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여성은 한 달에 한 번 '월경'을 한다. 빠르면 초등학교부터 시작해 수십 년간 월례 행사를 치른다. 월경은 대다수 여성에게 달가운 일상이 아니다. 개인차가 있지만, 통증 때문에 진통제를 먹기도 하고 하루 종일 배만 움켜쥐는 경우도 있다. 기절하는 여성도 있다. 통증이 적더라도 하루에 몇 번씩, 일회용 생리대를 갈아야 하는 일은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그런 여성들에게 지난해부터 붐을 일으킨 '월경컵'(혹은 생리컵)은 해방이자 혁신이었다. 호불호가 갈리지만 월경컵 후기는 대개 긍정적이다. 특히 일회용 생리대를 쓸 때보다 생리통이 줄었다는 말이 많았다. 삽입할 때 느끼는 불편함과 이물감이 있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는 월경컵은 여러모로 괜찮은 여성 용품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월경컵은 제조는 물론 판매도 금지돼 있다.

지난 3월,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이 신청자를 받아 공동 구매한 프랑스산 월경컵 500개가 인천공항에서 반송되는 일도 있었다. 제품을 기다린 여성은 413명. 적으면 1개부터 많으면 10개까지 월경컵을 구매했다. 그런데 통관절차에서 문제가 생겼다. 일반 수입 신고 품목 중 월경컵이 적용될 카테고리 자체가 없었다. 결국 제품은 다시 프랑스로 돌아갔다. 4월 5일 공동 구매를 진행했던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 이은재 연구원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이은재 연구원은 월경컵을 접한 후, 개발원 이름으로 공동 구매를 진행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400여 명이 716개 신청
"월경컵 쓰고 인생 바뀌었다"
세금 매길 카테고리 없어
월경컵, 프랑스로 반송

-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개발원)에서 월경컵 공동 구매를 진행했다. 기독교 여성 단체가 주도적으로 사람을 모은 점이 신선하다.

개발원은 감리회 안에 있는 성차별적인 문화, 예배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단체다. 장정 개정을 위한 운동, 여성주의 예배, 여성 지도력을 연구해 왔다. 2000년 시작해 올해 17년 차에 접어들었다.

월경컵 공동 구매를 처음 기획할 때는 이렇게 판이 커질지 몰랐다. 개발원 연구원들과 이야기하다가 월경컵 후기를 나눴다. "월경컵을 쓰고 나서 인생이 바뀐 거 같다"고 말했다. 나는 생리통이 있어서 월경 주기에 진통제를 복용한다. 월경컵을 사용하고 나서는 진통제를 먹지 않는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연구원 중 몇 사람이 "나도 써 보고 싶다", "딸에게 소개해 주고 싶다"고 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알음알음 소개해서 최대 50명 정도가 써 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공동 구매를 시작했다.

- 반응이 좋았다. 400명 넘는 사람이 공동 구매에 참여했다.

월경컵에 대한 필요가 엄청났다. 2월 마지막 주부터 3월 첫째 주까지 2주간 신청한 사람은 500명이었고 입금까지 한 사람이 431명이었다. 총 716개를 구매했다. 개발원 페이스북 페이지에 공지했는데, 200개가 공유되고 게시 글이 2만 명에게 도달했다. 전국에서 신청이 들어왔다. 제주도에서도 신청하더라. 월경컵을 신청한 여성 중에서는 개발원을 모르는 사람도 꽤 됐다. 마감 후에도 신청할 수 없냐고 문의가 들어왔다.

월경컵 구매가 주 사업이 아닌데, 어쩌다 보니 품을 많이 쓰게 됐다. 신청한 사람에게 보내야 할 안내 문자가 많았다. 알아봐야 할 것도 많았고. 동료 연구원 중에는 일이 많으면 미리 마감해도 된다고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내가 월경컵의 좋은 점을 아니까 귀찮고 수고스러워도 더 많은 사람이 썼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 공동 구매한 사람 중 교회 여성도 있었나.

정확히 몇 분이 공동 구매에 참여했는지는 모르겠다. 우리 단체를 모르는 비기독교인 여성들도 많이 참여하셔서. 내가 아는 분들은 연구원 포함해서 20분 정도 참여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경험한 교회들을 떠올려 보면, 많이 참여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교회 분위기 자체가 여성의 몸이나 월경 이야기를 금기시하고 쉬쉬한다. 여성 용품에 관심 있는 여성 아니고는 교회 안에서 소식을 접할 기회도 드물다고 생각한다.

- 생리통이 줄어들었다고 했는데, 월경컵을 직접 써 보니 무엇이 제일 좋았나.

사용한 지 3개월쯤 됐다. 좋은 점이 진짜 많다. 신세계를 경험하는 듯하다. "왜 내가 진작 쓰지 않았지"라는 후회가 들 정도다. 일단 생리통이 거의 없어졌다. 피 냄새도 잘 안 난다. 일회용 생리대를 쓰면 냄새가 나서 불쾌해지는데, 월경컵은 그게 없다. 신기하다. 또 잠잘 때 마음이 편하다. 월경할 때 누워 있으면 피가 샐까 봐 조마조마하다. 취침용인 오버나이트 써도 피가 새는 느낌이 들면 깨기도 하는데 그게 전혀 없다. 大자로 자든지 웅크려 자든지 어떤 자세로 자도 전혀 상관없다.

자기혐오도 줄었다. 월경 주기가 다가오는 게 너무 불편했다. 생리혈은 더럽고 불결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 몸에서 나온 건데도 그랬다. 일회용 생리대 쓰면 더럽다고 속옷에서 떼서 바로 쓰레기통에 버렸는데, 월경컵 쓰면서 인식이 변했다. 월경 양도 확인할 수 있고 피를 봐도 혐오스럽지 않다.

