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한국 사회에 페미니즘 열풍이 불고 있다. 그 열풍은 교회에도 영향을 주었다. 가부장적이고 수직적인 교회 문화를 반대하며, 여성들이 목소리 낼 수 있는 자리가 속속 생겨나고 있다.

어떤 사람은 교회 여성들이 이제서야 자기 주장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아니다. 여성 관점에서 성경을 해석하는 '여성신학'이 한국에 들어온 1980년대부터 이미 여성은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당시 여성신학자들은 남성에게만 목사 안수를 주는 문제, 여성 혐오적인 성경 해석을 반박했다. 사회 속 여성 문제에도 힘껏 소리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생긴 여성신학 기류는 자연스레 수도권 외 지역으로까지 퍼졌다. 그렇게 생긴 단체 중 하나가 대전에 있는 실천여성회 '판'이다. 이들은 15년 가까이 교회 안팎에서 발생하는 여성 문제에 목소리 내고 있다. 3월 8일 세계여성의날을 맞이해 여성 목회자가 겪는 어려움에 대한 글을 <오마이뉴스>에 올렸다.

3월 20일, 대전 배재대학교에서 실천여성회 '판'(판) 공동대표 최은영 씨를 만났다. 지역을 기반으로 꾸준히 운동해 온 판의 활동과 교회 여성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최근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대전에서 여성신학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실천여성회 '판'의 공동대표 최은영 씨를 만났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 판은 어떤 단체인가.

2000년 4월, '대전여신학자협의회'라는 이름으로 처음 시작했다. 대전여신학자협의회는 서울에 있는 '한국여신학자협의회'(여신협)의 지회라고 할 수 있다. 사회와 교회 안에서 성평등, 정의, 평화, 환경 보전을 추구한다. 단체 초창기 때는 멤버들 중 신학 전공자, 전도사 목사가 많았다. 이 때문에 여성신학 연구가 활발했다는 장점이 있지만, 어려움도 있었다. 여성 목회자가 사역뿐 아니라 육아와 집안일도 함께해야 하니 주기적으로 모이는 게 버거웠다. 회원 중 교인들은 목사, 전도사가 많은 것을 부담스러워하기도 했다.

결국 2014년 대전여신학자협의회에서 판으로 이름을 바꿨다. 판은 생기 넘치는 여성주의 공동체 운동 '판'을 만들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이름을 바꾸고 나니, 목사 아내와 교인들의 참가율이 높아졌다. 우리는 주로 회원들을 대상으로 여성신학이나 여성학 책 모임을 한다. 이때 가톨릭 교인이나 젊은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다문화와 여성'이라는 소모임에서 성서 강좌를 개설했다. 내가 공저한 <성서에서 만나는 다문화 이야기>(대장간)를 교재로 사용한다. 성서 안에 나온 이주 여성 하갈·십보라·라합 등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이 모임은 작년부터 다문화나 이주 여성을 주제로 모여 발제 및 공개 강좌를 주도해 왔다.

- 페미니즘이 대두되면서 교회 안에도 여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강남역 사건을 시작으로 페미니즘에 관심이 높아졌다. 관련 책들도 인기를 얻고 있고. 이게 교회에도 영향을 준 것 같다. 여성의 눈으로 보면 교회는 참 불편한 일이 많이 일어나는 공간이다. 대개 교회는 남성 중심적이다. 최근 모임에서 만난 한 젊은 친구는 "짧은 옷 입고 와서 남성을 유혹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교회에서 들었다고 했다. 그 말에 상처받아 지금은 아예 교회에 출석하지 않는다. 어디 이뿐이겠는가. 교회에서 성폭력을 당해도, 발언권 있는 소수 남성이 "언급하지 말자"며 덮어 버리는 경우도 있다.

여성은 의사 결정 구조에서도 배제된다. 총회를 보더라도 여성 총대는 극히 소수다. 여성이 밥그릇 빼앗는다고 생각해서인지 모르겠지만, 리더 그룹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수가 너무 적다. 신학교로 넘어가면 여성 강사가 강의할 수 있는 자리도 많지 않다. 목사 안수 못 받는 교단도 있고. 내가 아는 어떤 분은 목사 안수 받을 수 있는 여건이 되는데도 전도사로 남겠다고 했다. 여성에게 허락된 전도사 자리는 많지만 목사 자리는 많지 않아서다. 그분은 남편도 목사인데, 교회는 남편이 목사이고 아내도 목사면 부담스러워하기도 한다. 두 사람 모두 하나님께 부르심 받았지만 한 사람은 목사로, 한 사람은 목사의 아내로 남아 사역을 돕는다는 게 안타까웠다.

