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볼트대학의 현관에서

나는 베를린을 방문할 때마다 시간을 내어 훔볼트대학을 찾곤 했었다. 훔볼트대학은 1810년 베를린대학으로 개교한 이후 40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냈다. 이 대학 본부 현관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매 계단마다 "계단 주의"라는 표가 달려 있다. 계단을 올라가면서 여행자의 눈에 들어오는 글귀가 너무나 의미심장하여 계단을 헛디딜 가능성이 높은 까닭이다. 현관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전면 대리석에 칼 마르크스의 그 유명한 포이에르바하 테제 11번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철학자들은 지금까지 이런저런 방식으로 세계를 그저 해석해 왔을 뿐이다; 하지만 세계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가 문제다."

마르크스는 포이에르바하 테제에서, 과거의 학문은 객관적 세계를 설명하고 해석하는 것을 과제로 여겼지만 이제는 어떻게 세상을 인류 사회를 위한 것으로 만들 수 있겠는가라는 실천의 문제로 학문적 초점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이 명제는 그가 유물론적 사상을 전개하기 위하여 관념론에 대한 도전적 명제를 던지는 데 그치지 않았다. 신학을 하고 교회를 섬기는 이들에게도 의미를 주고 있다.

그동안 해 온 바대로 하나님 신앙을 설명하고 해석만 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어떻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편협한 민족주의, 집단 이기성을 넘어 하나님나라에 가까운 인류 사회로 만들어 갈 실천적 신앙으로 나갈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으로 이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파시스트적 폭력

유서 깊은 역사를 가진 세계 각국을 여행하는 도중 가슴이 몹시 허전할 때가 있다. 이 허전한 느낌의 연유를 살펴보면 일종의 질투와 원망이 뒤섞인 것 같다. 그들의 문명사가 우리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서 오는 허전함, 가난함이라 할까.

수백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과거의 찬란했던 역사의 흔적으로 잘 보존되어 있는 무수한 사적,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가진 통일 독일의 수도 한가운데 있는 훔볼트대학 본관의 현관에 새겨진 마르크스의 테제는 우리 관점에서 다소 낯설다. 우리는 일제가 세웠다 하여 광화문에 세워져 있었던 중앙청을 헐어 버려야 민족의 혼이 되살아날 것이라고 믿는 민족이다. 또한 우리 사회는 마르크스는커녕 붉은색만 내비쳐도 용공 좌파로 의심하며 사상을 검열하려 드는 사회다. 심지어 제가 믿는 하나님 신앙의 관점에서 우상이라 여겨 남의 절에 들어가 불상을 훼손하는 것을 영웅시하는 신앙도 있다.

내 신앙이나 생각과 다르면 상대를 내몰거나 생존권을 빼앗아도 좋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사실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에서 있었던 진시황의 분서갱유, 파시스트들에게 장악된 훔볼트대학에서도 반독일적인 책과 유물들을 불태운 나치의 독일판 분서갱유가 있었다. 증오의 대상을 악마화하여 제거하는 야만적 행위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문화 유적 파괴 행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모든 야만적 행위에는 이러한 일방적인 파시스트적 폭력이 담긴다. 이런 관점에서, 훔볼트대학 현관에 남아 있는 마르크스의 테제는 내게 신기하기만 했다. 당연히 사라져야 할 것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이 분단된 세계에서 동독 공산당 정권은 1953년 옛 베를린대학, 지금의 훔볼트대학의 중심부인 현관에 공산주의적 실천 과제를 명료하게 지시하고 있는 마르크스의 포이에르바하 테제를 새겨 넣었다. 그런데 자유민주주의의 기치 아래 통일된 통일 독일은 공산주의자들이 새겨 놓은 그 테제를 파내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자유민주주의 체제라 할지라도 공산 정권이 내세우던 것을 거부할 수 없는 하나의 명제로 그 가치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합리적이고 개방적인 판단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마르크스의 통찰이 이념과 체제를 뛰어넘은, 바람직한 학문의 과제를 명료하게 지시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관용과 다양성을 거부했던 파시즘과 관용과 다양성을 승인하는 자유주의의 차이는 이렇듯 현격하게 다르다. 만일 이와 같은 일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다면 어떻게 됐을까. 예컨대 모 국립대학교 현관 중앙부에 변화와 혁명을 요구하는 마르크스의 테제를 누군가가 새겨 놓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상상해 보는 것이다. 아마도 공안 검사들이 대학 책임자들을 심문실로 불러들여 그들의 사상을 검열하며 마르크스주의자임을 자백하기를 강요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토요일마다 손에 태극기를 움켜쥔 이들이 몰려나와 헌재 재판관을 비난하고, 검찰과 특검을 좌파의 책동에 휘둘렸다면서 낡고 진부한 구호 "종북 좌파 타도"를 외치는 대중을 바라보면 파시스트적인 증오가 우리 사회나 교회 안에서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생각을 나는 버릴 수 없다.

