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나의 지인들은 그랬을 것이다. 아침에 눈떠 11시 되기만을 바랐고 20여 분 동안 숨죽이며 TV 화면을 응시하였을 것이다. 등장하는 재판관들의 얼굴 표정을 깊게 주시하면서 말이다. 무슨 단서라도 얻을까 싶어서 그리했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는 불안했고 걱정했다.

온갖 추측과 거짓 기사들이 난무했고, 태극기를 앞세운 친박 단체들의 폭언이 강도를 더하면서 나라를 위한 기도가 절로 되었다. 한 사람의 운명만이 아니라 이 나라 국민들 운명이 걸린 중차대한 판결이었던 탓이다. 그래서 2017년 3월 10일은 이 땅 역사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날 중의 하나가 되었다. 평범하게 지났을 이 날을 이토록 감격스런 날로 만든 하늘의 그분과 이 땅의 민초들께 감사한다. 하느님이 우리들 희망이듯 우리도 하느님의 희망이 되었기 때문이다.

세계가 다시 한국을 주목할 것이다. 17~18차에 걸친 촛불 혁명에 놀랐던 그들이 탄핵 정국에 승리한 이 땅의 사람들을 달리 보지 않겠는가? 비록 미국의 군사패권주의에 휘둘렸고 일본의 역사 망각에 상처받았으며 중국의 경제 보복에 휘청했으나 나라의 기초를 반석 위에 두려는 끈질긴 집념을 크게 놀라며 부러워했다. 북한의 위정자들 역시 남쪽의 촛불 민주혁명을 두렵게 여겼을 것이다.

이렇듯 정의와 평화를 위한 무혈혁명은 오직 이 땅에서 가능했다. 이런 전례, 본보기를 인류사에 남겨 준 한국 국민에게 감사한다는 외신 보도도 접했다. 불의한 대통령을 하야시킨 오늘의 사건으로 우리는 이 나라의 국민 된 것을 마음껏 자랑해도 좋겠다. 겨울 한파를 무릅쓰고 비바람을 견뎠던 3개월 남짓한 기간에 우리는 참으로 하나였고 올곧게 처신했다. 통치가 아닌 정치를 원했고 정권 교체를 넘어 국민주권 시대를 바랐기 때문이다. 정치, 경제의 압축 성장 탓에 '이것이 국가인가' 물어야 했으나 역사적인 '오늘'을 만든 촛불 혁명로 다시 서구 나라들 이상의 국가를 꿈꿀 수 있었다.

사실 오늘이 있기까지 거리에서 마주한 촛불과 태극기로 인해 많이 속상했다. 같은 사안을 놓고 이렇듯 달리 해석하여 판단하는 태극기 인파들 그리고 그들 입에서 전해진 온갖 독설과 폭언이 우리들 가슴을 후벼 팠다. 가짜 뉴스까지 만들며 선한 시민을 책동했고 생활고에 시달린 우리 이웃들을 부추겨 태극기를 들게 했던 친박 집단의 죄가 너무도 중했다.

일제강점기 3·1 독립운동을 통해 목숨으로 지켜 낸 태극기를 이처럼 왜곡하고 더럽힌 정치가들, 자신들 정권 유지를 위해 국민을 수단 삼은 기득권자들의 죄가 하늘까지 닿은 것이다. 한갓 헝겊 조각이 된 태극기로 촛불을 끄려 했으나 바른 나라, 새로운 세상을 위한 시민들 열망은 중단되지 않았다. 태극기 곁에 성조기를 내세웠고 이스라엘 국기까지 등장시켰지만 촛불은 이들보다 강했다.

오히려 촛불 시민들은 태극기를 세월호 리본과 결합시켰다. 오늘의 촛불이 세월호 유족들의 피눈물을 거름으로 하여 자랐음을 아는 까닭이다. 약자의 상징이자 이 시대의 아픔인 세월호 리본과 만날 때 3·1절의 태극기가 여전히 오늘 우리의 깃발이 될 수 있다.

숨죽이며 지켜봤던 20여 분의 시간이었다. 머리 손질조차 못 하고 나온 이정미 헌법재판소장권한대행의 사진을 본 터라 그가 읽어 가는 말 한마디마다 진정성이 느껴졌다. 자신을 꾸미고 치장하는 일보다 국가적 소임을 중하게 여긴 탓이다. 뒷머리 위에 매달린 두 개의 헤어 롤을 보며 세월호 7시간 행적에 답하지 못했던 다른 한 사람이 생각났다.

청와대 주인이었던 그녀, 박근혜 대통령이 이 재판관에 의해 탄핵을 선고받고 그 집을 비우게 되었다. 한국의 첫 여성 대통령이 첫 여성 헌법재판소장권한대행에 의해 역사적 심판을 받은 것이다. 재판을 원천 무효, 곧 각하시킬 목적으로 법률가 체면까지 버리며 공세를 퍼부었던 대통령 측 변호인단 역시 재차 자신들 얼굴을 숙여야 했다.

