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 사무실이 있는 KT 사옥 앞. 이진형 사무총장(기독교환경운동연대)은 손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한다. 숨통을 막는 미세 먼지 탓인지 이 사무총장이 코 주변 근육을 몇 차례 찡그러뜨린다. 팻말에는 "탈핵, 핵발전소는 우리 이웃의 피눈물로 전기를 만듭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손팻말에는 이진형 사무총장이 꼭 알리고 싶은 말이 담겼지만 시민들은 피켓에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그는 탈핵에 무관심한 시민들 반응이 낯설지 않다. KT 사옥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거나 탈핵 예배를 할 때마다 이런 설렁한 반응을 여러 차례 겪었다. 그래도 탈핵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도 있다. 이날 역시 길을 가던 한 할아버지가 이 사무총장에게 "탈핵, 핵발전소는 우리 이웃의 피눈물로 전기를 만듭니다"는 문구가 의미하는 바를 물었다.

그는 정오가 되면 KT 사옥 앞에서 1인 시위를 한다. 3월 1일부터 시작했으니 이제 3주째다. 1인 시위는  '잘 가라! 핵발전소 10만 서명 기독교 본부'가 진행하는 사업이다. 기독교환경운동연대(기환연)이 사순절을 맞아 정오부터 오후 1시까지 참여하고 있다. 핵발전소 폐쇄를 위한 서명운동도 한다. 사순절 기도회를 진행하고 있는 이진형 사무총장을 3월 16일 만났다.

사순절을 맞아 탈핵 금식 기도회를 하는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정오가 되면 KT 사옥 앞에서 1인 시위를 한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 기환연이 진행하는 '탈핵을 위한 사순절 금식 기도회'에 대해 설명해 달라.

사순절을 맞아 기환연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 40일 금식 기도회를 하기로 했다. 기도회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한다. 아침 10시부터 11시까지는 헤른후트형제단이 지은 <2017년 말씀, 그리고 하루>(한국디아코니아연구소)에 나오는 말씀을 읽고 참가자들과 묵상을 나눈다.

12시부터는 점심 식사 대신 KT 사옥 앞에서 1인 시위를 한다. 피켓 문구는 당일 나눈 묵상 중 나온 이야기를 토대로 만든다. 3월 16일 본문은 예레미야 15장 18절이었다. 고통받는 자의 외침이 나왔다. 이 때문에 팻말 문구도 "탈핵, 핵발전소는 우리 이웃의 피눈물로 전기를 만듭니다"로 정했다.

1시 30분부터 3시까지는 기환연 사무실에서 책을 읽고 묵상한다. 개인적으로 가져온 책을 읽어도 되고 기환연 사무실에 있는 환경을 주제로 한 책을 봐도 된다. 탈핵에 대해 궁금한 게 있으면 함께 대화해도 좋다. 이후 3시부터 1시간가량은 <2017년 말씀, 그리고 하루>에 나오는 말씀 한 구절을 읽고 기도하고 참여했던 소감을 나눈다.

그동안 탈핵에 관심 가졌던 분이 와도 좋고 탈핵이 뭔지 알고 싶은 분이 와도 좋다. 부분 참여도 가능하니 관심 있는 분은 기환연 사무실에 연락하면 되겠다.

- 환경 운동하는 기독교인들은 핵발전소를 '현대판 선악과'라고 표현하더라.

핵발전소는 지역 주민들에게 고통을 안겨 준다. 경주에 월성 1호기가 있는데, 그곳 주민들은 지금도 방사능에 노출되고 있다. 주민들의 몸에서 삼중수소가 검출되고 있고, 현재 이주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1986년 사고가 발생한 체르노빌에서는 이보다 더 위험한 상황이 있었다. 당시 군인이나 소방관들이 사고를 수습하면서 피폭됐다. 한계치가 넘어서자 피폭자가 오염원이 됐다. 의사가 이들을 치료하러 가면, 의사 또한 방사능에 노출되니까 피폭자들을 가둬 놓고 방치했다.

경남 합천에는 일본 히로시마 원자폭탄에 피폭된 원폭 피해자들이 거주하고 있다. 경남에만 원폭 피해자의 30%가 산다. 중앙정부는 원폭 피해가 2·3세에게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사람들은 선천성 장애와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핵발전소가 비단 현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후손의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핵발전소로 생기는 문제는 많다. 영화 '판도라'를 보면 알 수 있듯 노동자도 피폭의 위험에 놓인다. 또 지역에서 만든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해 송전탑을 세우는데, 이때 밀양 주민과 같은 피해자가 생긴다. 핵발전소의 온배수도 생태계에 영향을 준다. 온배수는 핵발전소 핵분열 과정에서 발생한 열을 식히고 바다로 내보내진 바닷물을 말한다. 온배수 양이 많아지다 보니 바다 온도가 올라가고 생태계까지 파괴되고 있다.

기환연은 2월 말, 월성 1호기가 있는 경주에 내려가 '탈핵 기도회'를 진행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 최근 관심 갖고 있는 핵발전소 이슈는 무엇인가.

가장 문제가 되는 건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장이다. 최근 정부가 핵폐기물 저장소가 점점 차고 있다며 새로운 처리장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28년까지 부지를 선정하겠다고 한다. 지금까지 발생했던 문제만 봐도 핵발전소는 지역 갈등을 부추기는 원흉이었다. 활동가들은 핵폐기물 처리장 부지 선정을 두고 지역 간 갈등이 생길 것을 걱정하고 있다.

