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마을 전경. 지붕만 보고 있으면 개발을 강조하는 서울에 있는 동네가 맞는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뉴스앤조이 유영

[뉴스앤조이-유영 기자] 비닐로 덮은 지붕 위에 타이어와 돌을 얹었다. 비닐은 비를 막기 위해 덮었고, 타이어와 돌은 비닐이 날아가지 않도록 올려 두었다. 슬레이트와 쓰레기, 연탄재가 도로포장 안 된 골목 여기저기 너부러졌다. '개미마을'로 알려진 서울 송파구 거여동 재개발지역 모습이다. 2005년 재개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가난한 동네는 폐허로 변했다.

동네 길을 구비 돌아 들어가면 황순옥 할머니(가명, 92)가 사는 집이 나온다. 황순옥 할머니가 사는 집 외관은 길가 풍경과 별다르지 않다. 조금 찢어진 비닐이 지붕에서 내려와 합판으로 만든 문을 가렸다. 언뜻 보면 버려진 집 같다. 한 평가량 되는 작은 방에는 볕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 작은 창 하나로 유일하게 햇빛이 들어온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어두운 방에 누운 황 할머니 얼굴이 텔레비전 불빛에 살짝 비친다. "할머니, 불 좀 켜고 계시라니까." 주님의교회 정미란 집사(67)와 하미숙 집사(45)가 할머니에게 말했다. 황 할머니는 반갑게 웃으며 "그거 당겨"라고 답했다.

볕이 들어오는 곳은 프라이팬만 한 작은 창이 유일하다. 좁은 방에서 황 할머니는 홀로 살아간다. 뉴스앤조이 유영

작은 형광등이 켜지자 집 내부가 눈에 선명하게 들어온다. "오늘은 그래도 깨끗하게 치우고 계시네." 정 집사는 들고 온 죽을 식탁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쓰레기와 여러 잡동사니가 어지럽게 놓였지만, 이 정도면 깨끗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처음 할머니 집에 왔을 때는 너무 지저분해서 발 디딜 곳이 없었어요. 요양사를 부를 수 있도록 관련 기관에 알아보니, 할머니에게 결혼한 아들이 있어서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아들을 찾아가 부양 포기 각서를 써 달라고 했어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들 부부는 거부했어요. 1년 정도 계속 찾아가서 겨우 각서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온 요양사 때문에 집이 좀 깨끗해졌어요.

할머니를 처음 보았을 때 '젊은 시절을 어떻게 살았기에 이렇게 가난할까' 의문이 많았어요.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 보니, 너무 힘들고 치열하게 열심히 사셨더라고요. 나중에는 무당으로 살기도 했고, 삶의 굴곡도 심했어요. 황 할머니를 보며, 개인 노력으로 나아지지 않는 삶이 많다는 걸 깨달아요. 힘든 상황은 자녀에게도 이어져요. 자녀도 가난해서 부모를 돌보지 못할 지경이니까요."

할머니는 쓰레기와 잡동사니들을 잘 치우지 못하게 한다. 요양사도 이 이상 치우지 못한다고 했다. 끈적이는 방을 닦으려 하자 "그냥 내가 할 테니 놔둬"라며 오히려 봉사자들을 혼낸다. 봉사자들은 '할머니가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알리는 행동'이라고 예상할 뿐이다.

"처음 왔을 때보다 혈색도 좋아지고, 요새는 가끔 길에 나와 걷기도 한다고 해요. 7년째 죽 봉사를 하는데, 이런 모습을 보며 위로를 받아요." 하미숙 집사가 웃으며 말했다.

황혼 재혼해 쓰러진 아내 돌보는 할아버지
"봉사하면서 배워야 할 태도 많아"

주님의교회(박원호 목사)는 2008년부터 송파구 거여동과 마천동 일대 독거노인을 위해 죽 봉사를 시작했다.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독거노인을 찾아 발로 뛰었다. 처음에는 죽이 아닌 밥을 배달했지만, 아프고 이가 없어 먹기 불편해하는 노인을 위해 죽으로 메뉴를 바꾸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반찬과 생필품, 과일 등도 전달한다. 현재 개미마을을 포함해 거여동과 마천동에 사는 독거노인 49명을 돌본다. 봉사자 13명이 월요일과 목요일마다 이들을 찾는다.

죽을 받는 독거노인의 힘겨운 상황은 이들을 찾아가는 길에 본 무너져 내린 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뉴스앤조이 유영

생필품 중 가장 요긴한 물건은 성인용 기저귀다. 거동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필수품이다. 기저귀는 필요한 노인들에게 한 달에 한 번, 100개들이 한 상자를 전달한다. 성인 남성이 어깨에 얹고 가야 할 정도로 부피도 크고 무겁다. 남성 봉사자가 없어, 여성 봉사자 두 명이 함께 나른다. 성인용 기저귀를 가장 감사하게 받는 분은 최재섭 할아버지(가명, 70)다. 죽 봉사자들 올 시간이 되면 할아버지는 골목 어귀에 나와 담배를 물며 기다린다.

최 할아버지는 4년 전 김숙자 할머니(가명, 66)와 결혼했다. 두 노인 각자 모두 사별하고, 어려운 삶을 근근이 이어 나가고 있었다. 서로 위로해 주는 사이에서 생의 마지막까지 함께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그러나 1년 만에 김 할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처음엔 일어섰지만, 또다시 뇌졸중이 찾아왔다. 이제는 몸도 가누지 못하고 말도 하지 못한다. 최 할아버지는 그런 할머니를 지극히 돌본다. 벌써 3년째다.

