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 집회'와 탄핵을 반대하는 '태극기 집회'가 매주 토요일마다 열립니다. 매주 취재할 때마다 느끼는 건, 태극기 집회도 회를 거듭할수록 세가 불어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들은 '국회 해산'과 '특검 해체' 등을 요구합니다. 아무 잘못 없는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시키고, 죄인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교회나 단체 이름을 걸고 나오지는 않지만, 기독교인도 탄핵 반대 집회에 상당수 참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2월 18일 서울 대한문 일대에서 열린 13차 탄핵 반대 집회에 직접 나가 그들을 만나 봤습니다. 무슨 이유로 집회에 나왔는지, 신앙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 기자 주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린 2월 18일 서울 대한문 일대 모습. 뉴스앤조이 이용필

[뉴스앤조이-이용필 기자] "겨레의 늠름한 아들로 태어나 조국을 지키는~" 익숙한 군가가 희미하게 들렸다. 남대문에서 대한문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길수록 군가는 더욱 커졌다. 군가에 맞춰 수많은 태극기가 일렁였다. 집회 참가자들은 비장한 표정을 한 채 메인 무대가 설치된 대한문을 바라봤다.

"애국 시민 여러분, 애국 시민 여러분." 사회자는 '애국'에 포인트를 주며 말을 이었다. "애국 시민 여러분, 우리가 여기에 왜 모였습니까. 저 종북 세력들이 박근혜 대통령님을 몰아내려 합니다. 우리가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참가자들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옳소", "빨갱이는 물러가라"고 외쳤다. '최순실의 국정 농단'이 아니라, '고영태의 사기극'이라는 말에 또다시 태극기가 물결을 이뤘다.

이날 집회는 오후 2시 시작했다. 남대문에서 시청 방면으로 이어지는 9차선 도로는 일찍이 통제됐다. 버스와 택시는 남대문을 끼고 명동으로 우회했다. 도로를 가득 채울 정도로 수많은 인파가 모였다. 태극기를 든 참가자 중에는 눈에 띄는 이가 있었다. 그는 '예수 구원자' 글귀가 적힌 빨간 십자가를 짊어졌다. 십자가 윗부분에는 작은 태극기가 걸려 있었다.

경기도 화성에서 온 강충국 목사(74)였다. 6살 때 예수를 만났고, 평생 노방전도를 했다. 은퇴한 후에는 농사지으며 살고 있다. 강 목사는 "빨갱이 때문에 집회에 나왔다"고 말했다. 빨갱이를 추종하는 세력이 대통령을 몰아내려 한다고 했다. '레드 콤플렉스'는 한국전쟁을 겪으며 생겼다. 전쟁이 발발했을 때 가족과 함께 황해도 연안에서 남한으로 이주했다. 강 목사는 빨갱이가 정권을 잡으면 종교도 하루아침에 사라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우리나라는 자본주의국가다. (박근혜) 대통령이 잘해서 먹고사는 거다. 대통령 때문에 못 살겠다고 난리인데, 그건 그 사람들이 게을러서 그렇다. 그런데 빨갱이들이 5,000만이 타고 있는 배의 선장을 내쫓았다. 이제 배가 파도에 부딪혀 가라앉을 일만 남았다. 나라가 위험에 처했으니 내가 발벗고 나온 것이다. 나라가 없으면 종교고 신앙이고 다 소용없다. 나라가 있어야 예수를 믿을 수 있는 것 아닌가."

탄핵 반대 집회에서 만난 강충국 목사. 십자가 위에 태극기가 걸려 있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강 목사는 박 대통령을 절대 신뢰하는 듯했다. 대통령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고 야당이 문제라고 했다. 사드 배치를 반대하고, 군복무 기간을 단축하려는 야당 대선 후보자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는 "나라는 누가 지키려고 하는가. 개판 5분 전이다"고 말했다.

수많은 사람 중 기독교인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걱정도 들었으나 기우에 불과했다. 인터뷰를 시도한 시민 대부분이 교회를 다녔다. 서울에 사는 이영숙 씨(가명·55)는 무대를 바라보며 태극기를 흔들고 또 흔들었다. 교회 집사이기도 한 이 씨는 "어떤 세력에 의해서 민주주의가 붕괴되듯 듯한 느낌을 받았다. 특히 자라나는 아이들이 공산주의 교육을 받으며 살아갈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들어 집회에 나왔다"고 말했다.