지금은 너무 좋다고 말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월경컵은 지난해 생리대 문제가 불거질 때 인터넷을 찾아보면서 알게 됐다. 월경컵에 관심 있던 친구가 같이 구매하자고 해서 해외에서 직구했다. 한 달 뒤에 왔는데 크기부터가 충격이었다. '이게 어떻게 질 안으로 들어가' 싶었다. 이전에 탐폰을 써 볼까 했는데 실패했다. 질 안에 월경컵을 넣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처음 넣는 데 10분 정도 걸렸다. 2~3시간은 이물감이 있었는데 한 차례 고비가 지나면 내가 월경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느낌이 없다.

월경컵은 한국에서 제조 및 판매가 불가하다. 해외 직구의 경우, 대량 구매는 불가하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 많은 여성이 신청했는데, 결국 인천공항에서 월경컵을 반송했다.

수입 물품 가격이 1,000불 이상이면, 일반 수입 신고를 해야 한다. 구매자가 관세사에게 의뢰해 관세청에 신고해야 한다. 당시 프랑스에서 보내온 월경컵이 1,000불을 넘었다. 관세사 사무실을 수소문해 10곳에 전화했다. 10곳 중 9곳은 월경컵을 모르거나 한국에서 월경컵이 논쟁 물품이라 의뢰를 받을 수 없다고 답했다. 한국은 월경컵 제조와 판매 자체가 불법이라 처벌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나중에 한 곳이 받아 주기는 했는데, 일반 수입 신고 품목 중 월경컵을 분류할 항목이 없다고 했다. 심사 기준 자체가 없으니 아예 신고 절차를 밟지 못했다.

- 국내에서 월경컵 제조와 판매를 왜 불허하나.

허가를 한 번도 내준 적이 없다는 게 이유다. 작년 7월에 한 회사가 월경컵을 제작, 판매했지만 중단당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는 해당 회사에 관련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고 했다. 월경컵이 실리콘이라 생리대가 포함된 '의약외품'이 아닌 '의료 기기'로 취급된다. 의료 기기 안전성 시험 기준을 통과해야 하는데, 월경컵은 진행한 적이 한 번도 없어 통과 기준이 모호하다.

안전성을 걱정하는 거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이미 유럽에서는 70년 전부터 월경컵이 만들어졌고, 현재 50개국 이상에서 사용하고 있다.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는 말이다. 이런 정보를 아는 사람들은 식약처의 불성실한 대답과 태도를 비판한다.

- 월경컵을 가져올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심정은.

화가 났다. 우리가 하려고 하는 건 제조나 판매가 아니었다. 필요한 사람이 함께 구매하는 거였다. 설마 막을까 싶었다. 그래서 일반 수입 신고를 안 하는 방법을 찾기로 했다. 수입품 가격이 150불~1,000불이면 간이 통관을 거친다. 그런데 이것도 문제였다. 관세사는 20개 이상이면 대량 구매라고 볼 수도 있을 거라고 했다. 결국에는 150불 미만 선에서 월경컵을 해외 직구해야 문제가 되지 않는 거다. 지금은 아예 필요한 사람들이 직접 구매할 수 있도록 신청서 양식을 개발원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려놨다.

이은재 연구원은 여성들이 월경 용품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 페이스북 페이지에 '#월경의_자유를_허가하라'는 제목의 게시물을 올렸다. 무슨 의미인가.

여성들에게 최소한의 선택권은 보장돼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 월경 관련해서는 일회용 생리대가 독점한 상태다. 일회용 생리대는 제품을 하얗게 만들기 위해 화학 물질로 처리한다. 여성 성기가 닿는 중요한 제품인데 유해성 물질이 들어가는 건 문제가 있다. 사용자는 좋든 싫든 일회용 생리대를 써야 하는데, 어떤 물질이 들어갔는지 정보도 전혀 없다.

선택조차 못 하는 건 너무 억울한 일이다. 직접 써 보고 생활이 달라지는 걸 느끼니 더욱 그렇다. 인터넷 찾아보면 알겠지만, 다른 나라는 월경컵 종류가 엄청 많다. 사이즈부터 모양까지 십 수 개가 있고 그중 자기 몸에 맞는 컵을 찾아 쓸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은 제조·판매는 물론 공동 구매도 못 하게 하니 억울하다. 여성이 일회용 생리대만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면생리대, 탐폰, 월경컵 등 자기에게 맞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성 용품을 선택할 수 있는 게 곧 월경의 자유를 허하는 것이라 보았다.

- 월경컵을 포함해, 사회적으로 여성 문제가 떠오르고 있는데 상대적으로 교회에서는 그렇지 않다. 기독교 여성 단체로서 어떤 활동을 할 수 있을까.

일단 교회 안에서 쉬쉬하는 이야기를 드러내는 역할을 해야 할 것 같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여성 삶에 월경컵과 같은 역할을 하는 물건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성 자신은 모르지만 여성 삶을 바꿔 주는 것들. 이런 것들을 더 찾아내고, 교회 안에서 활발하게 이야기 할 수 있도록 해 줄 필요가 있다. 월경컵 문제가 정리되면, 월경과 관련한 집담회를 열고 싶다.

근본적으로는 여성 목회자가 더 많아져야 한다. 과연 여성이 일상생활에서 소소하게 겪는 문제를 현 남성 중심의 교회가 해결해 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교회에서 불쾌한 일이 있었다고 해도 어디로 상담받을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른다. 남성 목회자에게 월경, 임신, 임신 중단, 완경(폐경) 등을 묻기 어렵다. 결국 교회가 대답해 줄 수 없는 것을 사회가 대신해 주다 보면, 청년들이 교회를 멀리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여성 목회자 지도력 양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