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차별 강연이 열릴 때, 여기에 항의하기 위해 성소수자와 성소수자 지지자들이 학교를 방문했는데요. 학교에 온 성소수자와 성소수자 지지자에게, 학생들이 '더럽다' 부터 시작해서 성경 구절을 인용해 '돌로 쳐 죽이고 싶다'와 같은 말을 많이 했어요." - 범성애자 김신학 씨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2월 19일 발표한 <혐오 표현 실태 조사 및 규제 방안 연구>에 언급된 사례다. 김신학 씨는 한 교단이 세운 4년제 종합대학교에 재학 중이다. 평소 반동성애 입장을 명확하게 밝힌 학교가, 교내에서 성소수자 차별 강연을 열었을 때 겪은 일을 증언했다.

인권위는 혐오 표현 실태를 조사하고, 이를 예방·근절하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를 위탁받은 숙명여자대학교 산학협력단는 지난해 8월 13일부터 9월 29일까지 만 15~59세 내외국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한국 사회에서 혐오 표현의 주된 대상인 여성·성소수자·장애인·이주민 4개 집단에 있는 총 1,014명의 답변을 받아 분석했다.

인정하기 싫어도 한국교회는 어느새 한국 사회에 난무한 혐오 표현의 주체가 되고 있다. 이번 설문조사 응답자 1,014명 중 '개신교 성직자'에게 혐오 표현을 경험했다고 답한 사람이 전체 응답자의 57.6%다. 성소수자 집단만 놓고 보면 개신교 성직자 즉 목사에게 혐오 표현을 들은 사람이 10명 중 7명 꼴이다.

고 육우당은 동성애 반대 활동에 앞장서던 한국교회에 좌절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해 4월 25일 그의 13주기 추모제에 걸린 걸개. 뉴스앤조이 이은혜

협력단은 구체적인 혐오 표현 양상을 알아보기 위해 20명을 선정해 대면 면접을 진행했다. 성소수자 6명, 장애인 8명, 이주민 3명, 여성 2명이었다. 나머지 1명은 이성애자 남성으로 대학에서 성소수자 지지 활동을 하다 겪은 혐오 표현 사례를 털어놨다.

면접 대상자들은 자신들이 겪은 혐오 표현을 구체적으로 들려 줬다. 한국 사회에서 소수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다양한 차별을 경험했다. 언어 폭력은 기본이고 성희롱, 임금 갈취, 스토킹, 가정 폭력, 학교 폭력(왕따), 살해 협박 등 셀 수 없이 많은 혐오 표현이 발견됐다. 그중 성소수자와 이주민의 입에서 '기독교'가 등장하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일상에서 접하는
성소수자·이주민 '증오 선동'
대부분 기독교 관련 단체

산학협력단은 "소수자 집단에 대한 차별, 적의 또는 폭력을 조장·선동하는 증오 고취 행위"를 '증오 선동'(incitement to hatred)이라고 정의한다. 소수자 개인이 겪는 혐오 표현과 다르게, 증오 선동은 "불특정 혹은 다수의 청자를 상대로 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이나 폭력을 조장하고 선동한다는 것이 중요한 지점"이라고 연구 결과는 밝히고 있다. 다음은 연구 결과에 언급된 피해자들의 사례 재구성한 것이다.

이귀화 씨(가명)는 한국에서 10년 이상 거주한 귀화인이다. 그는 지난해 4월 총선을 전후해 좋지 않은 일을 수차례 겪었다. 당시 기독자유당은 반이슬람·반동성애를 당의 공약으로 정하고 홍보 활동에 열중했다. 이귀화 씨는 출퇴근 길을 오가며 "이슬람 확산은 한국 안보에 치명타!"라고 쓰여 있는 현수막을 봤다고 이야기했다.

"그런 정당이 나오면 (이주민인) 저는 달라진 공기를 피부로 느끼게 되요. 선거 즈음, 퇴근길에 좌석 버스를 탔어요. 어떤 여성 옆자리가 비어 있어서 앉았더니, 뒤에 앉은 아저씨가 대뜸 제 옆에 앉은 여성에게 영어로 'Be careful, Be careful(조심해라)'이라고 하는 거예요."

보수 기독교인들은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퀴어 문화 축제 반대 집회를 열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미션스쿨에 다니는 청소년 성소수자 송검증 씨(가명)는 학교에서 겪은 일을 이야기했다. 그는 어느 날부터 학교 게시판에 성경 구절과 '동성애는 잘못된 것이고 죄'라는 문구가 함께 적힌 게시물이 올라왔다고 했다. 송 씨는 혐오 표현이 학교 게시판에 버젓이 올라오자, 학생들 사이에 혐오 표현이 확산되었다고 전했다.

"학교에서 성경 구절을 근거로 '동성애를 하지 말라'는 게시물을 붙였어요. 그러고 나서 누군가 익명으로 그 게시물이 차별이라고 반박하는 대자보를 써서 붙였는데, 학교에서 CCTV로 대자보를 쓴 사람을 찾겠다고 해서 엄청난 이슈가 됐죠. (중략) 원래 동성애에 아예 관심조차 없던 애들이었는데, 동성애 이슈가 수면 위로 떠오른 거예요. 매일 매일. 학생들 사이에서 누가 게이, 누가 레즈비언인 것 같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나오고, 저더러 성소수자 아니냐며 캐려는 애도 있었어요."

