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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라이트, 복음주의에게 말하다
[서평] <목회, 톰 라이트에게 배우다>·<톰 라이트, 칭의를 말하다>
  • 이원석 (dkdndn2@naver.com)
  • 승인 2017.03.15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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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관점은 진정 새 관점인가?

종교개혁 전통은 사도 바울을 이신칭의 복음의 주창자로 호명한다. 하나님 앞에 선 단독자로서의 믿음을 강조하는, 이러한 옛 관점이 반세기 전부터 새로운 도전에 처하고 있다. 일단 기독교 안에서는 하버드신학교의 신약학자 크라이스터 스탕달을 우선 주목할 수밖에 없고, 유대교에서도 야곱 타우베스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나는 이에 대해서 <바울의 정치신학>에 대한 서평, '바울에 대한 새로운 전망의 넓은 문맥'을 통해서 다룬 바 있다).

국내에서도 E. P. 샌더스, 제임스 던, 톰 라이트 등으로 대변되는 바울에 대한 새 관점(New Perspective on Paul)이 몇 년 전부터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한데 그 초점은 톰 라이트에게 향하고 있다. 그의 저작이 복음주의 진영 안에서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본 서평에서는 새 관점을 총체적으로 다루기보다 복음주의와의 대화를 시도하는 톰 라이트에 국한하여 다루고자 한다. 이는 새 관점이 복음주의에 미치는 실천적 의미를 살펴보기 위함이다.

사실 새 관점은 새로운(new) 관점이 아니다. 그 학파로 분류되는 당사자들은 이를 2,0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옛 관점보다 더) 오래된 관점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새 관점 학파는 전적으로 통일된 관점(perspective)도 아니다. 2,000년 묵은 오래된 관점을 중심으로 성경을 읽겠다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세부적으로는 다양한 해석들로 인해 서로 논쟁한다. 그러니까 새 관점 학파는, 굳이 말하자면, 같은 문제의식으로 수렴되는 느슨한 연대인 셈이다.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중략) '새 관점'이라 부를 수 있는 어떤 단일한 일관된 실체라는 것이 애초에 없었다는 사실을 강조해야겠다. 사람들은 종종 샌더스와 던과 내가 마치 공동전선을 형성한 것처럼 이야기하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의 집단이나 하나의 운동이었던 적도 없고, 함께 만난 적도, 함께 어떤 계획을 세운 적도 없으며, 서로 간에 늘 심각하고 의미심장한 의견 차이가 존재했다." [<톰 라이트, 칭의를 말하다>(이하 <칭의>), 에클레시아북스, 15쪽]

근본으로 돌아가자

새 관점으로부터 우리가 가장 먼저 배워야 할 사항은 특정 해석보다 그 지향점이다. 왜곡된 전통을 넘어서서 성경 자체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관건이다. 이는 '근본으로 돌아가자'(ad fontes)는 선언으로 요약될 것이다. 물론 종교개혁의 후예로서 그 해석을 간과하거나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 해석 자체는 종교개혁자들이 성경으로 돌아간 결과물이다. 따라서 우리가 진정 본받아야 할 것은 그들의 해석 이전에 그 초점, 즉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믿음이다.

"우리가 직면한 도전은, 그리고 종교개혁 전통에 우리가 진정으로 충성하는 방법은 우리의 교리와 실천을 검토하기 위해 성경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목회, 톰 라이트에게 배우다>(이하 <목회>), 에클레시아북스, 180쪽]

톰 라이트가 명확하게 선언한 바와 같이 "교회는 21세기의 문제에 1세기의 대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16세기의 질문에 19세기의 대답을 제시하는 수준에서 헤매고 있"(<목회> 180~181쪽)다. 21세기의 새로운 상황은 19세기의 근대적 패러다임을 건너뛰어 2,000년 전의 초대교회적 패러다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만든다.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톰 라이트의 내러티브에 대한 관심이나 비판적 실재론의 활용은 바로 이러한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새 관점 신학은 종교개혁과 다른 패러다임으로 움직인다. 그렇기에 그 주장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다. 물론 새 관점 라인도 대중에게 다가가고자 노력한다. 특히 톰 라이트는 (학계를 상대로 한 두툼한 연구 저작 외에도) 대중을 독자로 한 비교적 얇고 쉬운 저술을 끝없이 써 내려간다. 그가 쓰는 글은 명료하기 때문에 문장 자체로는 이해하기에 어렵지 않다. 하나 많은 독자가 그 핵심을 놓치고 있다. 이는 그가 그리는 큰 그림을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톰 라이트를 알기 원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안내

