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작업장 곳곳에 20대 청년 네 명이 흩어져 물건을 정리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종이 박스를 열어 안에 담긴 책들을 꺼냈다. 펭귄 영어 소설 시리즈부터 동화, 초등학생용 전집, 소설 등 종류가 다양하다. 한쪽에서는 한 청년이 중고 전기 제품을 열심히 닦고 있다. 청년의 손이 지나가니 묵은 때가 사라지고 광이 났다. 한 청년은 옷걸이에 옷을 걸고 있었다.

재활용 물품이 꽉 찬 작업장에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옆에서 함께 정리를 돕고 물건에 부착할 라벨을 만드는 김경호 목사(숲교회) 얼굴도 밝다. 김 목사와 함께 일하는 청년들은 모두 발달장애인이다. 이들은 사회적 협동조합 '희망을심는나무'에서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들이다.

김경호 목사(오른쪽에서 세 번째, 숲교회)가 보호 작업장에서 일하는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기부받은 책을 살펴보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청년 발달장애인들의 손을 거친 물건은 보호 작업장 건물 앞쪽에 있는 로드샵 '숲스토리'에서 전시·판매한다. 누군가 재밌게 읽었던 책, 한때는 누군가 예쁘게 쓰고 입었을 모자와 옷, 누군가 타고 길을 누볐을 자전거 등 다양한 물건이 새로운 주인을 기다린다. 재활용 매장이라 가격대는 저렴하다. 물건값은 500원부터 시작하는데 1,000~3,000원 가격표가 붙은 물건이 주를 이뤘다.

발달장애인과 함께한 10년
새로운 일터 교회를 꿈꾸다

숲스토리를 운영하는 김경호 목사. 그는 서울시민교회(권오헌 목사)에서 10년 동안 부목사로 사역했다. 교구, 행정, 교회학교 등을 담당하는 다른 목회자들과 달리 김경호 목사가 맡았던 부서는 장애인부다. 대학에서 신학과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김 목사는 처음부터 장애인 사역자를 꿈꿨다. 밀알복지재단에서 간사로 일하던 그는, 장애인의 삶을 처음부터 끝까지 돌보는 것이 교회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서울시민교회에서의 10년은 행복했다. 그가 하는 모든 일을 믿어 준 권오헌 담임목사, 신앙 안에 헌신된 교인들, 부족하지 않은 재정, 이 세 가지가 하나로 모이자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서울시민교회 장애인 사역은 <뉴스앤조이>가 출간한 <이웃을 섬기는 도시 교회2>에도 실렸다. 도시 교회가 지역에 필요한 사역으로 장애인 사역에 관심을 기울였고, 발달장애인을 위한 주간 보호소, 이들을 고용하는 보호 작업장 등 사역을 확장할 수 있었다.

교회가 발달장애인의 처음과 끝을 함께하면 좋겠다고 말하는 김경호 목사를 만났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김 목사가 장애인 선교에 힘을 쏟아부을수록 작업장 규모는 커졌다. 눈에 띄게 사역이 확장되자 김 목사를 찾는 곳도 늘었다. 장애인 사역을 소개하는 세미나에 강사로 서기를 수차례. 하지만 강의하러 가서 사람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서울시민교회 사례는 서울시민교회였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울시민교회는 여러 조건이 맞물려 장애인 사역에 열매를 맺었어요. 강의하면서도 괜히 위화감만 조성하는 건 아닌지 걱정했죠. 강의 끝난 뒤 개인적으로 물어보시면 관련 자료를 다 챙겨 드리는데, 결국 서울시민교회 같은 조건이 하나라도 맞지 않으면 할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새로운 교회 모델을 꿈꾸기 시작했어요. 누구나 한번 도전해 볼 수 있는 교회 모델을 만들어 수적으로 부흥하는 교회가 아닌, 건강하고 성실한 작은 교회, 장애인들과 함께하는 일터 교회에서 하나님나라를 만들어 가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개척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개척을 결심한 때는 2014년 12월. 권오헌 목사를 찾아 목회를 배우고 싶다고 부탁했다. 목사가 목회를 배운다니, 이해하기 힘든 말이지만 김경호 목사는 진지했다. 그동안 장애인 사역에만 충실했지 목회가 뭔지, 교인과 교회 관계는 어떻게 가야 하는지 잘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2년 동안 교인 400명 모이는 교구와 20대 후반부터 30대 청년들이 모이는 청년부, 발달장애인부를 맡았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빴지만, 교회를 알면 알수록, 목회를 배우면 배울수록 하루빨리 장애인들을 만나 일터 교회를 세우고 싶은 생각이 커졌다. 그가 꿈꾼 것은 오직 한 가지, 장애인·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건강한 일터, 교회로서의 일터, 하나님나라를 누릴 수 있는 일터를 꾸리는 일이었다.

