·공동대표 김혜숙·김신아·이난희) 37주년 기념 토크 콘서트에서 '다시 읽는 칼빈과 교회 개혁; 한국 여성신학의 관점에서'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원고입니다. 허락을 받아 전문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왜 다시 칼빈인가

학문으로서 신학이 현실의 삶, 신앙과 관련 없거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개념과 이론만으로 만족한다면, 신학은 오늘을 사는 나를 비롯한 여성들, 사람들의 삶과 무관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나는 한국 개신교 대다수를 이루는 장로교회의 뿌리, 그리고 세계 110개국 8,000만 성도가 속한 개혁교회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존 칼빈의 신학 사상을 현대 한국 여성신학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읽을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16세기 서구 종교개혁이 여성들에게 미친 영향에는 부정적인 것도 있고 긍정적인 것도 있다. 미국의 여성 사학자 거다 러너는, 여성을 포함한 모든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고 본 것에 영향을 받아 여성들이 재세례파·퀘이커·쉐이커·경건파 등 소종파 운동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였다고 종교개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그런데 종교개혁 2세대에 속하며 개혁교회 신학을 체계화한 칼빈 사상에 대한 여성신학적 평가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 글에서는 칼빈의 중심 신학 사상이 현대 한국교회에 어떤 식으로 나타나는지 그 모습을 한국 여성신학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간략하게나마 대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외로워도 교회는 가지 마라?
현대 교회 속 칼빈의 그림자

종교개혁 1세대인 루터에 이어, 종교개혁 2세대 칼빈은 많은 신앙인의 처형과 박해,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권력 당국자들과의 대결 과정에서 개신교 교회가 당시 현실에 안착하는 것을 추구하였다. 그는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라는 두 세계 속에 살았다. 따라서 고전 철학, 인문주의, 인간의 이성과 성서, 복음, 신앙이라는 요소가 그의 사상 안에 내재해 있었다. 그는 균형을 잡으면서 두 요소를 체계화하고자 노력하였다. 두 사상 가운데서 어느 한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이루며 현실에서 지속될 수 있는 신학을 추구하였다는 점에서 칼빈은 균형의 현실주의자로 보인다.

그러한 칼빈을 뿌리로 갖는 한국 대다수 교회는 어떠한 모습인가. 언론에 보도된 고독사 사건 기사에 달린 '나도 혼자인데, 혼자 죽으면 어쩌나'라는 인터넷 댓글과, 그에 대한 대답으로 '외로워도 교회는 가지 말라, 목회자들이 사람들을 수구, 극우 세력으로 세뇌시키기 때문이다'라는 글이 쓰인 것을 본다. 현대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와 교회가 시대에 뒤떨어지고 낙후된 세력으로 여겨지는 여러 문제 현상을 보며, 칼빈 사상의 직간접적 영향을 찾아보고자 한다.

1) 하나님 절대주권성이 남성 담임 목회자 중심주의로

칼빈은 하나님 중심 신학자다. 하나님의 절대주권, 하나님의 영광을 강조하였다. 그의 신학은 또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 사역을 중심에 둔다. 그는 하나님의 심판과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강조하였다. 그런데 이는 현대 교회에서 하나님을 대리하는 남성 담임목회자의 우월화, 권한 강화로 나타났다.

현재 개교회 여성 담임목사 비율이 현저히 낮으므로, 하나님의 대리자는 주로 남성 목회자로 인식된다. 부교역자들과 일반 신도들, 특히 여성들은 담임목사 말에 복종해야 하고, 심지어 말대답·말대꾸조차 하기 힘든 위계질서가 형성되었다. 이런 환경에서,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요청되는 열린 대화와 토론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은 남을 지배하고 군림하는 것이 아닌 남을 사랑하고 섬기며 자신을 내어 주는 것이므로, 복종만을 요구하는 지도·지배는 극복되어야 할 것이다.

2) 오직 하나님의 영광이 목회자 자기 착취와 상호 경쟁으로

칼빈은 인간의 목적, 그리고 이 세계의 최고 목적이 하나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라 보았다. 인간의 구원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의 일부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강조는 칼빈 사상이 자본주의 발달에 기여하였다는 막스 베버 주장과 연결된다. 즉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표징으로서 지상 직업에의 열심과 근면한 노동의 강조가 부의 축적과 자본주의 발달에 기여하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칼빈 자신도 말년에 가족들의 죽음과 질병을 겪으면서도 끝까지 일에 몰두하였다.

