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왜군 함선에 십자가가 펄럭거리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영화 '명량'에서도 일본군 통수권자로 나오는 고니시와 그 휘하의 대부분 병사들은 실제 그리스도교 신도들(기리시탄)이었다고. 우리에겐 좀 낯선 역사겠지만, 예수회 사제들이 조선인을 살육한 일본군인들 고해성사를 받아 주는 일종의 군종 장교로 임진왜란에 참전한 일도 꽤 많았다. 1600년대까지 가톨릭 신앙이 일본인들 사이에 얼마나 광범위했는지 잘 보여 주는 사례다.

임진왜란을 다루는 드라마 속 나타나는 천주교를 상징하는 깃발.

빛나던 일본 '기리시탄' 
선교 역사의 파국

영화 '사일런스는 이런 빛나는 일본 기독교가 순식간에 파국으로 치닫게 된, 그러니까 도요토미 히데요시 집권기 이후의 어느 역사적 시점을 배경으로 한다. 요컨대 이 이야기는 일본 선교의 최후를 함께했던 이들을 스케치한다. 비서구권에서 발생하는 '박해'야 워낙 보편적인 일이겠지만, 일본의 막부가 단행한 박해는 이해하기 힘들만치 조직적이고 체계적이다. 집요하고 디테일하다. 기리시탄, 그러니까 일본인 기독교인이 한명만 나와도 친자 7족, 처가 쪽 4족까지 처형을 했다니, 이건 도무지 버텨 낼 수가 없는 폭력이었던 셈. 이 당시 10년이라는 짧은 시기 동안 조직적으로 살해당한 기독신자가 20만에 이른다고 하니, 한때 50만명에 육박했던 그 거대한 기독교인이 사라져버린 배경이 이해되는 대목이다. (기독교 박해 문제에 있어서도, 일본이라는 나라는 그 독특한 문화적 기질이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신경질적이고 집요하게 끝까지 가 버리는 급진적 폭력성 말이다. '극단성'은 우리가 일본을 이해하는 핵심적 정서다.)

1600년대 중반 대박해의 시기를 나던 일본의 기독 신자와 로드리게스 신부. 영화 '사일런스' 스틸컷

1600년대 전반의 이 폭력적인 기리시탄 박해 속에 다종다양한 신앙 배교의 사례가 기록되어 있는데, 영화의 주역 중 하나인 페레이라 신부와 그의 제자 로드리게스 신부의 사례는 실제로 굉장한 논란이 되었다. 영화는 스승인 페레이라 신부의 배교를 믿지 못하고,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직접 일본으로 밀입국해 들어간 젊은 로드리게스 신부의 독백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다 영화 종반부에는 독백이, 이 두 가톨릭 신부가 결국 배교하게 된 사연을 흥미로워 그들의 행적을 취재하던 어느 네덜란드 상인의 내레이션으로 교체된다. 즉 전반부에는 주인공의 속깊은 고뇌를, 후반부에는 여러 종류의 소문으로만 가늠되는 의문스럽고 모순적인 이들의 배교 후 행적을 다룬다.

영광스런 죽음도
참혹한 배고도 할 수 없는
'기치지로'라는 범속한 인간

영광스런 죽음도 참혹한 배교도 할 수 없는, 가장 서글픈 평범한 청년 '기치지로'. 영화 '사일런스' 스틸컷

젊은 로드리게스 일행은 일본 밀입국 후 매우 은밀하고 조심스럽게 몰락한 일본 천주교회의 재건을 위한 사역을 시작한다. 서양 선교사가 되돌아왔다는 뜬소문만으로도 은둔의 기독교인들이 몰살당할 수 있는 매우 위험천만한 모험이었다. 

이 위험한 선교 여정에서 주인공 로드리게스를 한없이 불편하게 하는 이는, 수행 비서 격인 '기치지로'라는 청년이다. 그는 매우 유약하여 수시로 관원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부정하고 배교하였지만, 한편으로는 괴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이내 로드리게스 신부에게 돌아와 고백성사를 요청하는, 선량함과 유약함을 겸비한 인물이다. 로드리게스는 처참하고 영광스럽게 죽어가는 일본의 신자들과 이 유약하고 오들거리는 기치지로의 모습을 대비하여 보며, 은근히 그를 경멸한다.

그는 영광스러운 순교도, 가열차고 단호한 배교도 못하는, 미지근하고 한심스러운 존재다. 기치지로는 심지어 자신이 배신하여 감옥에 갇힌 로드리게스를 굳이 찾아와 몰래 고백성사를 빌기까지 한다. 인상깊은 것은, 인생 종반에 이르러서야 변화된'‘기치지로/에 대한 로드리게스 신부의 태도였다. 그 얘기는 잠시후 이어지겠다.

