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00년, A는 군 입대 1달 정도가 지난 뒤 내무실 내부에서 '여성스럽고 소심하다'며 관심 사병으로 지정됐다. 이후 중대장과 면담 자리에서 본의 아니게 커밍아웃을 하게 됐다. A는 곧바로 중대 의무대로 보내졌고 인근 정신병원에 반강제적으로 입원을 하게 됐다. 군의무관은 상담 과정에서 그를 구타하고 남성과 성관계를 묘사하라고 요구하는 등 학대를 가했다. A는 그 후로도 두 차례 더 군 병원을 돌다 1년이 지난 뒤 '게이 같지 않은 외모'라며 자대에 복귀한다. 자대에 복귀한 후에도 군 생활은 쉽지 않았다.

#2. 2004년 입대한 뒤 논산훈련소에서 훈련받던 B는 훈련이 너무 힘들어 지휘관과 상담하다 커밍아웃했다. 비밀을 지켜 주겠다던 약속과 달리 소문은 빠르게 돌았고, 결국 B는 국군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군은 B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부모에게도 알렸다. 전역을 하고 싶으면 성행위를 하는 동영상을 찍어 오라던 군의관. 이를 거부한 B에게 부대 복귀 명령이 내려졌다.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군에서 남성 동성애자가 인권침해를 받았다는 증언과 보고는 한두 건이 아니다. 성폭력 전문 상담 기관 한국성폭력상담소는 2003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용역을 받아 군대 내 남성 간 성폭력 사건 실태를 조사했다.

이 조사에는 남성 간 성폭력 사건 가해자가 모두 남성 동성애자일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는 결과가 여러 곳에서 보인다. 남성 간 성폭력 사건 '목격자 그룹'은 외모나 태도가 여성스러운 병사가 피해자가 될 확률이 가장 높다(46.5%)고 응답했다. 가해자가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성폭력을 가한다는 대답은 가해자·피해자 그룹에서는 아예 발견되지 않았다. 목격자 그룹 165명 중 5.5%만이 가해자가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성폭력을 가한 것이라 응답했다.

군부대 인권침해 사례가 계속 발표되자, 국방부는 2006년 3월 '병영 내 동성애자 관리 지침'을 발표한다. 신상 비밀을 보장하고 동성애자에 대한 신체·언어 폭력 행위를 금지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성소수자 병사가 커밍아웃했다고 해서 강제 전역시키고, HIV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검사하기 위해 강제 채혈을 금지한다는 내용도 들어가 있다. 이 지침은 조금 더 변형·강화돼 부대 관리 훈령 제4편 사고예방 제7장 '동성애자 병사의 복무' 항으로 편성됐다.

부대 관리 훈령도 관리 지침과 내용은 비슷하다. 병영에서 동성애자를 평등하게 취급해야 하며 "동성애 성향을 지녔다는 이유로 차별받지 아니함"을 명시하고 있다. 동성애자가 커밍아웃했다면 신상 비밀을 보장하고, 그의 동의 없이 부모 혹은 지인에게 성 정체성을 알리는 '아웃팅' 또한 제한하고 있다. 동성애자 병사를 향한 성폭력을 금지하며, 장병 인권 교육에 '성소수자 인권 보호' 내용을 포함하도록 하고 있다.

그렇다고 부대 관리 훈령이 동성애자에게 무조건 우호적 조항이라 생각하면 오해다. 이 조항은 병영에서 동성애자 병사의 모든 성적 행위는 금지한다고 분명히 못 박고 있다. 군대 내에서 성적인 행위는 계급, 성적 지향을 막론하고 모두 금지다.

2015년 6월 9일 서울광장에서 군형법 92조의 6 폐지 기자회견이 열렸다. 반동성애를 주장하는 교인들이 몰렸고 경찰이 이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군형법 92조의 6
행위·장소·대상 불분명

지금껏 설명한 내용만 보면 이미 한국 군대에서 동성애자 병사 인권이 충분히 보장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권 단체들은 왜 군형법 92조의 6 폐지를 주장하는 것일까. 이 법안은 동성애자 병사의 부대 생활과는 직접 연관성이 없다. 동성애자 병사를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처벌하는 조항이기 때문이다. 군형법 92조의 6의 주요 쟁점은 동성 간 합의된 성관계라 하더라도 군인 신분이면 무조건 '형사처벌'하는 부분이다.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7월 28일 군형법 92조의 6이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2012년에 시작된 판결을 미루고 미루다 재판관 5대 4로 합헌 판결을 내렸다. 소수 의견을 낸 4인의 헌법재판관은 "이 조항 '그 밖의 추행'이 남성 간의 추행만을 대상으로 하는지, 아니면 여성 간의 추행이나 이성 간의 추행도 그 대상으로 하는지 모호"하다고 위헌 의견을 냈다.