이는 현대 자본주의사회에서 물질적 성공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이해로 이어진다. 교회 교인 수와 재정 크기 등 물량적 성장과 성공이 곧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식으로 이해되어, 목회자들은 그러한 물량적·가시적 성공을 위해 밤낮없이 일하고 스스로 쉬지 못하여 자기 착취에까지 이른다. 이는 목회자 상호 간 심한 경쟁을 낳아 하나님의 동역자들이라는 말씀을 무색하게 된다.

이러한 과도한 일 중심성과 상호 경쟁은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와 사귐을 그리고 동역자들 간 협력과 사귐을 저해하기에 영적인 고갈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칼빈은 교회 재산이 교회 유지 및 목회자 생활 외에 가난한 자들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칼빈 관점에서 물질적 성공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것은 잘못된 일임을 알 수 있다.

3) 인간 죄성 강조가 교인 대상화로

칼빈은 인간을 의로운 재판관이신 하나님 앞에 있는 전적으로 타락한 죄인으로 본다. 심판과 형벌의 틀, 법정적 개념으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본다. (하나님의 사랑·자비·구원을 말하고 있으나, 강조점이 심판·형벌에 있다는 뜻이다.) 칼빈은 하나님의 사랑보다는 하나님의 위엄과 심판을 더 자주 말하였다. 이러한 특성은 현대 교회에서 인간·교인을 하나님의 심판 대상, 더 완화해서 보면 교육과 교정 대상으로 여기는 교인 대상화를 낳았다. 이는 인간이 자신을 부정적이고 비참한 존재로 보도록 한다. 주체로서 인간의 능동적인 역할이 약화되는 결과를 낳는다.

칼빈은 원죄를 본성의 타락과 육체의 일을 행하게 만드는 것으로, 죄를 주로 인간의 교만과 욕망(강한 욕망, 혹은 육욕)으로 보았으며,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을 자기 부정으로 설명하였다. 그런데 이는 자기 부정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교인이 자기 전 존재와 삶 자체를 비하하게 하여 불건강한 상태에 이르게 한다. 통합적인 건강한 자아 형성이 어렵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또한 인간은 죄인이지만 구원받고 의롭게 된 존재인데, 죄인의 측면만을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던 창조된 작품으로서 인간의 자유와 행복을 약화하는 문제를 가져온다.

칼빈의 죄 이해는, 19~20세기 인간의 무의식·욕망·정신 구조 등에 대한 사상이 전개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더욱 정교하게 설명될 필요성이 생겼다. 프랑스 정신분석학자이자 철학자인 자크 라캉은 구조주의 관점에서 인간의 무의식이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는 점을 설명하였고, 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인간은 결핍으로서 욕망을 본성적으로 갖는다고 보았다. 인간의 욕망을 단순히 죄라거나 인간의 불가피한 본성이라고 보는 관점을 넘어서 욕망을 주체적으로 직면해야 한다고 보았다. 욕망 자체를 단순히 죄로 보기보다는 욕망의 복잡한 형성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 나아가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 인간의 능동적이고 건강한 욕망을 설명해야 할 것이다.

4) 섭리론이 구원의 심리화·내면화로

칼빈의 섭리론은 불안과 공포, 걱정과 염려로부터 인간을 벗어나게 하는 신앙적 설명을 제공한다. 칼빈은 불안의 시대를 살았다. 칼빈 자신이 고국 프랑스로부터 도피하여 스위스 제네바에서 망명자로 살며 추방과 복귀를 겪었다. 종교개혁 반대자들에 의해 생명과 삶의 위협과 공포를 느꼈고 불안이 이어졌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의 섭리론은 신도들에게 불안과 염려로부터의 해방과 평안을 줬다. 이러한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섭리론은 인간 구원을 인간 개개인 심리와 내면 문제로 협소화하여 구원의 사회적·정치적·관계적 측면을 약화하는 문제를 낳는다.

