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편의점이 많을까, 카페가 많을까. 정답은 카페다. 한국기업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15년 11월 말 국내 카페 수는 4만 9,600개였다. 3만여 개인 편의점보다 훨씬 많다. 그만큼 카페는 사람들에게 친숙한 공간이 되었다. 단순히 차를 마실 뿐 아니라 누군가를 만나거나 혼자 시간을 보낼 장소로 카페만 한 장소가 없다.

교회에도 카페 붐이 일었다. 교회 건물 안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곳이 점차 늘더니 아예 카페를 예배 장소로 사용하고 목회자가 주중에 카페를 운영하는 작은 교회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2016년 예장통합 총회 문화법인에서 카페 등 문화 시설이 있는 서울 지역 교회 114곳에 운영 목적을 물었다. 77.6%가 "지역사회와 소통을 통한 복음 전파를 위해"라고 답했다. 114곳 중 89곳이 카페가 있는 교회였으니 카페 운영 목적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이들 카페는 대부분 교인이 이용했다. 지역 주민이 교인보다 많이 찾아오는 카페는 많지 않았다. 교회가 이웃을 만나 소통하려고 카페를 만들었는데 이웃은 별로 안 찾아오는 게 현실이다. 어떻게 하면 카페를 통해 이웃과 만나고 소통하며 지역을 섬길 수 있을까. 교인보다 지역 주민이 많이 찾아오는 두 카페 이야기를 들여다보며 힌트를 얻어 보자.

숨쉼교회 카페,
마을 활동에 숨 불어넣다

2010년 광주시 광산구 수완지구에 자리 잡은 이래 '북 카페 숨'을 운영해 온 숨쉼교회(안석 목사). 카페 옆에 도서관도 함께 있는 이 교회 건물 이름은 '복합 문화 공간 숨'이다. 2층짜리 목조 건물인데 외부에서 보면 전혀 교회와 관련된 곳 같지 않다. 안석 목사 부부는 사전 조사차 기존 교회 카페와 도서관을 방문한 뒤 교회색이 짙게 공간을 꾸미면 교인만 이용하게 된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누구나 부담 없이 찾아와 편히 쉬며 교제할 수 있도록 예배 공간은 작게, 카페와 도서관 공간은 크게 꾸몄다. 지역 주민들과 소통의 문을 열어 준 것은 책과 공정 무역 커피였다.

"처음에는 '어! 우리 마을에도 이런 북 카페가 있네' 하고 한번 들어와 봅니다. 공정 무역 커피를 파는 것도 생소해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진열해 놓은 책들을 훑어보겠지요. 성공이나 처세에 관한 책은 한 권도 없습니다. 대신 마을·생명·환경·교육·공유 경제 등 대안적인 삶을 이야기하는 책이 주를 이룹니다. 이웃들은 차와 커피를 마시다가 '왜 이런 찻집을 하느냐'고 묻습니다. 만남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이웃과 함께하는 도시 교회>, 뉴스앤조이 펴냄, 198~199쪽)

안석 목사는 누구나 부담 없이 찾아와 편히 쉬며 교제할 수 있도록 예배 공간은 작게, 카페와 도서관 공간은 크게 꾸몄다. 목회멘토링사역원 김재광
지역 주민들과 소통의 문을 열어 준 것은 책과 공정 무역 커피였다. 목회멘토링사역원 김재광

주민들과의 만남이 잦아지자 카페를 중심으로 이웃들과 다양한 일이 벌어졌다. 공정 무역 음료를 파는 것을 알고 인근 중학교 학생들이 카페에 찾아왔다. 함께 공정 무역을 알리는 캠페인을 벌이자고 했다. 마을 사람 150명이 참여한 제법 큰 행사를 숨쉼교회 마당에서 열기도 했다. 카페 손님 중에는 광주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도 있었다. 그의 제안으로 카페 옆 도서관에서 매월 1회 영화 모임을 시작했다. 주로 생명과 여성, 인권 등을 주제로 한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또 다른 단골손님은 비폭력 대화 프로그램 강사였다. 마을 사람들이 카페와 도서관에 활발히 드나드는 모습을 본 그는 비폭력 대화 워크숍을 열자고 했다. 일반 강좌로 시작한 워크숍은 모녀 대화 캠프, 청소년 대화 교실, 지역 교사들의 비폭력 대화 연구 모임 등으로 발전했다. 그 밖에도 이웃들이 취미 생활을 공유하며 해외 아동과 마을 어르신들을 도운 '나눔의 손뜨개 모임', 동네 밤길을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손전등 산책’과 같이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마을 활동이 생겨나고 이어지며 발전했다.

