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에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국제 협약에 의하면, 난민이 아니더라도 본국에 돌아가 불이익을 당한다면 강제소환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남편은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인도주의적으로 곤경에 처해 있는 북한 동포를 도우려고 했는데, 중국 정부가 체포했습니다. 그리고 한국 정부는 즉각적으로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한국 정부가 왜 적극적으로 중국에 대응하지 못했는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외교부와 영사들은 국제법대로 자국민의 인권을 위해, 남편이 가족 품으로 속히 돌아올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중국에서 탈북민을 돕던 한 목사가 2월 18일 공안에 붙잡혔다. 아내, 어린 딸 둘과 공항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공안이 들이닥쳤다. 체포된 지 30여 일이 지났고, 목사는 형량이 결정되기 전까지 머무는 '간수소'에 있다. 목사와 함께 6일간 잡혀 있던 아내와 두 딸은 공안의 밀착 감시 끝에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다음 날 또 다른 목사 역시 아내와 함께 공안에 체포됐다. 중국에 들어간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는 교회 은퇴 후, 여행도 하고 탈북민을 돕는다는 목사를 만나기 위해 중국으로 갔었다. 현지에서 사역이라고 할 만한 행동은 딱히 하지 않았다. 탈북민 몇 명이 기차역으로 간다기에 데려다준 게 전부였다. 약 한 달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던 중, 공안이 호텔로 들이닥쳤다. 5일 뒤 아내는 한국에 돌아가라는 명령을 받았고, 목사는 조사할 게 더 남았다며 중국에 남게 됐다. 현재 이 목사 역시 간수소에 있다.

하루 차이로 중국 공안에 남편을 체포당한 두 아내. 두 사람은 3월 22일, 남편들의 상황을 알리고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두 목사를 보호해 줄 것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현재 중국 간수소에 구금된 사람은 온성도(42)·이병기(66) 목사다. 두 목사 모두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 온 탈북민을 돕는 사역에 관심이 있었다. 온성도 목사는 당시 중국에서 사역을 하고 있었고, 이병기 목사는 중국에 간 지 한 달도 안 된 상태였다.

온성도 목사 아내 이나옥 씨, 이병기 목사 아내 김경옥 씨는 남편이 북한 동포를 돕기 위해 중국에 간 것뿐이라며 중국 당국에 이 문제를 인도적으로 해결해 줄 것을 당부했다.

지난 2월 두 목사가 중국 공안에게 잡혔다. 두 목사의 가족들은 3월 22일 기자회견을 열어 사건의 경과를 알리고 외교부의 일처리 방식을 지적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자국민 보호 않은 영사관
부모님 위치 확인 요청하자
"공문 없어서 안 된다"

두 사람의 이야기가 끝나고 이병기 목사의 딸 이지연 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외교부가 적극적으로 자국민을 보호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 씨는 2월 19일, 중국에 있는 부모님으로부터 공안에게 잡혔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어머니 김경옥 씨가 문자로 공안이 들이닥쳤다는 것과 현재 머물고 있는 호텔 이름을 적어 보낸 것이다. 놀란 이 씨는 다급하게 중국 영사관에 이 상황을 전달했다.

이지연 씨는 영사가 "중국 당국이 한국 국민을 데리고 있다는 공문을 받지 못했으니 당장 움직일 수가 없다"는 말을 했다고 회상했다. 이 씨는 부모님이 그 호텔에 머물고 있는지 확인해 달라고 몇 차례 요청했지만, 영사는 갈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고 했다. 이후 어머니에게서 취조 장소가 바뀌었다는 메시지를 받았고, 이 메시지 내용 역시 영사에 전달했다.

"호텔에 부모님이 있는지 확인해 달라고 수차례 간곡하게 요청했습니다. 처음 영사관에 연락한 지 이틀 만에 영사관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가 공안들과 다른 곳으로 장소를 옮겼다는 메시지도 전달했는데, 영사는 처음 부모님이 묵었던 호텔로 갔습니다. 장소를 옮겼으니 당연히 부모님은 만나지 못했고, 현재 그곳에 사람이 없다는 사실만 확인했습니다."

이후 부모님과 연락이 되지 않자 이지연 씨는 불안해졌다.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해 하루에 수차례씩 영사관에 연락했다. 그러나 영사에게서 들을 수 있는 답은 "기다리고 있다", "협조 요청을 했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말뿐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이병기 목사가 체포된 후 영사관이 한 일이라고는, 유선 통화 2회, 면담 1회, 인도적인 처리를 요구하는 공문 발송 2회뿐이었다고 했다. 그는 "중국 영사관이 이번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한 이 몇 가지 일이,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서 하는 최선의 행동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부끄럽고 화가 납니다"라고 말했다.

이병기 목사의 딸 이지연 씨. 그는 외교부의 행태를 지적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이지연 씨는 중국에서 변호사를 선임하는 문제도 영사관이 제대로 처리해 주지 않았다고 했다. 영사가 이 목사와 1차 접견 후 변호사 선임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했고, 가족들은 중국에서 활동하는 현지 변호사를 알아봤다. 변호사를 선임하려면, 중국에 있는 이 목사 자필 사인이 필요해 영사관에 이를 부탁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이지연 씨는 하루라도 빨리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마음에 매일 영사관에 전화했지만 "공안 팩스가 고장 나 기다리고 있다"는 답을 들었다고 했다. 결국 변호사 선임 문제가 2주 정도 미뤄졌고, 호텔에서 취조를 받던 이 목사는 간수소로 옮겨졌다.

이 씨는 "아버지는 3월 8일까지는 호텔에 있었습니다. 이것은 아버지에게 뚜렷한 죄목이 있지 않다는 걸 말해 주는 것입니다. 만약 영사관이 빠르게 움직였다면 간수소로까지는 옮겨지지 않았을 겁니다. 지금이라도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대처해 주기를 바랍니다"라고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기자회견에 가족들과 함께 나온 북한인권증진센터 이한별 센터장은 두 사건을 '사드 배치 보복'이라고 해석했다. 이 센터장은 "현재 한국과 중국은 사드 배치로 외교 문제를 겪고 있다. 중국에 파견돼 있는 선교사들도 많이 강제 추방됐다. 두 사건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고 보고 있다. 두 목사가 현재 한중 외교 문제로 다른 사람보다 더 어려운 상태라고 생각한다. 중국 간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은 이병기 목사가 받은 처분만 봐도 그렇다. 이 목사는 간수소에 갈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는데도 구금된 점은 이해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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