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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사는 문제 하나님께 달렸다고만 하면 안 돼"
[인터뷰] 류희인 전 국가위기관리센터장
  • 최승현 기자 (shchoi@newsnjoy.or.kr)
  • 승인 2017.05.03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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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삼풍백화점, 서해훼리호, 성수대교, 구제역, 메르스, AI, 그리고 세월호…. 우리는 수많은 재난을 마주하고 산다. 위기와 재난 속에서, 국민은 보호받지 못한다고 느끼고 있다. '살려야 한다'는 구호만 남긴 채 정부는 메르스 대응에 실패했고, 세월호 참사 후 뒤늦게 나타난 대통령은 "구명조끼를 입었다고 하는게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라고 질문했다. 정부에는 컨트롤타워가 없었다.

참사는 언제든 반복될 수 있으며, 재난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는 불가능하다.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판단 능력이 요구된다.

<뉴스앤조이>는 국가 위기관리 전문가 류희인 전 국가위기관리센터장을 4월 27일 만났다. 류 전 센터장은 김대중 정부 5년, 노무현 정부 5년 총 10년간 청와대에서 근무했다. 국가 안보 컨트롤타워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설립을 주도했고, 소파 몇 개 있던 청와대 지하 벙커에 상황실을 설치했다. 또 국가위기관리센터를 세워 각종 위기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대응 매뉴얼을 제작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세월호특별조사위 비상임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류 전 센터장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10년 동안 유명무실해진 NSC를 다시 세우려 하고 있다. 그는 정부가 어디 있는지도 찾지 못하는 위기 대응 매뉴얼을 다시 개선해 국가적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근 문재인 후보 캠프에 영입됐다. 새 정부의 국가 위기관리 체계를 구상 중이라고 했다.

류희인 전 국가위기관리센터장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위기관리 체계를 구축했다. NSC 사무차장을 역임했고, 청와대 지하 벙커에 종합상황실을 구축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군사·외교뿐 아니라
원전·지진·사이버 테러, 모두 '안보'
참여정부 만든 위기관리 매뉴얼
보수 정권 10년간 소재도 못 찾아

흔히 '안보(安保)'라는 단어를 들으면 군사·외교 분야를 연상한다. 군사·외교는 전통적인 안보 개념이다. 그런데 갈수록 안보는 포괄적으로 바뀌고 있다. 국민 생명과 안전에 관련한 모든 분야가 안보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른바 '포괄적 안보'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도 4월 27일 JTBC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미세 먼지를 안보 범주에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

류희인 전 센터장은 2003년 '포괄적 안보' 개념을 청와대에 도입했다. "국방부장관이나 국정원장, 외교부장관, 통일부장관 등이 참여하는 군사·외교 분야를 13개로 나눴습니다. 이밖에 태풍·지진·전염병 같은 재난 분야 11개, 원전·사이버 테러 등 국가 핵심 기반 체계 분야 9개를 추가해 총 33개 국가 위기 대응 매뉴얼을 만들었죠." 매뉴얼에는 각각의 상황을 상정해 사고가 나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주무 부서들의 역할을 구분했다. 국민에게 보낼 문자메시지 초안까지 세세하게 제작했다.

33개 분야 매뉴얼은 경찰·소방서 등 실무 부서 상세 매뉴얼까지 포함해 2,800권에 달한다. 그러나 이 매뉴얼들은 다음 정부로 계승되지 않았다. 도리어 이명박 당선인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국가 위기관리 컨트롤타워인 NSC를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우여곡절 끝에 대부분 기능이 축소된 형태로 존속됐지만, 출발부터 삐걱댄 위기관리팀이 제 기능을 발휘하기는 어려웠다.

박근혜 정부의 국가안보실은 전직 국방장관이 맡았다. 박근혜 정부가 본 '위기'는 전통적 안보 개념이었다는 얘기다. 대응에 실패한 대표적인 예가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와 '세월호 참사'다. 사실 류 전 센터장은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와 '세월호 참사'에 대응할 수 있는 매뉴얼을 만들고 청와대를 나왔다.

국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원전 문제는 33개 의제 중 하나로 이미 매뉴얼을 제작했고, 대규모로 원전을 건설하는 중국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인근 국가 원전 사고 매뉴얼'을 만들었다. 실제 이명박 정부 때 일본 후쿠시마에서 원전 폭발 사고가 났다. 류 전 센터장이 만들어 놓은 매뉴얼이 있었지만, 정부는 이 매뉴얼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2011년 정부는 새 매뉴얼을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세월호 참사도 마찬가지다. 사실 해양 사고는 33개 의제에 들어가지 않았다. 류 전 센터장은 "솔직히 남영호 사건(1970년, 326명 사망), 서해훼리호 사건(1993년, 292명 사망)과 같은 후진국형 사고가 또 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2003년에 넣지 않았어요. 그 부분이 많이 아쉬웠습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골든로즈호 사건(2007년, 중국 선박과 충돌해 선원 7명 사망) 등을 겪으면서 해상 사고 매뉴얼 제작 필요성이 커졌다. 류 전 센터장은 2007년 '대규모 인명 피해 선박 사고 대응 매뉴얼(해상)'을 만들었다. 33개 의제에 들어가는 국가 주요 위기는 아니지만, 비상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지침을 마련한 것이다.

