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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과 써 내려간 산마루교회의 영성 일기
함께 예배하고, 농사짓고, 공부하고, 꿈꿔 온 11년
  • 김은석 (warmer99@newsnjoy.or.kr)
  • 승인 2017.04.17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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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 서울역에서 노숙하는 L 씨는 만리재를 넘는다. 20분쯤 걷다 보면 왼편 언덕에 <한겨레> 신문사와 아파트 단지가 나온다. L 씨의 목적지는 그 아파트 단지 상가 2층에 있는 산마루교회(이주연 목사)다. 원래 L 씨는 일요일 아침이면 지하철 '삥차'(무임승차)를 해 신림동을 오갔다. 제육볶음을 주는 어느 교회에 가기 위해서였다. 몇 년 전 맛있는 빵과 딸기 잼을 준다는 소문을 듣고부터 산마루교회에 오기 시작했다. 빵과 잼도 맛있었지만 예배가 좋아 계속 오게 된다고 했다. 

산마루교회는 일요일 아침 7시 반에 노숙인을 위한 예배를 시작한다. 약 100석 규모의 예배실은 7시가 되면 빈자리가 별로 없다. 대부분 L 씨처럼 서울역에서 만리재를 넘어온 이들이지만 부천과 인천에서 온 사람들도 있다. 노숙인이지만 행색이 별로 남루하지 않고 냄새도 심하지 않다. 노숙인들로 구성된 찬양대도 있다. 헌금 시간도 있고 특송을 하겠노라고 나서는 이도 있다. 20분 넘는 설교 시간 내내 졸거나 수군거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일반적인 예배 풍경과 별로 다르지 않다.   

서울역에서 공덕역 방향으로 만리재를 넘어 20분쯤 걸으면 왼편에 한겨레신문 사옥과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그 아파트 단지 상가 2층에 11년간 노숙인 이웃을 섬겨 온 산마루교회(이주연 목사)가 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2006년, 노숙인 예배를 시작하다

2001년 산마루교회를 개척한 이주연 목사는 애초에 노숙인 사역을 할 생각이 없었다. 요새 한국교회에 많이 회자되는 영성 운동에 일찌감치 눈을 뜬 그는 90년대 후반부터 '산마루 서신'을 쓰기 시작해 현재 약 26만 명과 영성 편지를 나누고 있다. 제도화․대형화된 교회가 아니라 초대 교회의 제자도와 영성 회복을 추구하는 작지만 강한 교회를 꿈꾸며 자신의 집 거실에서 예배를 시작했다. 교우들과 함께 영성 일기를 쓰고 깊은 교제를 나누며 성숙한 신앙을 이루고자 했다. 

2006년 여름 현재 공간으로 이사를 하자 일요일 아침에 노숙인 4명이 찾아왔다. 그냥 보낼 수 없어 평소 아침 성경 공부 시간에 교우들과 나누던 빵과 차를 정성껏 대접했다. 그 다음부터 7~8명이 꾸준히 찾아왔다. 어느 날 장로님 한 분이 그들에게 예배 참석을 권유했다. 입소문이 났는지 찾아오는 사람 수가 늘어 30명이 넘었다. 찾아오는 노숙인 수는 계속 늘어났다. 

2006년 겨울에 조류독감이 유행했다. 130명 정도가 몰려왔다. 전염 위험 때문에 노숙인을 돕는 단체와 교회들이 활동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예배실이 찬양대 자리까지 가득 찼다. 산마루교회가 감당하기 버거운 숫자였다. 가장 큰 문제는 냄새였다. 

"그렇게 많이 다녀가고 나면 예배당은 몇 시간 동안 냄새로 진동했어요. 교회 앞에 모여서 담배를 피우고 소란스럽게 하기도 해 상가 내 다른 입주자들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했지요. 영적 필요를 채우지 못해 힘들어하는 교우들도 있었고요. 하지만 일부러 찾아오는 그분들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노숙인들과 성경 공부하며 그들 내면의 문제를 만지고 영적인 도전을 주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했다. '갈 때까지 가 보자'는 심정으로 교우들을 설득했다. 노숙인들에게도 교회가 겪는 고충을 설명하고 협조를 부탁했다. 그렇게 지금 형태의 1부 예배가 자리 잡았다. 

