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재적 삼위일체와 경륜적 삼위일체> / 백충현 지음 / 새물결플러스 펴냄 / 426쪽 / 1만 6,000원

향연

저자는 삼위일체 교리가 아우구스티누스를 시작으로 토마스 아퀴나스에게서 한 번 더 주목을 받았다가, 400년의 침묵 이후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에 들어와 르네상스를 맞이하게 되었다고 밝힌다. 20세기와 21세기에 와서는 삼위일체론의 놀랍고 풍부한 잠재력이 재발견됐다. 이로써 삼위일체론은, 영원히 미제로 남겨져 있을 것 같았던 존재론과 인식론의 불일치·갈등이 있었던 기독교 철학과 신학 모든 영역에서 희망이 되고 있다.

근대에 데카르트, 칸트를 거치면서 인간 사유의 중심이 존재론에서 인식론으로 급격하게 옮겨졌다. 이것으로 과학적 사고의 붐이 일어났는지, 과학적 사고가 인식론의 붐을 일으켰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이와 함께 삼위일체론 같은 존재론적 주제는 논의 대상에서 사라졌다. 더 이상 신의 존재와 현실 사이를 잇는 노력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나님은 초월적 존재로 남기고, 인간은 현실에서 초월적 하나님의 도움만 구하는 이성 중심적 신앙을 하게 된 것이다.

삶의 문제보다 이성적 믿음의 문제가 부각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현실적인 삶의 문제에서 하나님과의 관계적인 측면에서의 믿음이 비즈니스적이고 원리적이며 개념적인 믿음으로 변형되면서 현실과 신앙은 분리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만히 있지 않고 다시 삼위일체를 떠올리게 했다.

본서는 8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은 서론이며, 2장에서는 삼위일체 신학의 현대적 르네상스를 다룬다. 3장에서는 철학적 배경으로서 존재론과 인식론을 설명하고, 4장은 내재와 경륜의 역사적 논의를 다룬다. 5장과 6장이 본론으로, 클라이맥스에 해당한다. 7가지 주제에 대한 현대 신학자 11명의 설명이 있다. 7장은 앞의 논의들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8장에는 전체적인 결론과 삼위일체론에 대한 앞으로의 논의 방향이 제시돼 있다.

클라이맥스

5장과 6장은 본서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한다. 11명의 현대 신학자를 한 명씩 검토한다. 이들의 입장은 내재적 삼위일체와 경륜적 삼위일체와의 관계에 따라 7가지로 분류된다. 각각의 입장은 이렇다.

첫째, 칼 바르트의 상호 상응적 입장에서는 경륜적 삼위일체가 내재적 삼위일체로 나아가는 인식론적 관문이며, 내재적 삼위일체는 경륜적 삼위일체를 위한 존재론적 원형이다. 경륜적 삼위일체를 통해 영원한 성부, 영원한 성자, 영원한 성령을 인식하는 데로 나아간다. 내재적 삼위일체는 우리에게 아버지가 되시는 창조주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의 존재론적 기초와 방식과 이유가 된다.

둘째, 칼 라너의 동일성의 규칙은 경륜적 로고스가 내재적 로고스이며, 그 반대로 성립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규칙은 우리가 구원 역사에서 경험하는 성령은 삼위일체 안에 계신 영이며, 그 반대도 성립한다. 그러므로 이 규칙은 성부 하나님에게서 성자의 성육신과 성령의 강림을 통해 하나님 자신을 전달하심을 의미한다.

셋째, 종말론적 일치의 입장인 몰트만은 경륜적 삼위일체가 종말론적으로 내재적 삼위일체이며, 내재적 삼위일체는 송영적으로 경륜적 삼위일체라고 주장한다. 판넨베르크는 자신의 미래주의적 형이상학을 토대로 삼아 하나님의 활동은 종말에 완성되며, 그러기에 경륜적 삼위일체와 내재적 삼위일체의 일치는 종말론적으로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젠슨은 하나님의 정체성을 성서의 내러티브를 통해 파악하는 자신의 신학적 방법을 근거로, 내재적 삼위일체가 경륜적 삼위일체의 종말론적 실재라는 의미로서 경륜적 삼위일체와 내재적 삼위일체의 동일성은 종말론적이라고 주장한다.

넷째, 피턴저는 과정신학자이고 보프는 해방신학자라는 점에서 양자가 신학적으로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두 사람은 내재적 삼위일체가 경륜적 삼위일체보다 훨씬 더 크다는 점에서 공통된 입장을 가진다. 보프는 성자의 성육신과 성령 강림의 경우, 경륜적 삼위일체가 내재적 삼위일체이며 그 반대로 성립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적, 구원적 사건 이외에 내재적 삼위일체가 경륜적 삼위일체보다 훨씬 더 크다고 주장한다.

