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유리 기자] 한국은 고기의 천국이다. 어딜 가나 삼겹살, 치킨집을 볼 수 있다. 치킨이 땡기면 새벽에도 배달시켜 먹을 수 있다. 요즘에는 저렴한 가격에 삼겹살을 무한 리필해 주는 고기집도 늘고 있다. 돼지와 닭뿐인가. 햄버거, 양꼬치, 보신탕… 종류도 많고 파는 곳도 많고 먹는 사람도 많다.

행복하다고 느끼기에는 뒷골이 싸하다. 이 많은 고기를 대체 어디서 구해 오는 걸까. 인터넷을 조금만 뒤지면 알 수 있다. 이런 수급이 가능한 이유는 '공장식 축산업' 때문이다.

공장식 축산업의 폐해는 이미 언론을 통해 많이 알려졌다. 돼지는 스톨이라고 부르는 작은 철제 우리에서 평생을 산다. 이곳에서 인공수정과 출산을 되풀이한다. 닭은 A4 용지 한 장보다 작은 곳에 갇혀 산다. 스트레스로 다른 닭을 쪼는 일이 발생해, 아예 부리 1/3을 잘라 버린다. 그저 인간이 먹을 고기를 만들어 내는 도구일 뿐이다. 공장식 축산업에서 이런 일은 부지기수로 일어난다.

최근 또다시 발생한 구제역과 조류독감(AI)의 원인으로 공장식 축산업을 지목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공장식 축산업으로 길러진 동물들이 스트레스를 받아 면역력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전염병이 돌아 수십만, 수백만 마리를 폐사했다는 기사가 나와도, 사람들은 그 수치가 얼마나 큰 것인지 잘 느끼지 못한다.

그럼 풀만 먹고 살라는 소리인가. 속세를 떠난 승려들에게나 해당되는 말 같지만, 요즘은 채식하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단순히 건강을 위해 채식하는 이도 있고, 공장식 축산업을 반대하며 육식을 거부하는 이들도 있다. 인간의 탐욕이 동물을 죽이고 있다며 채식을 선택한 것이다.

<뉴스앤조이>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채식하는 사람 두 명을 2월 중 인터뷰했다. 이들은 기독교 신앙인의 채식에 당위성을 부여한다. 왜 채식을 시작하게 됐고, 신앙이 채식을 어떻게 뒷받침해 주고 있는지 들어 보았다. 물푸레생태교육센터 이박광문 활동가는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었고, 미국에 거주하는 A는 서면 인터뷰했다.

닭은 A4 용지보다 작은 공간에서 사육된다. 사진 제공 카라

신앙이 채식으로 이끌어
공장식 축산업,
하나님의 계획과는 반대

- 언제부터 채식했고, 채식 종류는 무엇인가. (채식 종류는 총 7가지가 있다.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유제품·달걀·생선·해물을 먹느냐 먹지 않느냐에 따라 비건·락토·오보·락토오보·폴로·페스코·플렉시테리안 채식으로 나눌 수 있다. - 기자 주)

이박광문(이하 이박) / 2년 전부터 했다. 채식 종류로 따지면, 플렉시테리안(평소에는 비건, 상황에 따라 육식하는 채식주의자)이다. 같이 밥을 먹는 사람들이 음식을 남길 때나 가족, 직장 동료와 식사를 하는데 선택권이 없을 때 부득이하게 육고기를 먹는다.

플렉시테리안을 선택한 이유가 있다. 동물의 생명을 거둬서 식탁에까지 올라 왔는데, 인간이 배부르다는 이유로 남기는 건 문제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고기를 남기면 그냥 내가 먹는다. 또 한 가지는, 한국에서 살면 완벽한 채식을 하는 게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 처할 때 무엇을 먹어야 할지 기준이 필요했다.

