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나쁜 하나님' 소개의 말

오늘의 한국교회는 정치적 타락, 종교적 부패, 신학의 허약함으로 인해 파산 직전에 몰려 있습니다. 이는 명백히 신학, 신앙, 교회의 위기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너머에 치유를 위한 열망 또한 숨 쉬고 있음을 부정해선 안 될 것입니다.

치유와 소생의 가능성을 경험하기 위해 오늘의 한국교회를 지배한 기복과 왜곡된 순수의 풍경을 동시에 전망하는 문학적 시도는 어쩌면 필연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이러한 시도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한 교회의 본령을 회복하는 사상적, 신학적 갱신 의지와 흐름을 같이한다고 확신합니다. <뉴스앤조이> 연재 소설 '나쁜 하나님'은 한국교회의 궤멸적 징후를 극사실적으로 해부하고 그 너머의 희망, 치유, 소망의 가능성을 함께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 소설가 주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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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호가 말한 성경 공부는 한의원에서 이뤄졌다. 정확히 말하면 한의원 내부는 아니었다. 오래된 단층 아파트 옆 상가 2층에 위치한 한의원 건물 1층에는 간판이 붙어 있지 않은 열 평 남짓한 창고 개념의 공간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모였다.

월요일 저녁 7시였다. 차를 주차한 민규는 바로 2층 한영호 한의원에 들어섰다. 하지만 입구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 열린 창문 틈으로는 강렬한 석양, 더없이 붉은 빛이 스며드는 해명하기 어려운 고독감이 민규의 온몸을 감싸안았다.

'아무도 없다면 성경 공부를 하지 않는 건가?'

'성경 공부가 없다면 좋아해야 하는데 왜 이렇게 허탈하지?'

몇 가지 생각이 어지럽게 민규의 머릿속을 헤집을 그때였다.

누군가의 소리가 들렸다. 여자의 목소리였다. 2층 복도 창문이 모두 닫힌 공간이어서 그런지 여자의 목소리는 제법 심한 메아리를 일으켰다.

- 목사님.

- 김… 선생?

복도 끝에서부터 걸어오는 한 여자가 김정은인 걸 알아보는 데는 채 1초도 걸리지 않았다. 민규는 그 순간 예감했는지도 모른다. 이 상황에서 자신을 부를 수 있는 이는 김정은밖에 없다는 걸. 아니, 없어야만 한다는 걸.

어느새 민규가 선 자리까지 다가온 정은이 말했다.

- 잘 오셨어요.

정은이 가볍게 민규의 오른팔을 두 손으로 붙잡았다. 무례하거나 다른 사심이 느껴지지 않는 부드럽고 정중한 태도였다. 민규가 물었다.

- 오늘… 이곳에서 월요 성경 공부가 있다고…

- 성경 공부 장소는 1층이에요. 함께 내려가요. 그렇잖아도 한 장로님이 기다리고 계세요.

- 한영호 장로가? 내가 올 걸 믿고 있었단 말이오?

- 확신이 아니라 갈망이겠죠. 한 장로님은 김인철, 그 사악한 뱀이 교회 전체를 송두리째 집어삼킬 때, 그 더러운 뱀의 뱃속에서 기도해 오셨어요. 끔찍할 정도로 집요한 인내를 품에 안고서요. 그러다 이렇게 기적의 때를 만난 거고요.

- 내가… 이곳에 온 게 기적이란 말이요?

- 목사님이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죠.

- 그런데 김 선생.

- 예?

- 김 선생은 언제부터 이 성경 공부를 시작했어요?

민규의 질문에 정은은 한 치 망설임 없이 답했다. 마치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

- 담임목사님이 마귀의 공격을 받아 쓰러지신 그 다음부터요.

- 담임목사라면… 유재환 목사님을 말하는 건가요?

- 그럼요. 다른 이들은 율주제일교회의 담임목사가 아니에요. 아니 목사도 아니죠. 그들은 모두 김인철이 부리는 개들이에요.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 역시 개에 불과하단 말인가. 하지만 이어지는 김정은의 말은 민규를 절반은 안심, 절반은 더한 혼란으로 이끌었다.

- 하지만 목사님은 달라요.

- 내가? 내가 뭐가 다르지?

- 그건 한 장로님이 이미 말씀하셨을 텐데요.

정은의 그 말은 민규에게 분명한 혼란으로 각인되었다. 한 장로가 자신에게 말한 건 다분히 추상적인 분노의 표출, 그뿐이었다. 민규가 이를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이유 역시 분명했다. 자신의 논문을 근거로 자신에게서 어떤 혁명의 불씨를 발견한다는 걸 민규는 납득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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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터 주원태

1층. 열 평이 채 안 되는 공간은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모여들었다. 안팎으로 밀폐된 공간을 가득 메운 이들은 민규가 봐도 한눈에 알아볼 정도로 오랜 시간 율주제일교회를 향해 헌신, 봉사하던 교회 초기 멤버들이었다.

정은의 손에 이끌려 민규가 들어왔을 때, 성경 공부는 이제 막 기도 순서에 접어들었다. 그렇지만 기도는 기선을 제압하기 위한 강압이나 위력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조심스럽게 두 손을 모으고 가만히 무릎 꿇고 앉아 깊은 침묵 속에서 신과의 조우를 일궈 내는 시간 같았다.

오랜 기도의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이 한두 명씩 눈을 뜨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눈을 감았던 민규는 그 역시 일행들 중 마지막으로 눈을 열었다. 성경 공부의 인도자는 유재환이 아니었다. 한영호였다. 그가 빛바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그리고는 검은 뿔테가 인상적인 돋보기안경을 쓴 뒤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유 목사님께서 1992년, 부활절에 설교하신 내용입니다.

그렇게 말한 한영호. 사람들을 둘러봤다. 민규도 따라서 사람들을 살폈다. 진지했다. 이처럼 진지하고 순수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한마디, 한 낱말도 놓치지 않고 듣겠다는 의지만으로 가득한 눈빛이었다. 그들은 약속이라도 하듯 모두 무릎을 꿇고 한영호가 대신 전달하는 유재환의 가르침을 마음과 머리에 담아내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한영호가 전한 유재환의 가르침, 그 주요 주제가 민규의 넋을 순간적으로 뒤흔들어 놓았다.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는 아브라함의 극한적 고뇌를 다룬 가르침이었는데, 그 내용과 흐름이 민규 자신의 논문 속 내용과 너무나 유사했기 때문이다. 흡사 표절이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성경 공부가 끝난 뒤 사람들은 별다른 인사 없이 조용히 흩어졌다. 흡사 비밀 모임처럼 보였다. 아무 결속력도 느껴지지 않는 모습이 이 성경 공부가 외부로 흘러나갈 것을 극도로 주의하는 점조직 형태의 모임으로 느껴졌다.

김정은마저 나간 공간에 남은 건 한영호와 민규. 둘뿐이었다. 한영호는 조심스럽게 유재환의 엣 설교문을 가방에 집어넣는 등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이를 가만히 지켜보던 민규가 먼저 말을 꺼냈다.

- 유재환 목사님…… 지금 어디 계십니까?

(계속)

*'나쁜 하나님'은 주 3일(월, 수, 금) 업데이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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