재판관 4인이 낸 소수 의견처럼 군형법 92조의 6이 여성 군인 간 성관계 또한 처벌 대상으로 삼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남성 동성애자를 처벌할 목적으로 조항에 '항문 성교'를 명시했지만 그 외 행위는 자세하게 규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합의된 이성 군인 간 성관계는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다. 다만 영내에서 그 일이 발생했을 경우에는 징계를 받지만 형사처벌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2011년 레바논에 파병된 동명부대에서 남녀 장교 두 명이 부대 내 곳곳에서 성관계를 가진 사실이 발각됐지만 이들은 '정직 3개월'을 받았다.

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또 '군의 특성상 군영 내에서 동성 간 집단 숙박을 하고 엄격한 상명하복 관계에 있어 상관의 지시를 사실상 거역하기 불가능하다는 점'을 추행죄 제정 이유로 본다면, 군형법 92조의 6에서 말하는 '추행'은 "동성 군인의 군영 내에서 이루어진 음란 행위"로 한정해야 하지만 시간·장소에 해당하는 아무 규정이 없어 군영 외에서 발생한 행위까지 처벌할 수 있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고 했다.

헌법재판소는 벌써 세 차례 같은 조항의 합헌 여부를 다뤘다. 위헌 의견을 낸 재판관은 2002년 2명, 2011년 3명(한정 위헌 1명)에 이어, 2016년에는 헌법재판관 4명이었다. 결과적으로 세 차례 모두 합헌 결정이었지만, 반대하는 재판관이 한 명씩 증가하고 있다.

반동성애 진영은 군형법 92조의 6이 폐지되면 군부대에 동성애가 확산될 것이라 주장한다. 뉴스애조이 최승현

한국교회 일관된 반대 논리
"군형법 92조의 6 폐지되면
동성애 확산되고 국방력 약화"

잠잠하던 한국교회는 헌법재판소 판결이 임박할 때마다 조직적으로 '합헌'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0년 11월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기자회견을 열고 "레위기와 로마서 등 신구약 성경 모두에서 동성애는 죄라고 명시하고 있다. 군에서 동성애가 허용되는 것과 동성애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는 것은 대다수 국민이 반대하는 만큼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라고 밝혔다.

바른성문화를위한국민연합(바성연)·참교육어머니모임·바른교육을위한교수연합 등은 이때도 탄원서를 작성해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바성연은 "군 내 동성애 허용은 군 기강 해이, 사기력 저하 및 전쟁시 전투력 저하 등을 초래하고, 이는 국가 미래의 근간을 흔드는 심각한 사태임을 우려하면서 동 조항의 유지 및 강화를 위해 탄원을 드린다"고 밝혔다.

2014년 3월 일부 의원이 군형법 92조의 6 삭제를 담은 '군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때 한국교회언론회는 "이런 어이없는 법률안 개정 움직임은 군 기강 해이와 군 전력화 손실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자녀를 둔 부모들이 동성애를 인정하는 군대 안 보내기 운동으로 비화될까 두렵다. 군대 내 동성애 허용 문제는 북핵보다 더 경계해야 할 사안"이라는 논평을 냈다. 군형법 92조의 6이 폐지된다 해도 부대에서 군인 간 성행위는 금기 사항이지만, 이 조항이 삭제되면 마치 동성 간 성행위가 부대에서 허용되는 것처럼 묘사했다.

이후 잠잠하던 교계는 2016년이 되자 다시 한 번 전면에 등장했다. 2016년 헌법재판소 판결을 앞두고는 더 많은 기독교인이, 더 자주 모여 기자회견을 열고 군형법 '추행' 죄 합헌을 주장했고 결론은 '합헌'으로 판결났다. 논리는 늘 한결 같았다. 이들은 개인 간 성행위를 '형사처벌'하는 문제점 보다는 '동성애' 자체에 초점을 맞췄다.

한가람 변호사(공익인권변호모임 희망을만드는법)는 군형법 92조의 6은 군대에서 동성애를 '허용'하는 조항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반동성애 진영에서 이 조항이 없어지면 우리 국군이 무너질 것처럼 과장하는 분들이 있다. 계속 합헌을 주장한다. 자꾸 '추행'이라는 단어를 성폭력과 연관짓는데, 성폭력이 되려면 '강제'라는 단어가 들어가야 한다. 이 조항의 문제점은 부대 외부에서 합의된 성관계를 '형사처벌'하는 데 있다. 동성애자 차별을 명시한 유일한 법안의 위헌성을 지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