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기자가 '신천지'라는 말을 꺼내자, A는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는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을 하나씩 보여 줬다. 신천지 신자들의 포교 활동부터 일반 교회에 수십 명이 몰려가 시위하는 모습 등 수십 장이 담겨 있었다. '프로'의 냄새가 났다.

수십 년간 신앙생활을 해 온 A는 원래 신천지에 관심이 전혀 없었다. 언론에 나오는 신천지 피해자를 보면 '신천지는 나쁜 불건전한 단체다. 가족들이 참 불쌍하다'고만 생각했다. 정작 자신이 신천지 피해 가족이 될 거라는 생각은 해 본 적 없다. 딸이 1년 전 신천지 교인이라고 말하기 전까지.

A는 현재 딸과 같이 살지 않는다. 딸이 가족과의 갈등을 견디지 못하고 가출했기 때문이다. 지금 딸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그저 잘 지내고 있겠거니 믿고만 있다. 차분히 대화를 하던 A는 '가출'이라는 말에 한동안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생각만 하면 마음이 미어진다고 했다.

인터뷰 내내 그는 "딸이 지금 신천지에서 나왔다면, 모든 것을 이야기할 텐데 아직 딸이 거기 있어서 다 말하지 못하는 점을 양해해 달라"고 했다. <뉴스앤조이>는 3월 28일, A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A는 신천지에 빠져 가출한 딸의 이야기를 하다가 눈물을 보였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 딸이 신천지에 빠졌다는 걸 어떻게 알게 됐나.

딸이 신천지에 간 지 한 3년 정도 된 거 같다. 어떻게 신천지에 빠지게 됐는지 모른다. 그건 말해 주지 않았다. 성경에 대한 궁금증이 많던 딸아이가 여러 집회를 다녔는데, 거기서 신천지를 만나지 않았을까 추측할 뿐이다. 당시 딸은 매일 이른 아침에 나가 자정이 다 되어 돌아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매일 모임과 포교 활동에 참여했던 거 같다. 귀가가 늦으니 걱정은 했지만, 신천지에 간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아이는 집만 오면 방문을 잠그고 새벽 2시가 넘도록 잠들지 않았다. 얼굴 상한 게 눈에 보일 정도로 잠을 안 잤다. 뭐하고 돌아다니는 거냐고 물어도 거짓말로 상황을 회피하며 가족과의 대화를 피하려고만 했다.

- 이야기를 들었을 때 충격이 컸을 텐데.

청천벽력이었다. 이런 문제가 나에게 닥칠 거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이에게 온갖 말을 다 퍼부었다. "거기 비이성적이고 사회적으로 문제가 많은데 미친 거 아니냐", "너희들이 진리라고 외치면 진리가 되냐", "수많은 이단 교주들이 다 그렇게 말해 왔었다", "사람들이 이단이라고 말하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으니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자"고 사정했다.

그러나 딸아이는 이미 신천지 세뇌가 끝난 상태였다. 교리 이야기를 꺼내면 "성경에 이렇게 나와 있잖아"라고 응수했다. 어떤 이야기를 꺼내도 신천지에서 배운 대로만 대답할 뿐 우리 이야기를 전혀 들으려 하지 않았다. 우리 딸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낯설었다.

- 딸은 가족들에게 신천지가 어떻다고 평가했나.

크게 두 가지를 말했다. 신천지는 청렴하고 부조리가 없다고 말했다. 특히 이만희가 매우 검소하다고 했다. 지금도 낡은 차를 타고, 집도 없이 전세로 산다면서 이런 점이 기존 개신교와는 다르다고 했다.

또 하나는 말씀이 너무 좋다고 했다. 아이가 성경에 대한 궁금증이 많았는데, 모두 알려 줬다고 했다. 신천지만 구원이 있다고 했다. "거기 있으면 좋냐"고 물으면, 딸은 "행복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얼굴에는 평안함이 없어 보였다. 가족의 애타는 감정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 신천지에서 탈퇴한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 보면, 이단 상담소 도움을 받았다고 말한다. 데려간 적은 없는가. 

