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장로는 "하나님의 말씀 전하시는 목사님에게 성령의 권능을 달라"고 기도하고 교인들은 "아멘"이라 답한다. 모든 조명은 강단으로 집중되고, 비싸 보이는 크리스탈 강대상에 화려한 가운과 스톨을 두른 목사가 올라선다. 때로는 좌우 팔에 박사 학위를 상징하는 세 줄의 띠가 둘러져 있다.

목사와 교인을 은연중에, 혹은 드러내 놓고 구분 짓는 장치들은 교회 곳곳에 있다. 이런 역할 구별이 평신도를 '말씀을 받아 먹기만 하는' 수동적 존재로 만든 것은 아닐까? 평신도 신학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새길기독사회문화원(새길문화원·정경일 원장)이 평신도 역할을 다시 생각해 보는 포럼을 열었다.

'평신도, 신학을 하다'라는 주제로 3월 2일 서울YWCA에 사람들이 모였다. 평신도 공동체 '산아래교회' 송인수 대표(사교육걱정없는세상), 가나안 교인과 교육을 연구해 온 양희송 대표(청어람ARMC), 평신도 신학 연구 기관 새길문화원·새길교회 정경일 원장이 패널로 나섰다. 세 사람은 평신도로서 신학을 공부해 본 경험과 공동체를 이룬 경험에 비추어, 평신도 신학의 중요성과 감당해야 할 역할을 소개했다.

평신도가 왜 신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평신도가 시민사회 주체로서 교회를 새롭게 하기 위해서는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생겨나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하나님나라, 평신도 교회로 구현"
서로 말씀 나누며 성장하고
헌금은 전액 사회 선교

송인수 대표는 먼저 하나님나라를 이야기했다. 그가 보는 하나님나라는 △내세만이 아니라 지금 이 땅에서 이루어지고 펼쳐지는 것 △세상 나라와 구별되는 것이지만 세상 속에서 교회로 좁혀지지 않고 정치·경제·문화·교육 등 모든 영역에 임하는 것 △장소 구분을 넘어 '가치'로 구분하는 것(불의, 부정직 vs. 사랑, 평화 등) △기독교인들에 의한 혹은 기독교인들이 중심에서 이끌거나 참여하는 운동이지만 그 운동의 결과로 기독교인을 넘어 모든 시민들 혹은 약자들이 혜택을 받는 것이다.

시민단체 활동도 하나님나라 운동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사회적, 기독교적 가치를 가장 잘 발현하고 담아낼 수 있는 모델을 '평신도 교회'로 보았다. 물론 교회도 사회 변화에 맞추어 새로운 모델을 개발해 가고 있다. 건물 없는 교회, 장애인을 돕는 사역에 특화된 교회, 선교한국 운동 이후 등장한 선교사를 돕는 교회 등이다. 그러나 송인수 대표는 시민사회 영역에서 하나님나라 운동을 확장하자는 메시지는 원론적인 차원에 그칠 뿐, 직접적인 영향력은 발휘하고 있지 못하다고 봤다.

송 대표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좋은교사운동, 성서한국 등 사회 속에서 하나님나라 운동을 하는 비영리단체들이 생겨났지만, 세상에 실제적인 영향을 끼치기에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많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서는 풀뿌리가 되는 교인들부터 변화가 생겨야 한다고 했다.

평신도 교회는 일상생활과 시민사회 영역에서 선교사 혹은 선교사적 삶을 살 수 있도록 교회의 자산을 하나님나라 운동에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했다. 송 대표는 2014년 자신 가정에서 시작한 평신도 교회 '산아래교회' 사례를 소개했다. 아래는 산아래교회 창립 고백 중 일부다.

11. 우리는 목회자와 평신도의 이분법을 배격한다. 예배와 설교, 교회의 운영 등에서 은사를 고려하여 직분을 위임하는 것은 타당하다. 그러나 예배 주재와 설교를 목회자의 배타적 권한으로 보지는 않는다.

