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성금요일(4월 14일). 제가 속한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전명구 감독회장) 감독회장, 4개 연회 감독, 본부 임직원, 평신도 단체장 등 40여 명이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을 방문해 기도회를 열기 위해 목포신항을 찾았습니다. 도착해 보니 전남 지역 50여 명의 감리회 목회자와 평신도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세월호도 올라왔고, 지난 3년 동안 우리 교회가 그들과 제대로 함께하지 못했는데 이제라도 한번 가서 그들을 위로하고 관심을 갖는 계기를 만듭시다"라는 감독회장의 한마디 제안에 이렇게 수많은 교회 지도자급 인사가 출동하는 모습을 보며 두 가지를 생각했습니다.

하나는 "세상이 좀 변했다"는 것입니다. 감독회장이 제안해도 지금까지 세월호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던 분까지 별 불평 없이 기꺼이 함께 먼 길을 다녀오는 수고를 들였습니다. 세월호를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이라도 바뀌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다른 하나는 지도자 말 한마디에 얼마나 권위가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세월호에 대한 잘못된 정보 등으로 세월호 유가족을 오해하거나 그들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품은 분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함께하자"는 교단장의 한마디에 별다른 토를 달지 않고 동행했습니다. 지도자가 좋은 생각을 품고 결단하기만 해도 선한 일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혹시라도 불이익이 생길 것을 염려해 눈치를 보고 결단하지 못하면 선한 역사는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버스 안에서 세월호에 대한 거짓 뉴스와 거짓 정보를 설명했습니다. 모두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특히 연세 많은 장로분들이 더욱 그랬던 것 같습니다. 몇 분은 제가 말하는 것을 믿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잘못된 정치권력에 발목 잡힌 언론이 국민 마음을 얼마나 병들게 했는지 생각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참석자 모두가 다윤이 엄마 아빠, 은화 엄마 아빠, 권재근 님 형님 한 사람 한 사람을 안아 주거나 악수하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미안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함께하겠습니다"라는 인사가 그들에게 작은 위로라도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예배 때 찍힌 사진 몇 장을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작년에 조기 은퇴한 이정배 교수께서 이런 댓글을 달았습니다. "한 번 하는 일은 사람의 일, 지속하는 일만이 성령의 역사임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마음에 와 닿는 말이었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던 날, 가슴을 치지 않은 국민이 어디 있었으며 슬퍼하거나 울지 않은 국민이 어디 있었습니까. 모두가 아파하고 슬퍼하며 울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거짓 뉴스가 매스컴과 소셜미디어를 타고 이리저리 전파되기 시작하더니, 세월호 유가족을 폄훼하고 학대하는 데까지 이어졌습니다. 상식선에서만 생각해도 가짜 뉴스라는 사실을 알 만한데 많은 국민이 너무 쉽게 거기 넘어가 유가족들 마음에 비수를 꽂았습니다.

자식 잃은 것 하나만으로도 견디기 버거운 유가족은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유가족을 사람 취급하지 않는 정부, 세월호에 책임 있는 누군가가 만들어 퍼뜨리는 거짓 뉴스와 거짓 정보로 함부로 말하는 국민들 때문에 말이지요. 유가족은 "매일매일 날카로운 비수로 심장을 찔러 후벼 파는 것 같은 고통을 겪었다"고 말합니다.

돌아다니는 말을 듣고 아무렇게나 한마디씩 던지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가. 얼마나 사람을 절망에 빠뜨리는가. 우리 말 한마디, 작은 행동 하나도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할 수 있도록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필자 박인환 목사는 4월 10일, 세월호 희생자 304명과 단원고 교감 강민규 선생님, 민간 잠수사 김관홍 씨를 기억하기 위해 306개의 원목 독서대를 제작해 광화문 감리회 본부 앞에 전시했다. 그는 독서대에 친필로 쓴 메시지를 하나씩 붙였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전 국민 누구나 세월호의 아픔을 느끼고 울었습니다. 그러나 그 울음은 며칠 지나지 않아 돌아섰습니다. 많은 국민이 세월호 유가족을 폄훼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환영하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환호하다가 며칠 지나지 않아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외쳤던 예루살렘 사람들과 같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대다수 국민이 교활하고 잔인한 집권 여당의 술책에 넘어가 '한번쯤은 울고 마음 아파하던 것'을 서둘러 접었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말 폭탄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히틀러의 선동에 넘어가 수많은 유대인이 학살되는 것을 방조했던 당시 독일의 집단 광기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졌습니다.