- 페미니즘과 함께 기독교계에서는 여성신학도 재조명되고 있다.

여성신학은 최근에 나온 이야기는 아니다. 1980년대부터 한국에서 논의됐던 학문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부각될 때도 여신협이 할머니들과 함께했다. 그간 여신협이 책자를 발간하면서 신학 이론을 꾸준히 쌓아 왔다. 아쉬운 게 있다면, 30년 넘게 연구해 온 학문이지만 일반 교회에서는 오히려 터부시됐다는 것이다. 신학자들이 연구에 집중하다 보니, 정말 담론이 나와야 하는 교회 내에서는 제대로 판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판은 성경 속 여성들을 주제로 강의와 책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은 16주년 창립 기념 행사. 사진 제공 최은영

- 일부 남성 목사는 성경 말씀으로 교회 내 여성 혐오를 정당화하기도 한다. '여성은 잠잠하라'는 구절을 인용해 여성에게 목사 안수를 주지 않기도 한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은 물론 군소 교단 중 여성에게 목사 안수를 주지 않는 곳이 몇 개 있다. 일단 그들의 논리를 보면 황당하다. 남성이기에 설교할 수 있고 목회할 수 있다고 말하려면, 성경이 누구에게 권한을 부여했는지 봐야 한다. 성별을 떠나 국적도 살펴야 한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보면 이방인인 한국 사람은 목회할 수 없다.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런 점은 말하지 않으면서 성에 대해서만 결격 사유를 둔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어떤 사람은 성경 자체가 여성을 부정적 존재로 보고 있다고 말한다. 하와를 원죄의 '원흉'으로, 악의 통로라고 표현한다. 하와가 선악과를 먹어 세상에 죄가 들어왔다고 말하는데, 그럼 그때 아담은 뭘 했나 생각해 봐야 한다.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금지했던 상황에서 아담도 하와와 함께 있었다. 하나님 말씀을 함께 들었지만 하와에게 선악과를 받아 먹는 아담. 우리는 그에게 자기 주체성이 없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 역시 공범자로 존재한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아담의 행동은 전혀 보려 하지 않는다. 선악과를 건네 준 하와만 탓한다. 창세기 4장 1절을 보자. 하와는 출산 후 하나님을 찬양한다. 이때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후다. 아담의 목소리는 사라졌지만 하와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이 본문은 하와라는 여성을 다시 새롭게 해석할 수 있게 한다.

우리는 텍스트를 '제대로' 볼 필요가 있다. 성경에는 일부다처제, 노예제가 나오지만,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가 이 텍스트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여성을 설명할 때도 동일한 시각으로 봐야 한다. 신약성경은 주인이나 종, 남성이나 여성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평등하다고 말한다. 구약성경으로 넘어가면, 우리는 요나서를 통해 온 인류를 사랑하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하나님은 모든 이에게 보편적인 사랑을 주신다. 이런 하나님은 보지 않고 여성을 부정적으로 그린 텍스트에만 집착하는 것은, 자신이 여성 차별적인 텍스트에 갇힌 거라고 말하고 싶다.

- 대전에서 목회하는 여성 사역자들은 주기적으로 만나는가.

판에서 강의나 강좌, 책 모임을 통해 주로 만난다. 2014년에는 주일마다 여성이 목회하는 교회를 방문한 적 있다. 한 20곳은 다닌 거 같다. 교회 탐방을 가 보면 놀라운 게 몇 가지 있다. 여성 목사들이 설교를 마치고 주방으로 간다는 것이다. 남편이 있는데, 그들은 목사 아내가 하는 것처럼 교회 살림을 적극적으로 돕지 않았다.

안정적으로 목회하는 교회도 있었지만, 대개는 교인 수가 많지 않고 가족끼리 예배하는 경우였다. 내가 만난 분들 중 다수는 교회가 성장하지 않는 이유를 본인 잘못이라 여겨 위축돼 있었다. 작으면 작은 대로 의미를 두고 실천해 볼 거리가 많은데, 여성이라고 해도 모두 여성신학 관점으로 목회하는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오히려 가부장적 시스템, 보수적 신앙을 배워 남성 목회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 남성 목회자나 신학생들도 강의나 책 모임에 오는가.