내가 제일 선호하는 건 오히려 육고기다. 달걀이나 우유, 치즈, 버터, 생선보다는 육고기를 먹는다. 육고기는 한 번 죽이면 고통이 끝이라고 볼 수 있지만(물론 이것도 건강한 방식은 아니지만), 유제품을 만드는 것은 고통이 계속 반복되는 일이다. 동물이 더 이상 우유나 달걀을 생산할 수 없을 때까지 고통이 계속된다.

예를 들어, 달걀을 낳는 닭은 제대로 서 있지 못한다. 달걀을 만들 때 칼슘이 필요한데, 몸을 움직일 수도 없는 작은 공간에서 수차례 반복적으로 달걀을 생산하다 보니 칼슘이 몸에서 다 빠져 나갔기 때문이다. 젖소도 마찬가지다. 우유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소가 원하지도 않는 임신을 해야 한다. 생선도 그렇다. 양식장에 항생제를 어마어마하게 뿌린다. 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육식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차라리 육고기를 먹는 편이다.

A / 채식을 시작한 지 3년 정도 됐다. 2년 정도는 페스코 채식(우유·달걀·어류는 먹되 가금류·조류는 먹지 않는 채식)을, 지난해부터는 비건(완전 채식)을 시작했다.

- 채식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이박 / 원래 환경에 관심이 많았다. 대학원에서 생태학을 공부하면서, 육식 위주의 문화가 어떻게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는지도 알게 됐다. 그럼에도 바로 채식을 선택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다 지역 공동체에서 자연과 생태 교육을 하는 물푸레생태교육센터에 취업하게 됐다. 환경 단체에서 일하게 됐으니 새로운 마음으로 채식을 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A / 미국에서 6년째 살고 있는데, 한국에 있을 때는 채식을 하지 않았다. 당시에도 고기를 많이 먹지는 않았다. 주로 해산물을 먹었다. 미국으로 건너와 고양이를 기른 게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동물의 감정이나 처지를 생각해 보는 일이 많아졌고, 동물실험이나 공장식 축산업의 폐해에 관심이 생겼다. 자연스럽게 채식을 결심하게 됐다.

- 채식하는 데 신앙은 어떤 역할을 했나.

이박 / 나는 음식이라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라고 생각한다. 먹는다는 행위 자체는 산업이기 이전에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이다. 빵을 예로 들면, 빵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여러 요인이 필요하다. 먼저 밀이 있어야 한다. 밀은 햇살, 바람, 비, 토양이 만든다. 여기에 인간의 땀과 노동이 더해지면 빵이 된다.

내가 음식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있으니, 응당 나도 좋은 먹거리를 만들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한국은 과도한 육식 문화가 사로잡고 있다. 이런 문화가 자연은 물론 인간도 파괴하고 있다. 나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채식이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나라를 세우는 일이라고 받아들였다.

A / 나는 인간이나 동물이나 모두 하나님의 창조물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새는 하늘에 날아다니게 했고 바다 생물은 바닷물에서 번성하라고 말씀하셨다. 땅 위에 움직이는 동물들을 창조하시면서 그 모습이 보기 좋다고 하셨다.

하나님이 창조 후 이렇게 좋아하신 창조물인데, 인간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동물을 악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과 동물 모두 하나님이 창조한 생명체인데, 동물만 너무 고통받고 있었다.

공장식 축산업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의 교리와 반대된다. 소들은 끊임없이 강제로 임신해 우유를 생산해야 하고, 송아지는 팔리기 위해 태어나자마자 어미 소와 분리된다. 어미 소는 자신이 낳은 송아지가 옆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계속 울면서 찾는다. 돼지는 평생 자기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 좁은 감옥에서 살아야 한다. 죽으러 도축장에 가기 전까지는 하늘을 보지 못한다. 알을 낳지 못하는 수평아리들은 태어나자마자 바로 폐기된다.

