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4월 17일(월) 성산동 나눔교회(조영민 목사)에서 열릴 제6회 <크리스찬북뉴스> 포럼 '기독교의 사회 정치 참여 어디까지 가능한가' 주제 도서 <기독교 정치학> 서평이다. - 편집자 주
<기독교 정치학 -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답하다> / 존 H. 레데콥 지음 / 배덕만 옮김 / 대장간 펴냄 / 250쪽 / 1만 2,000원

1.

나는 386세대다. 곧 군부 정권 통치하의 억압과 반발 속에서 대학을 다니던 세대다. 한편으로는 모태신앙으로 전통적 교회 내에서 범생적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랐고, 대학교 1학년 1학기를 미션 단체 중 가장 보수적인 캠퍼스 선교 단체에서 제자 훈련을 받으면서 대학 생활을 시작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당시로는 이 두 가치는 쉽게 하나가 될 수 없었다.

이 두 가치는 나의 대학 1~2학년 초에 강하게 충돌하며 갈등을 겪었다. 그 와중에 우연히 한국 현대사에 대해 각성하면서 이후 시대 상황과 이어진 강한 탐구로 그 방면의 상당한 책과 자료들을 읽어 대는 열심을 보였다. 그럼에도 신앙적으로는 전통적인 색깔을 견지하며 해방신학 쪽 서적과 사회참여에 대한 책들을 접했다.

그러던 중 6월 항쟁이 일어났다. 수많은 학생이 그 일에 매진하기도 하고 도심 시위에 참여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도심 시위는커녕 시내 시위에 참여해 본 적도 없었다. 두려움 때문은 아니었다. 성경에서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당시로서는 어느 것이 신앙인으로 바른 결정인지 결론 내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두 가치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 내 무지한 머리로서는 쉽게 정의 내릴 수 없었다.

그러다 대학교 3학년 때 우연히 정착한 반포의 N교회 대학부 제자 훈련의 한 꼭지에서 접하게 된 기독교 세계관과 사회참여를 주제로 한 책들 속에서 길을 찾게 되었다. 이후 관계된 책들을 다양하게 찾아 읽으면서 그 길을 흐릿하게나마 찾아가게 되었다. 제임스 사이어, 로날드 사이어, 폴 마샬, 리차드 마우, 윌드런 스코트, 존 스토트, 헤리 블레마이어, 프랜시스 쉐퍼 등을 포함한 여러 저자의 책들을 읽어 가며 조금씩 그 길을 찾게 되었다(당시 세계관과 사회참여에 관계된 책을 개인적으로 정리한 목록은 지금도 인터넷 어디선가 나도 모르게 떠돌아다니고 있다).

당시 대학부와 청년부에 썼던 글들이 관련 책인 양 동일한 참고 도서 목록으로 실려서 누군가의 카페와 블로그에 살아 있다. 그러면서도 성경에 근거한 제자도와 양육에 관한 숱한 책을 읽으며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어떻게 세상에서 복음을 증거하고 살아갈 것인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지속적으로 한국 근현대사와 사회과학과 당시 운동 사상에 관련한 책과 자료를 읽어 댔다. 시위에는 한 번도 참여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2.

이번에 읽어 본 책은 당시 기억을 되새기게 한다. 당시 읽었던 기독교 세계관, 사회참여와 정치관에 대한 책들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 그때보다 더 실제적이고 실천적으로 쓰여서 이 책은 더욱 반갑고 친근했다.

그런데 이 책은 당시 내가 가장 핵심적으로 붙들었던 로마서 13장의 문제를 문을 여는 열쇠로 삼고 있다. 1980년대, 1970년대에 로마서 13장은 보수적 또는 친정권적 교계에 의해 교인들의 사회 불만과 행동을 막는 중요한 근거 자료로 쓰이기도 했다.

기독교 정치관의 토대가 되고 있는 로마서 13장은 1980~1990년대 시대 상황에서 내게 많은 고민을 안겨 주었다. 특히 그리스도의 제자로 자처하며 말씀대로 살겠다고 작정하며 성경을 중심 삼는 내게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판단 잣대로서 작용했다(실천하느냐 않느냐는 일단 부차적으로 보자). 내가 듣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가 아니라, 복음주의자로서 말씀이 내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지가 내게는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본문을 묵상해 보면, 모든 권력은 하나님으로부터 기원하고 또 그 권력에 대해 순종해야 한다는 것은 맞다.