기독교 안의 파시즘

파시즘의 어원이 되는 '파쇼'는 원래 일치하고 통일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극단적인 전체주의적 이념을 앞세우며, 인간의 사상적 자유를 부정하고, 일파 독재에 의한 철저한 전제주의·국수주의를 지지하면서 지도자에게는 절대 복종을, 반대자에 대한 가혹한 탄압을 가하는 정치를 의미하는 파시즘이 나왔다. 파시즘은 정치적인 용어이지만, 기독교 역시 이와 유사한 종교적 파시즘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종교 파시즘은 권위에 대한 복종, 그리고 이견과 다원성을 용인하지 않은 획일적 신앙의 횡포에서 나타난다. 기독교 파시스트들은 부정한 권력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부정하는 무신론적인 공산 세력보다 낫다는 권력 이해를 앞세워 국가 안보주의를 그들의 정치적 이해 구조의 근간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이들은 비록 부정과 부패로 점철한 권력이라 할지라도 신이 허락한 권력이라고 여기며, 불의한 정권을 비판하며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는 민주 시민을 향하여 국가 안보를 흔드는 불온한 세력으로 규정하기를 머뭇거리지 않는다. 나아가 민주적 다양성을 일러 혼란과 분열을 초래하는 것이라고 간주하여 잔인하게 진압하려는 파시스트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

나치 정권하에서 그리고 이탈리아에서도 정치적 파시즘과 종교적 파시즘은 서로 연대하며 전체주의적 사고를 거부하거나 이견을 가진 이들을 향하여 매우 잔인한 포악의 기제로 작동했다. 역사적으로 이들에게는 사회의 급진적 변화를 요구하는 세력을 좌파나 공산주의 세력으로 몰아 잔인하게 진압한 반공(反共) 이념 수행자 전력도 있다.

정치적 파시즘과 종교 파시즘의 차이는 정치적 파시즘이 이견자를 진압적 폭력으로 억압하려는 것이라면, 기독교 파시즘은 그 정치적 파시즘에 십자군 정신을 더한 것이다. 이들은 공산주의를 사람이 운용하는 하나의 사회 이론이나 이념으로 보지 않고 사탄의 세력으로 규정하여 대화나 타협이 불가능한 하나님의 원수로 여기고 진멸의 대상으로 간주한다. 공산주의에 버금가는 유사한 하나님의 원수는 이들에게 있어서 기독교 신앙의 변혁을 요구하는 자유주의신학이며, 그 여파로 일어난 타 종교와의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종교다원주의, 가부장적 질서의 억압에서 벗어나자며 여성의 평등을 주장하는 여성주의 운동이 포함된다.

이렇듯 종교 파시스트들은 변화를 거부하고 기존 질서를 강화하려는 파쇼적 정권을 자연스럽게 선호하게 된다. 종교와 정치의 연대를 통하여 신앙의 통일성을 파괴하는 주장들을 배격한다. 예컨대 낙태, 동성애자 인권 보호, 좌파와의 평화, 타 종교와의 대화, 종교 비판 등이다. 이들은 이와 같은 현대 세계의 사회적 문제들에 대하여 강력한 혐오의 감정을 품는 보수의 연대를 구성한다.

이런 신앙에 세뇌된 이들은 자신들의 성직자가 자유와 진보를 주장하는 이들을 하나님의 원수, 사탄의 세력으로 규정하는 순간, 관용과 자비가 없는 십자군 전사로 돌변하여 그들을 향한 적대적 증오를 뿜어내게 된다. 이런 종교 파시스트적 성향이 가장 농후한 집단이 바로 근본주의 신앙에 경도된 집단이다.

관용 없는 폭력 종교

근본주의 전사로 양육된 신자들은 자기 교회의 비윤리성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을 방송했다는 이유로 신문, 방송사를 향해 시위하며 온갖 거친 비난을 쏟아 내고, 기독교 사학의 비리를 막기 위한 사학법 제정도 머리를 삭발하며 반대했으며, 기독교적 가치와 다른 문화 예술 활동을 사탄적인 것이라 규정하고 저주와 심판을 선언하기도 했다.