자기 이익을 침해할까 염려했던 대제사장들, 그들의 선동에 넘어가 광분했던 어리석은 군중, 정치적으로 손해 볼까 두려워했던 빌라도. 이들에 의해 죄 없으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예수님을 죽인 자들은 예수를 죽여서 자신들이 이겼고, 자기 이익이 지켜지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세월호 희생자들 죽음이 그와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돈에 눈먼 탐욕스런 자들과 정치적 이익을 목숨처럼 지키려는 자들,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사람 생명마저 하찮게 여기는 자들 손에 죽임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스스로 질문해야 하는 것은 과연 우리에게는 책임이 없는가 하는 점입니다. 우리 모습이 대제사장의 선동에 장단 맞춘 예루살렘 사람들 모습이 아니었는가 하는 것이지요.

어느 친구 목사가 이런 글을 썼습니다. "부활은 억울한 죽음에 대한 하나님의 위로, 죽임에 대한 생명의 승리." 그렇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3년간 이 사회는 죽임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자기 이익을 최대 가치로 여겨 이웃 아픔에 아랑곳없이, 더 나아가 이웃 생명을 해하는 일도 스스럼없이 행하는 길이 곧 죽임의 길일 것입니다.

그래도 어떤 사람들은 살림의 길을 걸으려고 힘써 왔습니다. 이웃들 아픔에 공감하고, 그들을 향해 하나님의 위로를 전하려고 애쓴 사람들입니다.

단원고 2학년 5반 창현 엄마는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당신께 등 돌리고 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어디를 가도 당신이 계시더군요. 더 이상 울 힘조차 없을 때 망연자실 바라보던 팽목항에도,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하늘을 보며 잠을 청해야 했던 국회에도, 내리 쬐리는 땡볕을 피할 그늘 하나 찾기 어려웠던 광화문에도, 하수구 냄새에 시달려야 했던 청운동사무소에도, 침몰 지점이 바로 눈앞에 내려다보이는 동거차도에도, 그리고 병든 몸을 이끌고 세월호가 누워 있는 목포신항에도, 당신은 계셨습니다.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몰랐던 분들이 눈물 가득 고인 눈으로 와서 안아 주시며 같이 울어 주시던 따뜻함 속에서 당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11일 삼일교회에서 열린 세월호 음악회에서 창현 엄마 최순화 씨는 위와 같이 기도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창현 엄마가 3년간 고통의 시간을 보낸 후 이런 기도를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자신의 고통을 통해 진정한 부활 신앙의 길로 들어선 창현 엄마의 믿음이 이 땅에 많은 위로를 주고 생명의 승리로 열매 맺기를 기도합니다.

누구나 한번쯤은 슬퍼할 수 있습니다. 슬퍼하는 사람과 함께 슬퍼할 수도 있고, 힘든 일을 하는 사람을 하루쯤 도와줄 수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람에게는 이웃을 돕고자 하는 선한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함께해 준다거나 도와주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이익과 손해를 계산하면서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당한 일 아니면 쉽게 잊어버리는 존재가 사람이라는 사실이 고난당하는 이웃과 오래 동행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이유일 것입니다.

"3년이나 되었으니 이제 정리해야 한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냐", "세월호 유가족만 국민이냐. 더 많은 국민이 불편하다"…. 요즘은 이런 말이 세월호 유가족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지난 3년간 세월호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했거나, 고통당하는 유가족 곁에 가 보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사실 아무리 따져도 지난 3년간 이루어진 일이 별로 없습니다. 진상 조사도 제대로 못 했고, 미수습자들도 돌아오지 못했으며, 유가족은 일상생활을 잃어버리고 몸과 마음이 병든 채 길거리를 헤매고 있습니다. 미수습자가 수습되고, 세월호의 진실이 밝혀지고, 책임 있는 사람이 처벌받기 시작할 때 세월호 문제는 정리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해 한번 울었다", "나도 세월호 성금 냈다"라고 하면서 이웃의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우는 자와 함께 울라"라는 바울의 말씀은 한번 울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는 이웃과 함께 있어야 한다는 말씀일 것입니다.

고통당하는 이웃에게 한번쯤 다가가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잊지 않고 그들의 고통이 치유될 때까지 곁에 있어 주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고통당하는 자를 찾으셨던 주님의 영을 가진 사람, 성령 충만한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올해는 세월호 3주기와 부활절이 겹쳤습니다. 악한 세력들에 의해 죽임당한 세월호 희생자들의 죽음이, 그 죽음에 슬퍼하며 이 사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 싸워 온 유가족들의 고통이, 이 사회를 안전한 사회로 만들고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 세상으로 바꾸는 부활의 기적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박인환 / 안산 화정교회 담임목사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