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타자의 정신들> / 알빈 플란팅가 지음 / 이태하 옮김 / 살림 펴냄 / 296쪽 / 1만 원

저는 요즘 알빈 플란팅가의 <신과 타자의 정신들>이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앎에 있어서 큰 도전입니다. 저는 늘 경험에서 얻는 지식과 감동에서 하나님께로 나아갔고, 또한 그 하나님은 이 경험들보다 더 크시다는 것을 다시 확인함으로 하나님 존재의 합리성을 고백해 왔습니다. 플란팅가도 저와 그리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일단 자연의 존재들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합리적으로 긍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합니다. 자연은 결국 자연의 존재를 논증하는 것 이상의 입론을 주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한편 '자연반신학'이라는 개념을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이는 자연의 존재가 하나님의 비존재를 입증한다는 논의인데, 플란팅가는 이것 또한 실패로 결론짓습니다. 요컨대 자연으로는 하나님을 입증할 수도 없고 하나님의 비존재를 입증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타자의 정신의 존재를 믿는 것과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은 같은 조건을 가졌다고 하면서, 전자가 합리적이라면 후자도 합리적이라는 논증을 합니다. 플란팅가는 이렇게 함으로 중세의 신 존재 증명, 즉 우주론적 증명 존재론적 증명 목적론적 증명이 가진 한계를 확인하고, 타자의 정신과 하나님 존재의 유비로서 하나님 존재의 합리성을 입증하고자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명제가 합리성을 갖는다는 사실을 하나님의 실존에 대한 입증이라 할 수 있을까요? 존재를 넘어 사랑과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에 대한 철학적 주장은 어떤 것이 되어야 할까요? 플란팅가의 책 한 권에 걸치는 논증은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는 일에 있어서 합리성은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너머는 과연 존재하는지, 존재한다면 그것은 어디까지인지 탐사할 수 있도록 안내해 주는 일이었습니다.

짬짬이 시간을 내어서 그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내가 신앙적 존재라는 것을 확인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그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제 이성을 매우 혹독하게 훈련시키는 것이어서 답답하기도 하고 고달프기도 했습니다. '독서백편의자현'이라는 말을 실감했습니다. 처음 몇 페이지를 며칠에 걸쳐서, 여러 번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보니 차츰 플란팅가가 그리고 있는 하나님 존재라는 지식의 설계도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차갑고도 뜨거운 글 읽기였습니다.

우리가 미국의 철학계를 몰라서 그렇지 알빈 플란팅가는 20세기 미국의 가장 우뚝한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이 책도 1967년에 나왔는데 1958년에 박사 학위를 받았으니, 학위 후 9년 만의 작품이라 그의 신학 철학적 사고의 기본이 표현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에 관한 중세와 현대의 사상을 관통하는 책으로 우리의 지식을 한 단계 고양시키는 탁월한 저서입니다.

그의 알쏭달쏭한 입론들은 그의 수사학이 그렇다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극단적으로 논리적인 글을 거의 읽지 않으며 산다는 것을 보여 주기도 합니다. 그의 책을 대략이라도 이해하게 되면 아주 등정하기 어려운 산에 올라가 서 있는 느낌을 받습니다. 죽었다 하고 글을 읽을 사람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이 글은 <크리스찬북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안영혁 / 총신대신학대학원 실천실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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