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는 역사학자 전우용 교수 페이스북에 실린 글입니다. 허락을 받고 전문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1992년 10월 28일은 다미선교회가 휴거일로 예언한 날이었습니다. 마침 그 선교회가 집 근처에 있어서 낮부터 하얀 옷을 입은 신도들이 주변을 얼쩡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밤에는 일부러 선교회 옆에 구경 갔는데, 경찰이 통제한 탓에 바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뉴스를 통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지극히 당연한' 보도를 접했습니다.

물론 상식적인 사람들에게만 '당연한' 뉴스였습니다. 산 채로 하늘로 들려 올라갈 것을 철석같이 믿고 각 지역 교회에 모여 기도하던 사람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낙담하고 좌절하여 눈물 흘리는 사람들을 뉴스로 보면서도, '아무런 동정심'도 일지 않았습니다. 이웃에 휴거론에 빠진 교수-약사 부부가 있었는데, 전 재산을 헌납하고 휴거되기를 기다리다가 그날 이후 종적을 감췄습니다. 도대체 왜 많이 배운 사람들조차 이런 터무니없는 주장을 맹신했던 걸까요?

요즘 종박 단체들이 퍼뜨리는 얘기를 들으면, 25년 전의 다미선교회가 떠오릅니다. JTBC가 태블릿 PC를 조작했다는 둥, 세월호는 전교조가 기획 침몰시킨 것이라는 둥, 촛불 집회는 북한의 지령을 받은 것이라는 둥. 이들이 자기 주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드는 '사실'들에 비하면 다미선교회가 휴거의 근거로 제시한 현상들은 차라리 '상식적'입니다. 그런데도 거기에 현혹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얼마 전 어머니에게 들은 얘기입니다. 노인정에 모 대형 교회 신도들이 많은데, 어머니에게도 "종박 집회에 참여하라"고 강력히 '권면'한답니다. "박근혜가 탄핵되면 나라가 망한다"는 예언을 곁들여서. "도대체 누가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물으면, "목사님께서 하신 말씀"이라며 "다른 사람은 다 거짓말해도 우리 목사님은 거짓말 안 하신다"라고 한답니다. 그런 목사가 다미선교회 이장림과 다른 게 뭘까요? 그런 말에 현혹되는 사람들이 다미선교회에 빠져 패가망신한 사람들과 다른 건 또 뭘까요?

다 알다시피 정치는 처음에,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종교와 한 몸이었습니다. 정치와 종교가 형식적으로 분리된 뒤에도 사실 둘 사이에 확실한 경계선이 그어진 적은 없습니다. 정치인에게 메시아의 이미지를 투사해 온 역사는, 민주주의 역사보다 훨씬 깁니다. 저는 과학과 상식의 시대에도 터무니없고 몰상식한 주장을 맹신하는 사람이 많은 건, 이 역사의 무게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이렇게 될 위험성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종박 집단에게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정치인을 '종교 지도자'로 대하는 문화가 팽배하면, 국가 전체가 '거대한 사이비 종교 집단'처럼 됩니다. 유럽인들처럼 '종교적 도그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치열한 투쟁을 겪어 본 적이 없는 한국인들에게는, 이 위험성이 더 크다고 봅니다. 그 생생한 사례가 북한입니다.

휴거론을 맹신한 다미선교회 신자들은 자기들만 망했지만, 몰상식한 주장들을 맹신하는 종박 집단은 나라 전체를 위기에 빠뜨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후일 자기들의 주장이 다 허위임이 명백히 밝혀져도 그들은 결코 반성도 후회도 하지 않으리라는 게 더 암담합니다. 유감스럽지만, 저들을 '각성'시킬 방법은 별로 없습니다. 다만 '상식적'인 사람들이 저들로부터 얻을 교훈이 한 가지는 있을 겁니다. 정치인과 정치 집단을 종교 지도자나 종교 단체 섬기듯 해서는 안 된다는 것,

현대는 전통적 종교를 대신해 '과학이라는 새로운 종교'가 지배하는 시대라고들 하지만, 때때로 불어닥치는 '거대한 종교적 맹신과 몰상식의 광풍'이 언제쯤 가라앉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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