피턴저는 내재적 삼위일체가 경륜적 삼위일체 안에 지고하게 표현되지만 그렇다고 배타적으로 표현되는 것은 아니며,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결정적이고 집중적으로 행동하시지만 이러한 신적 행동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역사적 인물에게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함의한다. 또한 성령이 초기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신적 행동에 응답할 수 있도록 하는 신적 응답의 역할은 하지만, 이러한 신적 응답이 기독교 공동체의 성령에만 제한되는 것은 아니다.

다섯째, 브라켄은 되어 감의 형이상학과 사회적 존재론을 전개하면서 경륜적 삼위일체를 내재적 삼위일체 안으로 '침지'시키는 경향을 강하게 보이고 있다. 내재적 삼위일체의 활동 방식이 경륜적 삼위일체 활동 방식과는 질적으로 다를 뿐만 아니라, 내재적 삼위일체가 경륜적 삼위일체를 내재적 삼위일체의 활동들 안으로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섯째, 수코키와 라쿠나는 관계적 존재론을 강조하면서 내재적 삼위일체를 경륜적 삼위일체 안으로 '흡수'하는 쪽으로 불가피하게 나아간다. 수코키에게 내재적 삼위일체는 세상-안에-존재하는 경륜적 삼위일체로서 세계와 이미 본질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 반면 라쿠나는 존재론적으로 서로 다른 두 개 수준에 속한 삼위일체들을 가정하는 것을 단호하게 반대한다. 하나님께서 밖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엑스터시적 운동, 곧 성부로부터 성부로 이르는 운동을 제안한다. 여기에는 오직 하나의 오이코노미아만이 존재한다. 데올로기아의 구체적인 실현으로서 하나의 오이코노미아가 존재한다. 오이코노미아는 하나님의 내적인 관계들의 감추어진 영역을 반사하는 거울이 아니며, 데올로기아는 무(無)-역사적‧초(超)-경륜적인 정적인 영역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이정용은 하나님의 감동성에 신학적인 관심이 있었기에 본래부터 라너의 동일성 규칙에 많은 관심을 보였고, 바르트처럼 경륜적 삼위일체와 내재적 삼위일체의 구별과 일치성을 모두 주장했다. 그러나 바르트의 상호 상응적 입장이나 라너의 동일성 규칙 대신 내재적 삼위일체와 경륜적 삼위일체의 일치성을 양(陽)과 음(陰)의 양극적인 상호 초월성에 근거시킨다. 이러한 근거를 바탕으로 이정용은 경륜적 삼위일체가 내재적 삼위일체 안에 존재하며, 그 반대로 성립한다고 주장한다.

7장에서는 이들의 논의를 비판적으로 분석을 하고 있다. 존재론은 대체로 내재적 삼위일체와 경륜적 삼위일체 각각의 존재론적 지위와 관련되며, 인식론은 대략적으로 각각에 관한 우리의 지식과 연관된다. 여기서 저자는 존재론과 인식론이 내재적‧경륜적 삼위일체 관계에 관한 현대적 논의들 각각의 입장이 상호적으로 깊이 섞여 있다는 점과 신적 신비 개념이 각각의 입장 속에서 드러나는 존재론적 긴장이나 인식론적 긴장을 해소하는 기능을 담당하면서 7개의 현대적 논의 각각 입장에 깊이 연루되어 있음을 밝혀 간다.

결론

저자는 현대 삼위일체 신학의 르네상스로서 가장 많이 다루어지고 있는 주제 중 하나가 바로 내재적 삼위일체와 경륜적 삼위일체의 관계다. 저자는 이에 대한 신학자 11명의 7가지 입장을  각각의 입장이 토대하고 있는 존재론과 인식론의 관점에서 분석했다.

이런 작업을 통해 본서는 존재론과 인식론이 각각의 입장들 속에 필수 불가결하게 개입하고 있음을, 각각의 입장이 존재론적 긴장 혹은 인식론적 긴장이나 양자를 노출하고 있으며 이러한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 신적 신비 개념이 사용되고 있음을 밝혔다. 본서 한 권으로 현대 삼위일체의 주요 관점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라 여겨진다.

*이 글은 <크리스찬북뉴스>에도 실렸습니다.
강도헌 / <크리스찬북뉴스> 운영자, 주님의교회 담임목사, 프쉬케치유상담연구원 원장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