이게 내가 스티븐 커트의 <목회, 톰 라이트에게 배우다>를 추천하는 이유이다. 일단 번역서의 제목에 대해서 불만을 밝히고 싶다. 포괄적인 독자 대상을 겨냥하고 있는 원제(Tom Wright for Everyone)와 달리 목회자에게만 유용한 책으로 읽히기 쉽다(톰 라이트가 대중을 위해 집필한 <에브리원 신약 주석 New Testament for Everyone> 시리즈에서 따온 명칭이다). 하나 이 책은 원제 그대로 톰 라이트를 알고자 하는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목회, 톰 라이트에게 배우다> / 스티븐 커트 지음 / 최현만 옮김 / 에클레시아북스 펴냄 / 225쪽 / 1만 2,000원

톰 라이트가 신약을 알기 원하는 모두를 위해 평이한 신약 주석서를 집필한 것처럼, 스티븐 커트는 톰 라이트를 알기 원하는 모두를 위해 평이한 톰 라이트 안내서를 저술했다. "이 책의 목적은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많이 톰 라이트의 신학과 접촉하도록 북돋우려는 것이다."(<목회> 179쪽) 왜냐하면 그가 보기에 "톰 라이트의 신학은 교회의 역사에서 정말 중요한 시기에 출현했"(<목회> 189쪽)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패러다임 전환기에 톰 라이트가 등장한 것이다.

원제에 걸맞게 <목회, 톰 라이트에게 배우다>는 2010년까지 진행된 톰 라이트의 모든 작업(원서가 2011년에 출간되었다)을 그 배경 소개(2장)와 더불어 간명하게 요약한다(1장에서 경력을 소개하고, 3장에서 신학을 압축한다). 또한 후반부는 부제(Putting the Theology of N. T. Wright into Practice in the Local Church) 그대로다. 목회(4장), 선교(5장), 교회 생활(6장)에 대해서 그의 신학이 주는 함의와 더불어 적용을 예시하고, 이어서 총괄 평가(7장)한다.

"내가 이 책(특별히 제3장)에서 사용한 핵심 접근 방법 중 하나는 라이트의 학문을 한 번에 씹을 수 있을 정도로 쪼개서 좀 더 쉽게 소화할 수 있게 조리하는 것이다."(<목회> 8쪽) 3장('톰 라이트의 신학 요약')은 총 서른여덟 개의 항목으로 톰 라이트의 신학을 축약한다. 건조하고 간명하게 정리한 덕분에 톰 라이트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는 데에 유용하다. 톰 라이트에 대한 독서 폭이 늘어날 때마다 반복하여 숙지하면, 미세한 부분까지 명확하게 될 것이다.

톰 라이트의 신학 체계를 극도로 압축한다지만, 책 자체가 건조하지는 않다. 외려 저자의 개인적 삶을 통해서 전개되기 때문에 잘 읽힌다. "이 책에서 사용한 또 다른 주요 접근 방식은 개인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다."(<목회> 9쪽) 무엇보다 그의 신학이 등장하게 되는 배경 설명(2장)이 저자 자신의 자전적인 서사로 진행되며, 지역 교회를 위한 그의 신학의 구체적 적용(4~6장) 또한 자기 목회 현장(뉴몰든크라이스트처치)에서의 경험을 통해서 소개하고 있다.