산마루교회는 일요일 아침 7시 반에 노숙인을 위한 예배를 시작한다. 약 100석 규모의 예배실은 7시가 되면 빈자리가 별로 없다. 노숙인들로 구성된 찬양대도 있다. 헌금 시간도 있고 특송을 하겠노라고 나서는 이도 있다. 일반적인 예배 풍경과 별로 다르지 않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조류독감이 사그라진 후 예배 참석자 수는 절반가량 줄어들었다. 그러나 예배에 찾아오는 노숙인들의 태도에 변화가 생겼다. 상가 앞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소란스럽게 하는 일이 잦아들었다. 옷차림이 깔끔해지고 냄새도 크게 줄었다. 교우들은 그들을 섬기는 데 더 열심을 냈다. 

산마루교회 이웃 돕기 사역 헌신자인 이근국 권사는 1부 예배가 자리 잡은 뒤 산마루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새벽 6시가 되기도 전에 교회에 와서 기다리던 노숙인들을 보고 빵이 아니라 제대로 된 밥을 먹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에서 음식을 싸 오기 시작했다. 40인분 넘게 준비해 와야 할 시점이 되자 아예 교회 차원에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로 결정했다. 지금은 이 권사를 포함한 다섯 팀이 돌아가며 1부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노숙인들과 나눌 '뜨거운 한 끼'를 준비한다. 이 권사는 모자를  쓰고 다니던 이들이 언제부터인가 모자를 벗고 눈을 마주치기 시작하는 걸 보고 노숙인들과의 거리가 좁혀졌음을 느꼈다고 했다.  

이웃 돕기 사역 헌신자인 이근국 권사(오른쪽)가 1부 예배 후 노숙인들과 나눌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이 권사는 모자를 쓰고 다니던 이들이 언제부터인가 모자를 벗고 눈을 마주치기 시작하는 걸 보고 노숙인들과의 거리가 좁혀졌음을 느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2007년, 사랑의농장을 시작하다 

이주연 목사는 배고픔을 덜어 주는 것으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자립하도록 도와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예배에 꾸준히 오던 노숙인들에게 농사일을 제안했다. 당시 이 목사는 산마루 서신을 쓰며 기도하고 묵상할 조용한 공간을 마련해 놓은 참이었다. 북악산 기슭에 숨어 있는 작은 토담집이었다. 주변에 농업용 쓰레기가 잔뜩 쌓여 방치된 땅이었지만 함께 밭을 일구어 농사를 지으면 될 것 같았다. 보통 '짤짤이'(구걸)로 하루 5,000~6,000원쯤 번다는 그들에게 일을 하든 안 하든 농장에 함께 가면 점심은 물론 일당으로 1만 원을 주겠다고 했다.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인 이들이 있었다. 이 목사는 그들과 매일 아침 7시에 농장으로 출근했다. 함께 말씀 묵상을 하고 기도를 한 뒤 쓰레기 더미를 치우고 밭을 갈았다. '사랑의농장'이라는 이름도 지었다.

2007년, 노숙인들을 자립하도록 도와야겠다고 생각한 이주연 목사는 그들과 북악산 기슭에 농장을 일궜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많은 노숙인이 사랑의농장을 거쳐 갔다. 적게는 2~3명 많게는 7~8명이 일했다. 현재 사랑의농장 봄 농사를 준비하는 노숙인은 5명이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그들을 이끄는 정상기 팀장(66세)은 농장에서 일한 지 7년째인 터줏대감이다. 과거 사업이 망한 뒤 서울역에서 5년 넘게 노숙 생활을 했던 그는 몸 여기저기에 병이 있었다. 특히 혈압이 180에서 200까지 될 정도로 높았다. 똑바로 걷는 것도 힘들어하던 그는 맑은 산 공기를 마시며 기도하고 농사지으면서 차츰 건강을 회복해 갔다. 지금은 혈압도 정상 수준으로 잡히고 다른 병들도 거의 다 나았다. 신앙생활도 열심히 해 작년에는 산마루교회 집사가 되었다. 

사랑의농장에서 자란 채소는 모두 유기농이다. 10년간 각종 채소를 기르며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오이와 배추를 주작물로 삼았다. 지난해부터 매주 화요일이면 셰프 출신인 김순화 권사가 농장에서 자란 유기농 채소를 곁들여 특별한 점심 식사를 차린다. 김 권사는 아픈 노숙인에게 병원을 소개해 주고, 술 마시고 문제를 일으킨 노숙인의 선처를 호소하기 위해 경찰서까지 찾아갈 정도로 농장 식구들과 가까워졌다. 