카페는 2015년 말 ‘동네 책방 숨’으로 거듭났다. 동네에 변변한 책방이 없어 안타까워하는 이웃들의 필요도 있었지만, 책을 통해 각자의 경험이 더욱 공유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꾀한 일이었다. 이런 의도는 이웃끼리 책을 선물할 수 있도록 마련한 ‘책 미리내’라는 이색적인 코너에서 잘 드러난다. 책을 골라 구입한 뒤 선물할 대상에게 편지를 적어 한쪽에 두면 받을 사람이 책방에 들러 책과 편지를 가져가는 방식이다.

카페는 2015년 말 '동네 책방 숨'으로 거듭났다. 책을 통해 각자의 경험이 더욱 공유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꾀한 일이었다. 목회멘토링사역원 김재광

책방에는 공정 무역, 평화, 세월호, 교육, 공동체 등 숨쉼교회가 이웃과 함께 펼쳐 온 다양한 활동과 연관된 책들이 주제별로 배치되어 있다. 관련 단체 활동가와 주민들이 책을 구입하러 책방에 드나들며 각자의 활동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눈다. 자발적인 독서 모임이 월 4회가량 열리고, 지방에서는 흔치 않은 저자 초청 북 콘서트도 한 달에 한 번 꼴로 접할 수 있다. 안석 목사는 책방에서 책과 차를 매개로 지역 주민에게 "단순한 삶, 더불어 사는 삶, 적당히 벌어 잘 사는 삶,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삶 등 새로운 삶의 패러다임"을 소개한다.

이제 숨쉼교회를 찾는 사람들은 마을 주민에 그치지 않는다. 광주에서 마을 공동체 활동을 하는 이들, 교육 공동체를 만들려는 교사들, 문화 활동가들도 자주 드나든다. 지역에서 세월호 촛불 문화제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수시로 모이는 공간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이웃들이 자발적으로 마을 활동을 하도록 ‘숨’을 불어넣는 근거지인 셈이다.

'취준생'부터 외국인 노동자까지
약자와 함께하는 위드교회 카페

동성로는 대구의 대표적인 번화가다. 그 한복판에 자리 잡은 빌딩 5층에는 위드교회(정민철 목사)가 있다. 금요일 저녁과 일요일은 예배 공간으로 사용되지만, 나머지 날은 여느 카페와 다름없다. 전형적인 카페 교회 모습이다.

정민철 목사가 위드교회를 개척하며 이런 형태를 취한 것은 한국교회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 때문이다. "교회가 커지고 교인이 많아져도 지역사회는 바뀌지 않고, 주민들이 겪는 문제도 해결되지 않잖아요.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와 상관없이 홀로 성장하는 교회의 모습에 실망하는 겁니다."(<이웃과 함께하는 도시 교회2>, 뉴스앤조이 펴냄, 145쪽) 지역사회 안에서 공존하며 이웃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카페 교회라는 형태를 선택한 것이다. 이런 목회 철학을 공유하는 교인들과 협동조합을 만들어 위드카페를 운영해 왔다.

