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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올라오는 순간, 엄마는 이를 꽉 깨물었다
4·5월만 되면 숨고 싶은 세월호 가족의 속내
  • 이은혜 기자 (eunlee@newsnjoy.or.kr)
  • 승인 2017.04.13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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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배가 올라왔잖아요. 제가 목포신항에서 배가 들어오는 것, 배가 엄마들에게 다가오는 것을 맞이했는데요. 아이들이 타고 있던 배가 바로 서지도 못하고 누운 채 오더라고요. 기다리고 있는 부모들 품으로 세월호가 달려오는 모습을 보면서 이빨을 꽉 깨물었어요. '이제부터 시작이다. 지금까지는 그냥 워밍업이었다' 생각했죠." - 재욱 엄마 홍영미 씨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재욱 엄마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옆에서 듣고 있는 큰 건우 엄마, 요한이 엄마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월호가 침몰한 지 1,093일. 뭍으로 올라온 세월호를 보며 엄마들은 '이제 시작'이라고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광화문광장에 요한이 엄마, 큰 건우 엄마, 재욱이 엄마가 모였다. 세월호 이후 3년을 돌아보는 자리, 고성휘 이사장(목민연구소, 왼쪽)이 진행을 맡았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광화문광장에서 4월 12일 열린 '세월호 3주기, 삶은 침몰하지 않았다' 문화제는 세월호 엄마 3명을 초청해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었다. 사고 3년째를 맞아 여러 행사가 열리는 가운데, 이날은 엄마들이 그동안 어떻게 버텨 왔는지, 엄마들이 참여한 공방 이야기를 들었다.

길에서 눈물로 보낸 시간
세월호 인양 이끌어
아직 끝난 것 아냐

엄마들은 그동안의 싸움을 되뇌며 슬픈 미소를 지어보였다. 세월호 참사가 있기 전까지 자신들은 "평범한 대한민국 엄마였다"고 말했다.

"저는 그냥 평범한 엄마였어요. 2014년 그즈음 저는 '아, 행복하다. 우리 아이 편안하게 학교 다니고, 집 빚도 좀 갚았고, 이렇게 살면 정말 행복하겠다'고 느꼈죠. 그런 생각하던 즈음에 이런 일이 생겼어요. 지금은 목표가 없어졌어요. 사람들은 세월호 가족이 원래부터 강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이 자리도 핑계 대고 안 나오려 했어요. 사실은 마음속으로 다 싫었어요. 여기 나오는 것도 싫고, 나와서 얘기하는 것도 싫고… 4·5월만 되면 정말 숨고 싶어요. 애매하게 피어 있는 벚꽃을 보면 화가 나요. 저희 엄마들 그렇게 강하지 않아요. 아이들 지켜야 하니까 강한 거죠. 우리 애들은 수학여행 가다 사고 나서 재수 없이 죽은 애들이 아니라는 것을 엄마 아빠들이 밝혀야 하니까 강한 거지 원래 강하지는 않아요." - 건우 엄마 김미나 씨

재욱 엄마 홍영미 씨는 "지금까지는 워밍업이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팽목항에서, 광화문광장에서, 국회에서, 청운동주민센터에서, 길에서 세월호 가족이 보낸 시간과 흘린 눈물이 결국 박근혜 전 대통령을 파면으로 이끌었다. 오랜 시간 미수습자 9명을 품고 맹골수도 깊은 바닷속 잠들어 있던 세월호는 물 위로 올라왔고, 침몰 1,090일이 되는 날 땅을 밟았다.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세월호가 인양됐지만, 그 순간 엄마들은 아직도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다.