이는 현대 한국의 대다수 교회를 개인 구원, 심리적 평안에만 안주하게 했다. 사회 정치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부정과 불의에 눈감는 결과로 이어졌다. 특히 현재 청년들은 실업으로, 그리고 노인들은 질병과 빈곤으로 자살자가 속출하는 상황이다. 경제와 돈 문제로 인한 인명 살상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 빈부 양극화와 국정 농단 폐해를 보고 변혁을 촉구하는 촛불 집회 민심이 드높은 우리 사회에서 구원은 더 이상 개인 내면에 국한될 수 없다. 사회·정치·관계적 측면을 포괄해야 한다.

5) 귀족적 평민의식과 교회 직제 위계화

칼빈은 1532년에 쓴 저서 <세네카 관용론 주석>에서 이미 프랑스 왕에게 종교개혁자들에 대해 관용을 베풀 것을 권면하였다. 그는 1536년 8월 1일 <기독교 강요>를 프랑스 왕 프랑수아에게 헌정하며, 당시 권력 중심인 왕정 제도를 당연히 받아들이면서 왕의 안정된 통치를 위하여 종교개혁 신앙을 옹호하고 박해받는 기독교인들을 변호하였다.

칼빈은 평민 출신이나 귀족 집안의 사람들과 많은 교류를 하였다. 이는 그가 귀족적 평민의식을 갖도록 영향을 끼쳤다. 이는 시민사회 및 교회 공동체에서 더욱 나은 소수가 그렇지 않은 다수를 다스려야 한다는 위계적 사상으로 이어진다. 요컨대 칼빈은 16세기 당시 왕정 위계 제도를 당연시하였고 또한 소수 지도자에 의한 통치 사상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사상은 칼빈의 교회관에서 드러난다. 그는 규율을 강조한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교회는 끊임없는 권징으로 악한 자들을 제거해야 한다. 그는 교회 법규를 만들고 안정된 제도로 교회를 통치하는 것을 목표로 교회 직제를 구성하였다. 그에 의하면, 당회를 구성하는 목사와 장로 역할이 중요하고, 그중에서도 말씀을 선포하는 목사 역할이 특히 중요해진다.

실제로 그는 제네바시를 신앙 공동체로 만들기 위해 엄격한 규율을 행하였다. 그는 1541년 이후에 제네바에서 불성실한 신도를 파문하고 죄질이 나쁜 이들을 시의회에 고발했으며, 예배에서 졸면 구속하고 술집을 철거하며 축제를 폐지하는 등 모든 시민의 생활을 통제하였다(네이버 교회 용어 사전 참조). 그는 삼위일체론에 반대하는 등 다른 견해를 보인 세르베투스 처형에 동의하는 등 엄격성을 보였다.

이렇듯, 칼빈의 교회관은 그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교육·규율·교정을 행하는 목사·장로와 그것들을 받는 평신도라는 위계적인 이분법으로 이어지게 되었고, 루터가 주장한 만인사제설과는 다른 모습을 띠게 되었다. 그는 재세례파를 비롯해 당시 급진적 분파들의 사유재산 부정과 소종파 운동이 로마가톨릭과 정부에 의해 무력 진압되는 것을 목격하였다. 칼빈은 이들과 구별되게 자신의 개혁이 시민사회 공공질서와 사유재산제도를 옹호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그가 엄격한 질서유지를 목표로 제도로서 교회를 안정화하려고 노력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물론 칼빈은 이러한 직제가 하나님 말씀에만 권위를 둔 것으로, 인간은 하나님의 대리·위탁으로서 그 일을 수행한다고 말하고 있다. 다만 오늘날 그것이 사람 위에 군림하고 지배하는 인간의 권위로 변질된 데 문제가 있다. 즉 자기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고 섬기지 않고, 돈과 권력을 가진 자가 더 높은 직분을 얻고 군림하는 것이 문제다.

6) 몸에 대한 부정적 견해와 성범죄의 오명

그리스철학은 인간을 영혼·몸, 이성·감정, 남성·여성, 우월·열등의 이분법으로 보았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플라톤의 <티마이오스> 등에서 나타난다. 이러한 사상은 터툴리안 등 초대 교부를 비롯해 어거스틴의 사상으로 이어졌고, 나아가 플라톤 등 고전 그리스철학을 긍정적으로 인용하는 칼빈의 <기독교 강요>에서도 나타난다.

