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몰카 허용 말고 생리컵을 허용하라."
"마음 놓고 똥 좀 싸자. 화장실 몰카 그만 좀 해."
"똑똑히 들어라. 페미니즘 실현 없이 민주주의 없다."
"간섭마라 내 찌찌다. 브라를 하든 말든 쇼미더찌찌."

[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여성 수백 명이 길 위로 나왔다. 커트 머리, 파마 머리, 탈색 머리, 빨간색 립, 보라색 립 등 자기만의 멋을 뽐낸 여성들이 4월 15일 광화문 일대를 행진했다. 참가자들은 각각 '페미니즘에 투표한다'가 적힌 손팻말을 들었다. 집에서 직접 만들어 온 손팻말도 곳곳에 보였다.

'여성이 당당한 나라', '너희가 뭐라고 해도 난 페미니스트 할 거야', '한남들의 작은 실천이 페미 세상을 만듭니다', '어떠한 인간 관계에서도 폭력이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밥은 SELF', '꽃이 아니라 사실 사람입니다' 등 여성들은 시민에게 알리고 싶은 문구를 적었다.

여성 단체를 주축으로 모인 참가자들은 5월 9일 '장미 대선'을 앞두고 페미니스트가 원하는 바를 알리기 위해 행사를 진행했다. 볕이 내리쬐는 토요일, 여성들이 거리 위에서 외치는 주제는 다양했다. '영화계 내 성폭력', '화장실 몰카', '임신 중단', '시선 강간', '여성이 안전한 사회', '여성이 전담하는 가사 노동' 등. 주제는 달랐지만, 요구는 단 한 가지였다. 일상생활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겪는 '여성 혐오'를 멈추자는 것이었다.

페미니스트 수백 명이 길거리 행진에 나섰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일상에서 벌어지는 여성 혐오
길거리 행진한 페미니스트들
"페미니즘 없이 민주주의 없다"

"지방에서 그런 일이 있었어요. 한 10대 여성이 눈 오는 날, 출산한 후 아이를 놓고 사라졌나 봐요. 뉴스에서 그 여성이 '아동유기죄'라고 나왔어요. 남성 말고 아이를 출산한 10대 여성만 홀로 범죄자 취급을 받는 게 안타까웠어요."

"영화계 내 성폭력 피해자들은 현재 법적 싸움을 하고 있어요. 가해 남성들에게 형사소송을 거는데, 남성들은 되려 피해자가 자신을 명예훼손했다고 고소해요. 3,000~5,000만 원 민사소송을 거는데, 그 과정에서 피해자가 느끼는 압박감이 대단해요. 민사소송을 미끼로 형사소송을 취하하게 만들기도 하고요. 성폭력 사건에서는 가해자가 피해자를 명예훼손으로 민사소송할 수 없게 정책적으로 금지해야 해요."

"저는 브라를 하지 않아요. 거리를 다니면 '여자가 왜 브라하지 않고 다니는 거야?'라는 시선까지 다 느껴져요. 저는 페미니즘이 노브라를 하는 데 머뭇거리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 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가슴에 철사를 두르지 않고도 자기 가슴을 드러내고 사랑할 수 있는 세상을 원합니다."

"생업으로 성평등 교육하고 있어요. 초등학교에 가서 '남편은 아내의 집안일을 도와야 한다'가 맞는 문장인지 물었어요. 정답은 X예요. 돕는 게 아니라 함께하는 거니까요. 다들 'O'라고 하는데 10살 된 아이가 'X'라고 했어요. 반가워서 이유를 물었더니, 집안일은 아내가 다 하는 거라고 말하는 거예요. 깜짝 놀랐어요. 지금이 2017년인데 그런 말을 하다니요."

"여자친구 팬 사인회에서 몰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한 남성이 몰카 안경을 쓰고 나타났고, 여자친구 멤버가 눈치를 챘습니다. 사람들은 몰카 안경을 쓰고 온 남성을 욕하는 게 아니라 멤버를 욕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런 거죠? 우리는 몰카 제품을 사기도 쉽고 촬영도 가능한 사회를 살고 있습니다."
 

페미니스트들은 사회에 바라는 점을 손팻말에 적어 행진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수많은 여성이 거리를 행진하자, 시민들은 신기한 눈으로 이들을 보았다. 참가자들이 만들어 온 팻말을 눈여겨보거나,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직접 묻기도 했다. 행진을 본 한 아이도 부모에게 "페미니즘이 뭐야?"라고 질문했다. 여성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외국인도 눈에 띄었다.

거리에 나온 여성들 얼굴은 밝았다. 구호에 맞춰 소리를 지르고 팻말을 머리 위로 흔들며 호응했다. 행진 내내 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고 춤을 췄다. 팬들에게 '지옥에서 온 페미 래퍼'로 불리는 '슬릭'의 랩이 나오자 참가자들은 함성을 질렀다. 다른 사람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행진은 1시간가량 진행됐다. 종착지는 일본대사관 반대편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이었다. 한국여성의전화 송난희 활동가는 행사를 마무리하며, 이번 장미 대선에서 제대로 된 여성 정책을 펴는 후보를 선택할 것을 당부했다.

"이제 곧 대선입니다. 대선에 우리는 어디에 투표합니까? 엉망진창인 여성 정책을 내세운 정치인에게 투표하시겠습니까? 저희는 오늘 페미니즘에 투표합니다.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 없는 세상을 향해 여러분 열심히 움직여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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