교회 혹은 학교에서 동성애 반대 집회가 열리면, 그것을 접하는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진다는 증언도 있었다. 또 다른 청소년 성소수자 임간증 씨는 친구 어머니 사례를 말했다. 그는 친구 어머니가 '탈동성애자 간증 집회'에 다녀온 뒤 친구에게 인쇄물을 건네며 "동성애를 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을 목격했다.

"제 친구 어머니가 한 교회에서 하는 간증 집회에 다녀왔는데, 간증 내용이 자기가 예전에는 동성애자였지만 동성애자들이 문란하니까 동성애에서 벗어났다는 내용이었대요. 집회에서 배포한 책자를 집에 들고 오셨는데. 책자는 '동성애자들이 문란하다'는 간증 내용으로 구성된 만화를 인쇄물로 찍은 건데요. 친구 어머니는 그것을 제 친구에게 보여 주시면서 '이러면 안 된다'고 하시고."

누적되는 혐오 표현
성소수자 더 불행하게 해

혐오 표현을 들은 조사 대상자들은 자존감 손상, 걱정, 수치심, 절망, 억울함, 분노 등 부정적 심리반응을 겪는다. 심한 경우 자살 충동이 일거나 우울증, 공황장애가 오는 등 스트레스성 심리 반응도 마주한다. 주목할 것은 이들이 소수자이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겪는 것이 아니다. 대다수 소수자 집단은 사회 혹은 교회가 퍼붓는 혐오 발언으로 스트레스가 가중된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퀴어 문화 축제가 열리는 서울광장을 둘러싸고 보수 기독교인들이 진을 친다. 2015년 퀴어 문화 축제 참가자가 담장 너머 기독교인들 앞에서 춤추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청소년 성소수자가 처한 현실은 더 가혹하다. 미션스쿨에 다니는 송검증 씨는 학교에서 성차별 글이 게시된 이후 늘 아웃팅(본인이 아닌 타자에 의해 성소수자임이 밝혀지는 것)의 위협에 시달린다.

"동성애자를 '똥꼬충'이라는 말로 성적으로 비하하고 성희롱하고. 누구든 성희롱은 하면 안 되잖아요. 성적지향이나 정체성만으로 그렇게 공격하는 게 너무 불쾌하죠. 그런 혐오 표현을 보면서 저는 '성소수자인 내가 이렇게 욕을 많이 먹어야 하는 사람인가' 했어요. '누군가가 나를 욕하면 어쩌지?', '동성애를 혐오하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알았을 때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커졌어요."

성소수자를 지지한다는 이유만으로 다니고 있는 학교를 떠나라는 말도 들었다. 응답자 20명에서 유일한 이성애자 남성이었던 안충성 씨가 대학에서 겪은 일이다. 그가 다니는 학교는 김신학 씨가 다니는 학교와 같은 학교로, 언론에 여러 차례 "우리 대학에는 성소수자가 없다"고 밝혔다.

"어느 날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한 학생이 저를 불러냈어요. 제게 '당신도 그런 사람(성소수자)이냐'고 묻더라고요. 그러면서 '학교가 마음에 안 들면 네가 학교에서 나가라'고 하더군요. (중략) '학교가 성소수자를 배제하는 게 잘못됐다고 생각하면 나가라. 그런 게 불만이면 학교를 그만두라'는 거죠.

대표적인 혐오 표현이 '우리 대학에는 성소수자가 없다'예요. 성소수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건데. 이런 말이 학교 당국에서 나왔을 때, 저는 굉장히 마음이 아팠죠. 왜냐하면 성소수자는 어디에나 있거든요. 그런데도 내 주변에 없다고 해서 아예 그 존재 자체를 삭제해 버리는 게 얼마나 무지한가, 또 성소수자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될 것인가."

반대 집회에는 어린아이도 동원됐다. 혐오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이들의 외침은 혐오 표현이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사랑? 교리? 그냥 '혐오'다

반동성애·반이슬람이 '교리'라고 생각하는 보수 교회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다. 한국교회는 동성애와 이슬람이 교회를 위협한다고 말한다. 악의 수렁에 빠진 이 소수자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죄에서 돌이키라는 것인데, '혐오' 운운하는 것은 역차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산학협력단은 무엇이 혐오 표현인지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혐오 표현은 '소수자'를 대상으로 한다. 규제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도 혐오 표현의 대상이 소수자이기 때문이다. 소수자의 범위는 유동적이지만, 연구 보고서는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에 규정된 차별 속성을 가진 소수자들을 소수자의 범위 안에 든다고 봤다.

혐오 표현은 심각한 해악을 초래하고 그 해악의 파급력이 막대하다. 한국교회가 무차별적으로 생산해 내는 혐오 표현이 더욱 위험한 건, 소수자 당사자에게만 해를 가하는 데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집단에 속하지 않은 일반 청중마저 차별과 혐오를 당연하게 느낀다. 연구 결과에서 언급된 '증오 선동'이 위험한 이유도, 혐오 표현을 여러 차례 들은 일반 청중이 즉각적으로 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데 있다.

산학협력단은 혐오 표현을 규제하기 위해 △혐오 표현 개념과 해악성의 인식 제고 △국가 기관 차원에서 종합적인 대책 수립이 필요하다며 보고서를 마친다. 이 규제는 혐오 표현을 금지하고 처벌하는 형사 제제, 민사 및 행정 규제 등 다양한 형태를 포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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