나도 상담소를 몇 번 데려가려 했지만, 딸아이 거부감이 너무 심해 한 번도 못 갔다. 신천지는 아이들에게 "상담소 가면 영이 죽고 가족 전부가 구원받지 못한다"고 세뇌 교육을 시키는 것 같더라. 신천지에서 제작한 영상을 봤는데 너무 자극적이라 거부감이 생겼다. (신천지) 영상은 정말 오해다. 어느 부모가 자식을 파국으로 몰아넣겠는가. 사실과 다름을 이야기해도 딸아이는 믿지 않았고, 영상에서 본 내용만 반복해서 말했다. 사람의 이성과 상식을 마비시키는 세뇌의 무서움을 느꼈다.

- 딸이 신천지에 빠지면서 가장 달라진 점이 무엇인가.

우리가 알던 인정 많고 사랑스러운 아이의 모습이 사라진 느낌이 들었다. 딸아이는 집에 오면 자기의 하루 일과를 하나씩 이야기할 정도로 다정했다. 우리 부부는 아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호응해 주고 대화를 많이 나눴다. 그런데 신천지에 간 뒤로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 방문을 잠그고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딸은 부모와 스스럼없이 대화하는 인정 많고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A는 신천지에 빠지기 전의 딸이 그립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합니다) 

- 딸은 어떻게 가출하게 됐나.

아이가 가출할 무렵 가족 간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다. 그 과정에서 아이와 감정적으로 뒤틀려 버렸다. 집에 늦게 들어오는 아이와 소통이 잘 안 됐다. 내가 좀 더 참고, 더 따뜻하게 대해 줘야 했는데 그때는 그게 안 됐다. 결국 예상대로 아이가 집을 나갔다.

딸이 너무 보고 싶다. 그때 생각만 하면 마음이 미어진다. 딸이 신천지에 빠졌지만 집에 있을 때와 없을 때는 또 다르더라. 있을 때는 얼굴 보고 대화라도 할 수 있지만, 가출하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연락해도 받지 않는다. 이건 경험해 본 사람만 알 수 있다.

어떤 경험자는 3년이면 단체 허점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고 하는데 5년, 10년 지나도 단체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도 있으니 불안해진다. 기약 없이 기다리는데 막막할 뿐이다. 가족 관계를 차단하고 통제하는 게 정상적인 단체냐고 신천지에 묻고 싶다.

- 지금 가족 관계는 어떤가.

딸이 가출하고 가족 간 대화가 없어졌다.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고, 서로 예민해져 있다. 딸이 꼭 예전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 딸을 생각하면서 주로 어떤 기도를 하나.

하나님의 때가 오기를 기도한다. 지금 우리 아이는 신천지에 푹 빠진 상태라서, 옆에서 아무리 이야기해 줘도 모른다. 조금만 공부해 보면, 신천지 교리나 문화가 이상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나 세뇌된 상태라 객관적으로 못 본다. 하나님이 하루빨리 딸의 눈과 귀를 열어 주시기를 기도한다.

신천지에서 장시간 세뇌 교육을 받은 딸아이가 부작용으로 건강한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우려도 된다. 그래도 사랑의 하나님이 가장 선한 것으로 주시리라 굳게 믿는다.

- 출석하는 교회에는 이야기했나.

초창기에는 못 했다. 내가 제대로 교육하지 못해 딸이 신천지에 빠진 것 같아 너무 부끄러웠다. 또 딸이 좋지 않은 이미지로 남을까 걱정되기도 해서 몇몇 사람에게만 이야기했다. 따로 이단에 대해 공부해 보니까 목사라고 다 도움을 주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세뇌된 상태라 성급히 교리 이야기를 꺼내는 건 도움이 안 된다.

- 목사라고 다 도와줄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교회가 이단 문제에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것 같다. 교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두 가지를 당부하고 싶다. 교회 입구에 '신천지 OUT'이라고 쓰인 스티커를 붙이지만, 막상 신천지가 침입하면 대처하기 어렵다. 일단 내가 다니는 교회는 이단 예방 교육이 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 분명 교육하는 교회도 있겠지만 예방 교육이 필요하다. 우리 아이 경우만 보면, 교회에서 이단과 정통 개신교와의 교리 차이점을 알려 줬으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또 성경 교리와 핵심 말씀을 제대로 알려 주면 좋겠다. 예상 외로 성경을 잘 알고 싶어 하는 교인이 많다. 그런데 교회가 이 부분이 약한 것 같다. 이단 문제를 개인에게만 맡기지 않고, 교회와 교단이 힘을 모아 해결해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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