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기자] 303일째다. 성주군민들은 매일 저녁 군청 앞에 나와 "사드 반대"를 외친다. 성주군청에서 905번 도로를 타고 차로 40분 달리면 나오는 김천역. 이곳 역사 앞에서도 매일 저녁 사드 반대 촛불 문화제가 열린다. 264일째다. 대통령이 파면됐고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됐다. 새로운 시대가 왔다며 기대감을 보이는 이가 적지 않지만, 성주군·김천시 상황은 급박하다. 옆 동네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에서 '사드 배치'가 한창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선 이틀 후 소성리를 찾았다. 마을에는 생각보다 사람이 많지 않았다. 황금연휴 내내 소성리를 지켰던 시민 대다수가 대선 후 귀가했다고 박철주 소성리종합상황실장(사드배치철회성주투쟁위원회)은 말했다. 박 실장은 매일 이곳에서 일어나는 대소사를 챙긴다. 비어 있는 천막 하나를 골라 박철주 상황실장과 이야기를 나눴다. 사드 장비가 들어왔던 4월 26일 상황과 소성리 주민들이 새로운 정부에 거는 기대를 물었다. 기독교인인 그가 지금까지 성주군민과 함께한 이유도 들을 수 있었다.

박철주 상황실장과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15년 전 성주군 성주읍으로 귀농한 박철주 상황실장. 지난해 성주가 사드 배치 부지로 결정되면서 그는 다른 삶을 살게 됐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 군 당국이 4월 26일 사드 장비 반입을 강행했다. 경찰과 주민 간 충돌이 발생했고, 부상자가 나오기도 했다.

그날따라 예감이 이상했다. 경찰 병력 배치와 움직임이 수상했다. 무언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들 공사 장비가 들어오는 정도로 예상했다. 국방부가 대선 전까지는 사드 장비를 반입하지 않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자정 무렵이었다. 인터넷 신문에서 사드 장비가 들어온다는 기사를 읽었다. 주변 지역 시민단체에 알렸다. 성주, 김천부터 부산, 울산까지 연락했는데 아무도 소성리에 들어올 수 없었다. 경찰이 8,000여 명을 투입해 외곽 도로 입구를 모두 봉쇄하고 있었다.

사드 장비가 새벽 3시 들어온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소성리에 있는 시민 80여 명이 2시쯤 마을회관 앞 도로를 점거했다. 사드 부지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꼭 거쳐야 하는 도로다. 하지만 경찰 수가 너무 많아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충돌 과정에서 할머니 한 분이 갈비뼈가 부러져 병원에 입원했다. 그 외 많은 사람이 손가락 골절 등 부상을 입었다. 당시 주민들이 자동차로 도로를 막았는데, 경찰이 차 유리창을 깨고 차를 견인했다. 무참하게 당했다.

- 300일 넘도록 사드 철회 투쟁을 해 왔는데, 반나절 만에 장비가 들어갔다. 주민들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 같다.

사드를 막기 위해 무진장 노력했다. 나는 사드배치철회성주투쟁위원회에서 기획팀원으로 활동했다. 촛불 문화제를 처음 시작하고, 다양한 퍼포먼스, 행사를 열어 왔다. 성주군민 모두가 열심히 참여해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 그런데 무력 앞에서는 어쩔 수 없더라. 그동안 노력한 게 다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너무 억울하고 분해 죽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아직 끝난 건 아니다. 나를 포함해 주민들 모두 다시 힘을 내서 싸워 보자고 다짐했다. 힘의 차이는 인정할 수밖에 없겠지만, 그래도 미군, 공사 차량, 유류, 남은 발사대 4기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진입을 막을 계획이다.

- 군 당국은 북핵 문제 등 대한민국 안보를 위해서는 사드가 꼭 필요하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사드가 북핵 방지용이 아니라고 말한다. 사드는 대륙 간 탄도 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무기 체계다. 북한과 우리나라는 거리가 가까워 북한군이 대륙 간 탄도 미사일을 사용할 가능성은 적다. 성주 사드가 미국 본토나 기지, 일본 기지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사드 배치가 실제 필요가 아닌 강대국 간 힘의 논리로 결정됐다고 본다.