감옥에 갖힌 로드리게스를 진정 괴롭히는 것은 그가 평소의 소신대로 영광스럽게 죽을래야 죽을 수가 없다는 거였다. 일본의 고위 정치가들은 로드리게스를 조롱하듯, 위안하고 달래며, 은밀하게 설득한다. 로드리게스가 신앙적 절개를 지키면 지방 수령인 '이노우에'는 의도적이고 집요하게 그를 따르던 가엾은 신자들을 극렬하게 학대한다.

"너의 영광의 대가로 저들은 비참한 고통에 허덕인다."

영민함, 지적임, 잔혹함으로 로드리게스 신부를 한껏 농락하는 영주 '이노우에'. 영화 '사일런스' 스틸컷

탐욕스럽고 거친 폭군인줄로만 알았던 수령은 알고 보니, 지적이고 세련된 논변으로 인종과 종교적 우월의식에 쌓여있던 젊은 로드리게스를 쥐락펴락한다.

"자네가 할 일은 이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렁 사랑의 실천이야. 신상을 밟게.(step on your jesus!) 자네의 배교를 증명해. 그래서 저들을 살리라구."

마침내 수령은 로드리게스가 그리도 만나고 싶었던 스승 페레이라와 대면까지 하게 한다. 빛나던 신앙의 스승인 일본에서 기독교 비판서를 쓰고 일본인 여인과 결혼한 배교자가 돼 있었다. '우리 그리스도교는 일본을 잘못 건드린 것이며, 이 일본이라는 척박한 늪지대에서는 어떤 복음의 씨앗도 자라날 수 없고, 민중들은 우리 때문에 더욱 비극으로 치달을 뿐'이라는. 스승은 거침없이 배교를 권하며 로드리게스는 분개하지만, 이미 그 역시 스승의 길을 느린 속도로 밟아가고 있었다. 스무고개처럼 긴긴 고뇌로 밀어 넣는 수령. 일본의 기리시탄 신자들의 고통에 아무런 대응도 없는, 신의 길고 긴 침묵.

감옥에 찾아와 배교를 권하는 한때의 스승, 페레이라 신부. 영화 '사일런스' 스틸컷

마침내 영화의 절정과 같은 밤의 재판소. 수령 이노우에는 로드리게스가 오늘 밤 배교할거라 하였고, 실제로 그는 그날 밤, 배교의 뜻으로 예수상을 짓밟고야 만다. 거꾸로 매달려 피를 쏟는 순박한 신자들을 포대기에서 꺼내기 위하여. 

이 대목에서 주인공의 내면에서 울려오는 듯, 예수와 로드리게스의 잔잔하고 긴 호흡의 대화가 내레이션으로 이어진다. 대략 이런 내용이다.

"하나님. 저는 당신의 침묵과 오랜 세월을 싸웠습니다."

"나는 너의 고통과 함께 해 왔다. 나는 침묵한 적이 없었단다. 나는 너와 함께 그 자리에 있어 왔다."

슬로우 모션으로 로드리게스의 진흙 묻은 발이 예수의 신상을 밟으려 한다. 그런 그의 귓전에 그리스도의 목소리가 들려 온다.

"밟아라. 나는 그렇게 모욕당하기 위해 이 곳에 왔노라. 나를 밟으며 나를 모욕하여 저들을 살려라."

로드리게스의 발이 마침내 그리스도의 신상을 짓누르며, 멀리서 닭울음이 들려온다. 그 옛날 시몬 베드로의 풍경이 그러했을까. 신부 로드리게스는 과연 배교를 택한 것일까.

"나를 밟아라
나는 모욕당하고
밟히기 위해 왔다"

그리고 영화는, 장면을 바꿔 상당한 시간이 흐른 한 지점을 보여 준다. 수령 이노우에와 로드리게스가 찻잔을 앞에 두고 있는 모습을 보여 준다. 

"당신과 기독교는 일본이라는 늪에 진 거지, 나에게 진 게 아니오."

꽤나 친절하고 지적인 면모가 보이는 폭군 '이노우에'는 이 파계 신부를 달래듯 위안한다. 이때는 이미 로드리게스가 성직을 버리고 그의 스승처럼 일본인 아내를 두고 살아가는 시기였다. 앞서 설명한 대로, 영화의 종반부는 이 흥미로운 두 배교 신부의 사연을 궁금해한 어느 네덜란드 상인의 독백으로 전개된다. 이 네덜란드인의 조사에 따르자면, 로드리게스와 스승 페레이라는 죽을 때까지 철저하게 배교자로 살았으며, 실제 수시로 성상을 모욕하는 일로 자신의 변화를 관가에 증명하였다. 