"할아버지 참 대단하셔요. 1년 살고, 할머니 3년 동안 보살피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그냥 도망갈 수도 있고, 이혼하고 모른 척 살 수도 있을 텐데. 화장실도 가지 못하는 할머니 위해 하루 3~4번 기저귀도 갈아 주고, 매일 식사 준비해서 먹이고, 씻기고. 할머니는 지금 아기와 같은 상황이라 아무것도 못 하거든요."

굽은 어깨로 성인용 기저귀 상자를 지고 가는 최 할아버지를 보며, 명윤경 집사(47)가 말했다. 건강하게 살면서도 서로를 원망하는 우리가 보고 배워야 한다고 했다. "봉사하면서 배워야 할 태도가 너무 많아요."

보이지 않는 상황이 더 중요
기록과 다른 경우 많아

김명제 할아버지(가명, 92)는 봉사자들이 찾아와도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얼굴까지 덮었던 이불을 슬며시 눈까지만 내린다. 60이 넘은 아들은 교통사고로 다리가 잘려 일어서지도 못하고 봉사자들에게 고맙다고 인사한다. 상황이 어렵지만, 부자는 어떠한 혜택도 받지 못한다. 큰아들이 동생 명의로 차량을 구입해 장애인 혜택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8년 동안 사역을 이끌어 오다 잠시 쉬고 있는 이형구 집사(71)는 "어려운 상황을 들을 때 외부 상황과 기록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이 집사는 여성만으로는 하기 힘든 실태 조사를 주로 돕고 있다). 겉으로 멀쩡해 보이지만 삶이 무거운 사람도 있고, 기록과 실제 상황이 다른 경우도 많은 탓이다. 김 할아버지 부자 사례가 후자의 경우다. 장애인 혜택은 가족이 받고, 정작 장애가 있는 이는 아무 혜택도 못 받는다.

독거노인들 중 다수는 갑자기 병원에 입원한다. 몇 주만에 집에 돌아온 한 독거노인이 약을 복용하고 있다. 이들에게 죽은 꼭 필요한 식사다. 뉴스앤조이 유영

봉사자들은 실태 조사를 중요하게 여긴다. 죽 배달을 하면서 계속 상황을 살핀다. 실태 조사는 주로 죽을 받을 노인들과 연락이 닿아 방문할 수 있는 시간에 이뤄진다. 6일에는 비교적 젊은 이명세 할아버지(가명, 80)와 고관절 수술로 거동이 불편한 김복자 할머니(가명, 77) 부부 실태를 조사했다. 죽을 받는 대부분 독거노인이 그렇듯 이들도 반지하 작은 방에 살았다. 그동안 방문했던 집보다 깨끗해 보였지만 좁은 건 다르지 않았다.

이 할아버지는 폐암 수술을 받고, 항암 치료를 진행하고 있었다. 밥을 먹을 수 없어, 식빵 몇 조각으로 끼니를 때우는 날이 잦다고 했다. 김 할머니 부부의 경우, 할머니가 거동하지 못해 식사 준비에 어려움이 컸다. 평생 할머니가 차려 준 밥만 먹었던 할아버지가 준비하는 식사에는 한계가 있다. 구청에 잡히지 않는,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었다. 월요일과 목요일에 죽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잘 사는 게 무엇인가
"비싼 음식 먹고, 옷 살 때
죄책감 들기도"

봉사자 13명이 월요일과 목요일 나뉘어 봉사해 인원이 늘 부족하다. 2명씩 짝지어 16명을 찾아가야 한다. 실태 조사하고 간단한 안부만 나누는 데도 시간이 부족하다. 죽 배달을 마치면 돌아와 독거노인 상황과 실태를 서로 나누고 정보를 공유한다.

봉사하며 만난 독거노인들의 상황을 확인하고, 다음 배달 때 줄 생필품 구입을 논의하는 봉사자들. 뉴스앤조이 유영

4시간가량 사역을 마치고 돌아가는 봉사자들 발걸음이 가벼워 보이지만은 않는다. 독거노인을 돌보며 어떤 마음이 드느냐고 물었다. 팀장인 곽병남 권사(64세)는 하늘을 한 번 쳐다보았다가 고개를 떨구며 이렇게 답했다.

"이 사역을 하면서 잘 사는 게 무엇인지 많이 생각해요. 교회가 이런 사람들과 함께하지 않고 무엇을 하는 것인지도 고민하고요. 그저 자신들만 위하는 교회가 많잖아요. 물려줄 것이 없어 자녀도 등 돌린 노인도 너무 많은데, 교회 재산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예배당 건축에만 열을 내는 상황이 안타까워요.

이 사역을 하고 나서 좋은 식당에 가서 밥을 먹으면 마음이 힘들어요. 죄책감까지 드는 날이 많아요. 함께 사역한 분 중에는 옷 한 벌 사는 게 괴로워 새 옷을 사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분도 있다고 해요. 어쩌면 교회가 부자고, 교회에 부자가 많은 게 이상한 현상이라는 생각으로 변했어요. 복 받아서 부자가 되는 것보다, 살아갈 만큼 주시면 나누고 사는 게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