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는 자캐오 신부의 칼럼 '그리스도교의 또 다른 이야기'를 격주로 6차례 연재합니다. 연재 칼럼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인터뷰 기사(바로 가기)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편집자 주

이들에게 부활은 무엇일까

4월 16일. 2017년 부활절은 세월호 참사 3주기이기도 했다. 그 부활주일에 안산 세월호 분향소 옆에 있는 화랑유원지에 모인 2,0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은 '2017년 4·16 가족과 함께하는 부활절 연합 예배'에 함께했다. 그 예배는 세월호 희생자인 유예은 님의 할머니 이세자 장로님이 '예배로의 초대' 문구를 낭독하며 시작됐다.

"지금 바로 여기에서, 고난받는 이웃과 함께 부활을 살고자 모인 여러분.

우리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는 예수, 죽음을 가로질러 부활의 소망으로 이끄시는 주님을 만나기 위해 여기에 모였습니다. 우리의 상하고 깨진 모습 그대로 함께하시는 주님을 믿기에 모였습니다. 우리와 함께 진실과 정의가 바로 세워지는 세상을 이루고자 하시는 주님과 동행하고자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이제 우리, 애통하는 이웃과 함께 웁시다. 정의 위에 꽃피는 평화를 기도합시다. 고통과 죽음을 가로질러, 고통 없는 영원한 생명을 약속한 주님을 노래합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과 정의가 올바로 세워질 때까지 포기할 수 없는 슬픔을 붙들고 함께 싸웁시다.

이 모든 간절한 소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 아직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미수습자들. 그들을 위해 3년째 거리에서 싸우고 있는 가족들. 어렵게 생존했지만 생존했다는 죄책감에 눌려 살고 있는 생존자들. 묵묵히 그 곁을 지키고 있는 생존자 가족과 지인들. 이들에게 부활은 무엇일까.

2017년 4월 16일, 안산에서 열린 부활절 연합 예배 모습. 뉴스앤조이 구권효

부활절 연합 예배 준비로 한창 바쁘던 시기. 내가 일하는 용산해방촌나눔의집으로 필리핀 이주 노동자 한 분이 찾아왔다. 상기된 표정의 그녀는 인사를 나누자마자 당신 딸이 용산해방촌나눔의집에서 유아세례를 받았다며 세례 증서를 보여 주는 걸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통역을 도와주는 나눔의집 식구와 함께 이어진 3자 대화는 그녀의 눈물로 인해 계속 멈출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보통 '불법체류자'라고 부르는 '미등록 이주 노동자' L 씨. 그녀의 남편은 등록 노동자로 일하고 있었는데, 작년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조금이나마 한국말을 할 줄 알고 이런저런 사회적 관계를 갖고 있던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그녀와 딸은 버려진 섬과 같은 신세가 되었다. 대부분 비슷한 처지인 미등록 이주 노동자 친구들에게 받을 수 있는 도움은 한계가 분명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어렵게 자리 잡은 한국 생활은 그들에게 이미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어도 필리핀으로 돌아간다는 건 가장 마지막에 고려해야 할 선택이다. 많은 2/3세계 해외 이주 노동자가 그렇듯이 태어난 땅을 떠날 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고 어려운 상황이 있다. 그러니 갑작스런 남편의 부재 앞에서도 그녀와 딸이 이 땅에서 살아남아야 할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하지만 그녀가 가진 조건과 상황은 막막하기만 하다. 미등록 이주 노동자인 그녀는 이 땅에서 어떤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한다. 그런 가운데 그녀는 일하기 위해서라도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야 한다. 하지만 아직 한국말이 서툰 그녀는 일반적인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기 어렵다. 그나마 믿을 만하고 유창한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선생님이 있는 어린이집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런 곳은 상대적으로 비싸다. 그리고 미등록 상태인 그녀가 구할 수 있는 일자리는 백여 만 원 남짓한 3D 업종뿐이다. 그마저도 언제 짤릴 지, 언제 월급을 떼일 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나눔의집 식구인 친구의 권유로 딸의 세례 증서를 들고 나눔의집을 찾아온 거다. 이제는 일요일에도 일을 하기 때문에 나눔의집 신앙 공동체에 나오진 못하는 걸 미안해하면서 어렵게 말을 꺼냈다. 매월 얼마라도 아이의 어린이집 비용을 도움받을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마침 부모 모두 미등록 이주 노동자라, 고3 수험생이 되었지만 한국에 있는 대학 진학이 어려운 필리핀 이주 노동자 자녀 문제로 씨름 중이던 우리는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말로 답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 더 사람답게 살기 위해 태어나 자란 땅을 떠나 한국을 찾은 해외 이주 노동자들과 가족들. 이 땅에서 태어났거나 오랜 시간 자랐지만 '추방되어야 할 이방인'이란 주홍글씨를 달고 살아가는 미등록 이주 노동자의 자녀들. 이들에게 부활은 무엇일까.