상식까지 버려 가며 법을 궤변으로 만들었으나 재판 자체가 흠결이 없게 된 것이다. 이들 행태로 인해 많은 이들이 다시 묻고 있다. '공부는 왜 하는 것인가'를 말이다. 공부를 잘해서 법을 밥 먹는 수단으로 삼은 이들의 비열한 모습을 본 탓이다. 비정상을 정상으로 만들면서 돈 벌고 명예를 취한 이들 삶의 실상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성직자들의 말만큼 법조계 사람들의 말에도 진실이 담겨져야 힘이 있을 터, 기술적 혀 놀림이 말의 혼을 대신하고 있으니 가여울 뿐이다.

4개의 탄핵 소추 사유를 하나씩 설명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올 것 같은 두려움에 마음을 졸였다. 문화체육관광부 인사 부정 비롯하여 <세계일보> 사장 해임으로 불거진 언론의자유 침해, 급기야 세월호 참사 시 대통령의 7시간 공백도 탄핵 소추 사유가 되지 못한다는 변론에 하늘 무너지는 줄 알았다. 이 모든 것이 잘못된 것이 분명하나 헌법 위반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대통령의 무능력을 탓할 수 있으나 법으로 심판할 수 없다는 지점에서 솔직히 분노했고 맥 빠졌다. 자식들이 왜 죽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를 알기 위하여 3년이란 세월을 길에서 보낸 유족들, 아직도 진도 팽목항에 머물며 유족이 되기만을 원하는 미수습자 가족들, 이들에 냉담했고 이들을 협박했으며 거짓으로 진실을 덮으려 한 정부였는데 이에 대한 법적 심판이 어렵다니 기가 찼다. 아마도 탄핵 소추 이후의 갈등을 최소화하려는 고뇌에 찬 판결이라 생각해 본다.

하지만 페이스북을 통해 유족들의 서글픔과 서운함이 계속해서 전해지고 있다. 한 법학자의 말이 위로가 되었다. 사법적으로 판단할 수 없었으나 정치적으로는 이미 백성들에 의해 사망 선고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향후 검찰은 7시간 비밀을 밝혀 유족들의 한을 풀어 줘야 마땅하다. 정작 국민들의 정치적 판단을 두렵게 여기는 대통령이 아닌 탓이다.

마지막 최순실로 불거진 국정 농단에 이르러 법정은 비로소 대통령에게 헌법 위반의 죄목을 부과했다. 대통령 지위를 남용하여 기업의 자유를 박탈했고 재산권을 침탈했다는 것이다. 그를 권좌에서 내치는 것이 국가적 이익이라 판단했다. 뉘우침 없이 거짓을 반복했던 대통령에게서 국가적 수치를 느꼈던 것 같다. 이를 근거로 8명의 헌법재판소 재판관들 전원이 탄핵에 마음을 합해 주었다.

진영 논리와 억측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쉽지 않았겠으나 국정 공백과 국론 분열을 최소화하려는 의지가 강했다. 특별검사들과 더불어 이들 재판관들의 노고를 우리는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개인적 희생을 무릅쓰고 국가적 소임을 옳게 감당해 준 공복들이다. 정말 고맙고 감사하다. 역사가 그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대통령 박근혜의 탄핵 심판이 이뤄진 3월 10일, 거리에 나온 시민들. 뉴스앤조이 현선

100일이 넘는 촛불 집회를 통해 얻은 선물, 탄핵을 통해 우리는 지금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위기가 기회이듯이 기회 역시 위기인 탓에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지금부터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탄핵 반대자들이 일정 기간 저항할 것이며 대선 정국에 들어섰기에 정치가들 역시 이들을 이용해 정치 세력화할 것이 명백한 탓이다.

지금까지로 보아 탄핵된 박근혜의 태도 역시 혼란을 가중시킬 공산이 크다. 소추 기간에 친박 세력을 부추겼듯이 탄핵 이후에도 대통령답지 못한 행동을 지속할 것이다. 국가와 결혼했다는 말이 거짓 아니었다면 국가의 장래를 위해 깨끗이 승복해야 함에도 말이다. 자신의 비극을 내세워 동정심을 구할 수도 있겠다. 부모 잃은 딸에 대한 동정심으로 이 땅의 나이 든 여성들 지지를 받았던 옛일을 떠올릴 수도 있을 듯싶다. 하지만 이는 결코 아니 될 일이다. 탄핵된 이상 정치적으로 냉정해야 옳다.

행정부 수반인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은 가차 없이 탄핵 이후의 수순을 추진해야 한다. 정권 농단, 정경유착의 비리 근절을 위해 국회는 재특검을 가결해야 옳다. 대선 출마자들 역시 섣부른 봉합보다는 태극기를 들었던 사람들 생각을 전환시키는 것이 급선무이다. 광장에서 태동한 촛불 혁명이야말로 국민주권, 시민 주권을 회복시켜 국정 농단을 막을 수 있는 지름길인 탓이다.

