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여러 결혼식에 참석했다. 두 사람이 부부가 되는 날이니 마음껏 축하해 준다. 그러나 결혼 예식이 끝나면 늘 아쉬운 게 있다. 바로 천편일률적인 결혼식 문화. 예식장의 빠듯한 스케줄 때문에 결혼식은 보통 짧으면 30분 만에 끝난다. 신부·신랑의 사랑 이야기가 빠진 예식도 있으며, 기독교 예식이라면 익숙한 찬양 레퍼토리와 주례 설교가 등장한다.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 패키지'는 이제 자연스러운 상품이 되었다. 다르게 하고 싶어도 스드메 패키지 말고는 정보 자체가 별로 없다. 발품을 팔아서 알아보면, 결국 일반적인 결혼식을 올리는 게 가장 편하고 저렴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시간에 쫓겨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 식으로 결혼하고 싶은 사람은 없겠지만 그게 현실이다.

그래도 새로운 방식으로 결혼하는 사람은 있다. 형식을 걷어 내고 신부와 신랑, 지인들 모두에게 의미가 있는 결혼식. <뉴스앤조이>는 새로운 방식으로 결혼식을 올린 사람들을 발굴해 결혼 준비기를 들어 보기로 했다. <66100> 김지양 편집장에 이어 두 번째 커플을 만났다. - 편집자 주

[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결혼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 스드메는 과감히 선택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사람들이 관습처럼 하는 결혼식이 내키지 않았다. 그날의 주인공인 신부·신랑은 각본대로 움직이고 하객들은 들러리가 되는 게 싫었다.

지난해 3월 결혼한 권영은·김영준 부부는 주체적으로 결혼식을 꾸리고 싶었다. 두 사람은 '결혼식 기본 원칙 7가지'를 세우고 순서를 준비했다. 원칙 중 근간이 되는 조항은 '상업화를 거부한다'였다. 돈을 들여야 하객 보기에 '괜찮은' 결혼식이 될 거라는 기존의 생각을 깨고 싶었다.

돈 없이도 의미 있고 즐거운, 아름다운 결혼식을 하고 싶었다. 이름하여 '150만 원 결혼식'. 삐까 뻔쩍한 웨딩홀이 아니더라도, 전문가의 손길로 완성되는 신부 화장, 드레스 없이도 괜찮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 하객들에게 축의금도 받지 않았다. 대신 결혼식 콘셉트를 웨딩 콘서트로 잡고, 하객들에게 티켓값으로 1만 원을 받았다.

남들과는 다른 결혼식을 올린 두 사람을 3월 29일 인천에서 만났다. 권영은·김영준 부부는 1시간 30분 동안 자신들이 왜 이런 결혼식을 준비했는지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결혼식장에서 생긴 에피소드는 무궁무진했다. 두 사람은 "사람들이 셀프 웨딩이 너무 큰 산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결혼식에 녹여 재밌게 준비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결혼 1주년을 맞은 권영은·김영준 부부를 만났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재능 있는 지인 도움받아
축의금 대신 티켓값 1만 원
EDM 울려 퍼진 결혼식

결혼식 장소 / 권영은·김영준 부부는 서울특별시청 서소문별관에서 식을 올렸다. 셀프 웨딩을 준비하면서 가장 품이 많이 들었던 게 장소 물색이었다. 시간을 넉넉하게 사용해야 하니 웨딩홀 대신 공공 기관을 찾아봤다. 여성가족부가 홈페이지에 올려 놓은 공공 기관 대여 리스트를 토대로 찾았다. 서소문별관에 가기 전, 조달청을 가 봤다. 500석이 넘는 규모였지만 웨딩 콘서트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내부가 커 꾸미기도 어려웠고, 음향 시설을 마음껏 쓰기도 힘들었다.

장소를 알아보던 차, 200석 정도가 있는 서소문별관이 두 사람에게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하객들에게 뷔페를 제공하고 싶지 않던 권영은·김영준 부부는 5분 거리에 있는 식당에서 사람들에게 갈비탕을 제공했다. 채식인을 고려해 된장찌개도 준비했다. 외부로 나가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밥맛은 좋았다는 평을 받았다.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 / 스튜디오 촬영은 없었다. 두 사람이 삼각대를 들고 직접 사진을 찍었다. 벽에 가랜드를 걸어 놓거나, 소품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권영은 씨 어머니와 지인들은 일생 한 번 하는 것이니 스튜디오에서 드레스 입고 찍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지만, 권 씨 눈에는 기존의 결혼식은 전혀 예뻐 보이지 않았다. 시중에 나온 웨딩드레스가 결혼식 콘셉트에도 맞지 않았다. 그는 어머니를 설득해 인터넷에서 5만 원짜리 투피스를 샀다.

메이크업과 헤어는 교회 지인의 도움을 받았다. 두 사람 모두 프로는 아니었지만 재능이 있었다. 지인과 두세 차례 만나 메이크업을 시연했고, 의견을 주고받았다. 권 씨 마음에 쏙 들었다. 메이크업과 헤어를 담당한 지인도 "언니 결혼식에 도움이 돼서 참 좋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셀프 웨딩을 준비했다. 권영은 씨가 입장 5분 전 김영준 씨에게 메이크업을 해 주고 있다. 사진 제공 박김형준

청첩장 / 청첩장 앞면에는 두 사람이 직접 찍은 웨딩 사진을 실었다. 남편 김영준 씨는 기타를 어깨에 둘러멨고, 아내 권영은 씨는 스웨그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영영 웨딩 콘서트'라는 타이틀 아래에는 "돈으로도 못가요. 결혼의 나라~ 마음은 부자! 주머니는 빈자! 커플의 깜찍발칙한 결혼식"이라는 문구를 적었다. 권영은 씨는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손 편지를 보냈다.