2014년 세월호 참사가 났을 때 안전행정부는 이 매뉴얼의 소재조차 찾지 못했다고 했다. "참사 나니까 그런 간편 매뉴얼의 소재조차도 몰라요. 누가 관리하고 운용하는지도 몰랐던 거예요. 2014년 5월 되니까 같이 일했던 전 위기관리센터 국장에게 밤 10시에 전화가 왔어요. 안전행정부에서 그 매뉴얼을 찾고 있다는 거예요."

2014년 5월 언론 보도를 보면, 박남춘 의원실(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은 "이 매뉴얼이 해경 문서 보관실에 방치돼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류 전 센터장은 "물론 그 매뉴얼이 효용 가치가 없었다면 폐기할 수 있죠. 그런데 대체제도 없고 어디 있는지도 찾지 못하고 있는 거예요. 세월호 참사가 나던 시점까지 국가 위기관리 체계가 달라진 게 없다는 반증입니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류희인 전 위기관리센터장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상황별 매뉴얼들을 설명하고 있다. 류 전 센터장은 2,000개가 넘는 상황별 매뉴얼을 구성했다. 사진 출처 정부 e영상역사관

매뉴얼은 그 자체가 사태 해결을 담보하지 않는다. 그러나 초동 상황에 신속하게 대처하고 빠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장치다.

"'위기'란 근본적으로 상황 대응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 상황이 진행되면 피해가 확대된다거나, 나아가 2차 위기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는 상태에서 대처하는 것이죠. 예컨대 세월호 침몰 당시는 '위기 상황'입니다. 초동 상황을 인식하고, 필요한 의사 결정을 내렸다면 재난으로 발전하지 않을 수 있었죠.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도 그 자체로 끝난 게 아니에요. (방사능 유출이) 2차, 3차 재난으로 갑니다. 결국 상황 판단해서 적확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 시점이 위기 상황인 거예요. 국가 위기 상황, 이런 비상적 상황에서 대통령의 역할이 있습니다. 갈림길에서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하는 것이죠.

물론 대형 사고가 난 후 현장에 가서 사후적으로 할 일이 있죠. 피해를 수습하고, 희생자 유가족과 소통하고, 국민을 안정시킬 수 있는 리더십을 보여 줘야 합니다. 재난은 어떻게 수습하는가 하는 문제예요. 불이 났으면 불을 끄고, 희생자가 있으면 수습하고, 안치하고, 피해를 보상하는 것이죠. 국가가 해야 할 역할을 차질 없이, 갈등 없이 해결해 나가는 것이죠."

후쿠시마 사고 후 국민들이 먼저 일본 여행을 취소하고, 횟집에 가지 않고, 해외 자료를 찾아 방사능 낙진이 한반도로 날아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사실 여부가 어떻든지 간에 국민 정서가 불안해졌다면, 그것은 국가 책임이고 위기관리 실패라고 류 전 센터장은 말했다.

문제를 풀어 나가려면 똑같은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류 전 센터장은 그 과제로 '정부 내 독립적인 조사위원회 상설화'를 꼽았다.

"그간 국가 재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우리가 교훈을 제대로 도출하지 못했죠. 이것이 실패입니다. 참사가 반복되는 요인 중 하나죠. 그래서 독립조사위 같은 상설 기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과거에는, 재난 상황이 발생하면 그 상황을 빚은 직접적 원인만 찾았습니다. 책임자 찾아서 처벌하는 데만 방점이 찍혔어요. 이런 식으로는 진짜 필요한 교훈을 도출하지 못해요.

제대로 된 사고 조사는 뭘까요. 예컨대, 직접 원인 규명은 더 해야 하지만 세월호 같은 경우는 침몰까지 가게 된 광범위한 환경적이고 구조적인 문제가 있어요. 규제 완화 같은 것들이죠. 이 사고까지 간 모든 관련 요인을 찾아서 평가하고, 이 원인이 어떻게 작동됐는지 찾으면 해답이 나오잖아요. 규제 완화부터 시작해서 개조 과정, 개조 선박이 검사를 통과한 이유, 검사 과정에서 비리가 있었는지, 법적으로 미비한 점은 없는지 제도적 보완책까지 다 나와야 합니다. 세월호특조위가 그런 걸 했어야 했죠.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이럴 것이 아니라 기구를 상설해 그때마다 전문가들과 관계자들로 조사하게 해야 합니다. 사실 그래도 사고가 줄까 말까 하지 않습니까."