많지는 않지만 활동 회원으로 40대 남성 목회자가 몇 분 있다. 페미니즘과 여성신학을 알고 싶어서 온다고 하더라. 여러 강좌에 함께하기도 하고 스스로 교회에서 페미니즘 독서 모임을 하는 분도 있다. 요새는 남성들이 오히려 이 주제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최근 대전 기독연구원느헤미야에 가서 '페미니즘과 성서의 여성들'을 주제로 강의했는데, 그때도 남성들이 관심을 보였다. 그들은 교회가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시대에 발맞춰 가야 한다는 점과 페미니즘이 남성에게 해롭지 않다는 사실을 안다.

몇 년 전 학부 신학생에게 여성신학을 강의한 적 있다. 나는 페미니즘이 결코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한국 사회는 성 역할 고정 관념이 있다. 여성만 있는 게 아니고 남성도 있다. 사람들은 흔히 육체적인 일은 무조건 남성이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이유로 새벽 기도회 전후로 주로 남성 전도사들이 교인들을 집에 데려다 준다. 운전이나 짐 옮기는 건 여성도 할 수 있다. 페미니즘이 작동하면 성 역할 고정 관념이 사라진다. 이런 예시를 들면서 페미니즘이 남성에게도 좋은 거라고 설명한다. 잘 받아들이는 친구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변화가 일어난다. 이런 관점에서 남성 목사들이 페미니즘, 여성신학에 관심 갖는 건 좋은 현상이라고 본다.

최은영 대표는 남성들도 페미니즘에 관심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 기독교 신앙과 페미니즘은 어떻게 연결되나.

우리는 불안한 사회를 살고 있다. 불안함을 해소하기 위해 자기보다 약한 상대를 찾고 분풀이한다. 이는 분명 혐오다. 페미니즘은 남성이 자기보다 힘이 약한 여성에게 분풀이하는 게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페미니즘이 여성만을 위한 것이라 오해하는데,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남성을 속박하는 틀도 깰 수 있다. 남성, 여성, 제3의 성 모두를 위한 것이다. 나는 예수 시대에 페미니즘이 있었다면, 예수 역시 페미니스트였을 거라 생각한다. 약자에게 관심 갖는 게 그리스도의 정신이고, 우리는 그런 그리스도의 정신을 이어 가야 한다.

- 교회 내 여성 문제에 관심 있는 교인과 목사에게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면.

일부 교회는 권력에 순응하는 게 미덕이고 믿음의 표현인 것처럼 가르친다. 그 결과로 교인들이 목사가 하는 말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행동한다. 목회자와 교인들이 이런 걸 지양했으면 좋겠다. 건강한 신앙인이라면 스스로 고민하고 판단해야 한다. 특히 남성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페미니즘에 관심 없는 남성에게 여성의 입장을 대변해 줄 남성이 필요하다. 여성이 남녀 모두를 설득하기는 어려운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목사는 교회 안에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말을 막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의식 있는 교인들이 하는 말을 다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수도 있다. 교회 안에는 생각이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여성이지만 페미니즘에 동의하지 않거나 페미니즘을 낯설어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교회 안에서 의견을 조율해 가는 과정은 우리가 계속해야 할 숙제인 듯하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10년이 지나면 지금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여성 차별 문제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되기를 희망한다.

- 수도권 외 지역에서 여성신학을 기반으로 하는 단체를 운영하는 게 어렵지는 않나.

운동이 주로 수도권 중심으로 이뤄지니까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나뉘는 경향이 있다. 아쉽기도 하지만 대전은 비교적 다른 지역에 비해 자발적으로 시민 사회 운동이 많이 일어나는 편이다. 단체가 서로 돕고 연대하려 한다. 광화문에 모인 수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때도 많은 시민이 광장에 모였다.

2년 전에는 여성 1,000여 명이 모여 걷기 대회를 했다. 판은 대전 여성단체연합 준회원 단체로, 매년 7월 성평등 주간에 대전 시민 걷기 대회에 참여한다. 그때 우리 단체도 부스를 만들어 홍보하고 성경에 나오는 리더십 있는 여성들을 소개했다. 그 당시 꽤 많은 분이 관심을 가져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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