말을 이어 가던 이 씨는 감정에 북받친 듯 눈물을 흘렸다.

"어린애들은 자유민주주의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 모른다. 우리는 어렸을 때 정말 배고픈 시절을 겪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새마을운동하면서 잘살게 됐다. 국민을 일깨워 주고, 잘살게 해 줬으면 감사할 줄 알아야 하는데, 전교조니 이런 나쁜 무리가 애들을 붉은 사상에 물들이게 했다."

이 씨는 신앙인의 관점에서 봤을 때 촛불 집회보다 태극기 집회가 더 정의롭다고 주장했다.

"촛불 집회에 단두대가 등장한 적 있다. 인형으로 된 대통령 목을 잘라 장대에 걸고 다니고, 공에 대통령 얼굴 사진 붙여 놓고 아이들에게 발로 차게 했다. 신앙인으로서 보기에 평화롭지도, 정의롭지도 않다. 하지만 태극기 집회는 그런 거 일절하지 않는다. 국민들이 언론에 세뇌되는 것 같아 걱정이다."

혼자 왔다는 이 씨는 앞으로도 탄핵 반대 집회에 계속 참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 보호하겠다
좌파들 때문에 억울하고 분통
신앙 위에 사상"

탄핵 반대 집회에는 태극기뿐만 아니라 성조기도 등장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인터뷰가 진행될 동안 군가가 끊이지 않고 흘러나왔다. 무대에 선 연사들은 박 대통령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면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와 야당을 비난했다.

"대통령님 보고 싶습니다. 얼마나 억울하셨습니까. 이제 우리 국민들이 박근혜 대통령님을 보호하겠습니다. 박정희 대통령님 감사합니다. 북한 빨갱이 새끼들로부터 나라를 지켜 주시고, 살기 좋은 나라 물려주심을 감사합니다. (중략) 문재인은 대통령이 되면 북한 김정은을 제일 먼저 만난다고 합니다. 미국을 놔두고 북한을 만나러 간다는 사람이 제대로 된 사람입니까. 애국 국민들에게 호소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이용하고 버린 바른정당 저들을 심판해 주십시오."

발언이 끝나자 사람들은 함성을 지르며 태극기를 흔들었다. '계엄령 뿐, 계엄령이 답'이 적힌 팻말을 몸에 두른 김상호 씨(75)도 태극기를 힘차게 흔들었다. 김 씨는, 서경석 목사가 주도한 서울역 집회 때부터 지금까지 참석한다고 말했다. 그는 "소신껏 나라를 잘 다스려 온 대통령이 좌파들 때문에 궁지에 내몰렸다. 정말 분통 터지고, 억울해서 잠도 못 잔다"고 말했다.

김 씨는 1942년 강원도 산골에서 태어났다.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탄광촌에 숨어 지냈다. 안 그래도 배고팠던 시절인데 북한 침략 때문에 세상이 더욱 황폐해졌다고 했다. 김 씨는 "먹을 게 없으니까 개들이 무덤 속 시체를 파먹는 광경도 목격했다. 두 번 다시 그런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북한을 옹호하는 세력은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특히 친북 성향의 목회자는 가만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김 씨는 "교단에 윤리위원회 같은 걸 만들어서 (친북 성향 목회자들을) 없애야 한다. 신앙인일수록 냉철하게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한때 누구보다 교회에 열심히 다녔다는 김상호 씨는 계엄령을 통해 나라를 대청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계엄령'의 의미를 묻자 김 씨는 신앙보다 무서운 게 사상이라며 극단적인 처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상을 오래 살며 다양한 경험을 했다. 이런 집회 방식이나 또는 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나는 사상이 신앙보다 더 무섭다고 본다. 신앙 위에 사상이 있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그렇다. 극단적인 처방을 내리지 않고서는 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군사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대청소를 해야 앞으로 20~30년간 평화롭게 갈 수 있다. 이대로는 정말 안 된다. 좌경화가 그만큼 무섭다는 말이다."

식순이 끝나자 참가자들은 대오를 갖춰 행진을 시작했다. 이들은 중간중간 '선동 탄핵, 원천 무효', '고영태-손석희 구속' 등을 외쳤다. 인천에서 온 김재호 씨(49)는 "고영태 일당이 꾸민 시나리오 때문에 지금과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 너무 추악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사건과 무관하다"고 말했다.

