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오신날(5.3), 개신교계는 종일 소란스러웠다. 그 전날 기독자유당이 '범기독교계'임을 자처하면서 홍준표 지지 선언을 한 것에 대해 각 단체들의 비판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비판의 요체는 '범기독교' 입장임을 자임하지 말라는 것, 그리고 자신들은 정치적 중립을 선언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기독자유당의 지지 선언은 지난 4월 20일 새벽에 개최된 '8천만 기독교 민족 복음화 대성회'(대성회)를 등에 업고 있다. 이 대성회에는 조용기 목사를 비롯해 이영훈 목사(한기총 대표회장), 김선규 목사(예장합동 총회장), 전명구 목사(감리회 감독회장), 이승종 목사(예장대신 총회장), 최기학 목사(예장통합 부총회장), 김영진 장로(전 국회의원), 김승규 장로(전 법무장관) 등 200여 명의 개신교 우파를 대표하는 인사가 참석했는데, 저 뿌리 깊은 '기독교국가'론에 의거해서 19대 대선에서도 그 이상을 구현하고자 하는 의도로 급조된 조찬 기도회로 보인다. 특기할 것은 여기서 기독교에 적합한 후보를 검증하여 지지를 선언할 것을 합의하고, 검증 과정 전체를 기독자유당 인사들인 전광훈과 김승규에게 일임한 것이다. 즉 대성회는 명백히 정치 개입을 의도하고 있었다.

전광훈과 김승규는 한국 현대사에 대한 관점, 대북 안보관, 반동성애와 반이슬람 지향성, 차별금지법 반대 등을 기준으로 해서 검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광훈은 인터뷰에서 애초에 한국교회가 지지하고자 했던 것은 안철수였으나 검증해 보니 차별금지법 찬성 입장이 걸려 홍준표 지지로 변경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대성회의 암묵적인 합의가 '안철수 지지'였음을 시사한다. 그런데 검증위원들의 농간이 있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홍준표를 염두에 두고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

전광훈은 검증을 위해 홍준표를 만난 자리에서, 대선 후보 토론 때 동성애와 차별금지법에 대한 태도를 문재인에게 물을 것을 조언했다고 말했다. 물론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이 물음은 문재인만이 아니라 홍준표를 제외한 모든 후보를 궁지로 몰아넣는 논점이다. 즉 그들은 사전에 이미 홍준표 지지를 의도하고 그를 만난 셈이다.

그러나 추정컨대 검증위원들의 결정이 대성회 참석자들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은 듯하다. 해서 지지 선언은 기독자유당 명의로 발표되었다. 하지만 이 지지 선언이 '범기독교계의 입장'이라고 그들은 주장했다. 지지 선언이 대성회를 등에 업고 있음을 말하려 했던 것이겠다.

한데 그 직후 대성회 참석자들이 개인적으로 혹은 자신의 영향력이 관철되는 기관들의 이름으로 속속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이영훈을 포함해서, 한기총, 한국교회연합, 각 교단 총회 등이 선거 중립을 선언한 것이다.

여기서 이들이 중립 선언의 형식으로 반박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위에서 말했듯이 대성회는 중립이 아니라 특정 후보 지지를 의도했다. 즉 기독교의 영향력이 미치는 정권 창출을 또 다시 기도한 것이다. 한데 전광훈과 김승규가 홍준표가 적합 후보임을 천명하자 대성회의 대다수 인사들은 중립을 천명한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전광훈과 김승규가 정한 검증 기준이 대성회 참석자들 모두가 이명박 정권이 등장할 어간부터, 그러니까 개신교 우파의 정치 세력화가 본격화되던 시기부터 힘써 주장해 온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 입장에 의거한다면 의당 홍준표가 적합 후보다. 하지만 대성회 참석자들 다수는 홍준표와 자유한국당 지지를 꺼려하고 있고 그 대안으로 안철수를 전략적으로 택한 것으로 보인다. 한데 전광훈 등이 농간을 부려 지지 후보가 홍준표로 확정되었고, 그 기준에 대해 이견을 갖고 있지 않은 그들은 중립 외에는 다른 입장을 천명할 수 없었던 것이겠다.

여기서 우리는 박근혜 탄핵 이후 개신교 보수주의자들의 다수가 동요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탄핵 반대 태극기 집회에, 열심히 가담했음직한 그들 다수가 침묵하는 것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요컨대 이명박 집권 어간부터 거세게 등장했던 개신교 우파의 정치 개입의 프레임이 박근혜 탄핵 사태를 전후로 하면서 급격히 붕괴하고 있는 징후가 계속되는 와중에 전광훈 등의 홍준표 지지 해프닝이 벌어진 것이라는 애기다.

만약 개신교 우파의 많은 이가 이명박 이후의 정치 개입의 프레임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고 있다면, 먼저 할 일은 시민사회를 향해 지난 과오를 사과하고 그 과오의 준거였던 기준들에 대해 철회 선언을 하는 것이다. 한데 과오를 어물쩍 넘기고 새로 시작되는 역사에 당당히 개입하고자 한 꼼수가 시민사회에 들켜 버렸다. 다시 말하거니와 한국 개신교가 할 일은 누구에 대한 지지니 중립이니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 어린 사과'다.

김진호 /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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