한국에서 구제역이나 조류독감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 역시 인간의 탐욕과 연결돼 있다. 사람들이 최대 이익을 누리기 위해 좁은 공간에서 동물을 키우다 보니 문제가 발생한다. 스트레스 등으로 면역력이 약해져 온갖 질병에 취약한 생명체로 자라난다. 동물이 병에 걸리면 모두 죽인다. 매년 수십 만 마리를 생매장한다.

하나님이 지으시고 보기 좋았다고 말씀하셨던 그 창조물들이 공장식 축산업의 폐해로 죽게 되는 거다. 기독교가 얘기하는 사랑의 교리와는 반대된다고 생각한다. 공장식 축산업에 문제가 있다는 것 알면서 육식을 계속하는 것은, 이 시스템을 묵인하고 지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산업이 유지되는 데 일조하는 것으로 봤다.

이박광문 씨는 한국에서 채식에 대한 인프라가 전혀 없는 것을 아쉬워했다. 뉴스앤조이 최유리

-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것인데 우리가 잘 누리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기독교인도 있다.

이박 / 이해하기 어렵다. 피조물인 인간은 좋은 먹거리를 만들 의무가 있다. 그게 하나님의 계획이다. 현재 육식 문화는 환경에 악영향을 준다. 고기 수급을 맞추려고 동물이 과도하게 길러지고, 그 동물들이 내뱉는 배설물이 온실가스가 된다. 미국은 196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대량 축산을 목적으로 아마존 밀림의 38%를 베어 냈다. 밀림은 지구온난화를 막는 역할을 하는데, 이를 없앴으니 환경문제가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인간이 더 많이 먹고자 하는 탐욕이 미래 세대가 누려야 하는 권리마저 뺏는 것이다.

과도한 육식 문화는 사람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공장식 사육하는 곳에서 일하는 직원들도 어려움을 토로한다. 하루에 몇 차례씩 동물을 죽이는 직원들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닭을 공처럼 차고 논다. 이런 건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모든 것을 허락하셨으니 누리면 된다고 말하지만, 한국 사회에 있는 공장식 축산업은 누리는 수준을 넘어섰다.

A /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인간을 마지막으로 만들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말씀하셨다. 아마 이 구절 때문에 사람들이 잘 누리면 된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여기서 나오는 "다스리라"는 인간이 동물을 마음대로 착취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모든 생물을 잘 지키고 보호하라는 명이다.

'정치'의 뜻은 백성을 바르게 다스리라는 말이다. 정치의 '치'가 의미하는 바처럼, 하나님이 이 땅의 생물을 잘 다스리라는 취지로 인간에게 맡기셨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공장식 축산업이나 동물실험 등 인간이 동물을 착취하는 행태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공장식 축산이 문제라면, 생협에서 건강한 방식으로 길러 낸 고기는 어떤가.

이박 / 여기에도 여러 의견이 있다. 나는 나 혼자만 건강한 방식으로 먹으면 괜찮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산업 자체가 건강하지 않은 방식으로 굴러가고 있다. 기독교인도 이 부분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바른 먹거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육식 문화가 팽배한 한국 사회에서 혼자 균형을 맞추는 것이 답이 될 수는 없을 듯하다.

A / 공장식 축산업이 아니면 육식을 해도 되느냐는 질문은 채식인 사이에서도 입장이 갈리는 부분이다. 일단 나는 동물 복지를 살린 복지형 농장으로 바꾸고 고기 소비를 점차 줄여 가자는 입장이다. 이상향은 모두가 채식인이 되는 것이다. <동물의 역습>(달팽이출판)이라는 책에는, 인류가 채식을 하게 되면 '식탁의 즐거움'은 포기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식탁의 즐거움을 포기하면, 괴롭게 사육되다 죽는 수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다. 건강상 이유로 육식을 해야 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육식을 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전 세계가 채식한다는 건 실현 가능성이 낮다. 다른 생명의 고통이나 동물의 고통에 둔감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생명이 고통받는 공장식 축산업만은 중단하고 '복지형 농장'으로 바꿔야 한다. 이것은 관련 법규, 정부 지원이나 시스템만 뒷받침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일단 공장식 축산업의 폐해와 채식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게 1순위가 되어야 한다.