"…저녁쯤에 변호사님께 연락을 받고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신문 기사도 자세히 봤습니다. 육군참모총장이란 분이 동성애자 군인들을 다 찾아내서 벌주라는 명령을 내리셨다더군요. 뉴스를 보면 세상이 많이 바뀌어 가는 것 같은데 … 누굴 때린 것도 아니고, 술을 먹고 행패를 부리거나 성폭행을 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요. … 저는 아들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문제가 문제다 보니 친척들에게도 이야기를 못 하겠고, 아들은 잡혀갔다는데 어디 물어볼 데도 없고 한참 속앓이를 했어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녀석이 혼자 자라 외로웠던 건 아닌지, 내가 뭘 잘못해서 그런 건 아닌지 지나간 날들이 다 생각이 나고 마음이 답답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저는 제 아들이 조금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제가 많이 배우지 못해 잘 모르고, 갑자기 알게 된 사실에 혼란스럽긴 하지만 아들이 남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죄가 아니라는 거, 그게 부끄러운 일 아니라는 것쯤은 압니다. 아들은 언제나 우리 부부의 자랑이었어요.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 남들처럼 많은 걸 해 주진 못했지만 정말 멋지게 잘 자라 주었어요. … 염치 불구하고 많은 분들께 저희 아들 구속의 부당함을 호소드립니다. 부디 저뿐 아니라 상식 있는 모든 분들께서 이 어이없는 구속에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재판부에 보여 주시길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 변호사님께 전해 들으니 엄마가 놀랐을까 봐 걱정을 그렇게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꼭 전해 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아들, 엄마 걱정 안 해도 돼. 엄마는 언제나 네 편이니까. 많이 사랑해. 힘내 아들."

'2017년 4·16 가족과 함께하는 부활절 연합 예배'를 마친 다음날, 내가 소속된 성공회 나눔의집협의회와 정의평화사제단이 참여 중인 '차별금지법제정연대'를 통해 황망한 소식을 전해 들었다. 한창 부활절 연합 예배 준비를 하던 때에 언론 매체를 통해서도 알려진, 육군중앙수사단이 진행 중인 소위 '게이 색출 작전'에 관련된 소식이었다.

육군중앙수사단이 진행한 불법적이고 강압적인 기획 수사로 인해, 성실하게 군 복무를 하고 있던 직업군인 A씨가 성적 지향 문제로 수사를 받다가 구속되었다는 소식이었다. 동성애라는 성적 지향을 '잠재적 범죄 요소'로 취급하는 야만적이고 반인권적인 군의 입장에 화가 났다. 그러다가 며칠 전 서명에 참여했던 '육군 성소수자 군인 구속영장 기각 탄원서' 내용이 떠올라 먹먹한 마음을 가누느라 힘이 들었다. 구속된 A 씨 어머니가 쓰신 글이었다.

대체 바닥이 어딘지 모를 정도로 끝없이 드러나는 교회와 교인들의 불의와 부정 그리고 지도자들의 온갖 비리와 성범죄들. 그 앞에서는 한없이 관대하면서, '기독교(개신교) 공공 정책 발표회'라는 이름으로 정당 관계자들을 불러 성소수자들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거나 대다수 의료인이나 심리상담사들이 동의할 수 없는 '전환 치료'를 주장하는 교회와 교인들. 그런 교회와 교인들이 갖고 있는 힘을 이용하기 위해서 적당히 동조하거나 심지어 앞장서서 차별과 혐오를 확산하는 보수 정당이나 국가기관들.

왜곡된 종교적 신념과 문자-사실주의적인 성서 이해 그리고 근본주의적인 교회 전통 해석으로 차별과 혐오가 '신의 뜻'이라고 가르치는 일부 보수 교회와 지도자들. 그것도 모자라 사회도 그 기준을 따르도록 힘과 실력을 보여 줘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떠드는 교회 지도자들과 교인들. 그들이 말하는 부활은 성소수자들에게 어떻게 들릴까. 차별과 혐오로 얼룩진 교회와 교인들을 마주한 성소수자들. 이들에게 부활은 무엇일까.