12. 모든 신자들은 교회 내 특정한 지도자에게 의존함 없이, 스스로 매일 말씀과 기도를 통해 자기의 문제를 주 앞에 내어놓고 그를 통해 얻은 깨달음과 위로와 믿음의 용기를 경험함으로,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의존한 '독립적 삶'을 사는 존재임을 기억한다.

현재 산아래교회는 송 대표 가정을 포함해 4가정이 모이고 있다. 6~7가정이 되면 교회를 분립한다는 계획이다. 교회 말씀은 교인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이어진다. 선포되는 말씀이 아닌, 서로 깨달은 것을 나누는 행위 자체, 그 과정을 설교라 여긴다. 목회자 의존성을 낮추고 교인 개인의 소양을 높인다.

소유의 10%는 교회에 헌금한다. 십일조를 지키되, 십일조와 주일 헌금 100%를 사회 선교를 위해 지출한다. 식비 등 운영비는 별도로 각출한다.

송 대표는 "헌금 100%를 외부에 써야 하는지를 놓고 내부에서도 이견이 있었다. 50%를 해도 되고 70%를 해도 된다. 100% 외부 헌금은 극단적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극단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이고, 그렇게 해서 기성 교회들에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횃불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송인수 대표는 평신도 교회가 하나님나라 구현을 위한 적합한 모델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평신도 수준 놀랄 정도로 깊어져"
가나안 교인 잃은 양 취급 말고
'평신도 주도성' 논의 시작해야

양희송 대표는 교회를 찾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가나안 교인 현상에서 평신도 운동의 가능성을 찾자고 말했다. 2015년 인구센서스 조사에 따르면, 개신교는 한국 사회 1위 종교가 되었다. 그러나 수년간 주요 교단의 교세 통계는 감소했다. 교회 인구는 늘었으나 교단 인구는 줄어든 상황은, 가나안 성도의 존재가 생각보다 더 많다는 암시일 수 있다. 여론조사 전문가 지용근 대표(지앤컴리서치)도 3월 3일 '한국교회 사회적 신뢰도 여론조사' 발표에서 "가나안 교인이 전체 교인의 17% 정도 될 것으로 추산한다"고 말했다.

주요 지표가 가나안 교인 증가를 암시하는 것과 맞물려, 평신도의 신학적 소양이 깊어지고 있다. 출판계에서 경건 서적 대신 신학 저술 출판을 확대하기 시작했고, 전에는 미미했던 설교 표절 고발이 늘어나고 있다. 양희송 대표는 "평신도의 각성은 과거에 비해 목회자 의존성을 크게 완화하고 있다"고 봤다.

반면 교회는 아직까지 성직주의, 성장주의 패러다임에 사로잡혀 있다. 1970년대 한국교회 대성장을 이루었던 패러다임이지만, 아직까지도 세대 교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양 대표는 평신도의 성장을 인식하지 못한 목회자들이 가나안 교인을 가리켜 '잃은 양', '교회 쇼핑족' 등으로 치부하고 있다고 했다. 가나안 교인들이 스스로를 '탈옥했다'고 여기고 탈옥한 곳에는 다시 돌아가지 않으려 한다는 경향과 비교했을 때, 한국교회는 '인식 장애'를 겪고 있다고 했다.

양희송 대표는 마르틴 루터와 데보티오 모데르나(Devotio Moderna) 운동, 김교신 선생에게서 실마리를 찾아 보자고 했다. 종교개혁의 근원은 인문학 운동에 있었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3대 논문으로 일컬어지는 <독일 크리스천 귀족들에게>에는 당시 평신도였던 독일 귀족들이 "교회 개혁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촉구가 담겨 있다. 교회 개혁을 사제들에게만 맡겨 놓을 게 아니라는 '평신도 주도성'이 담겨 있다.

