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정의당 대선 후보 심상정 대표가 3월 6일 탈핵 로드맵을 발표했다. 정당 중에는 최초로 구체적인 탈핵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심 대표는 2022년, 2025년까지 각각 탈핵 제로를 하겠다고 선언한 독일과 대만을 언급하며, 탈핵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정신이라고 했다.

그는 2040년까지 한국에 있는 핵발전소 25기를 모두 폐쇄할 뜻을 밝혔다. 심 대표는 현재 건설 중인 신고리 4·5·6호기, 신한울 1·2호기 건설을 중단하고, 2030년까지 노후 핵발전소 12기를 모두 폐쇄할 것이라고 했다.

심상정 대표가 공약한 탈핵 정책은 뜬금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정의당 생태에너지부가 꾸준히 관심 갖던 분야이고 실현 가능성을 강조하던 내용이다. 이들은 지금까지 한국에 팽배했던 친핵발전소 정책을 재고해야 하며, 이제 탈핵을 공약하는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환경 단체들도 이 점에 동의한다.

정의당이 '2017년 탈핵 대통령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2020년대는 핵 산업 전환기
노후 핵발전소 연장만 안 해도
25개 중 12개가 문 닫아

탈핵 대통령은 정말로 가능할까. 심 대표가 탈핵 로드맵을 발표한 당일, 정의당은 '2017년 탈핵 대통령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주제로 시민단체와 함께 토론회를 열었다.

이헌석 대표(에너지정의행동)는 왜 차기 대통령이 탈핵 운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지를 설명했다. 지금까지 정부는 핵발전소를 긍정적으로 평가, 개발 정책을 펴 왔다. 그러나 핵발전소 위험성은 매스컴과 시민단체를 통해 점차 드러나고 있다. 이 대표는 "2020년대는 핵 산업이 전환기를 맞이하는 때이다. 한국은 1970년대 말부터 핵발전소 건설에 열을 올렸다. 2020년대가 되면, 당시 지었던 핵발전소 설계 수명이 끝난다. 노후 핵발전소 수명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결정만 해도 한국에 있는 핵발전소 25개 중 12개가 문을 닫는다"고 했다.

상황은 긍정적이지 않다. 원자력안전위원회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설계 수명이 30~40년으로 정해진 노후 핵발전소가 안전하다며 수명을 연장하려고 한다. 신규 핵발전소도 건설 중이다. 19대 대통령이 핵발전소 추가 건설을 결정하지 않아도, 신규로 건설된 핵발전소를 자동으로 떠안게 되는 셈이다.

당장 차기 정권은 신고리 4호기 가동 문제를 결정하게 된다. 이헌석 대표는 "만일 차기 대통령이 탈핵에 대한 구상 없다면, 지금까지 해 온 친핵발전소 정책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탈핵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의당 생태에너지부 김제남 본부장. 그는 탈핵을 이루기 위한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2040년까지 모두 폐쇄
재생에너지 40% 확대
전력 소비 낮추겠다

김제남 본부장(정의당 생태에너지부)은 정의당을 대표해 탈핵 한국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했다. 정의당이 내놓은 탈핵 공약은 크게 네 가지다. △원자력 진흥 정책을 폐기하고 2040년까지 모든 핵발전소를 폐쇄한다 △2030년까지 전력 소비를 OECD 평균 수준으로 낮추는 전력 수요관리 정책을 추진한다 △세계 최저 수준인 재생에너지 공급 비중을 2040년까지 40%로 확대한다 △탈핵 목표를 2040년까지 잡고 에너지 전환을 위해 제도적 기반을 만든다.

정의당은 고리 1호기 폐쇄를 시작으로 법원이 수명 연장을 취소한 월성 1호기를 폐쇄할 계획이다. 건설 중인 신고리 4·5·6호기와 신한울 1·2호기도 건설을 중단하고, 건설 예정인 삼척과 영덕 핵발전소 계획을 모두 백지화한다. 경주 지진으로 확인된 지진 위험 지대에 가동 중인 월성 1~4호기는 안전 검증을 위해 가동을 중단하고, 지진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조기 폐쇄할 작정이다. 최소 10만 년 이상 생물권에서 격리해야 하는 독성 물질인 '사용 후 핵연료' 파이로프로세싱 실험을 중단하고 대전에서 실험 중인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를 금지할 생각이다.

