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앞당겨진 19대 대통령 선거 후보를 뽑기 위해 각 당마다 본격적인 경선 레이스에 돌입했다. 대선을 앞두고 공약을 내놓지만, 사회적 소수자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 제정은 여전히 요원하다. 오히려 주요 후보들은 보수 개신교 단체를 방문한 자리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은 생각하고 있지 않다며, 목사들을 안심시키는 태도를 취했다.

성소수자 인권 단체 27곳이 주요 대선 후보 면담을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3월 28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열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성소수자 인권 관련 단체 27곳이 3월 28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 모였다. 성소수자 인권을 논하려면 혐오 세력이 아니라 성소수자 당사자를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달라고 주문하기 위해서다. 참석자들은 성소수자 차별에 반대한다고 밝힌 문재인, 안희정, 이재명, 심상정 후보에게 면담을 요청하고, 19대 대선 성소수자 인권 요구안을 발표했다.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에서 활동하는 심기용 의장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더 이상 미루지 말라고 했다. 그는 "아르바이트하던 카페에서 레즈비언이라는 이유로 해고되고, 기독교 학교라는 이유로 성소수자 여성주의 동아리 활동을 막는다.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 차별은 실재하며, 이들의 존재는 위협받는다. 차별을 해소하는 시급한 문제에 '사회적 합의' 운운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장서연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는 이전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대한민국, 약자를 위하고 일체 차별이 없는 대한민국에 성소수자 시민의 자리가 있는지 물었다. 그는 "동성 커플이 결혼을 꿈꾸는 이유는 이성 커플과 같다. 동성 커플의 삶에 결혼이 미치는 영향이 매우 중요하다. 정신, 신체적으로 건강해지고 삶에 긍정적인 효과를 낳는다. 한국에 동거하고 있는 성소수자들이 많은데 이들에게 파트너와의 결혼 관계가 굉장히 중요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라며 동성 결혼 법제화를 요청했다.

성소수자들의 존재를 배제한 성평등 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잇을 활동가(언니네트워크)는 지난해 강남역 살인 사건을 겪은 한국 사회에, 혐오 범죄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한국 사회는 성소수자를 투명인간 취급하며 그들이 겪는 불평등에 눈감아 왔다. 아예 존재를 부정하고 있다. 19대 대선 후보들은 성소수자 인권 요구안을 경청하고 우리를 직접 만나서 질문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기자회견문을 낭독한 뒤 더불어민주당과 각 후보의 캠프 본부를 방문해 면담 요청서를 전달했다.

다음은 기자회견문 전문.

우리와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대선 후보들은 응답하십시오!

박근혜 탄핵 이후 따뜻한 봄을 기다리는 국민들의 열망이 어느 때보다 높아져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 성소수자들은 인권의 우선순위를 따지고 쉽게 내뱉은 대선 후보들의 말 때문에 희망을 꿈꿀 수 없게 되었다. 상처를 치유받기는커녕 한 겨울 매서운 추위를 여전히 견뎌내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들은 늘 없는 존재처럼 취급받아 왔다. 학교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자신의 존재를 숨겨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현실을 매일같이 경험하고 있다. 인권의 후순위에서 발버둥쳐 왔고, 절망하지 않기 위해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고 있다. 괴롭힘과 혐오 표현의 피해를 고스란히 받고 있으면서도 그 아픔을 표현하는 것보다 고통을 숨기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다. 그것이 오늘을 사는 성소수자들의 일상이다. 하지만 대선후보들은 성소수자의 삶을 애써 외면하며, 표 계산에 도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차별금지법마저 애물단지 취급하고 있다. 적폐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보수 교계 혐오 세력 앞에서는 성소수자를 이등 시민으로 전락시키고 걱정하지 말라는 말로 안심시키기 바빴지만 성소수자는 단 한 번도 만나주지 않았다. 그것은 곧 성소수자들이 경험하는 일상의 차별을 개인의 문제로 남기고 국가가 책임져야 할 역할을 방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오늘 우리 성소수자들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국가 차원의 성소수자 인권 정책 기본 계획 수립, 동성 결혼 법제화, 생활 동반자 관계에 관한 법률 제정, 다양한 성적 지향‧성별 정체성을 존중하는 교과과정 마련, 군형법 제92조의 6 폐지, 성전환자성별변경특별법 제정, 성소수자의 집회, 결사의자유‧표현의자유 보장, 비과학적 전환 치료에 대한 엄격한 금지, 혐오 폭력 및 증오 범죄 예방을 위한 정책 수립 등 성소수자 평등권 실현을 위한 10대 정책 과제는 차별에 반대한다고 말한 차기 대통령이 반드시 실현해야 할 과제들이고, 숨 막히는 현실을 바꾸고 인권의 불씨를 살릴 수 있는 최소의 제안들이다. 10대 요구안 무엇 하나 제외시킬 수 없다. '인권'은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가치와 철학이 되어야 한다. 사회 구성원들의 다양한 요구를 사회적 합의 뒤에 숨어 무시하고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결단과 용기 속에서 결정해야 하는 책임이 정치인에게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하길 바란다.

우리는 잘못된 정보와 혐오를 퍼트리는 찌라시 언론을 통해 대선 후보들의 입장을 전해 듣는 것이 아니라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각 후보자들의 생각과 입장을 직접 듣고자 한다. 성소수자를 만나지 않고, 차별금지법 제정여부를 운운할 수 없다. 성소수자를 만나지 않고 동성애 찬반에 대해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성소수자들의 삶을 찬반이라는 가치의 잣대에 올려놓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성소수자들이 경험하는 차별이 무엇인지 귀 기울이는 것이 차기 대통령에게 반드시 필요한 태도일 것이다. 적어도 문재인, 안희정, 이재명, 심상정 대선후보는 '성소수자 차별과 혐오에 반대한다'고 공식적으로 말해왔다. 그 말에 조금이라도 책임을 지기 위해서라면 성소수자들의 공개면담 요청에 적극적으로 응해야 한다. 우리는 성소수자 평등권을 위해 각 대선후보자들이 생각하는 공약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요구할 권리가 있다.

더 이상 대선후보들의 침묵하기, 말바꾸기에 일희일비 하고 싶지 않다. 성소수자 평등권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공약을 가지고 있는지 명확하게 밝혀주길 바란다. 차별 금지와 평등이라는 인권의 대원칙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다. 차별받지 않을 권리, 혐오로부터 안전하게 살 권리, 평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 가족을 구성하고 동등한 권리를 보장받을 권리, 표현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받을 권리 등 성소수자는 이 모든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우리와 만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대선 후보들은 응답하라!

2017년 3월28일 
성소수자 차별 반대 무지개행동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노동당 성정치위원회, 녹색당 소수자인권특별위원회, 무지개인권연대, 대구퀴어문화축제, 대전 성소수자 인권모임 '솔롱고스',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 대한불교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레주파, 30대 이상 레즈비언 친목모임 그루터기, 성별이분법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임 여행자,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 (사)신나는센터, 언니네트워크, 이화 성소수자인권운동모임 변태소녀하늘을날다, 정의당 성소수자 위원회,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차별없는세상을위한기독인연대, 청소년성소수자위기지원센터 '띵동', 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한국레즈비언상담소,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총 27개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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