칼빈은 수도원적인 엄격한 교육으로 유명한 프랑스 몬테규대학에서 공부하였는데, 이것이 인간 몸에 대한 그의 부정적·금욕적 태도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인간이 육체라는 감옥에 갇혀 있다고 보고 영혼을 더 우월한 것으로 봤다. 그에게 회개란 육체를 죽임과 성령의 소생이었다. 칼빈은 육체의 정욕을 버리는 것을 그리스도인 삶의 중심으로 보았다. 이러한 흐름은 죄-욕망-몸과 성욕의 억압-여성에 대한 부정적 견해라는 흐름으로 이어졌다.

이는 현대 한국교회에서도 나타나는 특징이다. 몸과 성, 특히 여성의 성에 대한 억압과 순결의 강조가 드러난다. 이렇게 억압된 욕망은 다른 한편에서 교회 내 성추행·성범죄 증가로 불건강하게 나타난다. 2016년 한 보도에 따르면, 개신교 목회자들 성추행·성범죄 비율이 전문직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성범죄의 오명은 철저한 회개와 용서 없이 값싼 사랑의 설교로 무마되고 있어 개선이 시급하다.

서구 여성운동에서는 1960년대 이후에 이미 여성의 몸, 출산, 성의 주제를 단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핵심적인 정치 문제로 인식하였다. 몸과 정신, 여성과 남성의 위계적 이분법을 비판해 왔다. 따라서 몸과 성을 이분법적으로, 열등한 것으로 보고 통제해야 할 죄의 영역으로 보는 관점은 극복되어야 한다. 즉 성령이 거하는 성전으로서 인간의 몸,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인간의 몸, 하나님과 함께하는 인간의 몸, 그리고 단지 육체의 쾌락만이 아니라 몸과 정신과 인격이 통합된 성, 자유롭고 능동적이며 하나님의 선물인 성이라는 통전적 이해로 나아가야 한다.

가고 싶은 교회 만들자

루터는 종교개혁 이후 독일에서 일어난 농민들의 급진적 봉기에 반대하였고, 10만여 농민이 살해당한 사건은 잘 알려진 일이다. 또한 칼빈의 개혁 이래로, 구교와 신교의 대립으로 유럽 전역에 걸쳐 종교전쟁이 벌어져 30년 전쟁이 끝나자 1,600만여 명이던 유럽 인구가 600만여 명으로 줄었다는 점도 주지의 사실이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여, 사랑과 용서를 말하는 기독교 신앙이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과거 역사의 아이러니와 과오를 진정으로 반성하고 돌이켜야 한다.

칼빈은 하나님의 주권과 성서의 권위 위에서만 모든 것을 정초하려 했던 철저한 신앙인이었다. 그의 사상에는 하나님의 주권, 위엄과 사랑, 자비, 인간의 비참한 측면과 긍정적 측면, 인문주의와 종교개혁, 개인의 사유재산제도과 공산주의 등 상이한 요소가 존재한다. 그는 그 가운데서 균형과 중심을 잡으려 애를 썼던 것으로 보인다. 후대 사람이 조금이라도 자신을 추앙할 것을 우려하여 자신의 무덤조차도 확실히 알리지 않았던 칼빈의 생애를 볼 때, 오늘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은 칼빈의 신학을 글자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개혁 정신을 이어받아 더욱 창조적인 개혁을 추구하는 것이라 하겠다.

현대 한국교회에서 발견되는 칼빈의 영향은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 한국 여성신학 관점에서 볼 때 더욱 과감한 변화와 개혁이 요청된다. 그 개혁 내용은 남녀평등, 목회자와 성도의 여유 있는 삶과 신앙, 물질적 성공지상주의 극복, 성도의 주체적·능동적 역할 강조, 사회관계 속에서의 구원 추구, 교회 직제 평등화, 몸과 정신 및 성의 통합으로서 전인적 인간 및 구원 이해가 될 것이다. 그러한 개혁은 궁극적으로 예수께서 주신 계명인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실천하는 교회를 이루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이루어질 때, 한국교회는 현대인이 외롭고 힘들 때 정말로 가고 싶은 장소가 될 것이다.

이난희 / 한국여신학자협의회 공동대표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