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어진 씨는 오피스텔에서 전 남자친구에게 폭행을 당하던 여성을 구했다(사진은 내용과 관계없음).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TV로 영화를 보다 잠든 김어진 씨는 비명을 듣고 눈을 떴다. 새벽 2시 30분. 처음에는 TV에서 나는 소리인 줄 알았다. 잘못 들은 줄 알고 다시 잠을 청하려 할 때 비슷한 음성이 또 들렸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현관문을 열고 오피스텔 복도를 돌아다니며 주변을 확인했다. 김 씨가 지내는 12층은 고요했다.

"오빠, 미안해. 무서우니까, 그러지 마."

여자의 울부짖는 소리가 비상계단을 타고 올라왔다. 알고 보니 한 층 아래서 나는 소리였다. 김 씨는 ㄱ 자로 된 복도를 따라 소리가 나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복도 끝에 한 여성이 벽에 기댄 채 쪼그려 앉아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여자는 제압당하고 있었다. 남자가 여자의 머리를 꽉 누르고 있었다.

"아저씨, 뭐 하는 겁니까." 

김 씨가 소리쳤다.

"X발 남의 일에 상관 말라고." 

남자가 욕설을 내뱉으며 소리를 질렀다. 맨발에 속옷 차림을 한 여자가 다급한 듯 말했다.

"저 좀 제발 도와주세요. 제발 신고 좀, 신고해 주세요. 남자친구인데 헤어졌어요. 헤어졌어요."

여성의 목과 가슴 주위에는 벌건 물이 들어 있었다. 이상하다고 느낀 김 씨는 두 사람에게 가까이 갔다. 김 씨와 남자가 승강이를 벌일 동안 오피스텔 경비원이 도착했다. 남자는 경비원에게도 관여하지 말라며 "가만있어!"라고 소리쳤다. 수십 분간 비명과 고성이 오갔지만, 한 층에 22세대가 거주하는 오피스텔에서 나서는 이는 김 씨와 경비원 단 두 사람뿐이었다.

경찰이 뒤늦게 현장에 도착하며 한밤의 소동은 마무리됐다. 김 씨는 자신이 직접 찍은 핸드폰 동영상을 형사에게 넘겨줬다. 김 씨는 며칠 뒤 자신의 페이스북에 소회를 남겼다.

"우선 남자가 나쁜 놈이지만, 내가 심각하게 느낀 건 그 한참의 소란에도 집 밖으로 나와 상황을 제지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오피스텔 한 층 22세대 거주
아무도 피해 여성 돕지 않아
"개입 안 했으면 더 큰일 났을 수도"

피해 여성을 구한 김 씨는 자신의 얼굴이 드러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서울 영등포구 한 오피스텔에서 4월 20일 발생한 폭행은 30분 넘게 지속됐지만, 누구 하나 나서지 않았다. 26일 영등포 한 커피점에서 만난 김 씨는 "(남자가) 나쁜 마음을 먹었다면 잠깐 사이 더 큰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위험한 상황을 저지한 김 씨는 남자의 폭력 행위보다 사람들의 무관심에 더 주목했다. 같은 층도 아니고, 위층까지 비명이 들릴 정도로 시끄러웠다. 하지만 누구도 개입하지 않았다. 사건 현장과 가장 가까운 곳에 사는 이들은 인터폰으로 바깥 상황을 지켜봤다.

"형사들이랑 이야기하고 있는데, 현장과 가까운 세대들 인터폰에 불이 들어오는 게 보이더라고요. 다들 보고 있으면서 직접 관여하지 않은 거죠. 어쩌다 세상이 이렇게 됐나 싶더라고요. 피해자분이 그렇게 소리를 질렀는데도 문 한 번 열지 않았거든요."

돕지 않았다고 해서 쉽게 비난할 문제는 아니다. 도움을 주기 위해 끼어들었다가 역으로 피해를 입는 사례도 발생하기 때문이다. 김 씨는 이해는 되지만, 자신은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 없다고 잘라 말했다. 언젠가 자신도 위기에 처할 수 있고, 누군가가 도와줄 거란 믿음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김 씨는 남들은 한 번 경험하기도 힘든 일을 여러 번 겪었다. 올해 설날, 길거리에서 한 남자에게 발길질당하는 여성을 구해 줬다. 대학생 시절에는 절도범 두 명을 직접 쫓아가 잡아 경찰에 인계한 적도 있다.

지난해 8월, 대전의 한 택시기사가 운전 중 심장마비 증세로 쓰러졌다. 당시 택시에 있던 승객들은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기사는 결국 사망했고, 사회적으로 논란이 일었다. 위기에 처한 시민을 보고도 돕지 않는 이를 처벌하는 선한사마리아인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대두했다. 바른정당 박성중 의원이 발의한 선한사마리아인법(구조불이행죄)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남 돕는 일에 열심인 김 씨는 선한사마리아인법 제정을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만큼 사회가 삭막하고 각박해 이런 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그러나 이렇게 한다고 사회가 바뀔 것 같지는 않다. 법이 아닌 개인의 척도와 의식 변화가 선행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부모님 요청으로 신학과 입학
목회보다 다양한 경험 추구
사관학교 거쳐 국회로

김 씨는 폭행보다 사람들의 무관심이 더 무서웠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김어진 씨는 부모님 요청으로 2006년 한신대 신학과에 입학했다. 아들이 목회자가 되길 바랐지만, 정작 김 씨는 목회에 관심이 없었다. 교육전도사 시절 경험한 교회 분쟁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교인 100명이 다니던 교회는 담임목사 재정 의혹과 함께 둘로 쪼개졌다. 분쟁 이후 교회는 예배 시간 외에는 문을 걸어 잠갔다. 충격을 받은 김 씨는 아예 목회에 희망을 품지 않았다.

목회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난 김 씨는 다양한 경험을 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수능을 다시 봐서 가기 어렵다는 사관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폐쇄적인 생활은 적성에 맞지 않았고, 생각만큼 낭만적이지도 않았다. 결국 한 학기만에 자퇴한 후 병사로 군 복무를 마쳤다.

고심 끝에 한신대에 복학한 후 신학대학원 대신 디지털문화콘텐츠학 석사과정을 밟았다. 수천 년간 이어 내려온 종교·문화와 현대사회 상징인 디지털을 융·복합한 문화 콘텐츠를 연구하고 싶었다. 공부하던 중 문화 정책에 관심이 쏠렸고, 2013년 국회에 발을 들였다.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환경노동위원회, 국회예산정책처를 두루 거친 김 씨는 현재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서 활동한다. 예·결산 분석 및 평가를 하고, 입법에 드는 비용을 추계하며 재원 마련 등을 연구한다.

"도전과 실패 속에 지칠 때면 잠언 16장 9절을 떠올려요. 지금의 제가 있도록 인도하신 건 결국 하나님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문화에 관심이 쏠렸던 그는 최근 다시 신학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책장에 박혀 있던 전공 서적을 다시 꺼내 보고, 성경도 틈틈이 읽고 있다. 이유가 있었다. 김 씨가 말했다.

"국정 농단 사태를 보면서 '정의'가 사라진 시대를 사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목마르면 물을 찾게 되듯이 자연스럽게 신학 서적과 성경을 보게 되더라고요. 저는 신앙인이라면 '의'를 추구해야 한다고 믿어요. 의는 멀리 있지 않다고 봐요. 당장 가까이서 도움을 청하는 여성·노약자 등을 돌보는 것이야말로 '의'라고 생각해요.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나서겠지'라고 생각 말고, 직접 가서 먼저 손을 내미는 게 필요하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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