나라가 갈수록 좌경화되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 김 씨는, 기독교 신앙인은 종교를 허용하지 않는 좌파와 공산주의 사상을 싫어한다고 말했다.

"기독교 신앙인은 좌경화를 반대한다. 좌파나 공산주의 사상은 신앙의자유를 인정하지 않는다. 중국이나 북한에서는 신앙의자유를 허용하지 않고 탄압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 사회도 전교조나 민노총 세력에 의해 좌경화되고 있지 않나 우려가 된다. 특히 자라나는 학생들이 물들지 않았으면 한다. 대한민국이 하루라도 빨리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정상화됐으면 좋겠다."

신앙과는 관계없이 좌파를 막기 위해 나온 기독교인도 있었다. 서울에서 온 한 70대 남성은 "다른 건 필요 없고, 종북 세력 막으러 나왔다. 집회는 내 신앙과는 관계가 없다. 애국심으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행진 중인 집회 참가자들. 뉴스앤조이 이용필

행진은 남대문을 시작으로 명동, 을지로, 대한문으로 이어졌다. 행진 도중 만난 황미순 씨(74)는 생전 처음 집회에 나왔다고 했다. 의정부에서 온 황 씨는 살면서 나라가 이렇게까지 위태로웠던 적은 없었다며 자신이 태극기를 들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뭔 죄가 있는가. 종북 세력들이 정권 잡으려고 각본 짰다. 형평성 있게 고영태 일당도 구속해야 한다. 생전에 나라가 이렇게 어려웠던 적 있나 싶다. 보릿고개 넘어 나라가 이렇게 살기 좋게 됐다. 어떻게든 나라를 지켜서 후손들에게 자유로운 나라를 물려줘야 한다. 싸워서 승리해야 한다. 안 그러면 북한한테 정권이 넘어간다. 연방제니 뭐니 그런 건 허울 좋은 가면이다, 가면.

나는 예수 믿은 지 50년 됐다. 요즘에는 헌법재판관들이 헌법에 입각한 판결을 내리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다. 압력에 굴하지 말고, 바른 판단을 해서 (탄핵) 기각을 시켜 줬으면 좋겠다.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까지 우리나라가 안전했으면 한다. 아이고 주여, 너무 안타깝다. 밥도 못 먹겠고, 일이 손에 안 잡힌다. 이런 틈을 타서 김정은이 쳐들어오면 어떡하는가."

탄핵 반대 집회 참석자들과 함께 걸으며 인터뷰를 계속 시도했다. 몇몇 시민은 기자를 향해 "종편 쓰레기 언론은 물러가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서울에서 온 김유균 씨(55)는 대통령을 탄핵할 만한 근거가 전혀 없다고 주장하며 반란에 준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나왔다고 했다. 또, 기독교인들이 제 역할을 감당했으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탄핵 정국이 터지고 주의 깊게 살펴봤다. 내가 봤을 때 탄핵할 만한 근거가 전혀 없다. 지금 상황은 어떻게 보면 반란에 준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안 나올 수가 없었다. 신앙적으로 봤을 때 권위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우리가 마음대로 짓밟을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잘못했다고 해도, 법에 의해 처리를 해야지 지금과 같이 하면 안 된다.

기독교인으로서 참 부끄럽다. 우리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했으면 촛불 집회와 같은 사태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신앙인으로서 부끄러워 회개했다. 진실이 드러나도록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있다."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린 현장에는 탄핵과는 무관한 반동성애 현수막이 걸렸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인터뷰를 한 기독교인들은 국정 농단은 고영태 일당을 포함한 종북 세력의 작품이라고 믿었다. 집회에 참가하는 이유는 신앙보다 반공주의와 관련 있었다. 기독교인이 아닌 일반 시민들도 "종북 좌파를 막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온 김영호 씨(64)는 "지금 시간이 없다. 단결력 좋고 인원이 많은 교회가 태극기 집회에 총동원령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들은 남대문을 시작으로 명동, 을지로를 거쳐 대한문으로 이동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탄핵 반대 집회 현장에서 만난 기독교인들은 종북 좌파를 막기 위해 나왔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태극기와 성조기가 바람에 날리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대통령님 보고 싶습니다'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앞세운 채 행진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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