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마음 주지 마라> / 웨인 W. 다이어 지음 / 정경옥 옮김 / 21세기북스펴냄 / 175쪽 / 1만 2,000원

이 형!

심리학자 칼 융(Carl Gustav Jung)이 <인생의 단계>에서 이렇게 말한 것 아시죠.

"우리는 완전한 무방비 상태에서 인생의 오후로 건너간다. 훨씬 더 나쁜 것은, 늘 그랬듯이 자신의 진실과 이상이 도와줄 것이라는 착각으로 걸음을 옮긴다. 하지만 우리는 인생의 아침에 세운 계획에 따라 인생의 오후를 살 수 없다. 왜냐하면 아침에 위대했던 것이 저녁에는 미미해지고, 아침에 진실했던 것이 저녁에는 거짓이 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되고 얼마 되지 않은 때로 기억돼요. 형이 환갑을 맞았다며 우리들을 초청했을 때 '내 인생이 저녁으로 넘어갔다'고 하지 않았소. 난방이 안 된 추운 방에 모여 앉아 독재자 박정희 딸이 어떻게 대통령이 될 수 있느냐고, 북한도 아니고 아버지에 이어 딸을 대통령으로 세우느냐고, 아직 이 나라 민주주의가 멀었다고 가슴을 쳤던 일이 생생합니다.

누구나 무방비 상태에서
인생의 오후를 맞는다

4년여가 지난 지금 우린 그 죗값을 톡톡히 치렀습니다. 광장에서 외쳤던 그 아우성과 불굴의 촛불이 없었다면 아직도 우린 그 아픔을 안고 있겠죠. 천만다행이죠. 결국 우리는 민주주의가 승리한다는 걸, 국민이 승리한다는 걸 깨달았고 보여 줬으니까요.

형이 '무방비 상태에서 늙어 버렸다'고 했듯이, 박근혜 전 대통령이야말로 무방비 상태에서 유치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죠. 자신은 무죄하다며 '사익을 취한 적이 없다', '돈 한 푼 안 받았다'는 등 말을 쏟아 냈죠. 막상 탄핵을 당하자 금방 자택으로 돌아오는 것조차 힘들었죠. 구속되자 '억울하다'고 했고요.

박 전 대통령이 읽어 볼만한 책으로 이 책이 떠오르더군요. 누구나 오후를 맞는다는 것, 누구에게나 저녁이 있다는 것, 우린 왜 이걸 모를까요. 박 전 대통령은 더욱 그랬던 것 같고요.

웨인 다이어의 <세상에 마음 주지 마라>(21세기북스)는 형처럼 전반전을 열심히 달린 모든 후반전 선수들이 읽으면 좋을 책입니다. 특히 '대통령'이란 직함과 주변 간언자들에게 매몰되어 국민을 보지 못했던 박 전 대통령에게는 그야말로 최적의 책이죠. 이제 그가 '얼음 공주'에서 깨어나 한 인간의 가치를 지향하길 원하는 마음입니다.

재판에 넘겨진 박 전 대통령은 결사 항전을 하려 들겠죠. 하지만 그간 행적으로 볼 때 만만치 않을 듯합니다. 이 형, 저는 박 전 대통령께 "전환을 향해 마음을 열 때 향하게 되는 새로운 인생의 방향"(133쪽)을, 융의 표현처럼 "아침에 위대했던 것이 저녁에는 미미해"진다는 것을, 권력의 그늘에 갇힌 아침이 가면 자신을 참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오후가 온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려 주고 싶어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는 이미 오후가 되었는데 그걸 인정하려 들지 않고 있어요. 오전의 대통령으로서 세운 계획과 붙잡았던 손을 놓지 않고 있어요. 구치소에서도 두 사람만 만난다잖아요. 대통령이란 권력의 아귀 때문에 진실을 호도했던 아침이 아니라 진실 앞에 적나라하게 자신을 노출하는 오후를 열린 마음으로 맞닥뜨리면 좋을 텐데.

주변 아닌 내면 볼 때
자존감 살아나

이젠 그가 아침이 간 걸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벌써 오후가 되고 저녁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저자는 책에서 자존감이 결여되면 아침에만 머문다고 말하고 있어요. 사람들에 둘러싸여 사는 건 본래 자신이 아니잖아요. 독방에 갇혀 있는 지금이야말로 박 전 대통령이 자신을 볼 때가 아닐까요. 본연의 자신을 볼 수 있는 호기회죠.

"우리는 타인의 관찰과 의견에 따라 우리의 가치가 달라진다는 자아의 주장에 평생 시달린다. 그릇된 자신은 외적인 요소나 다른 누군가가 우리의 가치에 영향을 준다고 말한다. 자신이 진정으로 누구인지 깨달아야 한다. (중략) 자존감은 남의 인정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 갖고 있는 내면의 긍정적인 면에서 나온다." (82쪽)

최순실에 의해 이뤄진 대통령으로서의 통치적 삶, 헌법재판관들이 놓아줄 것이라 여겼던 죄의 얼, 지금도 무죄를 주장하며 변호사를 의지하는 태도…. 이런 건 자신의 것이 아니잖아요. 그 어느 타인도 박 전 대통령이 아니거든요. 대통령 직함을 잃은 지금이 박 전 대통령이 자신을 볼 수 있는 최적의 시기라 생각합니다. 그 누구도 없는 독방에서.

이 형! 우리는 이명박 전 대통령 시절에 "제발 대통령이 아무것도 안 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했잖아요. 하는 일마다 그르치니까요. 이제 박 전 대통령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자신의 진면목을 발견하고 한 사람으로서 가치를 찾길 간절히 바라는 거지요. 이 책의 충고처럼.

"날마다 적어도 한 번 침묵하는 시간을 갖고, 쓰지 않는 물건을 버려라. 무집착의 과정을 시작하라. 무(無) 안에 있을 때 자기 존재의 근원과 훨씬 더 가까워진다는 진리를 깨달을 것이다." (55쪽)

"우리는 자기 자신이 가치 있고 소중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할 필요가 전혀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자신과 같은 모습으로 존재했다면 자신의 운명에 충실한 것이다. 그렇게 했다면 오히려 더 깊고 화려한 이력서를 썼을지도 모른다." (77쪽)

"잘못된 길은 아무리 많이 갔더라도 돌아서라"라는 터키 속담처럼, 박 전 대통령이 이 책을 통해 특권 의식에서 겸손으로 마음가짐을 전환하고, 통제에서 신뢰로 돌아서며, 집착에서 버림으로 방향을 바꾸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 책을 박 전 대통령이 있는 독방으로 들이밀고 싶은 거죠. 기꺼이 읽어 주세요, 부디.

※뒤안길은 뒤쪽으로 나 있는 오롯한 오솔길입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의 오솔길을 걷고 싶습니다. 함께 걸어 보지 않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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