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 균형 있게 이해하기> / 박재은 지음 / 부흥과개혁사 펴냄 / 1만 1,000원

칭의와 성화는 여전히 한국 개신교 신학의 중심 자리에서 버티고 있다. 이 둘은 시소를 타는 듯해서, 어느 한쪽을 강조하면 어느 한쪽이 약화되는 불가피한 관계가 반복되고 있다. 이 둘의 관계는 실제로 교회와 성도의 질적 문제와 직결된다. 사실 현재 한국교회는 성장 중심주의에 의해 칭의를 강조하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그로 인해 성화 문제가 끊임없이 대두되고 있지만, 성장주의의 탐욕은 아직까지 성화에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게 만드는 듯하다.

인본주의

현재 개신교회 신학은 인본주의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민감하다는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가 신경 쓰인다. 불가피한 문제를 스스로 양산하고, 인본주의를 정확하게 알고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만 인본주의적 냄새가 난다고 여겨지면 무조건 배격하려는 태도 때문이다. 이러한 태도로는 절대 인본주의에 대하여 바르게 대처할 수 없다. 자기 신학에 빠져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스스로 자화자찬과 고립의 길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필자가 신학 공부를 할 때 귀에 못 딱지가 생길 정도로 들었던 말이 바로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이었다. 즉 '신(神)본주의'를 말하는 것이다. 신(神)본주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가져야 할 당연한 태도와 관점이다. 그러나 이 관점이 원시적 이분법으로 작용한다면 참된 신본주의가 아니라 극단적 초월주의로 변질된다.

본서 저자도 성화가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역할'의 관계 속에서 여러 문제점이 양산되고 있음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본서를 집필한 듯하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 것에 불과한 것 같다.

본서 전개 방식

신학적 문제를 전개하는 입장에서 자신의 견해를 견지해 나가는 일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본서 접근 방식에서 성화에 대한 정직한 인간의 자유의지와 책임을 다루지 않고, 로마가톨릭의 재량 공로와 적정 공로만을 다룬다. 칼뱅이 아니라 루터의 성화의 최종점을 다루고, 하이퍼-칼뱅주의가 아니라 콜브뤼게의 반(反)율법주의적 성화론을 다룬다. 별 차이 없는 오벌린의 완전주의와 케이직의 성화론을 존 머레이의 결정적 성화 개념과 어설프게 대조시키고, 결정적으로 헤르만 바빙크의 복음적 성화와 수동적 성화가 마치 대안인 것처럼 마무리한다.

이는 결국 우리 안에 있는 문제점은 숨겨 두고 결정론적 성화론을 주장하려는 것으로, 조금 조잡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것은 결국 본서의 결론이 문제 제기 이전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구체적 설명과 대안보다는 '성화는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인간의 책임과 역할이 함께 있어야 한다'는 원론만 반복할 뿐이다.

인간의 주권

본서의 저자는 인간 공로주의를 매우 의식하는 듯하다. 그래서 인간의 역할과 책임을 수용하고는 있지만, 그 인간의 역할과 책임 부분을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용어로 두루뭉술하게 넘어간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이 그리스도와 연합할 때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인격과 독립성을 무시하고 인간에게 침투하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이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인가. 결국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면서 인간의 주권을 거세하는 방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사실 이 부분은 종교개혁 당시 로마가톨릭과 개혁주의자들 간에 인간의 자유의지와 전적 타락의 부분에서 중요한 쟁점이었음은 분명하다. 인간의 타락과 절대적 하나님의 은혜의 필요성은 중요한 성경적 내용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 어느 곳에서도 인간이 하나님의 조종을 받고 있는 로봇이나 아바타로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자신의 대상적 관계로서 언약적으로 접근하신다.

인간의 독립된 인격과 주권을 인정한다고 하여 반(反)성경적이 된다거나,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는 인본주의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숙지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자의식'이라는 것이 앞으로 인공지능의 출현과 함께 얼마나 중요한 신학적 주제가 될 것인가를 염두에 둘 때, 아직까지 인간의 주권 강조를 하나님의 주권 침해로 바라보는 관점은 수정될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인간의 주권 또한 창조신학적 관점으로 보았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인간의 주권은 두려워해야 할 신학적 대상이 아님을 밝혀 두고 싶다.

*이 글은 <크리스찬북뉴스>에도 실렸습니다.
강도헌 / <크리스찬북뉴스> 운영자, 제자삼는교회 담임목사, 프쉬케치유상담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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