대구의 대표적 번화가인 동성로에 자리 잡은 위드교회. 목회멘토링사역원 김재광
검색 사이트에서 위드카페를 찾으면 '스터디 카페'라는 연관 검색어가 뜰 정도로 많이 알려졌다. 목회멘토링사역원 김재광

자리 잡은 지역이 도심지이다 보니 위드카페의 주 이용자는 직장인과 학원생이다. 특히 취업 준비생들이 많다. 카페 인근에 취업 준비 학원이 많기 때문이다. 위드교회는 이들이 편하게 공부하고 교제할 수 있도록 커피 가격을 저렴하게 책정하고 스터디 룸을 여러 개 만들었다. 카페 홀 역시 곳곳에 칸막이를 두어 혼자 온 사람들도 공부하기 편한 분위기다. 지금은 검색 사이트에서 위드카페를 찾으면 ‘스터디 카페’라는 연관 검색어가 뜰 정도로 많이 알려졌다.

100평 넘는 널찍한 공간과 다수의 스터디 룸을 갖춘 카페 공간은 크고 작은 대관 행사를 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구청이 마련한 마을 행사나 음악회, 다양한 단체의 교육 프로그램이나 모임 등 외부 요청이 있으면 마다하지 않고 저렴하게 공간을 빌려준다. 이웃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인문학 책 읽기 모임이나 철학 강좌 등을 운영하기도 했다.

대구에서 사회적 경제 활동을 하는 이들도 카페를 자주 찾는다. 위드카페가 2014년부터 행정자치부가 지정한 마을 기업으로 선정되고 우수 기업으로 뽑히면서 지역 내 사회적 경제 관련자들에게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마을 기업답게 위드카페는 청년 일자리를 창출해 그 자리에 새터민과 무슬림 유학생을 고용했다. 인건비와 월세를 뺀 카페 수익금은 전액 외국인 노동자 무료 진료를 위한 약품 구입, 해외 의료 봉사, 빈곤 아동을 돕는 단체 지원 등에 사용한다.

인건비와 월세를 뺀 위드카페 수익금은 전액 외국인 노동자 무료 진료를 위한 약품 구입, 해외 의료 봉사, 빈곤 아동을 돕는 단체 지원 등에 사용한다. 대구 지역 사회적 카페를 소개하는 매거진에도 소개됐다. issuu.com 갈무리

사실 위드교회 교인 중 상당수가 의료인이다. 정민철 목사가 의료 선교 단체인 한국누가회 간사 출신이고 그때 만난 이들과 함께 위드교회를 개척했다. 주일 오후 위드교회 교인들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의료 봉사를 한다. 한 달에 세 번은 외국인 노동자가 많은 지역으로 찾아가고 한 번은 카페로 불러들인다. 초음파 기기 등 의료 장비가 카페 안에 구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날 카페는 진료소로 변신한다.

한편 위드교회는 곧 위드카페에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동안 카페 운영 전반을 책임진 동역자들이 자기 진로를 찾아 떠나면서 자체적으로 카페를 운영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위드카페는 이웃 교회 목회자가 카페 운영도 하고 장소도 활용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위드교회와 위드카페의 관계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위드교회 교인들로 구성된 위드협동조합은 위드카페를 계속 지원한다. 위드카페를 중심으로 하는 마을 사역에 두 교회가 함께 힘과 지혜를 모으게 된 셈이다. 위드카페 운영을 맡게 된 최웅철 목사는 위드카페가 걸어온 길을 계속 유지하면서 이웃과 함께하는 길을 계속 모색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정 목사는 위드카페를 통해 "비기독교인인 손님이 지인에게 위드교회를 소개하는 기현상"을 종종 경험했다. 평소 교회를 부정적으로 여긴 이들로부터 위드교회 활동을 보고 마음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고 한다. 교회가 조건 없이 지역 주민을 섬길 때 이웃의 신뢰를 얻게 됨을 확인한 것이다.

4월 24일(월) 부산 호산나교회(유진소 목사)에서 열리는 '제8차 마을을 섬기는 시골·도시 교회 워크숍'에서 위드교회가 카페를 통해 지역 청년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을 섬기고 마을 기업을 만들어 온 이야기를 더 자세히 들을 수 있다. 마을 카페와 책방, 도서관 등을 통해 이웃을 만나고 마을 활동에 활력을 불어넣은 숨쉼교회 이야기도 더 자세히 소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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