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한국교회는 마르틴 루터가 개혁을 외쳤던 중세 시대 가톨릭과 묘하게 닮았다. 위계질서는 물론 성 윤리 문제 등 상하 관계가 분명한 구조에서 나올 수 있는 이슈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결국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은 한국교회는 사회에서 '개독교' 취급을 받고 있다. 더 이상 개혁 주체가 아닌 개혁 대상이 되었다.

이런 한국교회가 상기해야 할 교회의 본모습은 무엇일까. 최주훈 목사는 2월 14일, 한국YWCA전국연맹 소속 청년들 모임 '청년학당 웰컴로고스'에서 루터의 교회론을 주제로 강의했다. 최 목사는 한국교회가 찾아야 할 길로 '루터가 꿈꾸었던 공동체'를 설명했다. 간혹 루터를 급진적인 활동가로만 인식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니다. 루터는 목회자로서, 교회를 "종교개혁 정신의 산실이고 모체"로 볼 만큼 공동체에 대한 열망이 컸다.

최주훈 목사는 한국교회가 중세 가톨릭과 유사하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위계질서 잡힌
중세 가톨릭과 한국 개신교
교회에 평등 달라
성속 구별 이제 그만

최주훈 목사는 루터의 교회론을 세 가지로 압축했다. △교회는 말씀의 피조물이다 △교회는 성도의 공동체다 △교회 공동체는 목회자를 선출할 수도 있고 해임할 권리도 있다. 이 세 가지를 하나로 연결하는 단어는 '평등'이다.

'교회는 말씀의 피조물'이라는 말은 가톨릭이 주장하는 교리와는 상반된 내용이다. 당시 가톨릭은 말씀의 중요성보다는 교회 전통, 사제의 권위에 방점을 찍었다. 루터는 여기에 반기를 들었다. 성서로 돌아가자고 말했다. 교회 전통이나 사제보다 그리스도, 곧 말씀이 교회의 근간이라 생각했다. 요한복음이 교회의 머리인 그리스도를 말씀이라 표현했기 때문이다. 루터는 교회가 있고 말씀이 있는 게 아니라, 말씀이 있고 교회가 있다고 강조했다.

두 번째, '성도의 공동체'(Communio sanctorum)라는 말에도 평등성을 담고 있다. 성도의 공동체는 곧 거룩한 자들의 사귐 공동체를 뜻한다. Communio는 소통을 의미하는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의 어원이다. 소통은 위아래 없이 이야기 나누는 것을 말한다. 현대사회에서는 그다지 놀라울 것 없는 이 개념이 중세 시대에서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중세 시대는 신분에 따라 먹는 게 달랐을 정도로 위계질서가 뚜렷했기 때문이다.

문제의식을 느낀 루터는 불평등한 부분을 없애려 했다. 가톨릭과 달리, 예배할 때 교인이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찬양하고 어린아이와 여성이 예배당 앞쪽에서 말씀을 들었다. 목회자에게 큰 권위를 부여하지 않고 목회자나 교인 모두에게 발언할 수 있는 교회 시스템을 만들었다.

결국 루터는 평등성을 "교회 공동체는 목회자를 선출할 수도 있고 해임할 권리도 있다"는 교회론에도 담았다. 기독교한국루터회 소속 교회는 목회자에게 많은 권한이 부여되지 않는다. 목회자에게 있는 고유 권한은 말씀 선포, 성례 집전 정도다. 목사가 공동의회에 참여하더라도 교인들처럼 1표만 행사할 수 있다.

최주훈 목사는 한국교회가 루터의 교회론을 되새겨 보기를 권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최주훈 목사는 평등성을 설명하면서, 루터 저작 <독일 기독교 귀족에게 고함>(세창미디어)을 언급했다. 이 책은 루터 저작 중 독일어 번역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팔렸다. 최 목사는 루터가 이 책에서 가톨릭이 놓치고 있는 평등성에 대한 세 가지를 지적했다고 했다. 성직자와 교인을 나눈 점, 성서 해석을 사제가 독점한 점, 교황이 공의회 소집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구분은 성속 구별로 이어졌다. 최 목사는 한국교회에 팽배한 성속 구별을 언급하면서, 거룩한 것은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라 교인이 살고 있는 일상에 있다고 말했다. 루터가 성지순례, 성상 숭배가 모두 헛된 것이라고 말했다고 지적했다.

"성스러운 곳은 예루살렘이 아니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이 땅과 이 시간이 제일 거룩하다. 루터가 당시 발견한 종교개혁적 세계관은 일상, 가정, 직업이 거룩하다고 여긴다. 그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진짜 거룩한 땅이다. 거룩은 자신에게 주어진 소소한 것 자체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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