류 전 센터장은 미국 챌린저호 폭발 사건 당시 미국의 조사를 예로 들었다. "오링(O-Ring) 하나가 원인이었어요. 사고조사위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시스템적으로 봤어요. 왜 불량품이 사전에 체크되지 않았는가, 온갖 시스템 검사는 어떻게 통과했는가. 재질에 문제가 있는지부터 출발해서, 관련자들이 소홀했던 건 아닌지, 업무상 문제점이 있었는지까지 조사했어요. 교훈을 얻어야지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 때문이죠. 만일 오링이 문제라고 그거 하나만 바꿨으면, 다른 불량은 어떻게 고칠 건가요?"

국가의 잠재적 위기를 줄여야 한다는 의무도 있다. 대표적인 게 원자력발전소다. 2003년 국가 관리 33개 의제 중 하나로 선정된 바 있다. 류 전 센터장은 그때만 하더라도 원전을 제로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청정에너지'라는 인식이 강할 때였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생각이 달라졌다고 했다.

"보니까 원전 사고가 보유국 순위대로 나요. 미국, 러시아, 일본까지… 우리나라가 얼마 전까지 원전 보유국 5위였다가 중국에 밀려 6위로 내려왔어요. 우리나라도 그런 위험이 있죠. 지진이 나는 경주에 온갖 원전에 방폐장까지 있으니까요. 지금 당장 전면 폐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해도, 설계 수명이 만료하면 즉각 폐기하고 신규 원전도 짓지 말아야 합니다. 계속 수명 연장시키고 있잖아요. 또, 원전 인근 주민들에게는 더 높은 수준의 정보가 공개되도록 해야죠."

류 전 센터장은 새길교회를 다니는 기독교인이다. 그는 2007년 샘물교회 아프간 피랍 당시 위기관리책임자로 청와대에 있었다. 일전에 중동 선교에 회의감을 느껴 기성 교회를 떠난 직후였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생명 우선 사회' 위해
교회 역할 고민해야

류 전 센터장은 초동 대처, 사고 예방, 후속 조치 모두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가치의 우선순위'라고 했다. 세월호 참사 또한 국민의 생명과 안전 가치가 경제성장에 밀려 빚어진 참사라고 했다.

"UN이 1948년 인권선언을 발표했어요. 거기에 모든 사람은 생명과 신체의 자유와 안전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여기 나오는 '안전'을 명문화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안전을 간과해 왔어요. 물질, 경제 발전, 성장을 더 강조했어요. 산업화 시절 겪은 수많은 인명 피해, 심정적으로는 안타까워해도 사회적으로는 기회비용으로 생각하고 넘겨 왔어요. 이제는 바뀔 때가 됐습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GDP를 기준으로 보면 2만 달러에서 3만 달러로 넘어가는 중요한 척도가 건강, 복지 그리고 안전입니다. 우리는 이 문턱에 있는 셈이죠. 이제는 헌법에 '안전권'을 넣어서 대통령의 역할과 책무를 명확히 규정해야 합니다. 그러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사유가 되지 못했던, 생명권 유지 의무 위반이 탄핵 사유가 될 수 있는 것이죠."

류희인 전 센터장은 교회에도 당부했다. 교회가 물질보다 생명을 더 우선 가치로 여기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앞장서서 할 일이 많다고 했다. 그는 원래 다니던 대형 교회를 떠났다. 2000년대 중반 교회가 중동 선교를 하는 모습에 실망한 탓이다. 교회는 '소득 없는 공격적 선교'에 매몰돼 있었다. 2006년부터 새길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2007년 샘물교회 아프간 피랍 사건이 발생했다. 류 전 센터장은 기독교인으로서, 중동 선교에 상처받았던 사람으로서, 또한 청와대 실무자로서 그 문제와 당면해야 했다. '백 투 예루살렘' 같은 선교 운동이 초래할 수 있는 위기 상황을 수차례 막았다.

"생명 존중을 우선 가치로 여기는 기독교인들이,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좀 더 진지하게 여길 수 있도록 더 주도적이고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합니다. 죽고 사는 문제를 하나님께 달렸다고만 치부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가 생명과 안전의 문제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고민해야 하고, 목소리를 내고 실천해야 합니다. 세월호 사건을 겪으며, 교회가 잘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았는데 왜 못했는지…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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