그런데 1980년대, 1990년대 쓰인 책들을 비롯해 이번에 읽은 책도 북미권과 유럽적 민주주의 역사와 상황에서 나왔다. 당시 우리나라처럼 정권이 불의하거나 독재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복종해야 하는가 하는 딜레마가 제시된다. 미국이나 유럽 같은 경우, 불순종이나 항거가 대체로 정권의 잘못된 정책이나 통치행위에 대한 항의나 시민불복종 정도로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당시 우리나라 상황 같이 정권의 문제가 쿠데타나 선거 부정에 의한 것이라면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선거 부정이라 함은 투·개표만의 부정을 의미하지 않는다. 권력과 언론을 불법적으로 사용하거나 심각하게 편향적으로 사용한 것도 의미한다). 정권으로서 정통성이 결여되어 있거나 그 출발 자체에 정통성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한 정권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정권인지 고민하는 것이 정상이다. 특히 지금 대통령 파면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너무 큰 문제라 가려져 있지만 박 정권의 출발점인 대선부터 이미 심각하고도 본질적인 문제가 있었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런 정권에도 복종해야 할지, 우리는 문제 제기를 해야만 한다.

다시 말하지만 당시 책들을 읽어서 다양한 원칙과 길을 찾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 책들은 대부분 미국과 유럽의 역사와 정치 상황을 바탕으로 쓰였던 것이었다. 미국이나 캐나다, 유럽 등은 여러 격변을 겪으며 상당한 시간에 민주주의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발전하여 정치적 토대가 상당한 안정성을 지니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나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들처럼 민주주의 역사가 짧고 정치적 격변에 있어서 안정성을 갖지 못한 경우에는 동일 선상에서 그 저자들이 말하는 기독교적 정치관을 일반화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다. 즉 그들이 말하는 논리가 성경적 타당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일반론이지 당시 1980년대 대한민국 군부 정권 같은 특수 상황에 그대로 적용하고 실천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는 말이다.

그런 측면을 볼 때 로마서 13장은 그러한 정권에도 복종해야 한다고 말씀하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만일 복종한다면 어디까지인가 하는 것이다. 그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찾으려 적지 않은 자료와 책을 읽었다. 당시에는, 개인적 성경 묵상을 통해(이에 대한 이야기는 또 다른 긴 이야기가 될 듯싶어 생략한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권력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뜻에 불순종한다면 이미 그 정당성을 상실했고 순종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정권의 정통성 문제와 정부의 기능 문제는 어느 정도 구분할 필요가 있고, 그것은 복종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는 결론을 내렸다.

당시 상황과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로마서 13장에 대한 현재 우리 고민은 별반 다르지 않을 수 있다. 정통성을 스스로 깨뜨린 현 정권. 논란은 있지만 선거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는 정권의 본질에 대한 흔들림이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그 점에서 이 책은 유익하지만 한계는 지니고 있다.

3.

앞서 이야기한 우리나라의 한계성을 전제로 본다면, 존 레데콥의 <기독교 정치학>은 로마서 13장을 기반으로 국가와 교회의 관계는 어떠해야 할지, 또 어떻게 정치에 관여하고 도와야 할지 이야기한다. 특히 교회와 정치에 대한 성경적·신학적 근거를 설명하고 그 역사적 토대를 이야기한다. 루터와 칼뱅과 아나뱁티스트의 주장를 제시한 뒤 문제를 제기하고(이 부분에서 저자는 자신이 속한 교파에 대한 편향적 태도에 기반해 평가한다. 루터나 칼뱅에게 후한 점수를 주지 않는 듯하다) 그것을 토대로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보여 준다. 기독교인으로 현실 정치에서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할 수 있는 주장을 각기 돌아보고 설명하는 것은 이 책의 장점이다.