<목회, 톰 라이트에게 배우다>의 일차 활용법은 톰 라이트에 대한 조감도 학습이다. 톰 라이트 입문자라면, 신속하게 일독하는 것이 좋다. 특히 3장의 경우, 집 짓기 위해 세워 놓은 말뚝과 같은 용도로 활용되어야 한다. 다 읽자마자 톰 라이트의 평이한 저작들로 독서를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그에 대한 독서가 늘어나면, 다시 복습 삼아 읽어 보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해서 조감도가 튼실하게 만들어져야 새로운 패러다임에 금방 눈이 열리게 된다.

패러다임의 전환

지금 많은 신학자가 톰 라이트의 신학, 특히 칭의론에 당황하고 있다. 박영돈(<톰 라이트 칭의론 다시 읽기>), 임덕규(<개혁교회를 무너뜨리는 톰 라이트>), 이승구(<톰 라이트에 대한 개혁신학적 반응>) 등에 의해 비판서가 쇄도하고(모두 개혁주의를 표방한다). 비판적 기조의 논문들도 이은선, 박장훈 등에 의해 여러 편이 나와 있다. 그런데 이들 중 다수가 톰 라이트의 새로운 신학적 패러다임을 잘 파악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분명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미국 교회라고 다르지 않다. 영미권의 복음주의 계열의 두려움은 익히 짐작된다. 특히 (국내에도 번역된 바 있는) 존 파이퍼의 <칭의 논쟁>(부흥과개혁사)을 대표 사례로 들 수 있다. <톰 라이트, 칭의를 말하다>는 바로 이 비판에 대한 응답으로 제출되었다. "파이퍼는 바울 신학을 이해하기 위해 라이트가 제안한 대안적인 패러다임과 씨름하기보다는 그 패러다임의 결과물만을 비판하고 있다."(<목회> 32쪽) 스티븐 커트의 지적은 우리 현실에 직결된다.

반면 평신도들은 톰 라이트를 탐독하고 있다. 500년 전에 루터가 모든 기독인이 제사장임을 주창한 것처럼, 지금은 톰 라이트가 모든 기독인이 신학자임을 상기시켜 준다. 심지어 평신도가 직접 번역 소개하고 있는 실정이다(톰 라이트의 대표 역자인 최현만은 신학자가 아니라 의사이다). 이렇게 (일반적인 목회자들과 더불어) 평신도들이 주도적으로 톰 라이트를 탐독하는 상황은 영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목회> 36쪽). 이는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상황(새 관점)을 반영한다.

패러다임 전환을 마주하는 복음주의의 태도는 어색하기 그지없다. 원래 톰 라이트는 복음주의자로 자랐고, 대학에서 복음주의 선교 단체 활동을 하였다. 적어도 초기에는 복음주의 신학자로 인정받았으며, 여전히 그는 복음주의에 말을 건네고 있다. 하지만 이제 영어권 복음주의는 그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다. 그의 신학을 관통하는 공동체 패러다임이 복음주의 운동을 떠받치는 개인주의 패러다임에 이질적이기 때문이다(이걸 가장 잘 보여 주는 게 바로 칭의론이다).

복음주의가 톰 라이트에 대해 갖는 두려움은 <목회, 톰 라이트에게 배우다>의 2장에 잘 드러난다. 그는 미래의 소망만큼이나 현재의 삶을 주목하고, 복음 전도만큼이나 사회참여를 강조하고, 우상숭배만큼이나 이원론을 비판한다. 톰 라이트는 이 모두를 포괄하는, 공동체를 중심한 신학적 조망을 제공한다. 현세에의 헌신, 사회참여에의 촉구, 이원론의 비판 모두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해명된다. 그리고 바울의 칭의에 대한 해석 또한 그 거대한 조망 속에서 전개된다.