지난해부터 매주 화요일이면 셰프 출신인 김순화 권사(오른쪽 첫 번째)가 사랑의농장에서 자란 유기농 채소를 곁들여 특별한 점심 식사를 차린다. 기자가 방문한 날 메뉴는 봄 제철 음식인 도다리쑥국이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2009년, 인문학 학교 열어 자존감 회복을 꾀하다

노숙인을 만나 함께하는 시간이 흐르면서 이 목사는 무너진 그들의 자존감이 회복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자립하고 자활하는 삶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봤다. 노숙인 인문학 학교인 성프란시스대학을 보고 그런 학교를 만들면 교회를 찾아오는 노숙인들의 자존감을 북돋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산마루교회에는 전․현직 교수인 교우들이 여러 명 있다. 그들을 비롯해 국내 유수 대학 교수 등 전문가들로 강사진을 꾸려 해맞이대학을 만들었다. 학기마다 학생을 20여 명 모집했다. 모집된 학생들은 주 1~2회 모여 저녁 식사를 하고 인문학 강의를 듣는다. 강의가 끝난 후에는 인근 찜질방에서 쓸 수 있는 티켓을 받는다. 봄에는 소풍을 가고 2년에 한 번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해맞이대학은 2013년부터 '힐링클래스'라는 집단 상담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한국목회상담협회(홍인종 회장)의 지원으로 14차 상담까지 진행했다. 전문 상담사가 글쓰기, 그림 그리기, 대화를 통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나도록 돕는다. 지난해 가을부터는 건강 강좌도 개설했다.  

산마루교회는 2009년부터 노숙인 인문학 강좌를 여는 해맞이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2013년부터는 집단 상담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2010년, 자립 공동체를 실험하다 

이 목사는 사랑의농장에서 농사를 지은 지 2년쯤 되었을 때 노숙인 형제들에게 "다음에 공동체를 만들어 보자"고 말했다. 땅 한 평도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실 거라고 믿으며 한 말이었다. 얼마 후 이 목사가 알고 지내던 어느 부부가 포천에 있는 농장 1만 2,000평을 무상으로 임대해 주겠다고 했다. 그 자리에서 2010년부터 7년간 자립 공동체를 실험했다. 1부 예배와 사랑의농장, 해맞이대학을 거치며 일정 기간 신앙 훈련을 하고 농사 체험과 자존감을 회복한 이들을 모집했다. 그들에게 의식주를 제공하며 공동생활을 하게 했다. 흑염소와 닭을 키우고 농작물을 재배해 자립 준비금을 마련하도록 도왔다. 

공동체 실험으로 4명이 자립했다. 하지만 노숙인들 스스로 자립 공동체를 꾸리다 보니 여러 어려움이 뒤따랐다. 다시 술과 도박에 손을 댄 이들도 있었고, 염소와 닭을 방치해 수십 마리를 죽게 만들기도 했다. 2013년에는 공동체 일원 중 한 명이 불을 질러 숙소가 전소된 일도 있었다. 더 이상 포천 농장을 임대할 여건이 되지 않아 공동체 실험은 2016년을 끝으로 일단락됐다. 

이 목사는 7년간의 공동체 실험을 '절반의 성공'이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자립 공동체 실험은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노숙인의 자립과 자활을 도울 일터는 물론 일반 교우들도 영성 수련을 할 수 있는 수도원 형태의 생활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다. 

2013년, 목욕 및 빨래 시설 건립을 꿈꾸다

노숙인들이 스스로 시작한 프로젝트도 있다. 서울역 인근에 목욕과 빨래를 할 수 있는 시설을 세우는 일이다. 이를 위해 4년 전부터 1부 예배에서 500원, 1000원씩 헌금하기 시작했다. 이 목사에게 직접 시설을 세워 주겠다고 제안한 기업인도 있었지만 거절했다. 노숙인이 이 프로젝트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3년간 헌금으로 680만 원이 모인 후부터 외부 도움을 받기 시작했다. 

먼저 산마루교회 교우들이 동참했다. 교회 음악을 전공한 교우를 중심으로 매년 자선 음악회를 열어 목욕 및 빨래 시설 마련을 위한 기금을 모으고 있다. 노숙인들로 구성된 해맞이찬양대와 일반 교우들로 구성된 산마루찬양대가 함께 무대에 선다. 음악회로 외부에도 이 프로젝트가 알려지면서 현재 모금액은 5억 원을 넘어섰다. 하지만 땅값이 비싼 서울역 인근에 시설을 세우려면 기금을 더 마련해야 한다. 

산마루교회가 노숙인을 섬겨 온 일이 외부에 알려지자 돕는 손길이 이어졌다. 특히 정홍원 전 국무총리와 온누리교회와의 만남은 특별하다. 정 전 총리는 2015년 여름부터 월 2회 1부 예배에 참석하고 있다. 예배를 마치면 앞치마를 두르고 배식 봉사를 한다. 지난해 가을부터는 노숙인들과 함께 월 1회 서울역 앞 광장을 청소하고 있다. 처음에는 이벤트성 행보인 줄 알고 경계하던 노숙인들과 교우들은 꾸준히 소박하게 동참하는 그의 모습에 마음의 문을 열었다고 한다. 