그런 정리된 입장을 통해 현실 정치에서 교회나 교인이 어떤 방법으로 정치 문제를 접근하고 풀어 가야 할지를 돌아본다는 점에서 이 책은 중요한 인사이트를 주고 방법론을 제시한다. 지금의 혼란스러운 정국과 곧 다가올 대선에서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이를 접근해야 할지 일반론 차원에서 지침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또 이후의 정치를 바라보는 태도와 행동에 대해서도, 이 책을 곁에 두고 적용해 나갈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부분 하나는 시민 불복종에 대한 것이다. 저자는 이 책 후반에 시민 불복종이라는 이슈를 따로 다루면서 정권이 문제를 일으킬 때 어떤 태도로 행동해야 할지 이야기한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 양쪽 입장을 살펴보면서 문제될 부분과 이슈들을 세밀하게 다루고 있다. 하지만 한국적 상황에서 이 책은 일반론적 상황에서 머문다. 지금 우리나라 같은 정국에서는 한계성을 가지는 것도 사실이다. 정상적인 시민 불복종으로는 대처가 힘든 상황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한계성은 저자 자신의 문제라기보다는 우리나라 같은 정치 역사와 상황을 지닌 나라가 갖고 있는 특수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미국, 캐나다, 유럽 등은 여러 격변을 겪으며 민주주의를 이루었고 정치적 토대가 상당한 안정성을 지녔다. 우리나라처럼 민주주의 역사가 짧고 정치적 격변에 대한 안정성을 갖지 못한 곳에서는 저자가 말하는 기독교적 정치관을 일반화하기는 쉽지 않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시민 불복종은 민주주의 토대가 세워진 나라에서라면 잘 적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나라에서는 평화적인 시민 불복종이 아니라 실제적인 항거로 나타나야 문제를 끝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지금 대통령 탄핵, 파면, 구속까지 이르게 된 것은 촛불 집회라는 국민의 힘 때문이기도 하지만, 4년 동안 실제적으로는 국가 기능이 마비되고 통제·제어하는 힘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데서 온 불행한 결과다. 시민 불복종 자체가 쉽게 일어날 수 없었던 관계로, 그러한 힘이 국민에게서 일어나지 않은 게 아닌가 한다. 최근 일어난 촛불 집회는 과거 '광우병' 때의 촛불 집회와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 후 있었던 애도 집회, 세월호 관련 집회 등 밑바탕에서부터 기인한 것이다. 이는 시민 불복종운동이 아니라 사실상 시민 무혈혁명과 같았다. 이를 이룰 수 있었던 주변 환경도 중요했다(촛불 집회에 대한 평가와 분석은 또 다른 주제로, 심도 있게 다뤄져야 한다).

미국에서도 인권 투쟁 등 민주주의 투쟁이 없지는 않았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흑인 인권 투쟁은 강력한 시민 불복종운동이나 정권의 문제와 거리가 있었다. 2015년 아카데미상에서 주제가상을 받은 에바 두버네이 감독의 영화 '셀마'는 마틴 루터 킹의 흑인 투표권을 쟁취하려는 유명한 '셀마 행진'을 다루었다. 그런데 이 영화가 겨우 주제가상을 받은 것 자체가 미국 내 아직 남아 있는 인종차별의 흔적을 보여 준다.

이 책은 단지 실천론적 측면이나 정치를 바로 보는 인식적인 측면만 다루지 않는다. 저자는 정권을 위한 기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 문제도 마지막에 다루었다. 이는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다. 일부 기독교인과 교회가 잘못된 정권을 지나치게 맹종하며 감싸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또 일부 기독교인과 교회는 정권 자체를 부정하면서 정권을 적으로 돌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리는 항거하고 저항해야 하지만 로마서 12장 마지막에 나오듯 선으로 악을 갚을 수 있어야 한다. '눈에는 눈'이 아니라 잘못된 이들에 대한 긍휼을 가지고 회복을 고대하며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그들의 죄악을 간과하거나 경홀히 여기라는 말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 대한 아쉬움이 있는데, 저자보다는 이 책을 번역·출간한 출판사에 대한 것이다. 좋은 책이나 인기가 있을 것 같지 않은 책을 용기 내어 출판해 준 것은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기독교 정치학'보다 원제인 'Politics under God'이 이 책 주제와 신학적 토대를 잘 보여 주고 있는데, 원제가 아닌 일반적이고 가치중립적 제목을 선택한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독자 입장에서도 '기독교 정치학'이라는 제목은 신학교 교재 같은 느낌을 준다). 원제가 훨씬 더 매력적이다.

정치권력과 하나님의 관계를 잘 설명하는 원제를 두고 '기독교 정치학'이라 쓴 것은, 교회와 권력을 동등화하는 느낌을 준다. 많은 그리스도인을 오해하게 만들어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을 동등시하거나 이원론적으로 인식하게 할 수 있다. 로마서 13장에 따르면, 가이사도 하나님이 부여하신 권력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원제가 명확히 보여 주고 있는데 말이다.

P.S. 이 책에서 저자가 로마서 13장을 다루면서 12장과의 연계성을 이야기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인내하며 싸워 나가고 마지막 날 주 오심을 감수하며 상대방의 악마성을 견뎌야 하지만, 이 세상에서 좀 더 버틸 수 있는 것은 책임 때문이다. 정권에 공의를 행하고 기본적인 국민의 삶을 돌봐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가 존재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리스도인에게도 복이 된다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글은 <크리스찬북뉴스>에도 실렸습니다.
문양호 /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함께만들어가는교회 담임목사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