"나는 바울이 칭의에 관해 한 이야기가 전 세계를 위한 하나님의 목적과 이스라엘과 맺으신 그분의 언약에 관한 바울의 더 큰 전체적인 이해 안에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는지 보여 주려 했다." (<목회> 14쪽)

톰 라이트의 칭의론

이신칭의 교리야말로 톰 라이트 신학 체계의 돌쩌귀다. 성찬론 해석이 개혁파와 루터파를 가르듯 칭의론 해석이 새 관점과 옛 관점을 갈라놓는다. 옛 관점에 속하는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칭의를 의의 전가로 주장하는 반면, 톰 라이트는 의의 선언으로 해석한다. 죄인에게 의가 전가되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이런 선언의 배경에 (신구약 중심을 일관되게 관통하는) 하나님의 언약과 (하나님이 창조하신) 언약 공동체가 자리하고 있다.

톰 라이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이 세우신 언약에 대한 하나님 자신의 신실하심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 백성을 향한 사랑이다. 이 사랑으로 하나님 백성을 창조하고, 회복하신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언약으로 묶인) 공동체를 창조하고, 그 공동체가 타락에 빠졌을 때에 언약에 기초하여 돌이키신다. 하나님께서는 이 공동체를 통해 세상을 다스리신다("왕 같은 제사장"). "사람이 창조된 목적은 하나님의 멋진 세계를 돌보기 위해서(중략)다."(<칭의> 356쪽)

<톰 라이트, 칭의를 말하다> / 톰 라이트 지음 / 최현만 옮김 / 에클레시아북스 펴냄 / 408쪽 / 1만 5,000원

기존 전통은 개인주의적이고 피안적인 패러다임 위에 서 있다. "파이퍼가 대변하는 전통이, 그리고 마찬가지로 다른 전통들이, 구원에 관한 성경의 설명에서 칭의의 핵심은 새 창조를 위해 인류 전체를 구출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천국을 위해 영혼을 구출하는 것이라고 별다른 토론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칭의> 20쪽) 것이 톰 라이트의 결론이다. 즉 그가 보기에 성경의 구원론은 개별 영혼의 구출이 아니라 인류 전체와 온 세상의 구원을 지향한다.

톰 라이트는 세상으로부터의 구원이 아니라 세상을 위한 구원을 말한다.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세상을 돌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의롭게 된 자기 백성을 통해 세상을 통치하신다. (중략) 의롭게 된 백성에게 약속된 영광은 (중략) 천국이 아니라, (중략) 주권적인 통치이다."(<칭의> 24쪽) 그런 의미에서 구원론은 종말론과 하나 된다. 새 하늘과 새 땅이 하나가 되는 역사의 마지막, 즉 새 창조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귀결은 인간의 부활(구속)과 세계의 갱신이다.

또한 구원 역사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자리한다. 이스라엘(아브라함과 그의 가족)을 통해 전 세계에 복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전-세계를-위한-이스라엘을-통한 하나님의-단일-계획", <칭의> 190~191쪽), 즉 "그 내러티브가 메시아 예수 안에서 그 절정에 달했"(<칭의> 62쪽)기 때문이다. 종말(완성)이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된다는 뜻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된다. 다시 말해 기독론과 종말론이 구원 경륜 속에서 하나로 수렴되는 것이다.

이러한 구원론 속에서 이신칭의 교리가 새롭게 서술되어야 한다. 초점은 하나님과 관계 맺는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다. "'이신칭의' 교리를 주로 구원론(어떻게 우리가 구원받는가)보다는 교회론(어떻게 우리가 교회를 인식해야 하는가)에 대한 내용으로 재정의했(중략)다."(<목회> 102쪽) 그의 신학적 연금술은 참된 그리스도인을 분별하는 구원의 지표로 활용된 배제의 교리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제외한 다른 모든 표지를 거부하는 포용의 교리로 바꾸어 놓았다.

