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76년간 비혼(非婚)으로 산 여성이 있다. '여자라면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말이 통념일 때부터 비혼을 선택했다. 김애순 작가(76) 이야기다. 김 작가는 최근 <한국일보>가 '비혼 특집'으로 기획한 인터뷰에 나와 세간에 회자됐다. 그는 1994년부터 독신의 삶을 권장하는 비혼 지침서 세 권을 썼다.

당당하게 혼자 사는 모습을 보여 준 김애순 작가. 그는 3월 7일, 더불어민주당 표창원·박주민 의원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신사와 거지'에 출연했다. 팟캐스트를 방청한 남성은 "시간과 돈을 나를 위해서 사용하고 싶어 비혼을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사람들 앞에서 70년 넘게 혼자 살기를 '스스로' 결정한 자신의 삶을 반추했다. 그가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사람들은 유쾌하게 웃었다.

비혼 특집에는 유독 젊은 사람들이 많았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김애순 작가가 결혼을 생각하지 않게 된 계기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일단 가정사가 한몫했다. 그는 어린시절 바람 피우는 아버지와 속앓이하는 어머니를 보며 자랐다. 남성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생긴 것이다. '굳이 결혼해야 할까' 싶었다. 중학교 시절에 본 '검사와 여선생'라는 영화도 영향을 미쳤다. 여성 변호사가 사람을 돕는 장면이 나왔다. 김 작가는 가정에 얽매이지 않고, 영화 속 변호사처럼 박애 정신을 갖고 어려운 사람을 도우며 살겠다고 다짐했다.

김애순 작가가 생각하는 비혼의 장점은 무엇일까. 그는 76년간 무한한 자유를 누렸다고 했다. 비혼이라 자신의 꿈을 좇을 수 있었다. 김 작가가 40대였을 때만 해도, 가정 내 여성의 역할은 분명했다. 집안일과 육아는 오롯이 여성의 몫이었다. 이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결혼과 동시에 꿈을 포기하는 일이 당연시됐다. 다른 사람을 돕는 일에 유독 관심 있는 김 작가는 혼자였기 때문에 공무원, 국회의원보좌관으로 일하고 NGO, 시민단체 등에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작가는 행복했다.

76년간 혼자 산 김애순 작가. 그는 당당했고 호탕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정작 걱정은 지인들이 했다. 결혼하지 않겠다는 김 작가의 생각은 용납되지 않았다. 젊은 시절에는 "여자가 얼마나 별로면 아직까지 혼자 살겠어", "일단 눈 좀 낮춰서 시집가라"는 말을 들었다. 70이 넘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이 지긋한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시집가라"고 한다. 어떤 이는 "늙어서 혼자 살면 외롭다"며 그를 걱정한다. 김애순 작가는 주변 사람의 걱정에 호탕하게 반응한다.

"늙으면 다 외로워요. 남편이 있어도 외롭고 자식이 있어도 외로워요. 오히려 남편 있는 사람들이 더 외로움을 느껴요. 가족 간에 문제 있으면 그렇잖아요. 그런데 저는 가족이 없으니까 외롭지도 않고 잠도 잘 자요."

김애순 작가는 결혼을 당연시하는 사람들에게 당부했다. "여성에게 결혼은 필수이고 직업은 선택인 시대가 아니에요. 결혼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젊은 사람들 많아요. 자기에게 투자하고 싶어서 안 하는 사람도 있고 여건이 되지 않아 결혼하지 못 하는 사람도 많은 거 같아요. 흙수저들은 결혼하기 쉽지 않잖아요. 이런 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결혼하라고 하는 건 젊은이에게 스트레스만 줄 뿐이에요."

김애순 작가와 함께 나온 <한국일보> 김혜영 기자도 김 작가 말에 동의했다.

"김애순 작가를 볼 때마다 즐거운 이야깃거리가 많다고 생각해요. 풍요롭죠. 그런데 어떤 사람은 결혼 여부로만 사람을 판단해요. 정말 바보 같은 일이에요. 기혼자는 기혼자대로, 비혼자는 비혼자대로 다양한 삶의 형태를 존중하는 문화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표창원·박주민 의원이 출연하는 팟캐스트 '신사와 거지'는 페이스북 페이지와 팟빵에서 청취할 수 있다. 두 의원은 매주 한 주제씩 정해 팟캐스트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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