채식인이 받는 이상한 눈초리
미국보다 채식하기 어려운 한국

- 채식할 때 어려운 점이 있나.

이박 / 한국에서는 채식 인프라가 전혀 없다. 만들어 먹는 게 아니면 밖에서 먹을 걸 찾는 게 불가능하다. 정말 완전 채식인 비건은 먹거리가 없다. 한국 정도의 경제 규모가 되는 국가 중에 이렇게 채식이 불가능한 곳도 없을 거다.

비건에 대한 시선도 곱지 않다. 비아냥 같은 게 있다. "식물은 불쌍하지 않느냐"며 위선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플렉시테리안이다 보니 "넌 어차피 고기 먹지 않느냐"는 말을 자주 듣는다. 내가 왜 고기를 먹는지에 대한 이해는 없다.

이런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싶은 게 있다. 자신이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면, 마음을 열고 서로 이야기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비아냥이 아니라 서로 진실하게 나누는 대화가 자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A / 밖에서 먹을 것을 찾기가 힘들다. 그래도 미국에서 채식을 시작한 게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채식하기 좋은 나라다. 최소한 한국보다는 낫다고 할 수 있다.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비건이라고 말하면 직원들이 비건들이 먹을 수 있는 메뉴를 추천해 준다. 마트에서도 비건을 위한 제품을 쉽게 구입할 수 있다. 비건 아이스크림, 치즈, 요거트, 콩고기 등 종류별로 식품이 마련돼 있다.

또 채식인들을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 미국은 워낙 다양성을 중시하는 나라라서 식단도 다양성의 하나로 받아들인다. 다만 한인 교회에 가서 채식한다고 하면 다들 한마디씩 한다. 한국에서 채식하는 분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한국도 미국처럼 채식인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시선이 없어졌으면 한다.

돼지는 평생을 스톨(stall)이라는 철제 우리 안에서 산다.

- 채식을 주저하는 사람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박 /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는 게 중요하다. 고기를 당장 끊는 건 힘들지만, 한 발 더 내딛으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단 3일을 하더라도 한번 해 보는 게 중요하다. 시도하면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스스로 기준을 찾을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비건이 될 필요는 없다. 페스코로만 있을 수도 있고, 페스코에서 비건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채식을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경험한다. 인간은 결코 자기만의 의지로 모든 일을 해낼 수 없다. 채식도 마찬가지다. 늘 주저하게 되고 실패한다. 포기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게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럼에도 계속 채식을 유지하는 걸 보면,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된다.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는 게 나에게 신앙고백이 된다. 기독교적 가치로 채식을 하면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더 깊어지는 것 같다.

A / 채식을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물론 채식을 하지 않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비건으로 산다는 건 힘든 일일 수 있다. 만약 채식할 생각이 있다면 가볍게 시작하면 좋겠다. 나도 페스코 채식을 하다가 점차 수위를 높여 나갔다. 아니면 Meatless Monday(고기 없는 월요일)처럼 특정한 날을 정해서 채식을 해도 된다. 점차 고기 소비를 줄여 가는 거다. 완전 채식은 아니더라도 고기 소비를 조금씩 줄여 나가는 게 곧 공장식 축산업 시스템을 바꾸는 데 일조한다고 생각한다.

- 동물권이나 먹거리에 관심 있는 사람이 읽으면 좋은 책을 추천한다면.

이박 / 먹거리 관련 책이 많다. 먹거리에는 동물뿐 아니라 식탁에 오르는 음식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다.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죽음의 식탁>(판미동)을 권하고 싶다. 인간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생활 속 독성 물질을 이야기한다.

A / 요새 동물권 책을 열심히 읽고 있다. 일단 가장 유명한 책은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연암서가)이라는 책이다. 동물권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입문서처럼 한 번은 꼭 읽는 책이다. 관심 있는 분들께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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