14세기 이후 네덜란드를 중심으로 시작된 데보티오 모데르나 운동 또한 중세 교회에 대항해 생겨난 평신도 운동이다. '공동생활형제단'을 중심으로 평신도 수도원 생활을 한 이들은 인문학 공부와 히브리어, 헬라어 등 고전어 공부를 중시했고 많은 이에게 영향을 끼쳤다. 이 운동은 에라스뮈스와 토마스 아 켐피스를 배출했다. 가톨릭 내부 종교개혁 운동을 한 인물로 평가받는 예수회의 이그나티우스 로욜라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성서 조선' 운동을 펼친 김교신 선생의 모습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김교신 선생은 민중 계몽과 기독교 신앙을 위해 일생을 바치고, 끝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등 주류 기독교 지도자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다. 양희송 대표는 김교신 선생을 가리켜 "'성서를 조선에, 조선을 성서에'란 모토로, 교회의 제도나 성직자에 의존하지 않고 성경 연구를 통해 직접 하나님과의 신앙적 관계를 형성하려 한 인물"이라고 평했다.

양희송 대표는 지식을 생산하고 유통해, '교육'과 '평신도 주도성' 가치를 확보해 온 사례들에서 배울 바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교회 생태계 확보만큼이나 중요한 지식 생태계 창출을 위해서, 청어람ARMC 등 기독교 사회 내 여러 단체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제도 교회를 기반으로 한 대안 마련이 낙관적이지 않은 만큼, 평신도가 주도한 환경에서 '과감하게 새로운 판을 그려 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봤다.

양희송 대표는 100만 명까지 추산되는 가나안 교인 현상을 겪는 한국교회에, 평신도 교육과 지식 생태계 구현이 필요하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예수도 평신도였다"
일상적 문제부터 사고하는
아래로부터의 신학 필요

정경일 원장은 '그럼에도 평신도가 신학을 해야 하는 이유'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한국교회 성직자와 교인은 '공모 관계'에 있다고 말했다. 평신도는 신학을 전문가(목사)에게 맡기고 의존하는 것이 편하다. 삶과 죽음, 고통과 구원을 스스로 생각하는 것은 어렵고 부담되기 때문에 성직자에게 위임한다. 성직자는 신학은 복잡하고 추상적이어서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며 평신도의 지성을 불신한다.

그러나 정경일 원장은 "신학은 전문적 신학 교육을 받아야만 다룰 수 있는 학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교회와 사회에서 구체적으로 경험하는 문제들을 기독교적으로 사고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목사가 평신도에게 전달하는 위계적 구조가 아니라, 일상적 삶의 문제에서 신학적 의문을 품고 사고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하는, 아래로부터의 신학이 필요하다고 했다.

정경일 원장은 "믿음은 신앙생활이 아니라 생활 신앙이며, 그 믿음을 정돈한 것이 생활신학"이라는 김재준의 말을 빌어, 평신도는 생활신학자라고 했다. 신학의 주제는 삼위일체, 기독론과 같은 추상적 교리가 아니라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경험하는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본 평신도들의 신학은 상호적이고 수평적이다. 이야기를 나누는 공동체가 형성되고 함께한다는 동질감이 생긴다. 누군가 진리를 독점하지 않고 나누게 되기 때문이다. 정 원장은 "특정 전문 신학자가 비전문 평신도를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수직적 상하 관계가 아니라, 평신도들이 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수평적 대등 관계를 지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교회에 큰 영향을 끼친 함석헌, 김교신, 안병무, 이승훈, 조만식, 전태일 모두 평신도였다. 독재와 전쟁, 고난의 시기를 온몸으로 겪은 주체였다. 비단 이 사람들만 현대사를 지나온 게 아니다. 세상 속의 시민, 평신도도 같은 시기를 보내 왔다. 민주화 운동을 겪었고, 세월호 참사를 지났다. 그렇기에 신학의 주체는 평신도가 되어야 한다고 정경일 원장은 말했다.

정경일 원장은 암탉 둥지에서 태어나 평생을 닭으로 의식하다 한 번 날아 보지도 못하고 죽은 독수리 이야기를 예로 들었다. 평신도도 본질적으로 성직자와 다를 바 없고, 애초에 그런 구분은 가톨릭교회 등장 이전까지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예수 또한 제사장 지위가 없는 평신도였음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독수리'로서의 평신도 가치를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80명 청중 대부분은 평신도였다. 이들은 구체적인 필요성, 향후 과제와 방향성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졌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