이들은 서양인들이 들여오는 물품들 중에 선교 목적의 성물들을 적발해 선교사들을 쫒아내는, 충직한 관원 역할을 수행한다. 로드리게스는 말엽에 오카다 산에몬이라는 일본명으로 활동하다 아내를 남기고 죽었다. 주변인들은 한목소리라 오카다 산에몬이 불교도로 죽었노라고 증언했다. 그러나 영화는 '진실은 오직 하나님만이 아실거다'라는 의문스런 독백을 남긴다. 그리고 이를 웅변하듯, 죽은 로드리게스의 관 속에 손에 쥔 작은 십자가를 줌하며 끝마친다. 과연 진실은 뭐였을까.

양가적 열린 결말 
진실은 하나님만이 아실 것

열린 결말이 대개 그렇듯, 영화의 말미는 철저하게 양가적 해석이 가능하도록 이야기를 풀어 내었다. 즉 로드리게스는 실제로 배교하였으며, 그는 철저하게 수령과 막부의 충직한 종으로 일본에 서구 신앙에 틈입하지 못하도록 제 역할을 다하고 죽었다. 그러나 또 한편 다른 시선으로는 로드리게스는 기꺼이 일본의 신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섣부르고 제국주의적 열망에만 들끓는 선교사들로부터 지하 그리스도인들의 명맥을 보호(?)하기 위해 은둔의 사역을 감당한 것일 수도 있다. 로드리게스가 죽을 때 아내가 조금도 슬퍼하지 않았다는 것은 실제 이들이 가짜 부부였을 가능성을 슬쩍 내비친 것이며, 죽은 그의 사체가 움키고 있던 은밀한 십자가는 비밀한 그의 신앙고백을 은유한 것으로도 보인다. 그는 과연 배교자였을까. 은둔한 일본 최후의 신부였을까.

고통 속에 해매는 로드리게스가 개울물 속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본다. 영화 '사일런스' 스틸컷

앞에서 언급했듯, 역시나 영화의 가장 핵심적 주제 의식을 상징하는 인물은 나약한 신자 '기치지로'다. 기치지로는 참혹한 시대를 살아 낸 당대 기리시탄들의 삶의 한 양식이다. 형식상 배교자가 된 로드리게스에게 마지막까지 고백성사를 받으려하는 늙은 기치지로의 모습은 인상적이다. 로드리게스는 더 이상 그를 경멸하지 않는다. 도리어 그를 인정하고 경애하는 모습이다. 영광스러운 순교와 참담한 배교, 확실하고 명료한 두 가지 경우의 수 밖에는 생각지 못했던 젊은 신부의 눈에는 남루한 인생이겠지만, 이제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배교자가 된 로드리게스의 눈에 그는, 나뒹굴더라도 살려고 분투하는 인생의 긴 슬픔으로 보여지기 시작한 거다. 기치지로가 마침내 공감되고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기치지로는 끊임없이 실패하고 배교하지만, 항시 마음에 그리스도를 떠올리고 그의 은총을 목말라한다. 그는 비록 위대하거나 악랄하진 않으나, 흔하고 범속한 인간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영광스런 죽음도 악마적 배교도 아닌, 지극히 남루하고 흔한. 기치지로의 모습은 이 긴긴 고통의 세월을 버티어 살아야 했던 당대 일본 그리스도교 신자의 삶을 축약하는 듯하다. 페레이라도 로드리게스도 결국 그 길을 따른 것은 아닐까. 철저히 숨기고 거짓말하며, 그렇게라도 버텨서 신자로서의 삶을 이어 간.

영화는 로드리게스라는 한 배교 성직자의 실존적 고뇌와 슬픔을 이야기의 본 줄기로 풀어나가면서도, 한편으로 전국시대 일본의 놀라운 선교 역사와 이해하기 힘들만치 가혹했던, 그래서 마침내 멸종해 버린 일본 기독교의 역사적 면모를 잘 보여 준다. 

이 영화는 시작과 끝을 시커먼 화면에 길고 지루한 늪지대 소리로 대신한다. 끝날 때는 엔딩 크레딧도 없이 계속 늪 소리만 들려 준다. 영화 내내 이노우에 수령의 말과 같이 일본이라는 늪에서, 핍박 가운데 뿌리까지 부서져 버린, 기리시탄들의 비극의 의미를 관객들에게 묻는 듯하다. (오늘날까지도 일본 내 기독신자의 비율은 신구교 다 합하여 1%가 되지 않는다.)

고통 속에 신을 만나고, 그분 말고는 의지할 곳 없었던, 풀꽃처럼 스러져 간 그 많은 인생들을 애도하며. 

배재희 / 현직 특수교사이며 남양주에 위치한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 소속 온생명교회를 출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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