"저희 세월호 가족에게 3년은 계속 제자리걸음한 시간이에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 기간이 저희들 가족에게는 멈춰진 시간이라 그저 버틴 것 같아요. 아직도 가족 품에 돌아오지 못한 미수습자 입장에서 보면… 저희도 버티고 그들도 버티는 거죠. 우리 눈앞에 세월호가 올라왔고 10일이 훌쩍 넘었는데 여전히 가족의 품에 안기지 못한 미수습자가 있는 현실을 또 버티는 거죠." - 재욱 엄마 홍영미 씨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인연
작품 만들며 서로의 아이 품는다
"안산에 계속 사는 게 꿈"

엄마들이라고 다 처음부터 진상 규명을 위해 가열한 싸움에 나선 것은 아니다. 요한 엄마 김금자 씨는 처음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누워만 있었다고 했다.

"저는 요한이 찾고 나서 집에서 일어나 있지를 못 했어요. 계속 누워 있거나 자거나 그랬는데요. 어느 날 부대표가 '언니 뜨개질하는 데 와서 뜨개질 좀 하면 안 돼?' 하고 묻더라고요. 저는 다른 분들처럼 손재주도 없고 그런데 겨우 할 수 있는 게 뜨개질이었어요. 간신히 엉금엉금 걸어서 나갔죠."

요한이 엄마 김금자 씨는 세월호 엄마들이 모이는 뜨개질 공방에서 다시 힘을 얻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가족들 밥해 주기는커녕 자기 몸 가누기도 힘들었던 그때, 엄마들이 마음을 쏟을 수 있었던 곳은 뜨개질·꽃누르기 공방이었다.

공방은 세월호 엄마들만 모이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엄마들은 남 눈치 보지 않고 웃고 울 수 있었다. 건우 엄마 김미나 씨는 공방이 피난처였다고 말했다. 다른 곳에서 조금만 웃는 모습을 보이면 "애 잃고 어떻게 웃음이 나오냐"는 말이 돌아왔다. 공방에서 작품을 만들며 아이들, 엄마들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니 어느새 다른 아이가 내 아이가 됐다.

"처음에 할 때는 제 것만 열심히 하고, 옆에 것 보기도 싫었어요. 어느날 선생님이 250명 아이들의 액자를 만들어 주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엄마들 전부 한 분, 한 분 모셔서 아이들 액자를 만들고 싶다고 하시는데 싫다고 했죠. 내가 왜 다른 엄마 것까지 해야 하느냐고 거부했는데, 결국 선생님한테 질질 끌려왔어요.(웃음)

저희는 이 작품을 '아이들'이라 부르는데요. 아이들 만드는 데 서너 시간을 계속 아이들 얘기를 해요. 그러면 그 집 아이가 제 아이가 되고 그 엄마가 저의 가장 소중한 가족이 돼요. 우리는 안 만나면 좋았을 인연인데, 그 슬픈 인연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거죠. 그렇게 몇 시간, 다 만들고 나면 엄마들이 정말 환하게 웃어요." - 건우 엄마 김미나 씨

건우 엄마 김미나 씨는 "4·5월만 되면 정말 숨고 싶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공방에서 만든 물건은 '엄마랑 함께하장'이라는 바자회에서 판매했다. 수익금은 지역사회에 기부했다. 밤이면 잠이 오지 않아 긴긴 밤을 보내며 뜬 목도리는 안산 지역 노인정에 나눴다. 안산에 살고 싶은 엄마들은 어떻게든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저희는 안산에 살고 싶어요. 우리가 살던 곳이고 아이들 태어난 곳이잖아요. 안산에 스며들어 살고 싶은 가족들의 바람, 우리의 몸부림이에요."

엄마들이 만든 아이들(작품)은 현재 안산 경기도미술관에 전시 중이다. 아이를 소중하게 품에 안고 엄마 곁으로 보내 준 잠수사들을 생각하며 뜬 조끼, 가방, 목도리 등과 그동안 마음을 모아 준 시민들과 나누고 싶어 뜬 컵받침, 엄마들의 꿈과 아이들을 향한 그리움이 담긴 꽃누르기(압화)까지 다양하게 만날 수 있다.

꽃누르기 공방에서 만든 '엄마들의 자화상'. 안산 경기도미술관에 가면 볼 수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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