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 사용 설명서> / 이영진 지음 / 샘솟는기쁨 펴냄 / 248쪽 / 1만 8,500원

사실 아리스토텔레스의 원전을 읽지 못했고, 원전을 읽어 낼 만큼 언어 실력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오만하게 본서의 점수를 80점으로 평가한다. 이 점수는 준 필자 자신의 점수이기도 하다. 필자는 이 책 내용을 80% 정도 이해한 것 같다. 이것은 독자인 나 자신의 이해력 부족에 100% 기인한다.

그러나 글과 책을 쓰고 있는 사람으로서 독자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책은 그 내용이 아무리 우수하다 할지라도 무주공산(無主空山)의 독백이 될 수 있기에.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해 쓰인 책이라면, 책의 목적적 가치로서 그 내용을 쉽게 써야 하는 것이 저자의 실력일 뿐만 아니라 책임인 셈이다.

물론 본서는 인식론적 관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데 아니마' 해석에 고군분투하고 있고, 그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그럼에도 주관적인 느낌이지만, 자신의 생각과 지식을 과시하려는 듯한 욕심이 오히려 책을 산만하게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너무 많은 것을 설명하려고 과한 욕심을 낸 것 같다.

필자는 앞서 언급한 대로 아리스토텔레스 원전은 접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일반보다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아리스토텔레스를 접한 바 있다. 그래서 플라톤적 기조가 득세하고 있는 한국 기독교의 성경 해석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유 방식과 해석 방식이 도입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목사 중 한 사람으로서 본서는 매우 반가웠다.

저자가 말미에 약간 언급하듯 신경과학과 신경의학은 급속도로 존재론을 침범해 오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다수 기성 교회의 성경 해석은 플라톤적 사유 방식에 머물러 있다. 다가올 위기를 전혀 모른 채 분별(신학적 일관성과 통일성) 없는 짜깁기 설교가 아직 활개를 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왜 중요할까. 그의 스승 플라톤은 영혼계보다 물질계를 하등하게 여겨 몸과 영혼을 분리시켜 버렸다. 어거스틴이 하나님의 초월성과 전능성을 설명하기 위해 플라톤적 사유 방식을 기독교 신학에 도입해 플라톤의 이분법적 사유 방식이 기독교적 하나님의 존재 인식 방식의 중심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삼위일체적 내재가 아닌 일반적 하나님의 역사적 내재(경륜)를 다룰 때 종종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도 여전히 육체와 물질이 영혼과 분리된 하나님의 초월적 임재관을 적용한다. 이와 같은 이분법적 사유 방식은 풀리지 않는 의문과 모순들로 세상과 물질을 하등하고 초월해야 하는 대상으로만 인식하게 하는 문제를 계속해서 양산해 내고 있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여전히 우리의 몸(물질)을 영적인 적으로 몰아가는 영지주의적 사고를 계속 양산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식적이고 관찰적 기반의 사유를 통해 하나님의 피조물의 육체가 그 자체로만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설명했다. 영혼과 물질이 수직적 구조로 우월한 것과 열등한 것으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고 본다. 몸과 영혼은 인간을 구성하는 중요하고도 대등한 것으로서 어느 하나가 다른 것을 지배하거나 흡수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설명할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한다.

물론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아리스토텔레스도 완벽하지 않다. 플라톤의 영향을 받은 현재의 기독교 안에서는 '유심론'적 사고가 우위를 보이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유심론의 한계를 일찍이 발견하고 '유물론'적 사고의 토대를 마련하였다(물론 아리스토텔레스는 유물론자가 아니다).

플라톤을 버리고 아리스토텔레스를 택하라는 말이나 그 반대를 택하자는 말이 아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모두 사유 대상에 따라 사유 방식이 달라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영혼에 대해, 하나님 편에서 출발할 때와 인간 편에서 출발할 때 필요한 방법이 다르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손과 발은 서로 다르지만, 한 사람의 몸으로서 하나를 이룬다. 이 둘은 이와 같이 다른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의 영혼(영원성, 불변성, 생명 등)에 있는 다른 면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둘이 쌍을 이룰 때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더욱 깊어지고 사귐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사실 '데 아니마' 원전의 주해를 기대하고 본서를 펼쳤다. 정말 이 부분이 아쉽다. 그럼에도 저자는 원전 주해에 앞서, 그 원전을 해석하기 위해 전제되어야 할 인식론적 이론 부분에 먼저 천착한 것 같다. 본서에 대해 서평을 쓰고 있지만, 다시 생각해 보아도 지금으로부터 약 2,300년 전 사람이 '어떻게 인간(자연을 포함)의 인식과 영혼의 관계를 이토록 정밀하고 정확하게 탐구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이것은 인간의 지능이 진화되었다고 주장할 수 없는 또 다른 근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본서에는 총 14개의 테마가 있다. 먼저 본서의 메인 주제인 7개의 '데 아니마'에서 언급되고 있는 주제(영양 섭취 능력, 감각 능력, 운동 능력, 욕구 능력, 사고 능력, 상상 능력, 윤리 능력)와 또 다른 7개의 현재 활동하고 있는 인식(마음과 정신)에 관계된 철학과 심리학적 주제들(이원론, 유물론, 유심론, 일체론, 심리론, 뇌 이론)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영혼을 기능적(유물론적) 측면에서 설명을 시도했다는 점을 알고는 있었지만, 이토록 정교할 줄은 예상치 못했다. 그래서 초반부에서 많이 감탄했다. 하지만 이것을 설명해 나가는 저자의 방식이 매우 복잡하기도 하고, 설명 간의 비약이 심해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정신 차리기가 너무 힘들었다(이것은 필자의 한계 때문이다). 그럼에도 인내하면서 끝까지 읽었고, 앞서 복잡하게 언급한 것들에 대해 중심적 윤곽(저자의 의도)은 잡아 갈 수 있었다. 반면 저자가 삽입한 7개의 인식론적 철학과 심리학의 7개 주제는 명료하였다. 아마 현재 중심 이슈가 되는 '뇌 이론(과학)' 즉, 신경과학에 대해 언급하기 위해 단계적으로 삽입해 놓은 듯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본서를 80점이라 칭한 것은 필자의 주관적 입장임을 분명히 밝혀 둔다. 그럼에도 느낌만으로 정한 점수는 아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앞에서 이미 밝혔다. 하지만 본서는 끝까지 읽을 필요가 있는 책이다. 또한 필자와 같이 '영성'을 연구하는 분들에게는 더 없이 중요한 자료가 되는 책이다.

심층심리학이 인식의 영역에서 영성 연구에 집중한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고, 지속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신경과학과 정신병리학이 영혼의 영역을 향해 무섭게 달려오고 있다는 점이다. 안일하게 플라톤식의 이분법적 해석 방식에 갇혀 있어서는 안 된다(오래전 14세기에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 부분을 해결하고자 온 힘을 쏟았다. 그러나 현재 한국교회는 이분법적 사상이 여전히 신앙관, 영성관, 구원관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 사용 설명서>(샘솟는기쁨)는 몸과 물질 안에서 발견되어지고, 몸과 물질에서 출발하는 영성적 인식과 영성을 바라보게 하는 몇 안 되는 고대 자료(요즘은 철학, 신경학, 심리학에서 봇물이 터진 것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를 소개한다는 부분에서는 반드시 이해해야 할 책이다.

*이 글은 <크리스찬북뉴스>에도 실렸습니다.
강도헌 / <크리스찬북뉴스> 운영자, 제자삼는교회 담임목사, 프쉬케치유상담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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