"하나님의 갱신된 언약 가족 안에 속했다는 이 성령이 주시는 신분을 겉으로 보여주는 징표가 바로 믿음이다.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예수가 주이시며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는 것을 믿는 믿음이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 없이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이 믿음은 그 범위와 내용 양면에서 우리가 여기서 우주적인 갱신, 하늘과 땅의 만남이 시작되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다는 의미며, 그것은 또한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에게 하나님의 풍성한 지혜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탄생하고 있음을 선언한다는 의미다." (<칭의> 380쪽)

복음주의와 새 관점 학파의 대화

톰 라이트는 그저 칭의론의 재해석을 시도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그러나 오래된 패러다임을 우리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그의 야심은 학계를 설득하는 것을 넘어서 강단을 통해 지역교회에 적용되기를 바라는 데에 미치고 있다. "나는 당연히 내가 지금까지 해 온 작업들이 교회의 일선에서 일어나는 활동에 관여하는 사람들에게 유익한 내용들이었으면 좋겠다고 늘 바라고 기도해 왔다."(<목회> 14쪽) 그의 소망에 적극 부응하는 스티븐 커트의 간증이 예사롭지 않다.

"지난 십여 년 동안 책을 통해 톰 라이트와 만나면서 진정으로 삶이 변화되는 경험을 한 사람들이 많다. 특별히 그런 기독교인이 영국과 미국에 많으며, 나는 그 가운데 단지 한 사람일 뿐이다. 내 경우를 보자면, 신약성경을 읽는 방식이 바뀌고, 그 결과로 기독교인으로서 내 삶과 소명을 이해하는 방식이 변한 계기는 책을 통해 다른 어떤 작가들보다 톰 라이트를 만났기 때문이다." (<목회> 8쪽)

그렇다면, 이제 복음주의 진영이 톰 라이트로 회심해야 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우선 할 일은 톰 라이트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우리가 강고하게 붙잡는 교리의 틀 속에서 걸러 듣지 말고, 성경 본문 위에서 그 문제의식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옛 관점을 버리고 새 관점을 취하라는 것이 아니다. 당장 나 자신부터 새관점주의자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그의 문제의식을 수용하고, 그의 성경 해석을 가지고 (수용이던 비판이던) 대화하자고 제안하는 것일 따름이다.

톰 라이트의 칭의론과 관련하여 우리가 대화할 수 있는 영역을 교리 논쟁, 성경 해석, 범례 전이(paradigm shift)의 세 층위로 나눠 볼 수 있다. 톰 라이트는 성경을 벗어나 나름으로 자가 증식한 칭의 교리를 둘러싼 모든 논쟁에 개입하지 않고, 칭의 교리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성경 본문에 대한 해석으로 응답한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보자면, 그의 해석을 견인하는 근본적인 문제의식(새로운 패러다임)에 귀를 기울여 주기를 바랄 것이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구원론과 관련하여 복음주의는 그 협소한 시야를 넘어서야 한다. 존 스토트도 복음 전도에 관한 중책자(Our Guilty Silence)에서 전도의 동기로 하나님의 영광을 내세운 바 있다. 지옥 형벌의 모면을 전도의 중심 목적으로 삼지 말라는 것이다. 그가 간결하게 언명한 바를 떠받치는 심원한 토대를 톰 라이트는 호방한 성경 해석을 통해서 제공한다(종교개혁과 복음주의가 가장 중요하게 견지하는 미덕인 성경에 대한 헌신을 톰 라이트 역시 동일하게 강조한다).

톰 라이트의 주장을 염두에 두고 복음주의의 구원론에 대한 입장과 대화한다면,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비교적 명확하다. 그는 지금 개인 영혼과 구원에 대한 관심을 폐기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하나님의 언약과 구원의 경륜이라는 더 큰 관심 속으로 통합하라고 촉구하는 것이다. 옛 관점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새 관점과의 열린 대화에 임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옛 관점과 새 관점의 대화가 복음주의의 믿음과 영성을 더욱 풍요롭게 해 줄 것이다.

"이로써 하나님은 종교개혁자들이 열렬하게 제시하려 했던 진리들과, 또한 그들이 열렬하게 열외로 밀어내려고 애썼던 진리들 모두를 끌어안으실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러한 신학으로 개혁주의 전통을 뒤엎는 것인가? 아니, 그와 반대로 개혁주의 전통을 굳게 세우는 것이다. 루터와 칼뱅이 이루어 내려고 했던 모든 내용이 이 영광스러운 바울의 사고 틀 안에 있다." (<칭의> 381~3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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