탄핵 이후 정국에서 국민 통합은 힘겹더라도 모두의 발상 전환에 기초해야 한다. '대연정', '빅 텐트' 등은 정치적 협상이나 흥정을 위한 포장된 말일 뿐이다. 이런 확신과 설득력이 없다면 대선 주자의 자격이 없다. 이를 위해 대선 주자들은 광장에서 시민들로부터 더 많이 듣고 배워야 할 것이다. 보수·진보의 이념으로 편 가르는 시대는 지났다. 더 이상 종북·좌빨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이 기회가 축복이 될 수 있다. 이런 가치, 이념들을 강요한 사람들, 이를 내면화한 사람들의 저항이 결코 세상을 바꿀 수 없음을 설득할 일이다. 설득하여 생각하는 힘을 지닌 사람들로 키워 내는 것이 정치가의 몫이자 할 일이다. 상대가 좌로 치우쳐 보이는 것은 내 자신이 우로 치우쳐 있다는 반증으로 여길 수 있도록 '생각하는 백성'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들 속의 '최순실'을 점검하고 성찰하는 것도 과제라 할 것이다.

촛불 혁명을 경험한 우리는 더 이상 과거로 회귀할 수 없다. 전대미문의 탄핵을 성취한 시민이기에 자신들 운명을 쉽게 위정자에게 맡기지 않을 것이다. 권력과 법 그리고 돈을 지닌 자들의 하찮음을 맘껏 경험한 탓이다. 성직자들 역시 그들 존재의 가벼움으로 자신들 권위를 잃었다. 불행한 일이나 이것이 현실이다.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성직자들 역시 하찮아졌다. 정치가들뿐 아니라 종교인들마저 국정 농단의 부역자 내지 공범자, 동조자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정치 주권만큼이나 신앙주권이 중요해졌다.

그간 정치도 종교도 민초들의 생명력인 자발성을 억눌러 왔다. 단언컨대 정치와 종교는 '스스로 함'의 결과일 뿐이다. 스스로 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광장의 촛불이 스스로 함의 의미를 가르쳐 주었다. 국민, 시민이 스스로 주인 되는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 촛불의 명령이다. 그렇기에 탄핵 이후 대선 정국은 정권 교체는 물론 시대 교체를 넘어 의식 교체를 위한 장(場)이어야 한다. 그렇기에 대통령 되고픈 자들부터 의식이 개조되어야 한다. 국민, 시민에게 정치적 주권을 온전히 허락해야만 할 것이다. 백성을 주인 삼는 종이 될 것인지를 수백 번이라도 자문해야 옳다.

국민의 입법권을 인정할 수 있는가. 중대 범죄자를 직접 기소하는 국민 기소권을 허용할 생각이 있는가. 그리고 중요 사안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는 국민투표권도 내줄 수 있겠는가. 이렇듯 직접민주주의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시민들 기대에 부응할 것인지, 우리는 위정자들에게 물어야 한다. 기독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종교개혁자 루터의 신앙의인론이 말하듯 신앙 주권을 통해 스스로 서야만 한다. 만인사제론이 바로 그 의미를 적시한다. 스스로 자유로운 자가 되어 안식일의 노예, 성직자의 수단이 되지 말고 단독자로서 하느님 앞에 서야 할 것이다. 종교개혁과 정치 개혁은 동전 양면처럼 함께 짝하여 있다.

이제 끝으로 광화문광장의 '광장 극장 블랙텐트'에서 일했던 한 연극인의 고백을 소개하겠다. 사람들 의식이 이렇게 달라져 있음을 정치가와 성직자들이 깨닫도록 하기 위함이다. 시민 의식을 따르지 못한 정치가와 성직자, 그들에게서 민초를 호도하는 독재가 비롯하는 법이다.

"(전략) 이제 와서 되짚어 보면 그것은 우리가 추구한 것에 개인의 이익이 들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서로에게 책임이나 일을 미루지 않고 누구도 성과나 공을 자기 자신 앞으로 끌어당기지 않는 '우리'가 함께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극단 대표가 아니라 객석의 담요를 개거나 눈비를 치우는 일꾼으로, 평론가가 아니라 극장 벽에 포스터를 붙이는 일꾼으로, 기획자가 아니라 모금을 부탁한다고 목청높이는 모금가로, 배우가 아니라 영수증을 정리하는 일꾼으로 이 극장에 있었습니다. 그런 '우리'가 되어 함께 일하는 시간은 내 생애 가장 값지고 아름다운 경험이었습니다. (중략) 무엇보다 내가 아름다웠다 말하는 이 시간이 가족을 잃은 이들과 삶을 빼앗긴 수많은 이들의 처절한 슬픔과 고통위에 잇다는 사실을 잊지 않겠습니다. 내가 일했던 극장 밑에 쌍용차와 기륭전자 그리고 세월호가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늘 마음에 얹고 살겠습니다."

탄핵 이후 대선 정국에서 이런 삶을 살아 낼 대통령을 선택하는 것이 우리들의 중차대한 과제가 되었다. 정치가든 성직자든 삶이 없이 말만 하는 이들을 믿지 않아야 한다.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고 홀로 설 때 위정자의 의식도 달라질 수 있다. 우리가 변한 만큼 다른 대통령을 만날 수 있을 뿐이다. 이로써 도의(道義)가 넘치는 세상을 살게 되리라.

이정배 / 전 감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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