이들은 2000년대 초 종교 기행 중 사찰을 방문하여 불상에 예를 갖추었다는 이유로 강남대 모 교수의 해직을 요구하고 그것을 관철시키는가 하면, 올해엔 사찰의 불상을 훼손한 기독자의 잘못을 바로잡으려 했던 기독대학의 모 교수를 해임시켰다. 이보다 훨씬 앞선 1992년 타 종교와의 대화의 중요성과 피차의 관용을 주장했던 감신대 변선환·홍정수 교수를 교단에서 축출하기도 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을 불러온 것은 다름 아닌 기독교 근본주의의 한 속성, 곧 종교적 파시즘이다.

기독교 파시스트들은 학자들이 기독교 근본주의 신앙을 따라 타 종교를 적대시하거나 정복과 파괴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학자로서의 생명을 빼앗는 정죄를 일삼았다. 근본주의 신앙의 일치를 요구하는 전체주의적인 노선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징벌하려 든 것이다. 이런 유의 근본주의 종교 파시즘은 사실 기독교 외에서도 다른 종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슬람 근본주의 파시스트들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기독교인의 생존권을 부정하고 잔인하게 참수하기도 했다. 최근 태극기 집회에 나타난 한 불교 승려는 "빨갱이는 죽여도 된다"라는 무시무시한 표어를 써 놓은 방패를 들고 다니며 좌파 척결 전사를 자처하고 있다. 500년 전 종교개혁자 루터도 기독교인 군인들에게 십자군 정신을 독려하며 이교도인 터키인들을 죽이라고 가르쳤다. 일부 청교도 목사들도 영적인 감수성이 유달리 높은 여성을 마녀로 몰아 벌거벗긴 채 장작더미 위에서 태워 죽이는 화형을 집행하기도 했다. 이렇듯 종교의 역사 속에는 종교적 파시즘의 무서운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개신교적 십자군 정신을 고취했던 칼뱅 역시 신앙의 이름으로 젖먹이 어린 아기까지 참살하던 구약성서의 거룩한 전쟁을 타협 없는 신앙의 표본으로 인정했다. 경건한 신앙인이 자기가 믿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동료 인간까지 죽일 수 있다고 믿고 극단적인 행동도 마다하지 않는 것은 이처럼 그가 자기 신앙을 절대화하도록 교사받거나, 스스로 그런 절대적 진리에 도달했다고 여기는 자기 승인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믿는 절대적 진리는 불변의 것이며, 완성된 것이고,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상대화하는 새로운 인식이나 변화, 혹은 진보에 대한 믿음을 허용하지 않는다. 여기서 새로운 정신세계를 연구하는 학자의 진보성과 과거의 교리에 집착하는 목회자의 보수적 정서가 갈린다.

하지만 이러한 두 흐름은 상호 보완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만일 이를 적대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경우 진보는 보수를 조롱하고, 보수는 진보의 숨통을 끊으려 하는 반인권적 퇴행이 일어나는 것이다. 여기서 더 강한 힘을 가진 집단은 보수의 연대다. 이들이 근본주의 신앙으로 무장할 경우 그들의 신앙은 필연적으로 비지성적이고, 자폐적이며 퇴행적이 될 수밖에 없고, 이러한 성향이 큰 힘을 가질 경우 종교 파시즘이 된다.

이견과 차이를 용납하지 않는 바, 전체주의적이며 맹목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종교 파시즘은 자기 종교의 세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자기 종교를 절대화하며 변치 않는 영원한 진리로 자리매김하려 드는 비이성적인 보수적 속성에 빠진다. 이렇게 되면 종교는 결국 파시스트적인 폭력 종교의 얼굴을 가지게 된다.

파시즘을 넘어 민주주의로

오늘날 민주화된 사회에서는 관용성이 없는 종교적 파시즘이나 정치적 파시즘은 인간의 자유를 빼앗고, 인간의 권리를 폭력적으로 침해하기 쉬운 것으로 규정받아 경계와 비판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민주화되지 못한 사회에서는 정치적 파시즘의 잔재가 권위주의 정권 속에 여전히 기생하고 있고, 종교 파시즘은 종교 집단 속에서 변화를 거부하는 영성 운동의 흐름을 주도하는 근본주의 신앙의 행태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는 독재 정권과 근본주의 신앙이 지난 역사에서 연대를 나누며 서로의 이익을 지켜 주는 상호 수혜 관계를 지속시켜 왔다. 독재 정권은 근본주의 교회를 앞세워 기독교 민주 진영을 약화시키며 종교적 재가를 얻으려 했고, 근본주의 신앙인들은 부도덕한 독재 정권을 반공의 보루로 여겨 지지하며 감싸 주는 대신 정권의 보호를 받아 온 것이다. 그들의 연대는 오늘날 태극기 집회에서 좌파 척결 구호 아래 전개되고 있는 셈이다.