축의금 / 두 사람은 축의금 자체를 받지 않았으면 했다.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면, 3만 원을 축의금으로 내면서 민망해 하는 경우도 있고, 돈 때문에 아예 가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두 사람은 결혼식에 오는 사람들이 정말 기쁘게 와서 자신들의 출발을 축하해 줬으면 했다. 그러나 부모님 반대에 부딪혔다. 결국 두 사람은 축의금 대신 티켓값 1만 원을 받기로 조율했다.

청첩장에도 "축의금 부담 떨치시고 티켓값 1만 원만 챙기세요. 없음 그냥 오세요. 살림에 정 보탬 주고 싶으면 저희 앨범과 사진 에세이집을 구입해 주세요. 하지만 저희가 정말 받고 싶은 건 진심 어린 축하입니다. 꼭 오셔서 따듯한 사랑으로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 주세요"라고 적었다. 결혼식장에서는 권영은 씨 에세이집, 김영준 씨 앨범을 판매했다.

청첩장 사진은 두 사람이 다른 사람 도움 없이 찍었다. 사진 제공 권영은·김영준

본식 / 예식을 1부와 2부로 나눠 진행했다. 1부에는 신부와 신랑이 자기소개, 양가 부모님의 메시지, 영상 축하 메시지, 축하 공연, 댄스 타임, 전체 포토 타임을 진행했다. 2부는 청춘 남녀들의 결혼 수다를 주제로 토크쇼를 했다. 1부 예식만 2시간 가까이 진행했다.

신부와 신랑은 동시 입장했다. 권영은 씨는 아버지 손을 잡고 들어가는 문화가 이해되지 않았다. '왜 굳이 아버지여야 하는가', '어머니·아버지랑 같이 가는 건 아닌가'란 생각을 하다 그냥 신랑과 함께 들어갔다. 김영준 씨는 입장할 때도 기타를 어깨에 멨다. 두 사람이 입장할 때, 피아노 반주곡은 없었다. 사회자가 하객들과 3분 정도 연습한 뒤, 결혼행진곡 멜로디인 "딴딴딴딴"을 입으로 직접 해 주었다.

권영은·김영준 부부는 하객들에게 직접 자기소개를 했다. 신부 지인은 신랑을, 신랑 지인은 신부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경우가 다반수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뭘 좋아하고, 왜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는지 스토리를 간략하게 설명했다.

두 사람 예식에는 특히 축하 공연이 많았다. 평소 약자들을 위해 노래하는 뮤지션들을 초대했다. 기타 연주를 하는 포크송 스타일부터 EDM 공연까지 있었다. 야마가타 트윅스터가 나와 두 사람을 위한 만든 노래를 불렀다. 통상적인 결혼식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두 사람은 야마가타 트윅스터의 음악이 축제라고 생각해 축가를 부탁했다. 신랑 아버지가 덩실덩실 춤을 췄다. 어르신들에게 낯설 수 있는 분위기였지만 즐거웠다. 새로운 방식의 결혼식 자체가 신선하다는 평이 있었다.

2부에서는 권영은·김영준 부부의 지인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했다. 지인들이 결혼식 온다고 차려입고 오는데, 밥만 먹고 보내는 게 아쉬웠다. 인근 카페에서 결혼식 준비 뒷이야기와 함께, 선남선녀의 즉석 만남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혹시라도 그 자리에서 큐피트의 화살이 오고 가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한 커플도 생기지 않았다.

웨딩 콘서트가 콘셉트였던 결혼식. 야마가타 트윅스터 축가에 맞춰 김영준 씨 아버지가 어깨춤을 추었다. 사진 제공 박김형준

예물·예단·폐백 / 신랑 예복과 구두, 반지만 예물로 준비했다. 폐백은 없었다. 대신 양가 친척들이 서로 티 타임을 가지면서 서로를 소개했다. 두 사람은 부모님을 설득하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결혼 준비하는 지인들 보면, 갈등이 심해 그만두고 싶다고 하는데, 이들은 반대였다. 지금까지 두 사람은 독립적으로, 자기주장을 펼치며 살아 와 부모님과의 조율이 크게 어렵지 않았다고 했다.

색다른 결혼식 준비를 위한 TIP

권영은·김영준 부부는 결혼식을 진행하면서 가장 아쉬운 점으로 '시간 조절'을 꼽았다. 리허설을 하지 않으니 동선이 꼬이고 짜임새가 허술한 부분이 눈에 보였다. 식순이 길어지자 가족들이 "언제 끝나냐"고 묻기도 하고, 중간에 밥을 먹으러 가는 사람도 생겼다.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킨 부모님 지인도 많았지만 조금 더 타이트하게 식순을 짰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있다.

현장에서 미흡한 부분도 있었다. 자리 배치나 식당 안내 등 사람들에게 알려 줘야 하는 게 몇 가지 있었다. 신부와 신랑도 결혼식 입장 전에 정신이 없다 보니 사람들에게 전달이 잘 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옆에서 세심하게 신경써 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재미와 의미를 추구한 권영은·김영준 부부의 결혼식에는 얼마가 들었을까. 두 사람은 애초 결혼식을 준비할 때, 돈 없어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자 했다. △장소 대여비(20만 원) △신부 예복 및 구두(11만 원) △신랑 예복 및 구두 (30만 원) △청첩장(23만 원) △예물(41만 원) △실내 데코(15만 원) △셀프 웨딩 촬영 소품비(1만 원)이 들었다. 본식에서 메이크업·촬영·축가 등 전문적인 역량이 필요한 부분이 있었지만 두 사람의 지인들이 도와줘 비용을 아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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