핵발전소를 대체할 재생에너지도 구상 중이다. 태양광 산업과 풍력 산업을 녹색 산업으로 지정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할 계획이다. 또 전력 공급 체계를 지역으로 분산해 대규모 송전탑 때문에 생기는 국민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한다.

2040 탈핵 로드랩을 설명한 김제남 본부장. 그는 탈핵 로드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탈핵에너지전환특별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본부장은 "그동안 한국은 원자력 진흥 정책에 우선해 자원, 법과 제도가 핵발전소 개발에 일방적으로 편중돼 있었다. 이 체계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다른 법률에 우선해 적용할 수 있는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탈핵에너지전환특별법은 심상정 대표가 대선 공약으로 발표한 네 가지 사안을 포함한다. 김제남 본부장은 틀은 정당이 만들지만 국민 참여를 활성화할 생각이다. 탈핵 목표를 2040년으로 정했지만 구체적인 탈핵 목표 연도는 '국민투표'로 결정할 계획이다. 정의당은 국민 대다수가 탈핵 정보가 없는 현 상황을 고려, 원자력 발전의 단계적 축소를 위한 대국민 홍보와 교육 방안을 시행할 예정이다.

환경운동연합의 양이원영 처장. 그는 국민에게 탈핵 공약을 제시한 대통령을 지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 안에서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두 사람의 발표가 끝나고 시민단체에 몸담고 있는 활동가들이 정의당의 탈핵 로드맵에 제언했다. 양이원영 처장(환경운동연합)은 국민투표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탈핵 운동이 본격화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대부분, 핵발전소가 건설되는 지역에서 반대하는 주민운동 차원으로 진행됐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투표를 하면 과연 승산이 있을까 싶다. 아직까지는 탈핵을 지지하는 사람이 다수가 아니다. 만약 국민투표에서 핵발전소를 유지하자는 의견이 더 많이 나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라고 했다.

그는 탈핵 공약을 제시한 후보가 중요하지만, 2017년을 탈핵 원년으로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대선 주자의 주장만 믿고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고, 탈핵을 주제로 어떻게 유권자를 설득할 것인지가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양이원영 처장은, 정의당이 고립되지 않고 시민을 지지자로 만드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했다. 탈핵을 선포한 대만 녹색당이 사민당과의 연정을 통해 정치 영역을 넓혔듯, 정의당이 그렇게 해 주기를 요청했다.

김준한 신부는 밀양에서 송전탑반대대책위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현장에서 활동하며 겪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시민사회와 파트너십 가능한
국회 기구 필요
"탈핵과 함께 탈송전탑도 
이야기해 달라"

밀양765kV송전탑반대대책위 공동대표 김준한 신부도 발언했다. "탈핵을 이야기할 때 탈송전탑도 이야기해 달라"고 당부한 김 신부는 현장에서 활동하며 겪은 어려움을 토로했다. 에너지 분야를 전문적으로 맡는 '분쟁 조정 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건설 사업이 진행되면 현장에서는 물리적 충동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충돌 전에 갈등을 풀기 위한 시도가 여러 차례 진행된다. 아쉬운 점은 분쟁 조정 기구가 에너지 관련 전문성도 없고 중구난방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에너지 분야는 최소한 다른 기구가 있어야 갈등 해소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국회에 시민사회와의 파트너십이 가능한 프로그램과 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김 신부는 "지역 주민이 정부, 한국전력공사, 한수원과 싸우는 건 너무 힘들다. 결국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회밖에 없다. 법이나 제도나 어떤 틀이든 국회와 이야기할 수 있는 기구가 제도적으로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 신부는 탈핵 운동을 하면서 경제 논리로 시민을 설득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했다. 경제 논리는 정부가 지역에 핵발전소와 송전탑을 지을 때 주로 쓰는 설득법이다. 울산에 신고리5·6호기 건설이 결정될 시기에 조선 산업이 침체기였다. 정부는 지역 경제 활성화를 어필하며 핵발전소를 들여놨다. 밀양 역시 송전탑을 세우면 경제적 이득이 생긴다는 이야기로 일부 주민을 설득했다.

김준한 신부는 탈핵 문제는 경제 논리로만으로는 풀기 어렵다고 했다. 김 신부는 "탈핵에 관심 있는 시민 중에는 이 문제에 경제 논리 대신 정치사회적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핵발전소 문제에 맞서 싸우기 위한 대안적인 경제 논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탈핵은 경제 논리만으로는 안 된다. 시민에게 정치사회적인 측면을 부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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