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가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고 발표한 순간 사람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뉴스앤조이 현선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이 열린 3월 10일 헌법재판소 앞은 이른 아침부터 긴장감이 맴돌았다. 경찰은 경복궁역을 시작으로 헌법재판소가 있는 안국역 일대까지 버스로 길목을 막았다. 기자도 신분증을 3번 보여 주고 나서야 헌재 정문에 다다를 수 있었다. 경찰 수십 명이 정문 앞을 지켰다. 바로 옆에는 취재진이 자리했다.

조용하던 헌재 분위기는 안국역에서 날아온 '군가'로 깨졌다. 탄핵기각을위한국민총궐기운동본부(탄기국)는 이날 9시부터 탄핵 반대 집회를 시작했다. '탄핵 각하' 소리가 헌재까지 닿았다. 탄핵을 반대하는 일부 시민은 집회 장소가 아닌 헌재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가, 이내 경찰에 가로막혔다.

탄핵 심판이 있던 3월 10일 오전 헌재 정문. 뉴스앤조이 현선

헌재에서 나와 탄기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출구를 빠져나오자마자 눈앞에는 태극기와 성조기가 보였다. 군가가 쉼 없이 흘러나왔다. 무대에 선 사회자는 틈틈이 '탄핵 각하'를 외쳤다. 현장에서 '한국기독교성직자구국결사대' 문구가 적힌 가운을 입은 노년의 남성을 만났다. 구국결사대는 3월 1일 '구국 기도회' 집회에서도 탄핵 반대를 외친 단체였다. 

남양주에서 왔다는 구국결사대 장태복 장로는 "조작된 뉴스를 보고 뒤늦게 (사실을) 알았다. 탄핵은 각하돼야 한다"고 말했다. 헌재가 탄핵을 인용한다고 해도 승복할 수 없다고 했다. 장 장로는 "절차가 잘못됐다. 법에 따라 탄핵하고 조사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특검 수사 결과도 믿을 게 못 된다. 이런 식으로 하면 다음 대통령도 탄핵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탄핵 반대 집회 현장은 발걸음을 옮기기 힘들 정도로 북적였다. 비좁은 도로에서 태극기를 팔고, 성금을 걷고, 새누리당(가칭) 가입 원서를 받는 등 복잡했다. 탄기국은 국회 해산을 주장하는 한편 2주 전부터 정당 조직을 꾀하고 있다.

안국역에는 탄기국 회원 수만 명이 모여 탄핵 각하를 외쳤다. 뉴스앤조이 현선

탄핵 반대 집회와 달리, 탄핵 인용을 촉구하는 집회는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참가자 대부분은 도로 위에 앉아 헌재 판결을 기다렸다. 이따금씩 군가와 '탄핵 반대' 외침이 경찰 버스를 타고 넘어왔다.

현장에서 만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총장 강문대 변호사는, 이 정도 사유면 당연히 탄핵돼야 한다고 말했다. 강 변호사는 "탄핵이 무효라는 주장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자신이 지지한 대통령이 물러나는 모습이 편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탄핵 사유가 잘못됐다', '조작됐다'고 말하는 건 객관적인 정황증거에 맞지 않는 독단적인 주장에 불과하다"고 했다.

신앙인이기도 한 강문대 변호사는 대형 교회와 기독교인을 향해 안타까운 감정도 내비쳤다. 그는 "이렇게 법적 요건과 사실관계가 드러나는데도, 대형 교회가 조직적으로 (탄핵 반대에) 관여한 건 심각한 문제다. 사회문제에 이렇게 둔감할 수 있는지 정말 낙담되고, 좌절스럽다. 우리가 주장하는 신앙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사회 속에서 이 정도로밖에 드러나지 못하는지 안타깝다"고 말했다.

오전 11시. 이정미 헌재소장권한대행이 결정문을 읽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방송을 보며 숨을 죽였다. 공무원 임면권 남용과 언론 자유 침해, 생명권 보호 의무 위반 혐의(세월호)는 탄핵 소추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발표에 사람들 표정은 어두워졌다. 반대로 탄핵 반대 진영에서는 "와" 하는 소리와 함께 군가가 더욱 크게 울려 퍼졌다.

반전은 있었다. 최서원(최순실)의 국정 개입 허용과 권한 남용은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는 말에 시민들은 뛸 듯이 기뻐했다.