숲스토리 1층에는 옷, 가방, 액세서리, 신발 등이 진열돼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연고 없는 의정부 택하다

숲스토리가 자리 잡은 곳은 경기도 의정부시 용현동. 아무 연고 없는 이곳을 택한 이유는 도시 규모에 비해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교회를 개척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서울 지역은 제외했어요. 서울에는 이미 발달장애인을 위한 곳이 많았고 어떻게 보면 포화 상태였거든요. 서울 주위 도시를 둘러 보며 리서치를 시작했는데 의정부가 진짜 열악해요. 경기 북부(의정부·양주·포천·동두천)에 사는 장애인들이 여기로 모이는데요. 각 도시마다 교통망, 네트워크 등 도시 인프라가 너무 열악하더라고요.

다른 도시에 비해 성인 발달장애인이 많은 편이에요. 주거 환경이 좋으니 의정부로 많이 오거든요. 20~60대 발달장애인 1,000여 명이 살고 있다는 공식 통계가 있어요. 앞으로 매년 20~30명은 특수학교를 졸업하고요. 그렇게 많은데 의정부에는 이들을 위한 시설이 너무 적어요. 막 만들어진 복지관 한 곳, 특수학교 한 곳, 정원 15명인 주간 보호소 두 곳, 30명 고용하는 보호 작업장 한 곳. 의정부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꼭 필요한 곳이었어요."

발달장애인을 위한 여러 종류의 시설 중 가장 먼저 보호 작업장을 택해 준비하고 있다. 보호 작업장은 장애인 근로 사업장보다는 작은 규모다. 의정부시 관련 부서에 문의했더니 보호 작업장을 만들어 주면 좋을 것 같다고 해 실행에 옮겼다. 발달 장애인 사역이라는 확실한 분야가 있고, 이 사역을 필요로 하는 지역을 찾았고, 더 구체적으로 어떤 시설이 필요한지 지자체와 협의해 결정한 것이다.

2층은 각종 책과 장난감, 잡화가 진열돼 있다. 이곳은 주일이면 교회로 변신한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김경호 목사는 지역의 필요를 보는 것이 교회 개척 준비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고 했다. 과거 장애인 사역에 관심을 두고 그에게 조언을 구했던 대형 교회들은 그냥 '발달장애인 사역'이 하고 싶은 경우가 많았다. 3~4년 후, 지역의 필요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사역을 먼저 시작한 교회를 찾아가 보면 여지없이 명맥만 유지되고 있었다.

같이 잘 살기 위해
'사회적 협동조합' 설립

김경호 목사는 '직업 재활' 분야를 공부했다. 석사과정은 마쳤고 현재 박사과정 휴학 중이다. 그는 발달 장애인과 함께 갈 수 있는 직업이 무엇인지 늘 고민했다. 직업이라는 것은 장애인에게도 비장애인에게도 삶과 직결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직업으로 한 사람의 사회적 지위가 결정된다. 직업은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도구며, 경제적인 필요를 채워 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비장애인에게도 중요했다.

"서울시민교회에서 발달장애인 사역을 한다고 하니, 보호 작업장을 어떻게 운영하는지 장애인들에게 무슨 일을 하게 하는지 많이들 물어보시는데요. 그걸 아는 게 이 사역의 핵심입니다. 발달장애인과 함께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그들이 어떤 일을 잘할 수 있는지 10년 동안 늘 고민해 왔어요. 그래서 그것을 안 물어보시는 게 에티켓이었죠.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똑같은 업종의 작업장을 시작하면 우리 작업장에 분명히 타격이 있고, 고용자들 임금을 어떻게 줘요.

그래서 그런 고민하지 않고 우리가 가진 노하우를 마음껏 나눌 수 있는 일을 하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예전부터 주목한 게 아름다운가게와 굿윌스토어인데요. 굿윌스토어는 미국에서 100여 년 전에 시작한 재활용품 판매 매장이에요. 굿윌스토어는 한국에 오면서 장애인을 고용하는 형태로 변화했는데 여기서 힌트를 얻었어요. 서울 아닌 지역에서는 확장성과 비전이 있다고 생각해 아예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설립 인가를 받았습니다."

사회적 협동조합을 준비하는 데 1년이 걸렸다. 출자금은 주위 존경하는 선배 목사들에게 부탁하고 김 목사가 보탰다. 일반 협동조합이 아닌 지역과 사회에 책임을 다해야 하는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택한 이유는 조합원을 위해서만 이윤을 내는 단체로 있고 싶지 않아서다.