온누리교회는 산마루교회의 목욕 및 빨래 시설 마련 프로젝트 소식을 듣고 헌금 2억 원가량을 모아 건넸다. 1년 전부터 마포공동체 교우들이 산마루교회의 이웃 돕기 사역에 동참하고 있다. 해맞이대학이 열리는 화요일마다 간식을 준비해 산마루교회를 찾아와 배식과 설거지를 하고 돌아간다. 서울역 앞 광장 청소도 함께하고, 사랑의농장에 일손이 많이 필요할 때면 찾아와 함께 땀 흘린다. 

산마루교회는 지난해 가을부터 노숙인들과 함께 월 1회 서울역 앞 광장을 청소하고 있다. 정홍원 전 총리와 온누리교회 마포공동체 교우들이 함께한다. 사진 제공 목회멘토링사역원

11년 전 작은 교회였던 산마루교회는 여전히 작은 교회다. 등록 교인이 130명 정도다. 교회 규모는 별로 안 커졌지만, 빵 한 조각 나누는 일에서 시작한 노숙인 섬김 사역은 크게 성장했다. 

물론 시행착오도 많았다. 중간중간 재정적인 어려움에도 봉착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정부나 기업의 도움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노숙인을 섬기는 사역이 사업의 성격으로 변하면 그들을 도구화하게 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대신 교회의 재정 부담을 덜기 위해 교단이 인정하는 선교회를 만들고 이사회를 구성해 재원을 마련했다. 일부 교우와 뜻을 함께하는 다른 신앙인들이 이사직을 맡아 헌신적으로 돕고 있다. 

"가끔 노숙인들이 다른 단체들을 두고 '세금 가지고 생색낸다'거나 '우리 때문에 먹고사는 사람들'이라고 말하는데 우리 교회에서는 그런 얘기가 안 나와요. 작은 교회지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정성과 진심을 알아 주는 것이죠. 목회적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진정으로 섬길 수 없어요."

노숙인 섬김은 단순한 구제 아닌 영성 운동

산마루교회와 이주연 목사가 노숙인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지만, 지난 11년간 자립에 성공해 자기 길을 찾아간 이들은 손에 꼽을 정도다. 노숙인들의 생활은 잘 바뀌지 않는다. 새로운 삶을 살아보려는 듯하다가도 다시 술 마시고 구걸하는 거리 생활로 돌아가기 일쑤라는 점을 그들도 스스로 인정한다. 

2001년 산마루교회를 개척한 이주연 목사는 애초에 노숙인 사역을 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산마루교회가 ‘영성의 길’ 위에서 노숙인들을 만났다고 생각한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만남이라고 믿었기에 힘든 시기를 겪으면서도 그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반복된 경험을 통해 이 목사는 노숙인들의 삶을 결정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농사일이나 인문학 공부가 아니라 '예배'와 '복음'임을 깨달았다고 했다. 농사일이나 인문학 공부가 필요 없다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제대로 바뀌더라는 얘기다. 그래서 노숙인과 함께하는 1부 예배를 정성스럽게 준비한다. 함께 농사를 짓고 공부하면서도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시며, 그들을 "거룩한 백성으로 부르셨다"고 끊임없이 강조한다. 

이 목사는 산마루교회가 '영성의 길' 위에서 노숙인들을 만났다고 생각한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만남이라고 믿었기에 힘든 시기에도 그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계속 만나 사랑하고 교제하며 예배할 때 변화가 일어난다"고 믿는 그는 돌봄을 충분히 받지 못해 교회를 떠난 이들도 있지만, 노숙인을 섬기는 데 동참하며 깊은 신앙의 본질을 깨달은 교우들이 더 많다고 했다. 어느 일간지 인터뷰에서는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이 몸으로 행하는 기도이고, 낮은 이를 섬기는 것은 거룩함에 이르는 수행"이라고도 했다. 노숙인을 섬기는 일은 단순한 구제 사역이 아니라 산마루교회가 11년간 이어온 영성 운동의 한 축인 것이다. 

노숙인 이웃들을 섬겨 온 산마루교회와 이주연 목사의 이야기를 4월 24일(월) 부산 호산나교회에서 열리는 마을을 섬기는 교회 워크숍에서 더 자세히 들을 수 있다. 워크숍 참가 신청 바로 가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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