탈핵이 본격적으로 언급됐던 게, 2000년대 초반 부안에서 핵폐기물 처리장을 반대하면서부터다. 당시 지역 주민들이 투표로 반대 의견을 표했고, 결국 돌고 돌다가 경주에 세워졌다. 이때는 저준위 핵폐기물 처리장이었지만, 이제는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장으로 바뀌었다. 반감기만 10만 년이다. 이번에도 부지 선정을 두고 지역 갈등을 빚게 될까 우려된다. 인구수가 많은 지역에서 반대하면 정부는 상대적으로 인구수가 적은 지역 주민이나, 이미 핵발전소가 세워진 곳의 주민들을 경제 논리로 설득할 거다. 지역 주민이 함께 연대해 막아 낼 방안이 필요하다.

- 중요한 문제지만 기독교인 대부분이 환경문제에 무관심하다.

그렇다. 활동가로서 교회에 방문해 함께 동참해 달라고 이야기하는데, 교회들이 참여하기를 주저한다. 여러 이유가 있을 거 같다. 환경보다는 다른 문제를 더 시급하게 느껴서 일 수도 있고. 그래도 관심 가져 줬으면 한다. 환경 운동가들은 우스갯소리로 이제 우리는 잘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환경은 점차 나빠지고 사고는 더 많이 일어나니까. 현재 상황만 봐도 기후변화로 해수면이 상승하고 있고, 핵발전소 사고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때 가면 다들 환경을 보존하려고 노력할 거다. 우리는 그때가 오기 전에 핵발전소 중단하자고 말하는 건데, 아직까지는 사람들에게 와 닿지 못하는 것 같다. 생명을 말하는 기독교인이라면 더 많은 사람이 고통받기 전에 목소리 내 주었으면 한다. 탈핵을 신앙 문제로 봐 주었으면 한다.

- 지난해 기환연 소속 한국교회환경연구소가 서울시와 협약해 '원전 하나 줄이기' 사업에도 함께했다.

기독교대한감리회 서울연회 환경위원회와 함께 전기 사용량을 줄일 교회를 모집해 캠페인을 했다. 교인들이 가정에서 전기량을 줄일 수 있도록 독려하고, 교회는 예배당 불 켜지 않기, 에어컨 사용 줄이기 등을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왔다. 집 옥상에 태양광발전기를 세운 교인도 있었다.

그동안 환경 운동을 해 온 교회 중에는 태양광발전기를 설치한 곳이 몇 있다. 태양광발전기의 효용성을 두고 여러 말이 오간다. 태양광발전기 3KW가 월 288kWh(4인 가구가 한 달간 쓰는 전기량 - 기자 주)를 생산하는데, 교회에서 쓰는 전기량이 워낙 많다 보니 자가발전이 안 되는 것은 맞다. 사람들이 집 베란다에 설치하는 태양광발전기 규모가 260W(월 25kWh 생산 -기자 주)다. 이 규모로는 냉장고 하나 간신히 돌릴 수 있다. 이 때문에 어떤 교회는 자가발전 목적보다는 환경을 생각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태양광발전기를 설치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게 모이면 큰 효과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서울시가 2012년부터 태양광발전기 설치를 원하는 사람에게 비용을 지원하고, 에너지 절약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시가 발표한 자료를 보니, 전국 사용 전력량은 11.4% 증가했는데 서울은 4% 감소했다. 얼마 되지 않은 양이지만 자가발전을 하고, 사용량을 줄여서 낸 성과였다. 태양광발전기 설치를 전국 교회로 확대한다고 생각해 보자. 한국에 교회가 7만 개 있다. 교회마다 베란다에 설치 가능한 1KW 규모 태양광발전기를 세우면 총 7만KW다. 한국 전기 공급량 30%를 담당하는 핵발전소는 가동을 중단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탈핵에 관심 있는 교회는 탈핵 예배를 하거나, 교인들에게 탈핵 서명을 받을 수도 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 탈핵 운동에 참여하고자 하는 교회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지금 기환연을 포함해 여러 단체가 모여 '잘 가라! 핵발전소 10만 서명 기독교 본부'를 발족했다. △신고리 5·6호기 및 삼척·영덕·울진 신규 핵발전소 건설 백지화 △노후 핵발전소 수명 연장 중단 및 폐쇄 △독성 물질 '사용 후 핵연료' 관련 신규 핵시설 건설 철회 △탈핵에너지전환정책 수립 등 여섯 가지를 요구하고 있다.

요구 사항과 함께 교회에서 탈핵과 관련해 실천할 수 있는 몇 가지를 구상했다. 일단은 교인들에게 핵발전소 반대 서명을 받아 기환연에 발송하면 된다. 교회 내에서 탈핵 공부 모임을 하고 싶다거나, 탈핵 영화를 함께 볼 수도 있다. 영화 선정이나 강사를 원하면 기환연이 소개해 준다.

기환연에는 '탈핵 예배' 프로그램도 있다. 핵발전소의 위험성을 모르는 교인에게 설교로 탈핵의 중요성을 알려 준다. 탈핵 운동이 왜 신앙 운동인지 직접 가서 설교하기도 하고, 강의할 사람을 연결해 주기도 한다. 설교 전후로는 환경 단체가 제작한 영상을 보면서 이야기 나눈다. 교인들이 직접 탈핵 선언문도 읽는다.

최근 서울에 있는 한 교회가 탈핵 예배를 신청해서 다녀왔다. 목회자가 탈핵을 교인들에게 알리고 싶을 때 참여하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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