김경호 목사의 아내 배양희 씨(왼쪽)와 파트 타임으로 일을 돕는 1명 외에 숲스토리가 고용한 발달장애인은 5명이다.  조만간 5명을 더 고용할 예정이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협동조합과 교회 정치 원리는 같다고 봅니다. 조합원 1명이 1표를 행사할 수 있는 구조인데요. 지금 한국교회가 사회에서 욕먹는 이유는 그 교회에 속한 교인들만 좋은 일을 하니까 그런 것 아닐까 생각해요. 사회적 협동조합은 조합원만 이익을 보는 시스템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함께 가야한다는 게 법적으로 의무화돼 있어요. 사회적 책임을 부여한 협동조합이기 때문에 중앙 부처가 관리하죠. 심사도 까다롭고 엄격합니다."

보통 사회적 협동조합은 수익의 10%를 고용 안정을 위한 지정 적립금으로 사용한다. 숲스토리는 여기에 더해 20%를 적립하는 '임의 적립금' 제도를 조합 내규에 넣었다. 숲스토리를 보고 발달 장애인 사역에 열정 있는 사역자, 평신도가 제2·제3의 숲스토리를 만들고 싶어 하면 일정 금액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개척할 때 김경호 목사의 계획을 믿고 지원해 준 서울시민교회 당회와 교인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다른 일터 교회 지원을 꿈꾼다.

모두 하나 되는 '숲' 교회

숲스토리 2층 매장은 주일이면 '숲교회'로 변신한다. 김경호 목사 가족 외 출석 교인은 두 명. 이 두 명은 서울시민교회서 함께하던 청년들이다. 청년들은 매장 공사도 함께하고 숲스토리와 숲교회 CI도 만들어 준 '브레인' 같은 존재다.

숲교회에는 목회자 사례비 규정이 없다. 개척 교회가 교인 100명이 될 때까지 힘든 것은 결국 헌금을 목회자 사례로 써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헌금은 무기명으로 하고, 십일조·감사 헌금 등 이름을 정한 헌금도 없다. 헌금한다고 기부금 영수증을 발행하지도 않는다. 김경호 목사는 단호한 어조로 이 부분을 설명했다.

"돈이 갖고 있는 한계 때문에 교회가 교인들을 계급·직분화해요. 때로는 헌금 때문에 교회 안에 아픔이 있고 자유함이 없죠. 그걸 탈피하고 싶었어요. 많이 내든 적게 내든, 하나님과 교회를 사랑하고 직분을 감당할 수 있는 환경이 되는 사람이면 충분히 헌신할 수 있는 교회. 그것을 가로막는 게 헌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십일조를 안 할 수도 있고 더 할 수도 있는 교회. 헌금이 우리 신앙의 정도를 결정하는 게 아니니까요. 그릇된 전통이 들어올 수 있는 틈을 미리 방지할 수 있어 좋은 것 같아요."

숲스토리와 숲교회 CI. 자세히 보면 'ㅅ'과 'ㅛ'의 깊이가 다르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교회 설립 예배는 2월 22일에, 숲스토리 개장은 2월 23일에 했다. 이제 막 한 달을 넘겼다. 다행히 처음 세운 목표를 순탄하게 달성하고 있다. 현재 고용한 발달장애인은 5명, 곧 5명을 더 고용할 예정이다. 이대로만 가면 올해 안에 장애인 10명, 비장애인 3명을 고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

이야기를 마치며 교회 이름을 '숲'으로 지은 이유를 물었다. 그는 기자에게 '숲교회' CI를 보여 주며 이상한 부분을 찾아보라고 했다. 한참을 봐도 이상한 부분을 찾지 못할 무렵 김경호 목사가 말했다.

"글자 ㅅ의 양 끝 길이가 다르고 ㅛ의 높이가 달라요. 달라도 눈에 띄지 않죠. 고린도전서 12장에 몸을 고르게 함으로 모든 형제가 아플 때 함께 울고, 영광 가운에 있을 때 함께 즐거워하라는 말씀이 있는데요. 교회의 역할이 이 몸인 것 같아요. 가난하거나 부유한 사람, 장애인과 비장애인 등 다양한 사람이 모이는데 교회에 들어오면 다 똑같은 지체가 되는 거죠.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 들어오면 각 지체가 연결돼 하나로 이어지는 숲이 되고 싶은 마음에 숲교회라고 지었어요."

리사이클 전문 매장 '숲스토리'에서 물건을 기부받습니다. 책, 옷, 액세서리, 신발, 가방, 장난감, 소형 전자 제품 등 다양한 품목을 취급합니다. 기업체 단위의 물품 기부도 환영합니다. 기부하신 물건은 세제 혜택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직접 매장 방문(경기도 의정부시 용민로 98)도 가능하고 세 박스 이상이면 숲스토리에서 수거하러 갑니다. 발달장애인을 고용하고 지역사회를 섬기는 숲스토리에 물건 기부하실 분들은 숲스토리(031-823-4245)로 연락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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