국가의 평화를 지키겠다는 사드가 오히려 소성리의 평화를 해치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사드가 들어오면, 이곳 주민들은 항상 긴장과 두려움 속에 살아야 한다. 만약 전쟁이 일어나면 첫 타깃이 성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드가 평화를 위한 무기라고 말하는데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전쟁 무기다. 주변 국가와의 긴장만 고조시키고 갈등을 유발한다. 주민들은 벌써부터 사드 때문에 고통을 호소한다. 조용했던 촌락이 매일 물자를 나르는 미군 헬기 소리에 시끄럽다. 앞으로 사드가 완전히 배치되고 가동하기 시작하면 발전기 소리에 주민들이 겪는 고통은 더욱 커질 것이다.

-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5월 10일 취임식에서 "사드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 및 중국과 진지하게 협상하겠다"고 말했다. 새 정부에 거는 기대가 있다면.

주민들이 새 정부에 거는 기대가 크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사드 문제는 정당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말해 왔다. 주민 동의가 우선되어야 하고, 국회 비준도 요구된다고 강조해 왔다. 후보 시절에 한 약속을 지켜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단순히 기대와 바람으로 끝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든다. 문재인 대통령이 소성리 주민에게 새로운 희망을 보여 주었으면 좋겠다.

- 성주 주민 개표 결과가 논란이다. 홍준표 후보를 선택한 주민 비율이 51%가 나왔다. 홍 후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옹호하는 자유한국당 후보이기 때문에, 성주에서는 반대표가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조금 다르게 본다. 2012년 대선을 기억해 보자. 박근혜 대통령을 뽑은 군민이 전체 85%였다. 홍준표 후보를 뽑은 사람이 51%라면, 30% 이상이 입장을 바꿨다는 소리다. 우리 성주군민은 사드를 막기 위해 누구 하나 열심히 안 한 사람이 없다. 힘들다고 싫은 소리한 사람도 없다. 다들 정말 힘들게 싸워 왔다. 자유한국당 지지율이 80%에서 50%대로 줄었다면 성주가 그만큼 변하고 있는 거 아닌가. 국민이 이를 알아줬으면 좋겠다.

- 기독교인이라고 들었다. 지금 하는 일에 기독교 신앙이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경북 구미, 대구 지역에서 교회를 다녔다. 지역 정치색과 비슷한 보수 성향을 지닌 교회에 다녔다. 목사님에게 사회참여가 필요하다는 설교를 단 한 번도 들은 적 없다. 신앙에 영향을 준 건 감리교청년회, 대구 EYCK(한국기독청년협의회)에서 만난 선배들이다.

행동하지 않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고 배웠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예수님을 보면 알 수 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늘 억압받고 착취받는 사람들 곁을 지켰다. 그들과 함께 울고 함께 아파했다. 예수님의 모습이 지금 내 신앙의 근간을 이룬다.

젊었을 때는 대구 성서공단에 있는 작은 공장에서 근무했다. 15년 전, 성주읍에 귀농하러 내려왔다. 조용히 잘 살고 있는데, 지난해 사드 문제가 터졌다. 내가 속해 있는 농민회가 성주투쟁위에 편입되면서 자연스럽게 사드 반대 운동에 참여하게 됐다.

소성리는 원불교 성지다. 원불교 교무는 롯데 골프장 앞에서 무기한 농성을 벌이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 종교인들도 사드 반대에 함께 나서고 있다. 특히 이곳 소성리는 원불교 평화 성지가 있는 곳이라 원불교 참여율이 높다. 한국교회는 사드 문제에 얼마나 관심을 보이는 것 같나.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는 원불교·천주교·개신교 천막이 설치되어 있다. 종교인들이 와서 힘을 실어 주고 있다. 예수살기 강형구 장로가 한 달 가까이 기독교 천막을 지키고 있다. 대구, 경북 지역 목회자들도 일주일에 한두 번씩 이곳을 찾는다.

하지만 대다수 목회자는 이 문제에 크게 관심이 없는 것 같다. 현장에 오는 목회자도 그렇게 많은 수가 아니다. 대다수는 교인 수를 늘리거나 교회를 키우는 일에만 신경을 쓰는 것 같다.

교회 안에서 조용히 예배하고 기도하는 것보다, 거리에서 굶주리고 고통받는 사람과 빵 한 쪽 나눠 먹는 게 참된 신앙인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교회가 사드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소성리 주민에게 관심을 갖고 많이 찾아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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