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갓페미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 기대됐어요. 다들 페미니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거든요." 
"이런 행사가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그간 우리에게는 이런 이야기를 할 자리가 없었잖아요."

"여기 오니까 주체적인 저를 발견하게 돼요. 공동체에 있을 때는 형제들이 이야기하는 걸 듣고만 있는데."

[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밤늦은 시간까지 폭풍 수다는 계속됐다. 10시 넘어서까지 이야기는 그칠 줄 몰랐다. 이곳저곳에서 깔깔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한 사람이 이야기를 시작하면 주변에서 손뼉을 치며 호응하고 동의했다. 가끔 말도 안 되는 경험담이 나오면 "헐, 미쳤어"라는 반응도 튀어나왔다. 경험담을 나누는 참가자에게 자기 검열은 없어 보였다.

이들의 이야기는 마르지 않는 샘물 같았다. 짧게는 20년, 길게는 30년 넘게 교회 여성으로 살면서 차별을 많이 겪었기 때문일까. 기독교인 여성 수십 명은 3시간가량 교회와 선교 단체에서 겪은 불편한 체험담을 쏟아 냈다.

세계여성의날을 맞이해 IVF 서서울지방회가 기독교와 페미니즘을 주제로 행사를 열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갓페미(갓+페미니즘): 잠잠할 수 없는 자매들의 이야기'는 IVF(한국기독학생회) 서서울지방회가 마련한 행사다. 3월 8일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여성의 목소리를 담는 연합 행사를 기획한 것이다. IVF 서서울지방회 학생들을 대상으로 연 행사였는데, 졸업생과 타 지방회 학생들도 참가했다.

현장 곳곳에는 #기분이_조크든요#나는_페미니스트입니다#I_DRESS_FOR_ME라고적힌 팻말이 학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참가자들에게는 성폭력 발생 시 대응 매뉴얼과 여성 혐오 없는 문화를 알리는 만화 '착한 아이에게는 보이지 않는'을 제공했다.

갓페미에 참여한 학생들은 △내 안에 참자매가 없다 △설교 망치는 남자 △페미의 길 그리스도의 길 △여성, 그대의 사역은 △아담 왜 침묵? 등 다섯 가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특정 여성을 참자매로 규정하는 공동체,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존재로 보지 않는 목사들 시각에 대한 불만이 묻어났다.

갓페미에 온 여성들은 교회와 선교 단체에서 겪었던 이야기를 쏟아 냈다. 옆에 있는 사람들은 박수로 호응했고, 자기 이야기를 마친 여성들의 얼굴은 밝았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현장에서 나온 이야기를 모아 봤다.

"남성 시각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는 걸 문득 깨닫게 됐어요. 사회나 교회 안에서 '자고로 여자는'이라는 이야기를 들어 왔어요. '여자는 많이 먹으면 안 된다', '여자는 여리여리해야 한다', '자매는 형제를 세워 주고 인정해 주는 말을 해야 한다', '나이가 많으면 안 된다', '성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면 안 된다', '파인 옷을 입으면 안 된다'라고 했어요."

"사람들이 저를 처음 보면 '덩치가 크다', '키가 크다', '목소리가 크다'고 말했어요. 저라는 사람을 부인하는 말들이었어요. 저는 이런 말들을 들으면서 자존감이 낮아졌어요. 마치 제 외모나 성격이 여성스럽지 못한, 선교 단체가 규정해 놓은 참자매에 속하지 않는다고 받아들여졌거든요. 저는 참자매가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어요. 키를 조금이라도 작아 보이기 위해 어깨를 구부리고 다니고 목소리를 작게 내는 법도 찾아봤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슬프고 화나는 일이죠."

"수련회에서 화장을 안 하고 있었어요. 제 얼굴을 본 어떤 형제가 어디 아프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자기 얼굴은 보지도 않으면서요. 사람들은 화장에 대해 말을 참 많이 해요. 하루는 화장을 하고 싶어서 하고 교회에 갔더니, 반응이 좋았나 봐요. 목사님이 저한테 '○○야, 네가 화장하니까 형제들한테 인기가 좋더라. 예쁘게 꾸미면 좋겠다'는 식으로 이야기했어요. 누구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화장한 게 아니고 그냥 제가 하고 싶어서 한 건데 왜 그런 말을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DPM(IVF 기도 모임)에 갔어요. 제가 짧은 바지를 입고 갔는데 갑자기 한 오빠가 저한테 담요를 덮어 주더라고요. 그때는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좀 이상했어요. '나는 더워서 짧은 바지 입은 건데, 왜 담요 덮어 주는 거지?', '내가 담요 달라고도 안 했는데 왜 담요 주는 거지?' 했어요. 짧은 바지가 불편하면 자기가 저를 안 보면 되는 거 아닌가요?"

"목사님이 설교 중에 의아한 말을 했어요. 만약 로또가 당첨되면 형제들은 차와 건물을 살 거라고 말했어요. 그때만 해도 '이거 뭐지?' 했는데, 그 뒤에 한 말이 가관이었어요. 자매들은 로또가 당첨되면 강남에서 성형하고 명품 가방을 살 거라는 거예요. 이건 아니다 싶었죠."

"교회는 자매들을 마치 상품처럼 대해요. 아직 결혼하지 않은 여자 청년이 몸이 아프다고 하면 '네가 결혼하지 않아서 그래'라고 말하기도 하고. 목사님과 장로님이 대화하는 걸 들었는데, 교회 자매들을 며느리 후보로 여기는 듯한 발언을 했어요. 자매를 마치 자기 아들의 잠재적인 여자 친구나 며느리처럼 보더라고요. 이름 대신에 '예쁜아'라고 부르기도 하고요. 기분이 불쾌해요."

"저는 전도사로 활동하고 있어요. 신학대학교를 졸업한 지 3년 정도 됐어요. 대학원 진학을 두고 고민이 많았어요. '목회하고 싶은데 여자로서 가능할까'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청소년에 관심이 많아서 청소년부만 지원했어요. 다 떨어지더라고요. 그런데 초등부에 지원하니까 바로 됐어요. 이 이야기를 남성 신학생들에게 이야기하니까, '네가 여자라서'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나중에는 여자라는 이유로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고 있는 상황 자체가 화가 났어요."

"페미니즘을 최근에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그 전까지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차별받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시각이 점차 변했어요. 교회나 선교 단체는 여성에게 부드러움을 강조해요. 학생들이 오면 웃으면서 반겨 줘야 하고 환대해야 해요. 이런 업무는 남성 간사보다는 여성 간사들이 주로 맡게 되죠."

갓페미에 온 참가자들. 이들은 교회와 선교 단체 안에서 이런 모임이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여성 혐오 교회·선교 단체
이제 그만!
페미니즘 책 모임하자

애석한 경험담을 나눈 여성들의 얼굴은 밝았다. 이야기를 주고받던 참가자들은 이제 교회가 바뀌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여성 혐오 없는 설교, 참자매를 강요하지 않는 공동체,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더 이상 이전의 교회 문화를 웃으며 넘길 수 없기 때문이다.

참가자들은 갓페미와 같은 행사가 선교 단체 안에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개별적으로 페미니즘을 찾아보고 책을 읽기도 하지만 공동체 차원으로 서로를 응원하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각 캠퍼스에서 페미니즘에 관심 있는 학생들과 책 나눔을 해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나왔던 이야기는 올해 상반기 안으로 소책자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소책자는 IVF 지방회에 배포된다. IVF 수련회에 설교하러 온 목사에게도 전달해, 설교 중 조심해야 하는 점들을 알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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