"대통령은 최 씨의 국정 개입 사실을 철저히 숨겼고, 그에 관한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이를 부인하며 오히려 의혹 제기를 비난했다. 이로 인해 국회 등 헌법기관에 의한 견제나 언론에 의한 감시 장치가 제대로 작동될 수 없었다. 대통령의 이러한 헌법과 법률 위배 행위는 재임 기간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루어졌고, 국회와 언론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사실을 은폐했다. (중략)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사람들은 부둥켜안은 채 환호했다.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시민도 있었다. 박근혜정권퇴진행동운동본부는 현장에서 바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퇴진행동본부는 "주권자들의 승리를 선언한다. 시민들이 승리했다. 불의한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추운 겨울 촛불을 켜고 광장을 지켰다"며 자축했다.

헌재가 탄핵을 인용하자 사람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뉴스앤조이 현선
세월호 유가족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뉴스앤조이 현선
눈물을 흘리는 시민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뉴스앤조이 현선

참가자들은 청와대가 있는 청운동으로 행진했다. "촛불이 승리했다", "우리가 승리했다", "이제는 구속이다", "박근혜는 방 빼라"는 구호를 외쳤다. 참가자들의 표정은 따뜻한 날씨만큼이나 밝게 느껴졌다. 행진하면서 만난 신앙인들 역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향린교회 이욱종 씨는 "이 나라의 시민 주권을 찾아서 너무 기쁘고 감동적이다. 함께한 기독인 여러분 정말 수고 많았다. 하지만 아직 이 나라에 억압받고 불의에 희생된 사람이 너무 많다. 더 많은 기독인의 관심을 필요로 한다. 세월호도 그렇고 (기독인이)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퇴진기독교운동본부 기동서 집행위원은 "이 나라에 새로운 길을 하나님이 열어 주신 것 같아서 매우 만족하고 기쁘다. 매주 주말마다 깃발을 들고 나왔다. 박근혜 없는 따뜻한 봄을 맞이하게 해 달라고 열심히 기도했는데, 그렇게 됐다. 앞으로가 중요하다. 조기 대선이 열릴 텐데 기독교운동본부는 (대선에서) 불법 선거가 없도록 최선을 다해 감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톨릭 신학자 김근수 선생은 "너무 기쁜 날이고 이렇게 행복한 날이 일생에 몇 번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헌법재판관이 국민 마음을 잘 헤아렸다고 본다. 이제 적폐 청산이 시작됐다. 박근혜를 구속 수사하고, 우병우도 감옥에 처넣어야 한다. 이 나라를 새로운 나라로, 정의로운 나라로 만드는 출발이 시작됐다. 오늘은 온 국민이 마음껏 축하하고, 축배를 들길 바란다"고 했다.

'박근혜 없는 3월 그래야 봄이다', '헌재는 탄핵하라'는 피켓을 들고 행진했다. 뉴스앤조이 현선
참가자들은 탄핵 인용을 축하하면서 안국역에서 청와대 인근까지 행진했다. 뉴스앤조이 현선

헌재가 세월호와 관련해 박 전 대통령에게 책임이 없다고 판단했지만, 세월호 유가족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효자동삼거리에서 세월호 인양 피켓을 든 창현 어머니 최순화 씨는 "박근혜는 한 번도 조사를 안 받았다. 그러나 아직 자료가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압수 수색해서 다시 조사하면 굉장히 많은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월호도 곧 인양될 것이다. 대통령 탄핵만큼 국민이 눈을 부릅뜨고 계속 지켜봐 달라"고 했다.

최순화 씨와 함께 세월호 피켓을 든 광화문 봉사자 조미선 씨는 한국교회가 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 씨는 "탄핵 정국을 보며 교회에 대한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다. 탄핵을 요구하는 국민이 70~80%나 됐는데, 교회는 국민의 정서와 다르게 이야기했다.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된 목소리를 냈으면 한다"고 말했다.

새길문화원 정경일 원장도 함께 세월호 피켓을 들었다. 정 원장은 "탄핵은 '사필귀정'이다. 봄이 오고 있는 느낌이다. 너무 행복하다. 봄이 사회 전체로 퍼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 원장은 "이제 시작이다. 교회가 사회 상식보다 밑으로 내려가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교회는 사회 정치 윤리 문제에 있어서, 사회보다 책임 있고 진보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탄핵은 인용됐지만, 시민들의 행동은 계속된다. 박근혜퇴진행동본부는 3월 10일 저녁 7시 광화문에서 '탄핵 축하 집회'를 열기로 했다. 11일 오후 4시, 같은 장소에서 집회할 예정이다.

세월호와 관련해 박 전 대통령에게 책임이 없다고 판단했지만, 세월호 유가족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뉴스앤조이 현선
탄핵 소식을 들으며 환호하는 시민. 뉴스앤조이 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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