부도덕한 정치 집단과 근본주의적인 기독교의 연대를 공고히 하는 전략은 권위주의 정권을 거부하는 민주 진영을 파렴치한 좌파, 친북, 용공으로 몰아가는 데 담겨 있다. 태극기 집회의 현란한 구호를 살펴보면 부도덕한 정권을 옹호하는 한편, 다른 편에서는 부도덕한 정권을 비판하는 민주 시민을 좌파 용공 세력이라고 규정하고 타도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민주화의 요구가 좌파 용공, 심지어 친북 세력의 나라 흔들기로 매도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들의 전략은 나치가 파쇼 정권을 세워 나가기 위하여 잔인하게 좌파들을 청산하고, 애국주의를 앞세워 비독일적인 것들을 제거하는 일련의 순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무수한 이들의 생명권과 인권을 유린했던 것과 유사하다. 그 당시 파시스트적인 권력 종교는 그러한 나치의 프로그램에 신앙고백적 차원에서 참여했다. 참으로 경악할 일이었다.

정치적 파시즘이나 종교적 파시즘이 연대하여 민주화 요구를 가로막는 것은 숙명처럼 보인다. 파시즘이 있는 곳에서는 민주주의가 압살당하고, 민주주의가 있는 곳에는 파시즘이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적, 종교적 파시즘의 청산은 다름 아닌 우리 사회의 민주화로만 가능하다.

파시즘에 극도로 시달렸던 독일이나 이탈리아는 파시즘의 폐해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그 기억을 가지고 그들은 통제되지 않는 권력은 언제나 위험하다는 것을 경험했기에 절대 권력의 권위를 부정하고, 권력의 분화와 견제 장치를 통해 오직 제한적으로 위임된 권력만 인정하는 민주 체제를 추구해 왔다. 그들은 지금도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며 파시즘의 위험에 다시 빠지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인류 사회는 파시스트적인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합리적 장치로서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온 셈이다.

민주주의는 정치나 종교의 영역에서 권력의 오용과 남용을 막아 낼 수 있는 유일한 장치다. 상당히 깨어 있는 이들조차도 간혹 "기독교 신앙은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틀린 것이다. 기독교 신앙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그리고 실천하는 모든 영역에서 파시즘이 작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인간이 죄인이라는 점을 겸허히 인정하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이 인간을 죄인이라고 볼 때 그 죄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동료 인간의 인간 됨과 그의 자유와 권리를 부정하기 때문에 죄인인 것이다.

종교 안에 나타나는 파시즘은 뜨겁고 좋은 신앙의 표현이 아니다. 종교적인 죄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정치나 종교 영역에서 이러한 죄의 성향을 막아 내기 위해 요구되는 장치가 바로 민주주의인 것이다. 기독교 윤리학자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는 우리가 민주주의를 필연적으로 요청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렇게 규정했다:

"정의를 향한 인간의 능력은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지만, 불의를 향한 인간의 경향은 민주주의를 필요로 한다."

니버의 이 말을 종교적 맥락에서 바꾸어 말하면 이렇다. 파시스트 종교로의 경향을 가진 기독교는 민주주의를 필요로 하고, 기독교인이 정의를 세우려면 민주주의를 해 나갈 능력이 있어야 한다.

민주 시민인 기독교 신자들이 광화문 촛불 시위에 참가하는 것은 보수나 진보로 편을 갈라 싸우려는 것이 아니다. 권위주의 정권의 자의에 짓밟힌 민주주의를 되찾아 세우기 위함이다. 민주적 기독교인은 절대 종교를 자랑하는 파시스트적 기독교인이 아니다. 오히려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관용을 가지고 더 나은 세계를 향한 변화를 추구하는 시민이자, 동시에 기독교인인 것이다.

이런 우리에게 민주주의는 우리 사회의 정치에서 파시스트적 폭력을 제거하고, 교회 내 파시스트 신앙을 극복할 수 있는 일거양득의 길이다. 다름으로 인해 서로 파괴하고 정죄하고, 죽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름에서 배우려 하는 것은 파시스트적 신앙에서 해방된 기독교인이 갖추어야 할 이 시대의 새로운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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