육군의 '동성애자 군인 색출 수사'를 규탄하는 긴급 기자회견이 14일 국방부 앞에서 열렸다. 비가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이들은 한목소리를 냈다. 뉴스앤조이 유영

왜곡된 부활 이야기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는 부활의 증인으로 성령님께 초대받아 응답한 존재다. 그런 우리가 증언하는 부활은 죽음과 저주 그리고 배제와 차별의 선언이 아니다. 우리가 먼저 맛본 부활은 죽음을 가로질러 생명을 선사하고, 저주의 늪을 건너 은총과 축복을 나누며, 배제와 차별의 역사로부터 돌이켜 사랑과 기쁨의 노래를 함께 부르는 잔치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죽음을 가로질러 만나는 부활은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뿐 아니라, 우리 이웃과 사회에게도 기쁘고 복된 소식이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전해 듣고 이해해 온 부활만큼 우리 이웃이 갈망하는 부활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그렇게 부활 이야기를 증언하며 전했다. 우리 이웃과 사회가 갈망하는 부활 이야기를 듣고, 우리가 믿어 왔고 알던 부활 이야기를 새롭게 재구성하고 확장하는 선교와 변혁을 경험했다.

그런데 2017년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도 그와 같은 부활과 선교를 경험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지금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는 뭔가 큰 착각 속에 사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 땅의 교회, 그중에서도 보수적인 대형 교회들이 갖고 있는 '소비력과 권력 그리고 관계망'은 많은 사람들을 교회 안에 머무르게 한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그들의 소비력과 권력 그리고 관계망이 '진짜'라고 믿게 된 것 같다.

이제는 더 이상 우리 이웃과 사회가 갈망하는 부활이 무엇인지 질문하거나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저 우리에게 정답이 있으니 너희는 그 답을 듣고 잘 따라오면 된다는, 오만하고 무모한 정복주의적 태도와 신학적 입장을 갖고 '우리들만 행복한 부활 이야기'를 반복해서 노래하고 있다.

우뚝 솟은 교회 예배당과 커다란 교회 주차장을 '이용하는' 썩 괜찮은 치장을 한 교인들과 지도자들은 더 이상 질문하지 않는다. 그저 교회에게 소비력과 권력 그리고 관계망을 쥐어 준, 멋지게 포장된 우리들만의 부활 이야기로 높은 벽을 쌓을 뿐이다. "누구나 와서 주의 복음을 들으라! 그 부활 이야기를 들으라!"고 선포하지만, 그 '누구나'는 그들이 한 번 맛본 뒤로 중독되어 버린 이해관계와 이익에 합당한 '누구'만 해당한다는 건 감추고 있다.

우리들의 이해관계와 이익을 유지할 수 있는 조건 안에서만 허용되는 부활 이야기. 그 왜곡된 부활 이야기가 진짜가 되어 버린 교회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 이 땅에서 모든 걸 갖고 있는 것 같으나, 부활의 주님이 보시기엔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들. 이들에게 부활은 무엇일까.

"너희는 어찌하여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자 가운데서 찾고 있느냐? 그분은 여기 계시지 않고 다시 살아나셨다." (루가 24:5-6)

2017년 봄. 나는 그들, 그 가난의 자리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부활은 무엇일까를 질문하게 된다. 오늘날, 성서에서 말하는 '죽은 자들'은 누구일까. 다시 살아나신 분은 누구와 함께 어디에 계실까. 몇 번이나 고쳐 쓰고 다시 썼던 예배로의 초대 문구를 다시 한 번 천천히 읽어 본다.

"지금 바로 여기에서, 고난받는 이웃과 함께 부활을 살고자 모인 여러분.

우리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는 예수, 죽음을 가로질러 부활의 소망으로 이끄시는 주님을 만나기 위해 여기에 모였습니다. 우리의 상하고 깨진 모습 그대로 함께하시는 주님을 믿기에 모였습니다. 우리와 함께 진실과 정의가 바로 세워지는 세상을 이루고자 하시는 주님과 동행하고자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이제 우리, 애통하는 이웃과 함께 웁시다. 정의 위에 꽃피는 평화를 기도합시다. 고통과 죽음을 가로질러, 고통 없는 영원한 생명을 약속한 주님을 노래합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과 정의가 올바로 세워질 때까지 포기할 수 없는 슬픔을 붙들고 함께 싸웁시다.

이 모든 간절한 소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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